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부, ‘외압 의혹’ 임성근 혐의 결국 뺐다…대대장 2명만 ‘과실치사’
  • 이혜영 기자 (zero@sisajournal.com)
  • 승인 2023.08.21 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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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단장 등 4명 사실관계만, ‘허리 입수’ 대대장 2명은 혐의 적시
‘국방부 재검토 vs 해병대 수사단 결과’ 상반돼 논란 이어질 전망
이종섭 국방부 장관이 8월21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을지 및 제35회 국무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 연합뉴스
이종섭 국방부 장관이 8월21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을지 및 제35회 국무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 연합뉴스

국방부가 고(故) 채 상병 사망과 관련해 상급 부대장인 임성근 해병대 1사단장에 대한 혐의를 빼고 경찰에 사건을 이첩하기로 했다. 임 사단장은 해병대 수사를 통해 드러난 '사실관계'만 적고, '허리 입수'를 지시한 대대장 2명에 대해서만 혐의를 적시하는 것으로 수사단 결과와 배치되는 것이어서 논란이 가열될 전망이다.  

국방부 조사본부는 21일 해병대 순직사고 재검토 결과 초동조사에서 과실치사 혐의가 있다고 판단된 8명 중 대대장 2명만 혐의를 적시, 경찰에 인지통보서를 이첩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조사본부는 경찰로 이첩할 대대장 2명은 '장화 높이까지만 입수 가능하다'는 여단장 지침을 위반해 '허리까지 입수'를 지시해 채상병 사망과 직접적인 인과 관계가 있다고 봤다. 

그러나 논란이 된 임성근 사단장을 비롯해 박상현 7여단장·중대장·현장 간부 등 4명은 혐의를 특정하지 않고 사실관계만 적시해 경찰에 송부하기로 했다.

조사본부는 이들 4명에 대해 "문제가 식별됐으나 일부 진술이 상반되는 정황도 있는 등 현재의 기록만으로는 범죄 혐의를 특정하기에 제한됐다"며 "경찰에 송부 후 필요한 조사가 진행되게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해병대 수사단이 파악한 사실과 증거 만으로는 임 사단장 등에 구체적인 혐의를 적용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의미다.   

사고 현장에 채상병과 함께 있었던 중위·상사 등 하급간부 2명은 혐의자에서 제외하고 경찰로 넘기지 않기로 했다. 조사본부는 이들의 경우 채상병과 같은 조로 편성되지 않았지만 자신들이 임의로 사망자 수색조에 합류했던 점을 감안해 "현장 통제관의 업무상 지위와 그에 따른 주의 의무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조사본부 관계자는 "조사본부는 15명으로 태스크포스(TF)를 편성해 기록 전체를 검토했다"며 "8명 중 6명에 대해서는 조사가 필요하다고 만장일치로 합의됐다"고 설명했다.

국방부 관계자는 이날 언론 브리핑 자료를 대통령실 국가안보실에 공유했으며 조만간 채상병 유족과 만나 설명할 방침이다.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이 8월18일 승인 없이 TV 생방송에 출연한 것과 관련해 열린 징계위원회에 출석하기 위해 경기도 화성시 해병대 사령부로 들어가고 있다. ⓒ 연합뉴스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이 8월18일 승인 없이 TV 생방송에 출연한 것과 관련해 열린 징계위원회에 출석하기 위해 경기도 화성시 해병대 사령부로 들어가고 있다. ⓒ 연합뉴스

조사본부의 재검토 결과가 8명 모두에 대해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를 적용했던 해병대 수사단 조사 결과와 배치되면서 외압 및 사건 축소 논란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앞서 국방부는 '해병대 조사결과에 특정인과 혐의가 명시돼 있어 수사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이유로 이종섭 장관 결재까지 완료돼 경찰로 넘어갔던 해병대 수사단 보고서를 회수했다. 이후 국방부 직할 최고위 수사기관인 조사본부에서 재검토를 벌여 왔다. 

군은 문건을 회수한 이후 박정훈(대령) 전 해병대 수사단장이 '경찰 이첩을 보류하라'는 구두 지시를 따르지 않았다며, 그를 항명 혐의로 입건했다. 

박 대령은 입건 이후 '임 사단장을 혐의자에서 빼라고 요구하는 외압이 있었다'고 폭로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임 사단장 등 지휘부를 혐의자에서 빼라는 외압을 가한 배후에 대통령실이 있다고 보고 있다. 임 사단장이 이명박 정부 국가안보실에서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 및 이 장관과 함께 근무했고 이 같은 관계가 '이첩 보류 지시'에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민주당은 장관 결재가 완료돼 이미 경찰로 이첩된 사안을 석연치 않은 이유로 회수하고, 박 대령을 항명 혐의로 입건하기까지 일련의 과정이 국방부 자체 판단으로 벌어진 것으로 보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박 대령은 전날 법률대리인 김경호 변호사를 통해 낸 입장문에서 일각서 제기된 정계 진출 가능성에 대해 "오로지 법과 원칙에 따라 채 상병 사건이 적법하게 처리되기를 바랄 뿐"이라며 "채 상병 죽음을 둘러싼 의혹과 추측이 난무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번 사건과 관련해 저는 어떠한 정치적 성향과 의도와도 무관하다. 저는 충성, 정의, 의리밖에 모르는 바보 군인일 뿐"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앞으로도 오로지 군인으로서 정치적 중립을 지키며 제 명예를 되찾을 것"이라며 "이번 사건이 마무리되면 군인 본연의 자리로 돌아가 남은 군 생활을 조용히 마무리하고 싶은 마음밖에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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