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말기라고 삶 포기하지 말라”
  • 노진섭 의학전문기자|이승주·정윤경 인턴기자 (no@sisajournal.com)
  • 승인 2023.08.26 16:05
  • 호수 17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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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암 환자 1만 명 살린 의사의 당부
노성훈 특임교수 “짠 음식 피하고 1~2년마다 위내시경 검사 받도록”

외국 의학자들이 ‘닥터 몬스터(Dr. Monster)’라고 부르는 한국인 의사가 있다. 노성훈(69) 강남세브란스병원 위장관외과 특임교수다. 이 애칭은 다른 의사들이 포기한 진행성(2~4기) 위암 환자를 치료하는 노 교수의 헌신에 대한 경의의 표시다. 지난 37년 동안 위암 수술 1만1500건이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우고, 환자의 삶의 질을 높이는 다양한 수술법을 고안하고,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SCI급 논문만 300여 편을 쏟아내면서 한국 위암 수술 수준을 2000년대 이후 일본을 제치고 세계 최고 반열에 올린 그의 공로를 인정한 것이다.  

국내에서 위내시경 검사가 보편화된 후 조기 위암 환자는 전체 위암 환자의 75%가량으로 많아졌고 이들의 5년 생존율도 97%에 이른다. 그러나 나머지 약 25%의 진행성(2~4기) 위암 환자의 생존율은 낮은데 특히 4기는 채 10%가 되지 않는다. 4기 위암 환자의 생존 기간은 항암치료를 받아도 평균 15개월이다. 노 교수는 이를 50개월로 연장했고, 4기 위암 환자 중 일부는 완치됐다. 그는 2018년 세브란스병원에서 정년퇴임한 후에도 현재까지 강남세브란스병원에서 위암 환자를 만나고 연간 40~50건을 집도한다. 자신도 2014년 후두암을 경험한 만큼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위암 환자의 심정을 알기 때문에 수술실을 떠날 수 없다. 노 교수는 시사저널을 통해 위암 예방과 치료를 위한 당부의 말을 전했다. 

ⓒ시사저널 박정훈
ⓒ시사저널 박정훈

“위암 조기에 발견하면 완치율 90% 이상”

우리나라는 위암이 많은 나라이고, 고령화로 위암은 더 늘어날 텐데 위암 전문가로서 국민에게 당부하고 싶은 점은 무엇일까.

“무엇보다 식습관을 바꾸면 좋겠다. 어릴 때 몸에 밴 식습관은 어른까지 이어지므로 되도록 어릴 때 식습관을 바꿨으면 한다. 짠 음식과 탄 음식은 발암성이 있으므로 덜 먹는 것이 바람직하다. 세계보건기구(WHO)가 제시한 하루 소금 섭취 권고 기준은 5g 이하다. 20년 전 우리는 20g 이상의 소금을 섭취했고, 그동안 교육과 계몽 등으로 소금 섭취량이 줄었으나 아직도 우리는 10g 이상을 먹는다. 식습관 개선은 위암 발생과 관련이 있는 헬리코박터균 감염도 예방할 수 있다. 가령 엄마가 숟가락 하나로 아이에게 음식을 주고 자신도 먹는 행위를 하지 말아야 한다. 회식 등에서 음식을 같이 먹기보다는 앞접시를 사용하는 편이 바람직하다. 이렇게 노력해 암에 걸리지 않는 것이 1차 암 예방이다. 그러나 아무리 식습관을 개선하고 운동해도 어떤 사람은 암에 걸린다. 그래서 2차 예방법인 조기 진단을 강조하고 싶다. 40세 이상은 증상이 없어도 1~2년마다 위내시경 검사를 받기를 권고한다. 가족력이나 이상 증상이 있다면 더 자주 검사를 받는 편이 이롭다. 위암을 조기에 발견하면 완치율이 90% 이상이다.”

코로나19 유행으로 회식과 같은 단체 식사 문화가 많이 사라졌는데 이에 따라 위암 환자도 줄었을까.

“그에 대한 정확한 데이터는 없다. 국내 헬리코박터균 감염률이 20년 전에 약 60%였다면 지금은 50% 미만으로 떨어졌다. 그 이유로는 식습관 개선 외에도 손 씻기나 회식 문화 개선 등이 있겠다. 그러나 이런 것들로 인해 헬리코박터균 감염이 얼마나 줄어들었는지는 광범위한 연구를 하기 전에는 알 수 없다.”

수십 년 동안 진행해온 위내시경 검사로 국내 위암 사망률이 크게 낮아졌는데, 헬리코박터균을 제균하면 그 비율을 더 낮출 수 있을까. 

