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초대형 산불’은 일상이 된다 
  • 김형자 과학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3.08.26 14:05
  • 호수 17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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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온난화가 산불 일으키고 산불이 온난화 키우는 악순환 반복
유엔 보고서 “초대형 산불, 2030년까지 14%, 2050년까지 50% 증가” 경고

최근 세계 곳곳에서 초대형 산불이 더 자주, 더 크게 발생하고 있다. 미국 하와이, 캐나다에서 발생한 초대형 산불이 8월23일 현재도 여전히 잡히지 않아 눈덩이처럼 피해를 키우고 있고, 스페인도 통제 불능 수준의 산불로 힘겨운 여름을 보내고 있다. 세계기상기구(WMO)는 폭염·산불 등 극단적인 이상기후가 이제 ‘뉴노멀’(시대 변화에 따라 새롭게 부상하는 표준)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8월21일 하와이 라하이나 산불 현장 모습 ⓒAP 연합

캐나다·하와이·스페인 산불 아직도 안 잡혀

8월8일(현지시간) 하와이 마우이섬에서 발생한 산불은 아직 완전히 진압되지 않은 상태다. 주요 피해 지역인 라하이나의 산불은 23일 현재 90%, 올린다와 쿨라 지역의 산불은 각각 85% 통제됐다. 마우이 카운티 시장 리처드 비센은 화재가 발생한 후 처음으로 확인된 사망자 수는 114명이고, 실종자 수는 850명으로 추정된다고 22일 공식적으로 밝혔다. 이번 하와이 산불은 미국 역사상 최악의 자연재해로 기록될 전망이다.

캐나다는 이미 화재 규모가 통제 불능 상태다. 5월초부터 현재까지 캐나다 1000여 곳에서 산이 불타고 있는데, 군 병력까지 투입해 산불을 잡고 있지만 아직 600여 건이 통제되지 않고 있다. 이미 우리나라보다 더 큰 면적이 불에 타 잿더미가 됐다. 스페인 산불도 계속되고 있다. 8월15일 카나리아제도의 유명 휴양지인 테네리페섬에서 시작된 산불이 며칠째 잡히지 않고 있다. 그야말로 ‘여기도 불, 저기도 불’의 막다른 형국이다.

과거엔 한 철에만 발생하던 산불이 이제는 사시사철 일어나는 재해가 되고 있다. 대체 산불은 왜 이렇게 잦아지고, 대형화되고, 또 한번 발화하면 쉽게 꺼지지 않고 확대되는 것일까. 산불은 가뭄, 높은 대기 온도, 낮은 습도, 번개, 강풍 등 복합적 요소가 원인이 되는 현상이다. 하지만 이 가운데서도 산불 위험도와 가장 밀접한 연관이 있는 요소는 기온이다.

지난해 1월 국립산림과학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기온이 1.5도 높아지면 산불 기상지수는 8.6%, 2도 높아지면 13.5% 증가한다. 산불 기상지수는 기온이나 습도, 풍속 등을 이용해 산불이 일어날 가능성을 수치화한 지표다. 산불 위험지수 등 지표를 계산할 때 기온의 가중치가 가장 높은 편이다.

기온이 상승하면 겨울철 산이 건조해져 땅의 습기가 적어지고, 봄과 여름은 더욱 따뜻해져 남아있던 습기가 공기 중으로 더 빨리 증발한다. 그로 인해 작은 산불이 나도 순식간에 퍼지는 대형 산불이 되는 경우가 잦다. 가뭄과 병충해로 고사목이 증가하는 것도 직접적 원인이다. 죽은 나무는 바짝 말라서 산불을 키우는 불쏘시개 역할을 한다. 초대형 산불이 자주 발생하는 미국 캘리포니아주는 고사목이 무려 1억2900만 그루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가장 큰 문제는 지구의 대기 순환이 점차 느려지고 있다는 점이다. 기후변화로 인해 따뜻한 적도 지방과 추운 극지방 사이의 온도 차이가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대기 순환이 정체되면 진화하기 어려울 만큼 산불이 맹렬한 기세로 계속 타오르게 된다.

