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디 ‘WOO_238’ 2m38cm 넘어 올림픽 金 따겠다는 다짐
  • 김양희 한겨레신문 기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3.08.26 13:05
  • 호수 17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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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저우아시안게임에 뜨는 별들④] 짝발 우상혁의 높이뛰기 도약은 계속된다
‘올림픽 전초전’ 항저우에서 맞수 바르심과 재대결 관심

우상혁(27)은 양발의 크기가 다르다. 8세 때 차 바퀴에 오른발이 깔리는 교통사고를 당했다. 오른 발바닥을 50바늘 꿰맸는데 이 때문에 오른발이 제대로 자라지 못했다. 지금은 오른발(270㎜)이 왼발(285㎜)보다 15㎜ 정도 작다. 밸런스 유지가 그만큼 힘들다. 그런데도 육상 종목을 한다.

왼발을 마지막 구름 발로 택한 이유도 짝발 때문이다. 짝발에 대한 편견 탓에 “쟤는 안 돼”라고 노골적으로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우상혁은 바를 넘듯이 편견도 가뿐히 넘어섰다. 그는 현재 높이뛰기 세계 무대에서 정상을 겨루는 선수로 발돋움해 있다.

우상혁이 8월22일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열린 세계육상선수권대회 남자 높이뛰기에서 바를 넘고 있다. ⓒREUTERS
우상혁이 8월22일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열린 세계육상선수권대회 남자 높이뛰기에서 바를 넘고 있다. ⓒREUTERS

한국 선수 최초 세계랭킹 1위 오르기도

높이뛰기는 달리기에서 시작됐다. 그의 부모는 어릴 적 달리기를 좋아하는 우상혁을 위해 초등학교 4학년 때 육상부가 있던 대전 중리초등학교로 그를 전학시켰다. 하지만 발은 의지만큼 빠르지 않았다. 발 크기가 다른 체형 영향도 있었다. 그러나 발차기 능력이 뛰어난 것을 본 윤종형 감독이 우상혁에게 높이뛰기를 권유했고 그때부터 ‘점퍼’로서의 삶이 시작됐다.

우상혁은 1년 연기돼 치러진 2021년 도쿄올림픽을 통해 ‘스마일 점퍼’로 각인됐다. 우여곡절 끝에 간신히 참가한 생애 두 번째 올림픽에서 덜컥 한국신기록(2m35cm)을 갈아치웠다. ‘235’는 도쿄로 가기 전에 늘 머릿속으로 되뇌던 숫자이기도 했다. 2016년 리우올림픽 때 2m26cm 기록으로 결선에 오르지 못했던 그는 도쿄 때는 보란 듯이 결선에 올라 이진택이 1997년 세운 한국기록(2m34cm)을 24년 만에 지워버렸다. 개인 최고 기록보다 무려 4cm 더 뛰어오르며 ‘톱4’에 올랐다.

한국 육상 트랙&필드 개인 종목 올림픽 최고 성적(4위) 또한 세웠다. 마라톤·경보를 제외하고 한국 육상 올림픽 최고 성적은 8위(1996년 애틀랜타올림픽 이진택, 1988년 서울올림픽 여자 높이뛰기 김희선, 1984년 LA올림픽 남자 멀리뛰기 김종일)였다. 비록 시상대에 오르지는 못했으나 한국 육상의 역사를 바꾼 값진 수확이었다. 더군다나 경기 직전에 환한 미소를 지으며 큰 몸짓으로 호응을 유도하는 모습은 관중을 매료시키기에 충분했다. ‘스마일 점퍼’의 탄생이었다. 그는 경기를 마친 후 상무 소속의 군인 신분답게 카메라를 향해 거수경례를 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도쿄올림픽을 계기로 알을 깨고 나온 우상혁은 이후 승승장구했다. 2022 세계실내육상선수권대회에서 2m34cm 기록으로 잔마르코 탬베리(이탈리아) 등을 누르고 1위에 올랐다. 한국 선수 최초의 세계실내 육상선수권대회 메달이자 금메달이었다. 다이아몬드리그 1차 대회(도하)에서는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무타즈 에사 바르심(카타르)을 제치고 우승을 차지(2m33cm)했다. 한국 선수로는 처음 참가한 다이아몬드리그에서 최고의 위치에 오르며 도쿄올림픽 4위가 깜짝 성과가 아님을 입증했다.

