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감정을 빛으로 드러내다
  • 조창완 북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3.08.14 11:05
  • 호수 17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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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영 작가의 신작 소설집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사람들 감정 사이에 섬이 존재한다면 그것을 가장 잘 그려내는 작가는 최은영이다. 그 미묘한 감정의 변화는 가족, 사회, 친구라고 해도 마찬가지다. 더욱이 첫 작품 《쇼코의 미소》부터 세계성까지 확보했으니, 그 넓이도 가늠하기가 쉽지 않다. 최 작가의 신작 소설집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역시 그런 사람들 사이에 있는 감정에 몰두한다. 이번 작품은 그녀가 사회에 던지는 작은 메시지들을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최은영 지음│문학동네 펴냄│352쪽│1만6800원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최은영 지음│문학동네 펴냄│352쪽│1만6800원

서정적이고 세밀한 언어로 구성된 7편의 소설

이번 소설집과 동명의 소설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에서 직장생활을 하다 다시 대학에 입학한 희원은 영작문 강사와 용산이라는 공간을 공유한다. 그들의 마음속에는 용산 참사의 흔적인 남일당 건물이 커다란 기흉처럼 남아있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또 다른 소설 《몫》은 중년들의 정치에 대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1996년 즈음 신입생 해진과 희영은 1년 선배 정윤과 대학교지 편집부에서 만난다. 처음에는 교지 글을 통해 변화되는 존재들이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들은 가정과 사회라는 양가적 현장 속에서 살아간다. 신군부에서 비롯된, 김영삼 정부를 교체하겠다는 일념과 개인의 감정과 삶도 그만큼 소중하다는 소소한 충돌에서 그들의 삶은 다양하게 교체된다.

“그녀는 타인의 상처에 깊이 공감했고, 상처의 조건에 대한 직관을 지니고 있었다. 글쓰기에는 빛날 수 있으나 삶에서는 쓸모없고 도리어 해가 되는 재능이었다.”

동갑내기 인턴과 함께 카풀을 하면서 사회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감정이 얼마나 쉽지 않은지를 드러내는 《일 년》은 인간관계의 미묘함을 여실하게 드러낸다. 세 명 중에 한 명만 뽑히는 냉혹한 인턴으로 들어온 다희에게 그녀는 동갑으로 느끼는 우정이 아니라 스물일곱 사회 초년생 여성들이 가진 감정을 공유한다. 하지만 작은 오해들과 각자가 가진 절박한 상황으로 인해 이런 감정들이 짓밟힐 수밖에 없을 때 사람들은 상처를 받는다.

최 작가에게 글은 이렇게 천형이면서 빛나는 일이다. 후반부에 나란히 배치된 세 편은 가족의 모습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이 중 일찍 돌아가신 엄마를 대신해 자신을 보살펴준 오빠의 사랑을 뒤늦게 깨닫는 동생의 이야기 《파종》은 삶에 대한 오빠의 태도와 그가 남긴 사랑을 은유하는 공간인 텃밭을 배경으로 남매가 나눈 마음을 섬세하게 담아낸다.

7편으로 구성된 이 소설집은 작가 특유의 서정적이고 세밀한 언어들로 만들어졌다. 무너진 관계들 속에서도 희미한 빛을 찾아내 더 가보고 싶도록 독자에게 연대의 손을 건넨다. 올해로 데뷔 10년을 맞이하는 최 작가는 그간 만남과 헤어짐을 거듭하는 인물의 내밀하고 미세한 감정을 투명하게 비추며 우리의 사적인 관계 맺기가 어떻게 사회적인 맥락을 얻는지를 고찰해 왔다. 이번 중단편들은 조곤조곤 이야기를 시작하다가도 어느 순간 이야기의 부피를 키우면서 우리를 뜨거운 열기 한가운데로 이끄는 몰입력과 호소력이 돋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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