“아무런 증상이 없는, 헬리코박터균에 감염된 사람을 모두 치료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국내외에서 의견이 분분하다. 현재로서는 제균 치료의 득실을 따져야 하는데 경제적 손실이 더 크기 때문에 아직 모든 헬리코박터균 감염자를 반드시 치료하라는 지침이 마련되지 않았다. 더 많은 연구 결과가 쌓이면 어떤 지침이 마련될 것이다. 그러나 반드시 제균 치료가 필요한 사람이 있다. 궤양이 동반된 경우, 조기 위암을 치료한 후 추적 과정에서 헬리코박터균을 발견한 경우, 저위험도 림프종(말투만·소화기계 점막에 존재하는 림프 조직에 생긴 종양)이 있는 경우, 소화기 증상이 지속되면서 헬리코박터균을 발견한 경우다.” 

헬리코박터균 감염과 위암 발생이 모두 많은 한국과 일본 등 아시아 일부 국가에서는 집단 제균 치료가 위암 발생·사망률을 낮추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시각이 있다. 실제로 관련 연구도 진행 중인데 어떻게 보나.

“소화기내과 학자들이 그런 분야에 대한 연구를 진행 중이다. 헬리코박터균을 제거하면 분명히 위암 발생·사망률은 떨어지니까. 그러나 국민 전체를 상대로 한 제균 치료에는 막대한 비용이 들기 때문에 비용 대비 효과를 따져야 한다.”

 

“환자마다 항암제 효과 달라”

최근 국내에서도 양성자와 중입자로 암을 치료하는 시대가 열렸고 이에 대한 국민의 기대도 크다. 위암 환자도 그런 치료를 받을 수 있나. 

“유감스럽게도 양성자와 중입자 치료는 위장관 암에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양성자와 중입자 치료는 한마디로 암을 괴사시키는 방식이다. 그런데 위암은 괴사하면 터져서 복막 등으로 퍼질 위험이 있다. 간암·폐암·췌장암·전립선암 등 고형암에 사용하는 것이 안전하다.” 

그렇다면 위암 치료는 여전히 수술과 항암제 투여가 기본 치료법인가.

“그렇다. 최근 들어 신약, 그러니까 면역관문억제제라는 소위 면역항암제를 위암 치료에 사용 중이다. 이 약을 한동안 폐암과 흑색종(피부암)에 사용했는데 최근에는 다른 암 치료에도 활용하고 있는 추세다.”

항암제 효과가 있는 환자와 없는 환자를 구별할 수 있나. 

“위암 2기부터는 항암제를 쓰게 돼있다. 그런데 모든 환자에게 효과가 있냐 하면 그렇지는 않다. 항암제 효과가 있는 환자를 미리 구별한다면 항암제 효과가 없는 환자에게는 불필요한 항암제 사용을 줄일 수 있다. 그래서 우리 연구팀이 유전체 연구를 진행해 몇 가지 유전자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을 확인했고 이를 국제 학술지(랜싯 온콜로지)에 발표했다. 예컨대 면역과 연관된 특정 유전자가 양성으로 나타난 위암 2기 이상 환자는 항암제를 사용하지 않아도 수술 치료 후 예후가 좋다. 이런 사람은 10~15%다. 약 40%는 항암제가 잘 듣는 사람이므로 항암제를 사용하면 치료에 도움이 된다. 나머지 45~50%는 항암제가 별 도움이 되지 않아 다른 치료법이나 약을 찾아야 한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항암제 외에 별다른 방법이 없어 기존 항암제를 쓸 수밖에 없다. 이런 환자는 암 재발이 비교적 잘되므로 꾸준히 추적해 재발을 막아야 한다. 이 연구가 우리나라에서 혁신과제로 선정됐고, 15개 병원에서 추가 연구 목적으로 진행 중이다. 또 진행성 위암 환자가 많은 중국과 협력해 중국인 위암 환자를 대상으로도 연구를 진행할 계획이다.”

요즘은 90대 위암 환자도 수술받는 시대다. 그러나 고령자 수술에는 특별히 신경 써야 할 점도 있지 않을까. 

“고령자는 폐·심장·간 등 장기의 기능이 떨어진 상태다. 또 심장병이 있거나 폐 질환을 경험했거나 무릎 등을 수술하는 등 여러 동반 질환이 있을 수 있다. 영양 상태도 좋지 않고 면역도 떨어진 상태다. 이런 상태에서 수술하면 합병증이 생기기 쉽다. 수술 후 합병증이 발생하면 입원 기간이 늘어나고 그만큼 체력이 떨어지고 폐렴 위험도 커진다. 결국 암 수술은 잘 받아도 그런 합병증으로 사망할 수 있다. 그래서 수술 후 합병증을 줄여야 생존율을 높일 수 있다. 해부학적 구조를 잘 아는 의사가 수술 시간이나 출혈을 줄이는 것이 합병증을 막는 방법이다.” 