또 산불이 잘 통제되지 않고 다른 지역으로까지 퍼지는 이유는 ‘화재적란운(火災積亂雲)’이 불씨를 옮기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대규모 화재로 발생한 뜨거운 열과 연기, 재, 공기가 상승해 수직으로 매우 높게 구름을 형성하면 비를 내리지 않으면서도 천둥, 번개만 치는 ‘화재적란운’이 되어 다른 지역에 불씨를 마구 뿌리면서 화재 범위를 확산시키게 된다. 일단 뜨거운 연기가 성층권에 진입하면 첫 발생지에서 수천 킬로미터를 이동해 전 세계 기상에 악영향을 미친다. 전문가들은 산불 지역이 점점 북방 침엽수림(타이가)으로 이동하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

8월17일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주 웨스트 켈로나에서 발생한 산불 현장 ⓒREUTERS

초대형 산불 속 암갈색 탄소는 기후 악당

이제 하와이와 캐나다 산불은 남의 일이 아니다. 우리나라도 과거보다 기온이 오르고 습도가 낮아지면서 점점 더 산불이 발생하기 좋은 환경이 되고 있다. 봄이 되면 ‘강원도 산불’은 연례행사가 되고 있다. 지난해 3월 강릉·동해 산불로 4000㏊(4000만㎡)의 숲이 사라졌고, 올해 4월의 강릉 산불도 379㏊의 숲을 불태워 대형 산불(100㏊ 이상)로 분류되었다.

동해안 지역에서 발생한 산불이 커진 이유 중 하나는 바로 강풍과 50년 만의 극심한 겨울 가뭄이다. 2021년 겨울 강수량은 1973년 관측 이래 가장 적었다. 2021년 기상청이 발간한 ‘우리나라 109년 기후변화 분석보고서’를 보면, 지난 109년간(1912~2020년) 연평균 기온이 매 10년당 0.2도 상승했다. 또 같은 기간 강수량은 증가했지만 강한 강수가 늘어나면서 한 번에 많이 내리고, 비나 눈이 내리는 일수는 감소했다. 특히 최근 30년과 최근 10년 추세를 보면 강수량 자체도 다소 줄어들고, 강수 일수는 장기 추세에 비해 급감한 것으로 나타났다.

문제는 초대형 산불이 단순한 자연재해가 아니라 기후위기가 만들어낸 또 다른 악순환의 고리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미 항공우주국(NASA)은 2019년 한 해 동안 발생한 3차례의 초대형 산불을 분석해 연기 속에서 ‘암갈색 탄소’라는 새로운 물질을 발견했는데, 이 암갈색 탄소가 ‘되먹임 무한 순환’(피드백 루프)을 작동시킬 거라고 경고하고 있다.

NASA는 화석연료를 태울 때 불완전 연소되어 나오는 흑색 탄소와 암갈색 탄소를 비교해 암갈색 탄소가 기후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했다. 흑색 탄소는 이산화탄소 다음의 강력한 온난화 물질로, 태양빛을 흡수해 열로 바꿔 지구의 온도를 높이는 데 일조한다.

국제학술지 ‘네이처 지구과학’에 실린 NASA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암갈색 탄소 분자 하나가 흡수하는 태양빛은 흑색 탄소보다 다소 적지만 산불 연기 속에서 방출하는 열의 양은 4배나 많았다. 흑색 탄소는 주로 태양빛의 가시광선을 흡수해 열을 지닌 적외선으로 전환시켜 대기 중으로 방출하는 반면 암갈색 탄소는 근적외선에서 자외선, 가시광선까지 모든 파장의 빛을 흡수해 열로 방출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암갈색 탄소가 지구온난화를 부추기고, 온난화는 더 많은 산불을 일으키고, 빙하를 녹이고, 폭염을 부르고, 그로 인해 다시 산불이 잦아지고, 산불이 또 많은 암갈색 탄소를 발생시켜 온난화를 가속화하는 악순환 현상이 일어난다는 게 NASA의 설명이다. 그야말로 초대형 산불이 진짜 기후 악당이었던 셈이다.

지난 1월 유엔환경계획(UNEP) 보고서는 초대형 산불이 2030년까지 14%, 2050년까지 50% 증가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 때문일까. 지금 세계는 ‘산불은 단순히 불을 꺼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 기후변화를 되돌려야 해결할 수 있다’는 여론이 형성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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