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 유지의 열쇠로 떠오른 ‘마이오카인’
  • 노진섭 의학전문기자 (no@sisajournal.com)
  • 승인 2023.08.13 12:05
  • 호수 17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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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할 때 근육에서 분비되는 호르몬
근육·지방·심장·췌장·뼈·뇌 등에 긍정적 효과

2012년 세계적인 과학지 ‘네이처’에 실린 한 편의 논문이 의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불러모았다. 근육 호르몬, 즉 마이오카인(Myokine)의 존재를 확인한 것이다. 마이오카인은 근육에서 생성돼 혈액으로 분비되는 모든 물질을 지칭하는 용어로 근육을 의미하는 ‘마이오’와 호르몬을 뜻하는 ‘카인’의 합성어다. 호르몬이란 우리 몸의 기능을 제대로 돌아가게 하는 물질이다. 호르몬을 분비하는 갑상선·뇌하수체·부신 등을 내분비 장기라고 한다. 그런데 근육도 내분비 장기만큼 다양한 호르몬을 분비한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이 연구를 진행한 미국 하버드의대 다나파버 암연구소의 브루스 스피겔만 교수는 쥐 실험을 통해 운동할 때 근육의 세포막에서 특정 단백질(FNDC5)이 만들어지는데 이 중 일부 단백질 조각이 혈액을 통해 방출돼 백색지방을 갈색지방처럼 만든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흔히 살이 찔 때 늘어나는 백색지방은 에너지를 저장하므로 비만의 주범으로 지목된다. 갈색지방은 열을 발산해 불필요한 에너지를 소모하므로 건강에 이로운 지방으로 통한다. 스피겔만 교수는 이런 작용을 하는 단백질 조각을 아이리신(Irisin)이라고 명명하고 마이오카인으로 분류했다. 

물론 이전에도 근육에서 특정 물질이 분비되고 다양한 장기의 생리적 기능에 관여한다는 논문이 학계에 보고됐으나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런데 이번 연구 결과는 마이오카인 존재를 처음으로 확인한 스피겔만 교수와 네이처라는 학회지의 명성이 더해져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후 후속 연구들이 이어졌고, 마이오카인은 근육·지방·심장·췌장·뼈·뇌와 신경·간 등 다양한 조직에 긍정적인 효과를 미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마이오카인의 종류는 약 200가지로 추정되며 지금까지 약 10가지를 확인했다. 아이리신·FSTL-1·FGF-21 등이 대표적이다. 아이리신은 백색지방을 갈색지방처럼 바꿔 에너지 소모량을 올리므로 대사증후군 위험을 낮추는 데 이바지한다. 인슐린 저항성(당뇨병)을 완화하는 효과도 있다. FSTL-1은 혈관을 확장해 혈압을 떨어뜨리고 심장혈관 세포를 증가시켜 심장 조직을 회복하는 데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FGF-21은 혈액 속 포도당 농도를 낮추며 간에서 지방을 분해해 지방간을 개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아산병원 제공
ⓒ서울아산병원 제공

항암제 효과도 높이는 마이오카인

이런 효과들이 확인되면서 마이오카인은 만성질환의 위험을 낮추는 것으로 알려졌다. 게다가 최근에는 암을 억제하는 효과도 관측됐다. 안철우 강남세브란스병원 내분비내과 교수는 “마이오카인은 항암제 효과를 극대화한다. 지난해에도 세계적으로 유명한 의료기관인 미국 MD앤더슨 암센터에서 근육이 있는 암 환자와 근육이 없는 암 환자의 항암제 치료 효과가 다르게 나타났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근육이 있는 환자의 항암제 치료 효과가 더 좋았다. 항암제는 화학항암제·표적항암제·면역항암제로 진화해 왔으나 내성 등의 부작용 문제가 있다. 이후 4세대 항암제로 대사항암제가 떠오르고 있다. 대사항암제란 암세포가 자라는 데 필요한 에너지원을 없애 암세포를 굶겨 죽이는 항암제다. 대사항암제에 마이오카인이 활용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새로운 마이오카인을 찾거나 마이오카인의 기능을 밝히려는 연구가 세계적으로 활발하다. 마이오카인은 운동과 관련이 깊다는 사실도 최근 밝혀졌다. 건강한 남성 18명이 하루 1시간씩 12주 동안 운동한 후 근육의 유전자를 조사한 연구에서 약 2만 개의 인간 유전자 중 938개의 활성도가 변했고 이 중 52개는 아이리신처럼 혈액으로 분비되는 단백질을 생산하는 유전자인 것으로 나타났다. 근육에서 52개의 마이오카인을 생산해 다른 조직에 운동 효과를 전파한다는 것이다. 안 교수는 “우리 건강은 대사 과정을 거쳐 유지되는데 음식과 운동이 그 기초다. 그런데 아파서 병석에 누웠을 때 음식은 수액으로나마 대체할 수 있지만 운동은 뾰족한 대체법이 없다. 혈당이 높을 때 인슐린을 투여하는 것처럼 운동할 수 없는 사람(환자·우주인·노화 등)에게 마이오카인을 투여해 운동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또는 마이오카인을 분비하도록 유도할 수도 있겠다. 아직 우리는 마이오카인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에 지금도 이에 관한 연구가 활발하고 나도 새로운 마이오카인을 찾는 연구를 진행 중”이라고 설명했다. 