최근 위암 치료 가이드라인에 변화가 있나.

“큰 틀에서는 변함이 없다. 예컨대 한국과 일본에서 진행성 위암은 수술 후 항암제를 보조요법으로 사용하는 것이 표준이다. 그런데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항암제를 먼저 사용해 암의 크기를 줄인 후 수술한다. 혈액 내 작은 암세포를 소멸시키려는 목적도 있다. 수술 후에 또다시 항암치료를 한다. 즉 ‘항암치료-수술-항암치료’가 미국과 유럽의 표준 치료법이다. 이 방식이 동양인에게도 효과적일까. 이에 대한 연구를 우리가 진행해 그 결과를 국제학술지(JCO·임상종양학회지)에 발표한 바 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암이 많이 진행한 경우 그러니까 3B기 이상(3기 중반 이상)에는 환자의 생존율에 도움이 된다. 우리나라도 그 치료법을 의료보험에서 인정하기 시작했으니까 앞으로 진행성 위암의 가이드라인에 포함될 것으로 보인다.”

 

노 교수는 1989년부터 수술에 칼 대신 전기소작기를 사용해 왔다. 고열로 피부를 절개하고 혈관을 지져 지혈하는 전기소작기는 당시 비뇨기과에서 일부만 사용하던 기구다. 이 기구를 위암 수술에 사용하면서 출혈 위험이 크게 줄어 4시간 이상 걸리던 수술 시간이 2시간으로 단축됐다. 그만큼 마취 시간도 짧아져 환자 회복도 빨라졌다. 또 1997년부터는 비장을 보존하는 수술법을 고안했다. 당시에는 위암을 제거할 때 재발 우려를 낮추기 위해 으레 비장도 떼어냈다. 비장을 제거하면 면역력이 떨어져 환자 삶의 질이 크게 나빠진다. 비장을 보존하는 위암 수술법은 국제 학회에 보고됐고 현재도 세계적으로 통용되고 있다. 

최근에 그는 4기 암 환자를 살리는 ‘전환 수술’에 집중하고 있다. 4기 암은 크기가 크고 온몸으로 퍼진 상태여서 뾰족한 방법이 없다. 그러나 노 교수의 생각은 조금 다르다. 4기 암이라도 항암제로 암의 크기와 전이된 부위를 줄이면 수술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환자가 4기 위암 환자 중 30~40%다. 

 

“수술 기다리는 4기 환자들 외면할 수 없어”

왜 치료가 어렵다는 진행성 위암 치료에 평생 매달렸나.

“세브란스병원에서 전문의를 시작한 1987~88년 무렵에는 복강경이 없었고 CT(컴퓨터단층촬영)도 형편없어 암이 복막으로 퍼진 상태를 구별하지 못했다. 그래서 진행성 위암 환자의 복부를 열었다가 암이 손댈 수 없을 정도로 퍼진 상태를 확인하고 수술을 중단한 경우도 있었다. 수명이 지금보다 짧았던 당시 50대 부모가 그런 상태라면 그 자식들은 병원 바닥에 주저앉아 통곡했다. 외과 의사로서 어떤 분야에서 일해야 할지 고민하던 당시 그런 모습을 보고 진행성 위암 환자를 돕는 의사가 되기로 결심했고, 그 결심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정년퇴임 후에도 특히 4기 위암 환자 곁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예전에는 4기 위암이라면 보통 6개월, 잘해도 1년을 못 넘긴다고 했다. 현재 표적항암제나 면역항암제 등을 모두 사용해 15개월로 늘어났다. 4기 위암 환자를 수술하는 병원은 거의 없다. 4기 위암은 여전히 시한부의 삶 또는 죽음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89명의 4기 위암 환자의 중앙생존값(진단 또는 치료 시작부터 환자군의 절반 이상이 살아있는 시간)을 연구했고, 그 결과를 지난 6월 일본 요코하마 국제위암학회에서 발표했다(중앙생존값은 새로운 치료법의 효과를 측정하는 지표로 활용된다). 중앙생존값이 항암제만 쓴 환자는 15개월이고 전환 수술을 받은 환자는 50개월이라는 내용이다. 4기 위암 환자 중에는 전환 수술 후 완치된 사람도 있다. 이처럼 4기 위암 환자를 더 살릴 수 있다. 매주 월요일 출근해 컴퓨터를 켜면 4기 위암 환자 7~8명이 수술을 기다린다. 나는 아직 건강하니까 그들을 외면할 수 없다. 환자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기를 당부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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