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접 찾아와 의자 던져” 교육공무직을 위한 법은 없다
  • 이해람 인턴기자 (haerami0526@naver.com)
  • 승인 2023.08.24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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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권 보호 움직임 속 학교 민원 떠안는 ‘욕받이’ 교육공무직
“우리 일도 아닌데…” 민원인 찾아와도 보호 장치 전무
16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후문에서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이 연 '교육공무직 악성 민원 욕받이로 내모는 교육부 규탄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손팻말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16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후문에서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이 연 '교육공무직 악성 민원 욕받이로 내모는 교육부 규탄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손팻말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7월 서울 서이초등학교 교사 사망 사건을 계기로 교권 보호가 사회적 과제로 떠올랐다. 해당 교사가 학부모의 악성 민원에 시달렸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학부모 민원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정치권에서도 논의에 착수했다. 악성 민원으로 인한 비극을 어떻게 끊어낼지 뒤늦게야 고민을 시작한 것이다.

그 일환으로 등장한 것이 ‘민원대응팀’ 신설이었다. 교육부는 지난 14일 ‘교권 회복 및 보호 강화 종합 방안’ 시안을 발표하며 학교의 민원 창구를 ‘민원대응팀’으로 일원화하겠다고 밝혔다. 민원대응팀은 교감과 행정실장, 교육공무직 등 5명 내외로 꾸려진다. 교육부 계획에 따르면 앞으로 초기 학부모 민원 대응은 교내 교육 공무직들이 담당하게 된다.

교육부의 계획은 발표와 동시에 암초를 맞았다. 교육 공무직들이 즉각 반대하고 나서면서다.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 전국교육공무직본부, 전국공무원노동조합 교육청본부 등 교육공무직 단체들은 민원대응팀 신설이 곧 “교육공무직을 ‘욕받이’로 내모는 갑질 횡포이다 ‘폭탄 돌리기’”라고 거세게 반발했다. 그동안도 사실상 온갖 악성민원에 직접적으로 시달려 왔는데, 그 정도가 더욱 극심해질 거란 주장이다.

이들의 이러한 호소를 뒷받침하는 통계도 있다. 실제 전국교육공무직본부가 교육부 발표 직후인 지난 14~16일 4687명 조합원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61.4%가 ‘악성 민원을 받아본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 스트레스 정도에 대해서는 52.3%가 ‘매우 높다’, 39%가 ‘높다’고 답했다. 90% 이상이 스트레스 정도가 ‘높다’고 답한 셈이다.

 

“업무분장에 ‘민원’ 없는데…방학 땐 더 공포스럽다”

사실 교무실과 행정실 민원 대응을 담당하는 교육공무직(교무실무사‧행정실무사 등)의 업무엔 ‘민원대응’은 존재하지 않는다. 업무분장 어디에도 이들이 민원에 대응해야 한다는 내용은 없다. 그럼에도 그동안 학교 현장에서 민원들은 암묵적으로 이들의 몫으로 전가돼 왔다.

인천의 한 초등학교에서 교무실무사로 근무하는 이아무개씨는 취재진에 “학교 앞 가로수 때문에 아이들의 통행이 불편하니 가로수를 없애달라는 민원도 있었다. 학교에서 처리할 수 없는 민원임에도 한 달 넘게 시달렸다”며 “상상을 초월하는 이상한 민원들이 많다”고 털어놨다.

또 다른 교무실무사는 민원인이 직접 찾아와 고성을 지르며 의자를 던졌고, 자신이 원하는 요구사항에 맞춰 주지 않을 경우 “교장에게 말해 잘라버리겠다“고 협박한 경험도 있었다고 털어놨다. 방학을 맞아 실무사 혼자 학교에 남아있는 경우엔 “찾아가겠다”고 협박하는 민원이 곱절로 공포스럽다고도 말한다.

곽소연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 인천지부 수석부지부장은 “대표번호로 연결되는 전화기가 주로 이들의 책상 위에 있기 때문에 각종 민원 대응 업무를 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교육부가 이들을 본인 동의 없이 민원대응팀에 소속시키려 하는 건 민원 대응 업무를 이들의 일로 ‘공식화’하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가중되는 업무량도 문제다. 민원 업무까지 도맡다보니 이를 처리하느라 기존 업무에도 자주 차질을 빚는다는 것이다. 한 실무사는 “지금도 1시간이 넘는 전화가 다반사”라며 “민원대응팀까지 구성되면 업무가 더 많아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민원으로 인해 피해를 입은 교육공무직들의 기댈 곳은 사실상 전무하다. 이 때문에 이들은 자신들이야말로 제도의 ‘사각지대’에 머물고 있다고 토로한다.

실제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이 지난달 28일부터 8일간 수도권에서 근무하 교육공무직 52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고충을 어떻게 해결하나”라는 질문에 52%가 ‘동료와 상담하거나 참는다’고 답했다. ‘학교장이나 중간관리자와 의논한다’는 27.4%에 그쳤다. “학교는 민원인의 마음을 달래줄 뿐 교직원 보호에는 관심은 없다”고 토로하는 이유다.

전국 시‧도 교육청은 ‘교원 치유지원센터’를 운영하면서 교사들의 교권 침해에 대한 법률 상담, 의료 서비스 등을 제공하고 있다. 하지만 교육공무직을 지원하는 서비스는 역시나 없다.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 인천지부 곽소연 수석부지부장과 이아무개 교무실무사와 23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시사저널 이종현
곽소연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 인천지부 수석부지부장, 이아무개 교무실무사와 23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시사저널 이종현

“민원 접수만 하라” “현장 모르는 소리”

지난 21일 분노한 교육공무직들이 교육부를 찾았다. 장상윤 차관과의 면담에서 이들은 ‘아무런 논의 없이 민원대응팀 신설이 발표된 점’, ‘교육공무직에 대한 어떠한 보호장치도 없는 점’ 등에 대해 항의했다.

이에 장 차관은 지금의 민원 대응 방식을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그 일환으로 유선 민원은 녹음할 수 있도록 하고 폭언 등을 하지 않도록 하는 통화연결음을 포함시키는 방안을 약속했다. 또 민원처리 인력 모두를 포함하는 보호방안을 만들겠다고도 말했다.

다만 교육부는 향후 민원대응팀의 역할은 민원의 ‘접수’지 ‘처리’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교육공무직은 민원 처리의 과정이나 결과에는 관여하지 않아도 된다는 얘기다. 이에 대해 교육공무직들은 “민원대응팀 교육공무직 업무 중 '직접처리'가 있었다”며 “민원 처리 과정에 관여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반발했다.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은 해결책으로 ‘민원콜센터’ 설치를 요구하고 있다. 민원 대응 관련 전문 교육을 이수한 전문인들로 구성된 콜센터를 따로 설치해 민원을 통합적으로 관리해야한다는 의견이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은 학교장이 민원을 책임지고 관리해야한다는 입장이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은 “민원처리법에 따르면 민원 처리의 관리 책임자는 행정기관의 장”이라며 “학교 교육의 총괄 책임자인 학교장이 민원을 책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실제 미국과 캐나다 등 주요 국가들은 학부모 민원 대응 창구는 학교장으로 통일돼 있다. 한 실무사는 “학부모 민원에 대해 사실 관계를 확인하고 다시 연락드리겠다고 말하면 ‘니가 뭔데’라는 답을 받는다”면서 “교장이 똑같이 말하면 이런 반응은 아닐 것”이라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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