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동물, 이제 ‘품종’이 아닌 ‘존재’로 인식하라 [따듯한 동물사전]
  • 이환희 수의사·포인핸드 대표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3.08.14 11:05
  • 호수 17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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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필요에 따라 물건처럼 분류하는 관행 버려야

반려견 산책이 일상화된 요즘이다. 걷다 보면 귀여운 모습의 반려견을 쉽게 만날 수 있다. 그냥 지나치기도 하지만 잠깐 멈춰 서서 반려견에게 인사를 건네는 사람도 종종 보인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길에서 만난 반려견의 보호자에게 “품종이 뭐예요?”라고 물어보는 경우가 많다. 물론 처음 만난 반려견에 대한 질문거리가 마땅치 않은 것도 사실이지만, 사람들이 반려동물에 대해 관심을 갖고 인지하는 데 품종이 매우 중요한 요소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반려동물 품종이 이렇게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된 것은 반려동물의 역사와 깊은 관련이 있다. 개가 반려동물로서 인식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우리나라와 달리 영국 등 유럽 국가에서는 19세기부터 개가 가축의 개념을 넘어 놀이와 유희의 대상으로 여겨졌다. 그때부터 유전형질이 비슷한 개체들을 선택적·폐쇄적으로 교배해 고유한 특성을 가진 여러 품종의 개들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1990년대 우리나라에 애완동물 문화가 소개될 당시에도 펫숍을 통해 기존에 보지 못했던 작고 귀여운 품종의 동물들이 다양하게 소개되면서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시추, 푸들, 말티즈, 요크셔테리어 등이 당시 유행한 품종이다.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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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반려동물 문화 이전에 애완동물 문화가 있었고, 애완동물 문화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펫숍을 통해 여전히 반려동물 대부분이 분양되고 있다. 그리고 이런 펫숍들은 반려동물을 유행하는 품종을 기준으로 분류해 분양한다. 이에 반려동물을 입양하고 인식하는 과정에서 품종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품종 중심의 인지가 유리한 점도 있다. 우선 품종별로 지닌 고유한 외형적·성격적·질병적인 특성을 이런 분류를 통해 명확하고 쉽게 인지할 수 있다. 또 동일한 품종을 키우는 보호자들의 커뮤니티가 형성돼 반려견 성장 과정에서 필요한 다양한 경험과 정보를 나누며 양육에 도움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품종별로 고유한 특성은 선택적이고 폐쇄적인 교배에서 비롯된다. 폐쇄적인 교배, 특히 근친 교배는 유전적인 다양성을 저해하고 열성 강화로 인한 기형이나 유전병을 초래하기도 한다. 실제로 반려동물들의 여러 품종에서 유전병이 나타난다. 

유행하는 품종도 시대에 따라 변한다. 2000년대 초반에 흔히 볼 수 있었던 시추는 이제 길에서 찾아보기 어렵다. 최근에는 포메라니안과 시베리안허스키를 교배한 ‘폼스키’, 말티즈와 푸들을 교배한 ‘말티푸’ 등 새로운 품종도 등장하고 있다. 이런 반려동물의 품종은 철저히 사람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지고 있다. 인간의 즐거움과 상업적인 목적을 추구하며 마치 시장에서 팔리는 물건처럼 만들어진다. 유행에 따라 수요가 늘어났다가 유행의 유효기간이 끝나면 도태된다. 품종은 하나의 분류일 뿐, 하나하나의 존재를 대표할 수 없다. 반려견이 물건이 아닌 하나의 생명이자 가족으로 자리 잡고 있는 반려문화에서 품종이나 순종에 대한 집착은 이제 어울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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