앞에선 ‘국정농단 단죄’, 뒤로는 ‘딸 통해 11억’…박영수 구속 
  • 이혜영 기자 (zero@sisajournal.com)
  • 승인 2023.08.04 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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檢, 특검 당시 딸 통해 화천대유서 받은 11억 관련 혐의 추가
망치로 휴대폰 부수는 등 ‘증거인멸’ 가능성 높인 점도 자충수
대장동 민간 개발업자들을 돕는 대가로 금품을 수수했다는 이른바 '50억 클럽' 의혹을 받는 박영수 전 특별검사가 8월3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두번째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심사)에 출석하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 연합뉴스
대장동 민간 개발업자들을 돕는 대가로 금품을 수수했다는 이른바 '50억 클럽' 의혹을 받는 박영수 전 특별검사가 8월3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두번째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심사)에 출석하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 연합뉴스

역대 특검 가운데 가장 성공한 수사를 이뤄낸 것으로 평가받던 박영수(71) 전 특검이 결국 구속됐다. 특검 재직시 딸을 통해 대장동 민간업자들로부터 11억원을 받고, 둔기로 휴대폰을 부수는 등 증거인멸을 시도한 점이 구속의 결정타가 됐다. 

4일 법원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윤재남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전날 박 전 특검에 대해 "증거인멸 우려가 있다"며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지난 6월30일 첫 구속영장을 기각한 지 한 달여 만이다.

검찰이 박 전 특검 신병을 확보함에 따라 지지부진하다는 지적을 받아온 '50억 클럽' 수사에도 한층 탄력이 붙을 전망이다. 

검찰은 첫 영장 기각 후 박 전 특검의 딸 박아무개씨가 김만배씨의 화천대유자산관리에서 얻은 25억원의 성격 규명에 수사력을 모았다. 

특히 검찰은 화천대유 직원으로 있던 박씨가 화천대유로부터 이례적으로 11억원을 대여금 형태로 받은 점에 주목했다. 검찰은 명목상 '빌린 돈'이지만 이 돈이 사실상 박 전 특검에게 건네진 것으로 보고 있다. 

박 전 특검 가족에 대한 압수수색과 소환조사 등 보강수사 끝에 검찰은 박씨가 2019년 9월∼2021년 2월 다섯 차례에 걸쳐 화천대유에서 11억원을 받은 사실을 청탁금지법 위반 혐의로 추가했다.

검찰은 당시 특검으로 있으며 공직자 신분이던 박 전 특검이 딸과 공모해 '50억 약속'의 일부로 11억원을 받았다고 봤다. 이에 따라 박 전 특검이 대장동 민간업자들에게 실제 수수한 돈은 8억원에서 19억원으로 2배 가량 늘어났다. 

검찰은 청탁금지법 위반 외 기존에 적용한 혐의와 관련해서도 보강 수사를 벌여왔다. 박 전 특검이 '50억 클럽 특검' 논의가 본격화하자 지난 2월께 망치로 자신의 휴대전화를 부수는 등 증거인멸을 시도한 정황도 확인했다. 

박 전 특검은 우리은행 사외이사 겸 이사회 의장, 감사위원으로 재직하며 대장동 민간업자들의 청탁을 들어주는 대가로 거액의 돈을 약속받고 8억원을 수수했다는 혐의를 받는다. 2015년 대한변호사협회장 선거 자금 명목으로 남욱씨에게서 3억원, 같은 해 3∼4월 우리은행의 여신의향서를 발급해달라는 청탁 대가로 받은 5억원이다.

검찰은 변협회장 선거를 도운 변호사들에게서 박 전 특검의 최측근 양재식 전 특검보를 통해 돈을 받았다는 진술과 관련 문자메시지 등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2015년 김만배씨가 박 전 특검에게 5억원을 빌리며 작성한 '자금차용약정서'도 확보했다.

약정서에는 '박 전 특검이 원할 경우 화천대유 주식 일부를 담보로 제공한다'는 취지의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이 약정을 통해 박 전 특검이 주식 배당금 형태로 50억원을 받을 수 있는 '세탁 통로'를 확보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가짜 수산업자 사건'에 연루돼 기소되며 타격을 입은 박 전 특검은 대장동 사건으로 구속 피의자 신세가 되며 추락했다. 

박 전 특검은 대검 중수부장을 거쳐 2009년 서울고검장을 끝으로 퇴임할 때까지 검찰 내 대표적인 강력·특수통으로 불렸다. '칼잡이', '재계 저승사자', '강골 중수부장' 등 별칭이 붙었던 그는 2016년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 특검으로 임명되며 여론의 높은 지지를 받았다. 

당시 박근혜 정권의 실세였던 김기춘 전 비서실장 등 30여 명을 재판에 넘기며 '가장 성공한 특검' 수식도 뒤따랐다. 

그러나 박 전 특검이 수산업자를 사칭한 김아무개씨에게 포르쉐 렌터카를 받은 의혹이 불거지면서 명성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결국 박 전 특검은 이 사건으로 특검팀 출범 4년7개월 만에 불명예 사퇴했고, 기소돼 1심 재판을 받고 있다.

가짜 수산업자 사건 여파가 가시기 전 박 전 특검은 '대장동 50억 클럽' 명단에 이름을 올리며 또 한번 충격을 안겼다. 박 전 특검은 2021년 11월과 지난해 1월 두 차례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 조사를 받았지만 수사가 지지부진하게 전개되면서 형사처분을 면하는 듯 했다. 

그러나 50억 클럽에 함께 포함된 곽상도 전 의원이 지난 2월 뇌물 재판 1심에서 무죄를 받아 여론이 들끓으면서 반전을 맞았다. 검찰은 50억 클럽 부실수사 논란과 야권의 특검 추진 움직임이 가시화되자 올해 3월 전면 재수사에 돌입했고 끝내 박 전 특검은 구속됐다. 

검찰은 형사소송법에 따라 최장 20일 동안 박 전 특검을 상대로 대장동 일당으로부터 받은 돈의 흐름과 성격, 구체적인 청탁 과정 등을 규명해 재판에 넘길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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