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 상병 수사에 ‘윗선’ 개입했나…해병대發 내부고발 일파만파
  • 박성의 기자 (sos@sisajournal.com)
  • 승인 2023.08.11 1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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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병前수사단장 “사단·여단장 넣었더니 대대장 이하로 하라 해”
국방부 ‘사실무근’ 반발…이재명 “尹 정부는 진상 은폐에 열중”

‘고(故) 채수근 상병 사망사건 수사’와 관련해 ‘집단항명 수괴’ 혐의로 군 검찰에 입건된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이 국방부로부터 사건을 축소하라는 외압을 받았다고 폭로했다. 국방부가 사실무근이라는 입장을 밝힌 가운데, 야권을 중심으로 국회 차원의 진상조사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고(故) 채수근 상병의 안장식이 7월22일 국립대전현충원에서 거행되고 있다. 채수근 상병은 7월19일 경북 예천 내성천에서 실종자를 수색하던 중 급류에 휩쓸려 숨졌다. ⓒ연합뉴스
고(故) 채수근 상병의 안장식이 7월22일 국립대전현충원에서 거행되고 있다. 채수근 상병은 7월19일 경북 예천 내성천에서 실종자를 수색하던 중 급류에 휩쓸려 숨졌다. ⓒ연합뉴스

해병前수사단장 “국방부가 사건 축소 지시”

시사저널 취재를 종합하면, 박 전 수사단장은 지난 7월30일 국방부 장관집무실에서 채 상병 순직 사건에 대한 조사 결과를 이 장관에게 보고했다. 박 전 수사단장이 제출한 보고서에는 해병대 1사단장을 포함한 군 관계자 8명을 혐의자로 적시하고,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경찰에 이첩할 예정이라는 내용이 포함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 장관은 보고 다음날인 지난 7월31일, 돌연 채 상병 사건의 경찰 이첩을 보류할 것을 해병대 지휘부에 지시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혐의를 적시하는 것과 관련해 추가 법적 검토가 필요하다는 이유에서다. 이 장관의 명령이 하룻밤 사이에 뒤바뀌자, 군 일각에서 해병대 1사단장 등 고위급 지휘관의 책임을 무마하기 위한 것이 아니냐는 ‘윗선 개입 의혹’이 제기됐다.

의혹이 확산한 계기는 사건을 지휘했던 박 전 수사단장이 내부고발자로 나서면서다. 박 전 수사단장은 지난 11일 국방부 검찰단 앞에서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유재은 국방부 법무관리관이 전화 통화로 ‘직접적인 과실이 있는 사람으로 (혐의를) 한정해야 한다’고 압박했다고 주장했다.

박 전 수사단장에 따르면, 통화는 지난 8월1일 오전 9시43분께 이뤄졌다. 박 전 수사단장이 이종섭 국방장관에게 기초수사 결과를 보고해 결재받고, 이어 언론 브리핑을 위해 만든 자료를 국가안보실에 보낸 지 이틀이 지난 시점이다.

박 전 수사단장은 “직접적인 과실이 있는 사람이라고 하면 직접 물에 들어가라고 한 대대장 이하를 말하는 것이냐”라고 물었더니, 법무관리관이 “그렇다”고 했다고 전했다. 이에 박 전 수사단장은 “그것은 협의의 과실로 보는 것이다. 나는 사단장과 여단장도 사망의 과실이 있다고 보고 광의로 과실 범위를 판단했다”며 “어차피 수사권은 경찰에 있으니 경찰에서 수사해 최종 판단하면 될 것 아니냐”고 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유 법무관리관에게 “지금 하신 말씀은 외압으로 느낀다. 제삼자가 들으면 뭐라 생각하겠나. 이런 이야기는 매우 위험하다. 조심해서 발언해달라고 했다”고 박 전 수사단장은 전했다.

박 전 수사단장은 “국방부는 어느 순간 언론에 나온 내용을 보고 초급간부를 언급하고 있다”며 “처음부터 그럼 마음이었으면 우리 장병들이 그런 위험한 물가에 가는데 구명조끼는 둘째치고, 안전로프라도 구비했어야 하지 않았나”라고 비판했다. 이어 “지휘부가 장병을 대하는 태도가 수단이나 도구가 아니라 내 자식 같고 정말 전우처럼 여기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국방부 “사실 아냐”…민주당 “국회가 나서야”

반면 국방부는 박 전 수사단장이 지시 사항을 왜곡하고 있다며 비판했다. 이 장관이 ‘투입됐던 위관 장교와 부사관 등 초급간부 4명’에게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를 적용할 수 있는지 등을 고민한 것은 사실이지만, 사단장 등 고위급 지휘관의 책임을 무마하기 위해 압력을 가한 사실은 없다는 주장이다.

고민 끝에 이 장관이 본인의 우즈베키스탄 출장 복귀(8월3일)까지 경찰 이첩을 보류하라고 지시했으나, 박 전 수사단장이 지시를 어기고 지난 8월2일 경북경찰청에 조사보고서를 이첩했다는 것이 국방부의 주장이다. 이에 해병대 사령관은 명령을 어겼다는 이유로 박 전 수사단장을 보직해임했고, 국방부 검찰단은 그를 집단항명의 수괴 등 혐의로 입건해 수사하고 있다.

채 상병 사망사고를 둘러싼 논란이 ‘진실게임’ 양상으로 흘러가는 가운데, 야권을 중심으로 국회차원의 진상조사가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11일 당 최고위원회 회의에서 채 상병 순직 사건에 대해 “철저한 인재였다”며 “신속하고 철저한 진상규명으로 법적, 도의적 책임을 다해도 모자랄 판인데 윤석열 정부는 진상 은폐에 열중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더 이상 정부의 수사 결과를 믿을 수 없는 만큼 국회가 나서야 한다”며 “민주당은 채 상병 순직에 대한 진상을 명백히 밝히고 책임을 철저하게 따져 묻겠다. 국회 국방위원회를 신속히 열어 수사 은폐, 방해 의혹에 대해 낱낱이 밝혀내겠다”고 했다.

한편, 대통령실은 지난 9일 채 상병 사망 사건을 두고 각종 의혹이 불거진 것과 관련해 국방부에서 설명할 사안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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