與 ‘삼류 정치쇼’ 비난에도 ‘해병대 외압설’ 커지는 이유
  • 구민주 기자 (mjooo@sisajournal.com)
  • 승인 2023.08.14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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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채수근 상병 순직’ 윗선 개입 논란 증폭…정치권으로 확전
‘외압’ vs ‘항명’ 팽팽…‘수사심의위’ 진행에 촉각
12일 경북경찰청은 집중 오후로 피해가 발생한 경북 예천에서 실종자 수색 작업을 하던 중 급류에 휩쓸려 숨진 고(故) 채수근 해병대 상병의 사망 사건을 이첩 받아 수사하겠다고 발표했다. ⓒ 연합뉴스
12일 경북경찰청은 집중 오후로 피해가 발생한 경북 예천에서 실종자 수색 작업을 하던 중 급류에 휩쓸려 숨진 고(故) 채수근 해병대 상병의 사망 사건을 이첩 받아 수사하겠다고 발표했다. ⓒ 연합뉴스

지난달 집중호우 피해 실종자 수색 중 순직한 고(故) 채수근 상병 사고 관련 진상규명이 외압·항명 논란으로 번지고 있다. 채 상병 사건을 수사했던 해병대 수사단장 박정훈 대령은 해병대 1사단장 등의 혐의를 축소하기 위해 국방부가 외압을 행사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국방부는 박 대령이 상부의 정당한 지시를 어긴 항명 사건이라며 팽팽히 맞서고 있다. 외압과 항명 사이 진실공방이 이어지는 가운데 여야 의원들까지 설전에 가세하면서 논란은 더욱 거세지고 있다.

 

‘말 바꾸기’ ‘통화 기록’…의혹 키우는 국방부

사건은 지난달 30일 시작됐다. 이날 박 대령은 이종섭 국방부 장관에게 임성근 해병대 제1사단장 등 8명에게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가 있다는 내용의 조사결과를 대면 보고했다. 이 장관은 이 보고서를 결재까지 마쳤으나 다음날 돌연 경찰 이첩을 대기할 것을 지시했다. 하지만 박 대령은 해당 보고서를 계획대로 이첩했고 곧장 ‘항명’ 혐의로 보직해임, 국방부 검찰단에 입건됐다.

박 대령은 국방부에서 특정인과 특정 혐의는 빼라는 지시가 있었다는 ‘외압’ 의혹을 제기하며 맞섰다. 그는 2일 오전 채 상병 사고 조사 기록을 관할 경찰인 경북경찰처에 보낼 때까지 ‘이첩 보류’를 명시적으로 지시받은 적 없고, 오히려 이 과정에서 국방부 관계자들로부터 ‘사단장은 혐의대상에서 제외하라’는 취지의 외압을 받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는 지난 11일 입장문을 통해 “외압을 행사하고 부당한 지시를 한 국방부 예하 조직으로 공정한 수사가 이뤄질 수 없다”면서 “국방부 검찰단의 수사를 명백히 거부한다”고도 밝혔다. 이어 윤석열 대통령을 향해 “국군통수권자로서 한 사람의 군인의 억울함을 외면하지 마시고, 제가 제3의 수사기관에서 공정한 수사와 재판을 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시길 청원한다”고 덧붙였다.

군 당국은 그의 주장을 강하게 반박하며 박 대령을 향해 강한 유감을 표명했다. 국방부 검찰단은 “수사 거부는 군의 기강을 훼손하고 군 사법의 신뢰를 저하시키는 매우 부적절한 행위”라고 밝혔다. 해병대사령부도 “현역 해병대장교로서 해병대 사령관과 일부 동료 장교에 대해 허위사실로 일방적인 주장을 하고 있는 것에 유감을 표한다”는 입장을 기자단에 전했다.

외압설에 대한 군 당국의 해명에도 의혹은 잦아들지 않고 있다. 우선 지난 7일 경찰 이첩 대기와 관련한 국방부의 ‘말 바꾸기’가 논란이 되고 있다. 당시 국방부는 정례브리핑에서 윗선 개입 의혹에 대한 질문에 “특정인을 빼려는 의도는 없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바로 다음날 “수사 대상에 초급간부가 너무 많이 포함돼 있어 이들의 처벌을 막기 위함”이라고 말을 바꿨다.