운동으로 근육 자극할 때 마이오카인 분비

실제로 마이오카인은 운동할 때 많이 분비된다. 계속 자극을 받아 근육이 피로할 때 마이오카인이 분비되는 것이다. 스피겔만 교수는 2015년 운동한 사람과 하지 않은 사람의 혈액을 분석했더니 운동한 사람에게서 아이리신을 더 많이 발견할 수 있었다는 연구 결과를 세계적인 의학지 ‘셀’을 통해 학계에 보고했다. 안 교수는 “근육에는 적색근육과 백색근육이 있다. 적색근육을 지속적으로 자극할 때 마이오카인이 많이 분비된다. 복근과 가자미 근육(종아리 근육) 등이 대표적인 적색근육”이라고 설명했다. 적색근육은 지속적인 행동과, 백색근육은 갑작스러운 움직임과 관련이 있다. 

어떤 운동을 얼마나 해야 마이오카인 분비에 도움이 될까. 흔히 ‘일주일에 4일 이상, 하루에 40분’ 운동하라는 공식이 있다. 이는 세계보건기구(WHO)와 미국질병예방통제센터(CDC)가 1980~90년대 신체활동 증진을 유도할 목적으로 단순하게 만든 공식이다. 사실 이 공식의 의학적 배경에는 건강 증진보다 조기 사망을 예방하기 위한 목적이 있다. 이후 CDC는 건강 유지와 증진 효과를 위해서는 ‘더 많이 더 힘들게 그리고 가능한 한 매일’ 운동할 것을 권고했다. 평소 건강을 유지하려면 강도 높은 운동을 매일 실천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라는 말이다.

그러나 운동 능력은 개인마다 다르므로 자신에게 맞는 운동 강도를 찾을 필요가 있다. 가령 걷기 운동을 시작한 날 20이 최고치라고 할 때 12만큼 힘들었다면 2주 후의 목표는 10만큼 힘들다고 느끼는 것이다. 그만큼 몸이 튼튼해진 것이다. 10 정도 힘들게 느낀 후에는 걷는 날의 횟수를 늘린다. 첫 주에 주 2회 걸었다면 4주 후에는 주 4회를 걸어보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더 많이 더 힘들게 그리고 가능한 한 매일’ 법칙을 따라가면 된다. 안 교수는 “복근운동과 항중력 운동이 좋은데 스쿼트를 개인적으로 추천한다. 운동 강도는 중강도보다 고강도가 바람직하다. 고강도 운동을 짧게 여러 차례 반복하는 것이다. 그러나 자기 능력에 맞게 해야 한다. 심장이 좋지 않은 사람이나 뇌졸중 환자에게 고강도 운동은 자칫 위험할 수 있다. 마이오카인은 지속적인 자극을 받을 때 많이 분비되므로 운동을 매일 꾸준히 할 필요가 있다. 사실 매일 고강도 운동을 하기란 쉽지 않으므로 평소 근육을 움직여야 한다. 가령 의자에 앉아서 일할 때 다리를 올리고 내리기를 반복하면 된다. 서있을 때도 가만히 있지 말고, 다리를 굽혔다 폈다 하면 좋다”고 말했다. 

ⓒ시사저널 이종현
7월8일 오후 서울 강남의 머슬팩토리(피트니스 클럽)에서 사이클링 시범을 보이고 있다. ⓒ시사저널 이종현

“근육은 이로운 호르몬을 저장하는 곳간”

마이오카인 분비가 늘어나는 운동은 건강 유지뿐만 아니라 특정 질환 예방과 치료에도 효과적이라는 연구 결과가 속속 나온다. 호주 에디스코완대학 운동의학연구소 로버트 뉴턴 교수팀은 2021년 마이오카인이 암세포 증식을 억제하고 암세포와의 싸움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비만 전립선암 환자에게 12주간의 운동 프로그램을 시행하고 전후 혈액을 분석했더니 혈중 마이오카인이 증가하면서 암의 진행 속도가 느려진 것이다. 마이오카인이 암세포를 죽이지는 못하지만, 암세포의 증식 속도를 줄이는 등으로 적극 대항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로버트 뉴턴 교수는 “운동 전 혈액과 운동 후 혈액을 전립선암 세포에 노출했을 때 운동 후 혈액에서 암세포 성장이 현저하게 억제되는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미국 존스홉킨스의대 테드 도슨 교수와 하버드의대 스피겔만 교수는 아이리신과 파킨슨병의 연관성을 연구했다. 실험용 쥐를 두 그룹으로 나눠 한 그룹에만 아이리신을 투여했다. 6개월 후 아이리신을 투여한 쥐는 근육운동 장애가 없었지만 위약을 주사한 쥐는 운동 능력이 결핍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와 같은 결과는 사람에게서도 확인됐다. 2022년 미국 신경과학회 저널인 신경학 온라인판에 게재된 논문을 통해 일본 교토대 연구진은 초기 단계 파킨슨병 환자 237명을 6년 동안 추적 조사한 결과를 발표했다. 일주일에 4시간 이상 걸은 파킨슨병 환자는 걷기와 같은 운동을 전혀 하지 않는 환자에 비해 균형 잡기 등을 비롯한 운동 장애가 느리게 진행됐다. 연구를 주도한 쓰키타 가즈토 박사는 “걷기와 가사 등 규칙적인 신체활동이 장기적으로 질병의 경과를 개선할 수 있다는 사실은 고무적”이라고 평가했다. 

그 옛날 그리스 의학자 히포크라테스는 “걷기는 가장 훌륭한 약”이라는 말을 남겼다. 그로부터 약 2000년이 흐른 현재 마이오카인의 발견으로 그의 말은 의학적으로 확인됐다. 안 교수는 “마이오카인 한두 종류가 우리 건강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는 없다. 다만 다수가 동시다발적으로 증가해 작용하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마이오카인을 동시다발적으로 증가시키는 것은 운동이다. 근육은 수많은 이로운 호르몬을 저장하는 곳간이며 이 곳간의 문을 열 수 있는 유일한 열쇠는 운동”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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