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發 불씨, ‘중국 금융의 화약고’로 옮겨붙었다
  • 모종혁 중국 통신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3.08.27 10:05
  • 호수 17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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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업체에 공격적 대출로 성장한 ‘그림자은행’ 연쇄 위기
시진핑의 강력한 부동산 규제와 코로나 도시 봉쇄가 화근

8월7일 중국 부동산 개발업체인 비구이위안이 당일에 만기 도래한 10억 달러 채권 2종에 대한 2250만 달러의 이자를 갚지 못했다. 비록 30일간의 유예기간이 있긴 하지만, 비구이위안이 채무불이행(디폴트)을 할 수 있다는 소식은 중국에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왜냐하면 비구이위안은 지난해 매출액이 640억 달러로 중국 부동산 개발업체 중 2위, 시장점유율은 6.8%, 총자산액은 2529억 달러에 달하는 최대 민간 부동산 업체였기 때문이다. 또한 2017년부터 중국에서 5년 연속 부동산 판매 1위 업체였기에, 중국인들의 삶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AP 연합
8월17일 베이징의 한 건설 현장에 ‘건물 소유자 권리 보호’라고 적힌 자동차가 주차되어 있다. 최근 디폴트가 잇따르고 있는 중국의 부동산 업체의 위기를 보여준다. ⓒAP 연합

중국 최대 민간 부동산 업체의 추락

비구이위안은 8월10일 공시를 통해 “상반기 순손실이 450억~550억 위안(약 8조2400억~10조7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이는 지난해 상반기 19억1000만 위안(약 3500억원)의 순이익을 기록했던 것과 완전히 대비된다. 그동안 비구이위안은 중국 민간 부동산 업체 중 우량기업으로 손꼽혔다. 2021년 말 디폴트로 경영난에 빠진 헝다와 달리, 사업 다각화를 무리하게 추진하지 않고 부동산 투자에만 전념해 왔다. 총부채액도 2080억 달러로, 전체 자산에 비추어보면 심각한 수준은 아니다.

그러나 하반기 실적은 더욱 악화되어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40% 이상 감소할 전망이다. 게다가 올해는 13억 달러, 내년엔 23억 달러, 내후년엔 52억 달러, 2026년엔 46억 달러 등 보유한 달러 채권 대부분의 만기가 2027년 이전에 도래한다. 당장 갚아야 할 이자만 9월에 9000만 달러, 10월에 1억3000만 달러다. 따라서 중화권 금융계에서는 중국 당국이 도와주지 않는 한 비구이위안이 디폴트에 빠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현재 비구이위안이 진행 중인 부동산 프로젝트 수는 2021년 헝다의 4배 가까이 될 정도로 부동산 산업에서 비중이 크다.

만약 비구이위안의 디폴트를 막지 못한다면 그 충격파가 헝다보다 더 클 수밖에 없다. 그런데 위기는 비구이위안에서 그치지 않고 있다. 7월23일 중국 10대 재벌그룹인 완다의 부동산 개발업체가 만기 채권을 간신히 상환했다. 완다부동산은 하루 전까지 돈을 모두 마련하지 못해 디폴트에 빠지는 게 아니냐는 우려를 샀다. 다행히 위기는 넘겼지만, 다음에 만기가 도래하는 다른 채권은 상환을 장담할 수 없다는 게 업계의 관측이다. 비슷한 시기에 국유기업인 위안양그룹이 채무 상환 능력을 의심받으면서 위안화 채권의 거래가 중단됐다.

8월17일에는 더 큰 악재가 터졌다. 그동안 근근이 영업해 오던 헝다가 미국 뉴욕 파산법원에 파산보호를 신청했다. 헝다는 청원서에서 홍콩과 케이맨제도, 영국령 버진아일랜드에서 진행 중인 구조조정 협상을 인정해 달라고 요청했다. 미국의 파산보호법 15조는 외국계 기업이 다른 나라에서 구조조정을 하는 동안 미국 내 자산을 보호하기 위해 국제적인 지급 불능 상태를 다루도록 한다. 본래 헝다의 채권자들은 8월 중 헝다의 구조조정 협상에 대한 승인 여부를 놓고 투표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헝다가 먼저 파산보호 신청을 낸 것이다.