이에 대해 박 대령 측은 말도 안 되는 설명이라고 정면 반박했다. 박 대령은 31일 이 장관 보고 당시 이 장관이 ‘(임성근) 사단장도 처벌받아야 하냐’고 되물었다고 주장했다. 또한 국방부 법무관리관실이 수사단에 수차례 전화해 “직접적인 과실이 있는 책임자들만 인계하라”고 요구한 사실도 공개했다. 수사단이 “사단장과 여단장을 제외하라는 의미냐”고 질문하자 명확한 답변 없이 ‘직접적인 과실’만 반복한 것으로도 전해졌다. 이러한 박 대령의 주장에 이 장관과 법무관리관실 측 모두 즉각 사실무근이라고 주장했다.

국방부의 이 같은 대응이 알려지면서 국방부보다 더 윗선인 정권 중심부와의 관련설도 제기됐다. 일각에선 이명박 정부 국가안보실에서 함께 근무했던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 이종섭 국방부 장관, 임성근 1사단장의 관계를 지적하며 의구심을 키우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대통령실은 전면 부인하고 나섰다. 13일 대통령실 관계자는 “국가안보실에서 무엇을 수정해서 (수사) 절차가 어그러지는 그런 상황은 전혀 없었다”며 “정황과 추측을 하고, 가짜뉴스를 만들어가는 것은 부도덕한 일”이라고 밝혔다.

경북 예천 실종자 수색에 투입됐다가 숨진 고 채수근 상병 분향소가 마련된 포항 해병대 1사단 내 김대식관에서 채 상병의 어머니가 아들의 사진을 어루만지며 울고 있다. ⓒ 연합뉴스
경북 예천 실종자 수색에 투입됐다가 숨진 고 채수근 상병 분향소가 마련된 포항 해병대 1사단 내 김대식관에서 채 상병의 어머니가 아들의 사진을 어루만지며 울고 있다. ⓒ 연합뉴스

“진상 은폐” “정쟁화”…시선은 수사심의위로

대통령실 개입 의혹이 제기되자 논란은 빠르게 정치권으로 옮겨 붙었다. 야당은 항명 혐의를 얻은 박 대령을 엄호하며 윗선 개입 의혹을 적극적으로 제기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11일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윤석열 정부는 진상규명으로 법적, 도의적 책임을 다해도 모자랄 판인데 진상 은폐에 열중하고 있다”며 “더는 정부 수사 결과를 믿을 수 없는 만큼 국회가 나서야 한다. 국방위원회를 신속히 열어 수사 은폐나 방해 의혹의 진상을 낱낱이 밝혀내겠다”고 비판했다.

반면 여당에선 ‘가짜뉴스’이자 지나친 ‘정쟁화’라고 반박했다. 국회 국방위 여당 간사인 신원식 국민의힘 의원은 11일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박 대령을 향해 “자신에 대한 항명 혐의가 억울하면 수사기관의 조사에 당당히 응해서 사실과 법리에 입각해서 방어권을 행사하면 될 일”이라며 “3류 정치인 흉내를 멈추고 당당히 조사에 응하라”고 맹비난했다.

이런 가운데 박 대령은 14일 “공정한 수사를 받게 해 달라”며 ‘군검찰수사심의위원회’ 소집을 신청했다.

수사심의위는 고 이예람 공군 중사 사망사건 이후 ‘국민적 의혹이 제기되거나 사회적 이목이 집중되는 사건’을 다루는 데 있어 공정성을 제고하기 위해 제정된 기구다. 위원회는 민간을 포함해 5∼20명으로 구성되며, 수사 계속 여부와 공소 제기여부, 구속영장 청구 여부 등을 심의한다.

다만 소집을 신청한다고 무조건 위원회가 열리지는 않는다. 신청서가 들어오면 국방부 검찰단장이 심의위원 중 5명을 선정해 이 문제를 다룰지 논의하게 된다. 이들의 결정에 따라 수사심의위 개최 여부가 결정된다.

이예람 중사 사망사건 때 구성됐던 심의위원들은 2년 임기가 만료돼 다시 위촉돼야 한다. 새 위원 선정 과정에 국방부가 개입할 수밖에 없어 일각에선 공정하게 이뤄질지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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