2022 세계육상선수권대회(실외)에서는 자신의 최고 기록인 2m35cm를 다시 한번 뛰어넘으면서 바르심에 이어 2위에 올랐다. 이 또한 세계육상선수권대회 한국 선수 최고의 기록이었다. 은메달도 마찬가지였다. 우상혁은 지난해 7월 발표된 세계랭킹에서도 한국 선수 최초로 1위에 오르기도 했다. 세계주니어육상선수권대회(2014년)에서 동메달을 딴 후 “아직은 최초가 아니지만 앞으로 최초가 되고 싶다”는 당찬 포부를 밝혔던 그는 계속 ‘한국 최초’의 기록을 세우고 있다. 스스로 다짐한 것은 기필코 해내는 뚝심을 보여준다.

우상혁의 ‘최초’ 도전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지금은 군에서 제대한 상황이라 거수경례는 더 이상 없지만 환한 미소만은 그대로다. 그의 맞수도 여전하다. 10년 가까이 세계 높이뛰기 무대를 주름잡고 있는 바르심이다. 바르심은 올림픽에서 3개의 메달(2012년 런던올림픽 동메달, 2016년 은메달, 2021년 금메달)을 땄고, 2010년 광저우와 2014년 인천에서 열린 아시안게임에서도 금메달을 땄다.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아시안게임에는 2017 시즌 다친 발목 탓에 불참했다. 그는 현역 최고 기록(2m43cm)을 보유 중이기도 하다.

 

아시안게임 금메달 디딤돌로 최종 목표 올림픽 도전

바르심이 항저우아시안게임 출전 의사를 밝힌 터라 우상혁과 바르심의 대결은 피할 수 없게 됐다. 아시안게임 전초전이나 다름없던 8월23일(현지시간) 2023 세계육상선수권대회(헝가리 부다페스트) 때는 바르심이 3위(2m33cm), 우상혁이 6위(2m29cm)를 기록했다. 우상혁은 독일 뮌헨에서 항공기가 결항해 공항에서 7시간을 대기하다가 육로로 700km를 이동해 도착 사흘 만에 대회에 나선 터였다. 컨디션이 좋을 리 없었다.

이번 대회 1위는 탬베리, 2위는 주본 해리슨(미국)이 차지했다. 기록은 둘 다 2m36cm였다. 13명이 기량을 다투는 결선에 오른 아시아 선수는 바르심과 우상혁, 아카마쓰 료이치(일본)뿐이었다. 아카마쓰는 2m25cm 기록으로 8위에 올랐다. 지난달 일본 대회에서 2m30cm를 넘어 개인 최고 기록을 달성하며 상승세에 있지만 바르심이나 우상혁의 기록에는 한참 못 미친다.

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서 다소 실망스러운 성적을 냈지만 우상혁의 시즌은 계속된다. 9월1일 스위스 취리히에서 열리는 다이아몬드리그에 참가하고, 여기서 성적이 좋으면 상위 6명이 출전하는 다이아몬드리그 파이널(9월16~17일) 출전권을 따낸다. 우상혁은 현재 다이아몬드리그 포인트 14점으로 중간 순위 5위에 올라있다. 다이아몬드리그 파이널까지 소화하면 곧바로 아시안게임 무대인 중국 항저우로 날아간다. 항저우아시안게임 높이뛰기 결선은 10월4일 열린다.

바르심을 넘어 아시안게임 높이뛰기 금메달을 따내면 이진택(1998년 방콕·2002년 부산대회 우승) 이후 21년 만이다. 물론 우상혁의 최종 목표가 아시안게임은 아니다. 그는 늘 “파리올림픽(2024년)에서 우승하고 싶다”는 바람을 드러냈었다. 아시안게임은 그의 최종 목표를 이루기 위한 하나의 디딤돌이다.

우상혁의 개인 SNS 아이디는 ‘WOO_238’이다. 2m38cm를 넘겠다는 다짐이다. 2m38cm는 자신의 키(1m88cm)보다 50cm 높다. ‘235’를 마음에 품고 참가한 도쿄올림픽에서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4위에 올랐듯 ‘238’ 숫자를 떠올리며 더 큰 꿈을 꾼다. 우상혁의 개인 최고 기록은 실외 2m35cm, 실내 2m36cm. 올 시즌 최고 기록은 2m33cm다. 짝발이지만 누구보다 더 높게 하늘로 솟구치고 싶은 우상혁. ‘스마일 점퍼’의 또 다른 도약의 시기가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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