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식 시즌제 드라마, 시청자들은 왜 외면할까
  • 정덕현 문화 평론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3.08.25 14:05
  • 호수 17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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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했던 《D.P.2》 《경이로운 소문2》 등 성적 저조
리스크 줄이기 위한 시즌제, 도리어 리스크 키울 수도

최근 들어 K드라마에 시즌제 바람이 불고 있다. 시즌2를 달고 나오는 드라마가 많아진 건 성공 가능성이 높다는 판단 때문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리스크를 줄이기 위한 선택이기도 하다. 그런데 과연 이런 선택들이 그만한 효과를 내고 있을까. 

2021년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로 소개된 《D.P.》는 애초 “군대 소재 드라마가 되겠냐”는 세간의 우려를 보기 좋게 떨쳐버리고 큰 성공을 거둔 바 있다. 김보통 작가의 원작 웹툰이 워낙 명작이라는 이야기들이 일찍부터 나왔지만, 이 작품은 군대 소재라는 점 때문에 여러 플랫폼에서 선뜻 드라마화를 꺼리는 분위기가 있었다. 하지만 넷플릭스에 의해 제작된 이 드라마는 그것이 선입견이었다는 걸 보여줬다. 군대라는 한국적 특수성이 들어있긴 했지만, 탈영병들을 잡는 군무 이탈 체포조(D.P.)를 소재로 하고 있어 군대 바깥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사건이 더해졌고, 무엇보다 안준호(정해인 분)와 한호열(구교환 분)이라는 두 인물의 버디무비 같은 느낌이 보편적인 재미를 만들었다. 군 경험에 익숙한 남성들은 물론이고 여성들도 환호했다. 국내는 물론이고 해외에서도 반응이 좋았던 이유다. 그래서 제작돼 올해 발표된 시즌2는 어떨까. 

드라마 《낭만닥터 김사부3》, 《D.P. 시즌2》, 《경이로운 소문2: 카운터 펀치》의 한 장면 ⓒ SBS·넷플릭스·tvN
드라마 《D.P. 시즌2의 한 장면 ⓒ넷플릭스

“어째 시즌2가 시즌1보다 못한 것 같아” 

의외로 별 반응이 없었다. 팬들은 시즌2가 시즌1만 못하다는 반응을 내놨다. 이유는 시즌1에 비해 더 커진 스케일에서 비롯됐다. 군대 내에서 벌어지는 갖가지 사건들을 은폐하려는 군 수뇌부와 싸우는 이야기로 풀어나가려다 보니, 시즌1의 핵심적인 재미 요소였던 안준호와 한호열의 버디무비 색깔이 사라졌고 사건을 수사하는 박범구(김성균 분)와 임지섭(손석구 분)의 분량이 늘어났다. 그리고 안준호 홀로 영웅화돼 보여주는 액션도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을 받았다. 달라진 서사가 원인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시즌2여서 더 힘을 주다 보니 생겨난 아쉬운 결과였다. 

이런 상황은 최근 방영되고 있는 tvN 《경이로운 소문2》에서도 똑같이 나타난다. 이 드라마 역시 시즌2에서 스케일도 액션도 커졌다. 중국에서 넘어온 악귀 3인방이 등장했고, 이들과 싸우는 액션도 더 강력해졌다. 시즌1에서 국숫집을 기지로 삼아 움직이던 카운터들의 모습도 업그레이드됐다. 재벌 최장물(안석환)의 공장 한편에 마련된 어엿한 장소로 기지를 옮겼고, 제복조차 달라졌다. 그래서 시청자들도 더 열광하게 됐을까? 그렇지 않다. 오히려 국숫집이라는 서민적 공간을 기지로 삼던 시즌1의 이야기가 더 좋았다는 반응들이 나왔다. 무엇보다 이런 외적인 스펙터클보다 시즌1에서 그려졌던 인물들의 감정을 건드리는 서사들이 시즌2에서는 약해졌다는 아쉬움의 목소리가 적지 않았다. 어째서 이런 시즌2의 결과가 나온 것이고 여기에는 어떤 구조적인 이유가 있는 걸까.  

우리에게 시즌제는 외국의 그것과는 사뭇 다르다. 우리는 작품을 만들 때 시즌제를 염두에 두고 만들지 않는다. 일단 성공해야 다음 시즌도 가능한 제작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국 드라마의 경우, 처음 파일럿을 만들고 반응이 괜찮아 제작에 들어가면 애초부터 시즌제를 염두에 둔다. 그래서 시즌1의 끝이 어떤 한 작품의 마무리처럼 완결되지 않는 경우도 적지 않다. 하지만 그렇다고 문제가 되지 않는다. 어차피 그건 시즌2로 돌아온다는 걸 말해 주는 시즌1의 마무리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처음부터 시즌제를 겨냥한 미국의 제작방식과 시즌1이 성공해 시청자들의 요구에 의해 시즌2가 제작되는 우리네 제작방식의 차이는 작품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드라마 《경이로운 소문2: 카운터 펀치》의 한 장면 ⓒtvN
드라마 《경이로운 소문2: 카운터 펀치》의 한 장면 ⓒtvN

앞서 말한 《D.P.2》나 《경이로운 소문2》의 사례처럼, 우리의 시즌2는 속편 같은 느낌으로 전편보다 더 강력한 무언가가 들어가야 할 것 같은 강박을 만든다. 시즌1과 시즌2의 흐름도 연속성에 있다기보다는 각 시즌마다의 새로운 서사를 요구받는다. 미국의 시즌제가 시즌1에 만족한 시청자들이 자연스럽게 그 연속선상에서 시즌2를 보게 만드는 방식이라면, 우리의 시즌제는 시즌1과 비교되고 그래서 무언가 색다르거나 강력한 시즌2를 기대하게 만드는 방식이다. 