헝다의 상황은 위기에 놓인 중국 부동산 개발업체의 현실을 대변한다. 2021~22년 2년간 8120억3000만 위안(약 148조8200억원)의 순손실을 기록했다. 지난해 말 기준 총자산액은 1조8000억 위안(약 329조9000억원)이었지만, 총부채액은 훨씬 더 많은 2조4000억 위안이었다. 이처럼 심각한 재무 및 경영 실태로 인해 헝다가 현재 청산하지 못한 만기 도래 채무는 약 2874억 위안에 이르고, 만기를 넘긴 상업어음은 2446억 위안에 달한다. 그로 인해 6월말까지 3000만 위안(약 55억원) 이상의 소송이 1875건이며, 누적 소송액은 4295억 위안이다.

주목할 점은 중국 부동산 업체의 위기가 금융권으로 전이되는 현상이다. 8월11일 중국의 대표적 부동산신탁회사인 중룽국제신탁은 진보홀딩스, 난두부동산, 셴헝인터내셔널 등 3개 사에 만기가 된 상품 원금 1억4000만 위안의 지급을 연기했다. 그 이유는 중룽국제신탁의 대주주이자 자산관리회사인 중즈그룹의 유동성 위기와 관련 있다. 중즈그룹은 1995년 설립되어 현재는 1조 위안(약 183조3200억원) 규모의 대형 금융기업이다. 문제는 부동산 업체들에 공격적으로 돈을 빌려줘 성장한 ‘그림자은행’이라는 점이다.

그림자은행은 기업에 대출해 주고 주식과 채권에 투자하지만 은행과 같은 규제는 받지 않는 금융기업을 일컫는다. 현재 중국의 그림자금융 규모는 3조 달러(약 4000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최근 들어 중즈그룹은 만기가 지나고 금액은 64조원에 달하는 최소 30여 개의 투자상품을 상환하지 못하고 있다. 그로 인해 8월 상순부터 베이징에 있는 중룽국제신탁과 중즈그룹 본사에는 수많은 투자자의 항의 방문이 이어지고 있다. 오래전부터 ‘중국 금융의 화약고’로 여겨졌던 그림자금융 문제가 이번 부동산 업체의 위기로 수면 위에 떠오른 것이다.

 

국유 부동산 업체·그림자은행 많아 불안감

그렇기에 서방 언론에서는 현재의 중국 상황이 글로벌 금융위기를 촉발한 2008년 리먼브러더스 사태와 유사하다는 견해를 내놓고 있다. 물론 결정적인 차이는 있다. 지금의 위기 상황을 불러온 배경에는 중국 당국의 정책 실수가 있다. 2016년 이래 중국 부동산이 40% 이상 급등하자, 2020년 시진핑 국가주석은 “부동산은 주거용이지 투기나 투자 대상이 아니다”며 강력한 규제조치를 내놓았다. 따라서 자금 조달이 어려워진 부동산 업체는 경영난에 빠졌다. 여기에 코로나19 사태로 도시 봉쇄가 장기화되면서 주택 구매 수요가 위축됐다.

사실 중국 경제에서 부동산은 전체 GDP 성장의 25~30%를 차지해온 주력 산업이었다. 게다가 중국 경제의 3대 축인 투자·수출·소비에서 투자의 핵심 요인이었고 소비를 창출하는 역할을 도맡아왔다. 그러나 부동산 규제가 지속되면서 건설 투자는 위축됐고 인테리어·가구·가전 등 주택 관련 소비가 부진했다. 여기에 폭압적인 도시 봉쇄로 인해 가계의 수입이 줄어들면서 소비심리마저 악화됐다. 이렇듯 상황이 안 좋아지자, 지난해 말 중국 당국은 제로 코로나에서 위드 코로나로 전환하고 부동산 규제도 완화하는 정책을 내놓았다.

그 덕분에 올 1분기 부동산 가격이 상승으로 반전하고 거래량이 급등했다. 하지만 반짝 효과였을 뿐이다. 2분기 들어 가격은 다시 하락세로 돌아섰고 거래량은 급감했다. 갈수록 파고가 높아지는 위기 상황을 막으려고, 8월15일 중국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은 단기 정책금리를 0.1% 인하했다. 21일에는 기준금리인 대출우대금리(LPR)도 0.1% 인하했다. 그러나 인하 폭이 너무 적어 실효성이 의문시되고 있다. 무엇보다 중국 지방정부나 국유기업이 직간접적으로 운영하는 부동산 업체와 그림자은행이 많다는 점이 현 상황의 해결을 더욱 어렵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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