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염수 방류 현실로…기시다, ‘수입규제 철폐 압박’ 노골화 시동
  • 이혜영 기자 (zero@sisajournal.com)
  • 승인 2023.08.22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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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양방류 공식화 한 기시다 “과학적 근거따라 수입규제 조기 철폐 요구”‘
尹정부, ‘오염수 안전’ 힘 실으며 수산물은 수입금지…日 압박 커질 가능성
일본 정부가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 오염수(일본 정부 명칭 '처리수')의 해양 방류를 이르면 8월24일부터 개시한다고 발표한 8월22일 서울 동작구 노량진수산시장의 모습 ⓒ 연합뉴스
일본 정부가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 오염수(일본 정부 명칭 '처리수')의 해양 방류를 이르면 8월24일부터 개시한다고 발표한 8월22일 서울 동작구 노량진수산시장의 모습 ⓒ 연합뉴스

일본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 오염수 해양 방류가 현실이 됐다. 자국 어민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오염수 해양 방류를 강행한 기시다 후미오 총리는 이를 공식화 한 첫 날부터 '수산물 수입규제 조기 철폐'를 언급하고 나섰다. 일본 정부는 점차 악화하는 여론을 달래기 위해 수입규제 철폐를 더욱 노골적으로 압박할 것으로 보인다. 

윤석열 대통령과 한국 정부가 국제원자력안전기구(IAEA)의 원전 오염수 검증에 '신뢰'를 표하며 방류를 사실상 용인한 상황이어서 향후 일본 정부가 'WTO 제소 카드'를 또 다시 꺼낼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기시다 총리는 22일 오염수(일본 정부 명칭 '처리수') 방류를 위한 관계 각료회의를 마친 뒤 기상 등 변수가 없다면 이틀 후인 오는 24일부터 해양 방류를 개시하겠다고 밝혔다. 

기시다 총리는 끝내 어민 동의를 얻는 데 실패한 점을 의식한 듯 지속적인 소통과 설득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수산물 수출' 확대 방안을 함께 언급했다. 

그는 "일부에서 보이는 (외국의) 수입규제 등에 대해서는 어디까지나 과학적 근거에 따라 조기에 철폐하도록 요구한다"며 "수산물의 국내 소비 확대와 국내 생산량 유지, 새로운 수출 대상의 수요에 맞는 가공체제 강화, 새로운 수출처 개척 등 대책을 강구하겠다"고 강조했다.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 오염수의 해양 방류에 반대하는 일본 시민들이 지난달 20일 도쿄 경제산업성 앞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다. ⓒ EPA=연합뉴스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 오염수의 해양 방류에 반대하는 일본 시민들이 지난달 20일 도쿄 경제산업성 앞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다. ⓒ EPA=연합뉴스

이는 오염수 방류를 반대하는 자국 어민을 비롯해 여론을 달래고 일본산 식품 수입 규제 강화에 나선 중국과 홍콩을 견제하기 위한 목적으로 풀이된다. 중국과 홍콩은 지난해 기준 일본산 수산물 최대 수입국이다. 

중국 해관총서는 지난달 7일 오염수 해양 방류가 식품에 미칠 영향을 주시한다며 "적시에 일체의 필요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발표했고, 곧이어 일본산 수산물에 대한 전면적인 방사선 검사에 돌입했다. 방사선 검사 확대 영향으로 지난달 중국의 일본산 수산물 수입액은 2억3451만위안(약 431억원)으로 작년 같은 달보다 33.7% 감소했다.

일본 수산물 최대 수출국인 중국으로의 수출이 3분의1 토막 나면서 큰 타격을 받은 어민들의 반발이 커지는 점을 일본 정부도 예의주시 하고 있다.  

기시다가 이달 초 유럽연합(EU)과 노르웨이, 아이슬란드가 원전 사고 이후 일본산 식품 수입 규제를 철폐 결정을 내린 점을 환영한다는 입장을 자신의 트위터 계정에 올리며 "과학적 내용에 근거한 결정"이라는 메시지를 낸 것도 국내 반발을 누그러뜨리고 수출 규제 해제를 위한 여론전을 본격화 하겠다는 신호로 읽힌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8월22일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 오염수(일본 정부 명칭 '처리수')의 해양 방류 등을 논의하는 각료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 연합뉴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8월22일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 오염수(일본 정부 명칭 '처리수')의 해양 방류 등을 논의하는 각료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 연합뉴스

오염수 방류가 '과학적 근거'에 기반한 것이라며 사실상 이를 용인한 한국 정부로서는 입장이 다소 꼬이게 됐다. 오염수 방류 안전성에 문제가 없다며 연일 '대국민 설득전'을 펼치면서도 후쿠시마 8개현에 대한 수산물 수입은 금지하는 상반된 상황이 연출되고 있어서다. 일본이 한국의 조치를 문제 삼아 세계무역기구(WTO)에 다시 제소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앞서 일본은 2011년 3월 후쿠시마 원전 사고 후 한국이 수산물 수입규제 조치를 이어가자 2015년 5월 WTO에 제소했다. 전 세계 50여개 국이 후쿠시마 수산물 수입을 금지했지만 한국만 유일하게 제소했다. 한국은 1심에선 패소했지만 2심에서 안전성 우려를 집중 공략해 결국 승소했고 수산물 수입금지 조치는 유지됐다. 

그러나 최근 한국 정부가 원전 오염수 해양 방류를 앞두고 낸 자체 검토 보고서에서 '오염수는 안전기준에 부합한다'는 결론을 내리면서 안전성을 이유로 수산물 수입을 금지한 논리가 흔들리게 됐다.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지난 18일(현지 시각) 워싱턴DC 인근 미국 대통령 별장인 캠프 데이비드에서 열린 한·미·일 정상회의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공동취재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지난 18일(현지 시각) 워싱턴DC 인근 미국 대통령 별장인 캠프 데이비드에서 열린 한·미·일 정상회의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공동취재

일본 원전 오염수 방류에 따라 국내 수산업계는 비상이 걸렸다. 소비 위축과 수출 타격이 이미 진행 중이라며 정부의 적극적인 후속 대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특히 후쿠시마산 수산물 수입이 허용되거나 이와 관련한 움직임이 감지될 경우 회복 불가능한 수준의 피해를 입게될 것이라는 우려가 터져 나온다. 

윤석열 정부는 후쿠시마산 수산물 수입에 대해 거듭 선을 긋고 있지만 한·미·일 정상회의 직후 일본이 오염수 해양 방류 결정을 속전속결 진행한 점에 비춰 이번에도 한국을 지렛대로 '주변국 지지'를 넓힐 시도를 할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특히 대중국 압박을 목적으로 한국에 이 같은 요구가 더 노골화 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일단 정부는 후쿠시마산 수산물 수입금지를 해제할 계획이 없다는 입장이다. 

박구연 국무조정실 국무1차장은 지난 10일 "윤석열 대통령이 후쿠시마산 수산물 수입은 절대 없다고 몇 번 강조했고, 정부도 확고한 의지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아예 팩트(사실)로 믿어주셨으면 좋겠다"며 수산물 수입 재개 가능성에 거듭 선을 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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