이러한 시즌제 방식으로 전혀 다른 소재를 넣어 다소 기형적으로 탄생한 작품의 사례도 있다. 최근 방영되고 있는 《소방서 옆 경찰서 그리고 국과수》가 그 사례다. 《소방서 옆 경찰서》의 시즌2에 해당하는 이 드라마는 시즌1이 소방관과 경찰의 공조를 그리는 작품이었다면, 시즌2에서는 시작 지점에 소방관의 대표 격이었던 봉도진(손호준 분)이 사망하고 대신 국과수의 강도하(오의식 분)가 등장함으로써 형사와 국과수의 공조를 그리는 작품으로 변모했다. 물론 앞으로 방화 사건이 등장할 가능성이 높지만 인물의 갑작스러운 하차는 국과수라는 새로운 서사를 앞세우고 있는 이 시즌2의 특징을 보여준다. 

드라마 《낭만닥터 김사부3》의 한 장면 ⓒSBS
드라마 《낭만닥터 김사부3》의 한 장면 ⓒSBS

우리의 시즌제는 진짜 시즌제가 아니다? 

올해 이례적으로 시즌3까지 방영되고 성공을 거둔 《낭만닥터 김사부》를 연출한 유인식 감독은 이 작품을 만들어온 과정을 이야기하며 우리네 시즌제가 가진 현실적인 어려움을 전한 바 있다. 즉 처음에는 아예 시즌제를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드라마가 끝나고 철거된 세트를 다음 시즌에 다시 처음부터 지어야 했다고 했다. 또 《낭만닥터 김사부3》가 특히 어려웠던 건 시즌2에서 김사부(한석규 분)의 목표였던 외상센터가 지어짐으로써 이야기가 이미 일단락되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시즌3는 그래서 외상센터가 지어진 후에 거기서 일하는 사람들의 딜레마를 다뤘는데, 이건 극적으로 구성하기가 쉽지 않았다고 했다. 결국 처음부터 다음 시즌을 염두에 두고 제작되지 않는 시즌제 드라마란 그만큼 제작상 손실이나 어려움도 생길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그래도 《낭만닥터 김사부》가 시즌3까지 성공할 수 있었던 건 두 가지 요소 때문이다. 그 첫째는 김사부라는 매력적인 캐릭터가 계속 중심을 잡아줬기 때문이다. 결국 시즌제의 핵심적인 힘은 바로 이 매력적인 캐릭터에 있다는 걸 말해 주는 대목이다. 둘째는 외상센터를 둘러싼 다양한 에피소드가 존재했기 때문이다. 매 시즌 큰 줄기의 이야기가 난제이긴 하지만, 매회 다양한 에피소드가 실제 사례들로 있기 때문에 충분히 시즌제가 가능했다는 것이다. 매력적인 캐릭터와 다양한 에피소드. 무지개운수라는 팀과 김도기(이제훈)라는 캐릭터에 갖가지 현실에서 가져온 사건들을 소재로 했던 《모범택시》가 시즌2까지 성공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 두 요소가 겸비돼 있어서였다. 

하지만 우리도 진정한 시즌제 드라마를 제작 단계부터 고려해도 된다는 실험적인(?) 사례들도 나오고 있다. 우리의 제작 풍토에 맞춰 변형된 시즌제(아니 파트제에 가깝지만) 드라마의 성공 사례들이 그것이다. 한 번에 제작되지만 파트를 나눠 방영되는 방식이 그것인데, 《펜트하우스》 《더 글로리》 《환혼》 같은 작품들이 대표적인 성공 사례다. 엄밀한 의미에서 이들 작품은 시즌제라 말하긴 어렵다. 하지만 시즌을 속편처럼 다루지 않고 대신 미국의 방식처럼 일관된 하나의 연결성으로 그 흐름을 이어간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오히려 이 변형된 형태가 더 본격적인 시즌제에 가깝다고 볼 수도 있다. 그리고 이들 작품이 일정한 성공을 거뒀다는 사실은 우리도 애초부터 시즌을 구상하는 방식의 제작이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는 걸 말해 준다.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속편처럼 제작되는 현재 우리의 시즌제가 전 시즌과의 연계성을 잃어버리거나 혹은 그 매력을 지워버리는 결과로 이어져 오히려 리스크를 키울 수도 있는 상황이 생겨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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