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관치에 뿔난 지자체들, ‘골리앗’ 행안부에 잇달아 반기
  • 오종탁 기자 (amos@sisajournal.com)
  • 승인 2023.08.28 10:05
  • 호수 17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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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 양구군 이어 광주 동구, 고향사랑기부제 놓고 행안부와 갈등
“지자체의 자체 펀딩 더는 찍어누르지 말아야” 한목소리

지역경제 활성화와 인구 소멸 해소 차원에서 추진돼온 고향사랑기부제를 놓고 관치(官治)행정 논란이 거세지고 있다. 고향사랑기부제는 국민 개개인이 자신의 주소지를 제외하고 고향이나 원하는 지방자치단체에 연간 500만원 이내로 기부하면 세액공제와 지역 답례품 수령 등 혜택을 받는 제도다. 올해 초 시행 이후 윤석열 대통령과 문재인 전 대통령, 축구스타 손흥민, 방탄소년단(BTS) 멤버 제이홉 등 유명 인사가 잇따라 참여하고, 일부 지자체의 기부금 모금액이 빠르게 증가하는 등 화제몰이 중이다. 

한편으로 ‘중앙정부 개입이 너무 과도해 지방정부가 맥을 못 춘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행정안전부가 기부금 모금 플랫폼 구축과 운영을 독점하는 현행 시스템으론 개별 지자체가 고향사랑기부제를 제대로 추진할 수 없다는 것이다. 급기야 행안부에 반기를 드는 지자체도 속속 나타나고 있다. 

광주광역시 동구청이 고향사랑기부제 민간 플랫폼을 통해 모금한 기부금으로 지원하려는 발달장애 청소년 동아리 ‘E.T 야구단’ ⓒ광주 동구청 제공
현재 E.T 야구단 지원을 위한 기부금이 민간 온라인 플랫폼 ‘위기브’로 모금되고 있다. ⓒ위기
현재 E.T 야구단 지원을 위한 기부금이 민간 온라인 플랫폼 ‘위기브’로 모금되고 있다. ⓒ위기브

행안부 “민간 플랫폼 사용 말라” 

시사저널 취재에 따르면 광주광역시 동구청은 최근 고향사랑기부제 추진 방식을 두고 행안부와 팽팽히 맞서고 있다. 몇 달 전 강원특별자치도 양구군청이 행안부와 충돌(시사저널 제1743호 [단독] 손흥민·BTS 동참한 고향사랑기부제, 왜 ‘관치기부’ 소리 들을까 기사 참조)한 데 이은 두 번째 갈등 사례다. 두 사례는 데칼코마니처럼 닮았다. 민간 플랫폼과 연계해 고향사랑기부제 모금을 활발히 진행하던 지자체가 행안부에 가로막히면서 불거진 문제다. 

8월4일 광주 동구청은 행안부로부터 ‘고향사랑기부금 모금 관련 유의사항 안내’라는 제목의 공문 한 통을 받았다. 고향사랑기부제를 포함한 중앙정부 지역균형발전 업무를 총괄하는 행안부 균형발전제도과 측은 공문을 통해 “귀 기관(광주 동구청)이 법령에서 정한 절차를 벗어난 방법으로 모금을 하고 있다”고 지적하며 민간 플랫폼을 매개로 한 고향사랑기부제 기부금 모금을 중단할 것을 요청했다. 말이 요청이지 사실상 통보나 다름없다. 개별 지자체 입장에서는 지방 정책과 예산을 총괄하는 행안부가 그야말로 ‘갑(甲) 중의 갑’이라서다. 

광주 동구청은 발달장애 청소년 동아리 ‘E.T 야구단’과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단관 상영관인 광주극장을 지원하고자 고향사랑기부제를 활용하고 있다. 기부자가 지역 문제 해결을 위한 프로젝트를 지정해 기부하는 방식인 지정기부 방식을 택했다. 지역에 애착을 가진 기부자를 적극적으로 모집하는 방식인데, 행안부가 마련한 고향사랑기부제 통합 플랫폼 ‘고향사랑e음’을 통해선 이 지정기부를 제대로 할 수 없다. 

이에 광주 동구청은 ‘위기브(wegive)’란 민간 온라인 플랫폼을 돌파구 삼아 7월18일부터 지정기부를 받았다. ‘발달장애 청소년 E.T 야구단에 희망이 되어주세요’ ‘광주극장의 100년 극장 꿈을 응원해 주세요’ 등 간절한 호소를 담은 프로젝트는 8월24일까지 3000만원 넘는 기부금을 모으며 대박을 냈다. 아이러니하게도 성공 가도를 달리는 광주 동구청에 대한 행안부의 대응은 독려가 아닌 중단하라는 압박이었다. 고향사랑기부금에 관한 법률 제15조는 행안부가 기부금 모금과 관리·운용 등에 관해 지자체를 지도·감독하고 시정 권고도 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행안부는 기부금 접수 방법과 절차를 안내한 법 시행령 제4조를 중단 요청의 근거로 삼았다. 각 지자체가 기부하려는 사람에게 해당 지역 주민인지, 본인인지, 연간 기부금 총액이 500만원을 초과하는지, 답례품을 받을지 등을 확인하게 한 조항이다. 

광주 동구에 있는 광주극장 외부와 내부 ⓒ광주극장 제공
광주 동구에 있는 광주극장 전경 ⓒ광주극장 제공

관치에 가로막힌 지정기부 프로젝트들 

행안부는 지난 1월에도 같은 법령을 들어 강원도 양구군청의 지정기부 프로젝트를 중단시킨 바 있다. 행안부 균형발전제도과 관계자는 시사저널과의 통화에서 “기부 희망자의 주민등록상 거주지, 연간 기부금 상한액(500만원) 초과 여부를 확인하려면 공공 시스템을 거쳐야 한다. 세액공제 절차에서도 마찬가지”라며 “개별 민간 플랫폼은 공공 시스템과 연계되지 않아 이러한 확인 자체가 불가능하다. 행안부가 민간 플랫폼을 인위적으로 막았다기보다 제도 자체가 그런(민간 플랫폼 운영이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꿀벌 생태계 복원’ ‘못난이 농산물 상품·브랜드 개발’ 등 강원도 양구군청의 지정기부 프로젝트 역시 위기브를 활용했다. 해당 프로젝트는 1월3일 시작된 지 사흘 만에 행안부의 압박으로 중단돼 사라졌다. 5달여가 지나 고향사랑e음의 강원도 양구군청 기금사업 소개란에 다시 노출됐을 땐 더 이상 예전의 그 프로젝트가 아니었다. 고향사랑e음을 통해 모금한 기부금 중 일부를 해당 프로젝트들에 사용한다는 계획으로 바뀐 것이다. 지자체를 선택하고 기부하는 단순한 고향사랑e음 시스템상 어느 지역에 어떤 의미 있는 프로젝트가 존재하는지 파악하고 기부하기란 좀처럼 어렵다. 기부자가 사전에 프로젝트에 대해 인지하고 있거나 기금사업 소개 내용을 일일이 훑어보는 일은 드물기 때문이다. 

위기브를 운영하는 사회적 기업 공감만세의 고두환 대표는 “현행 고향사랑e음 시스템은 (지정기부 프로젝트에 대한) 접근성과 기부 편의성을 떨어뜨리는 한편 기부금의 사용처도 모호하게 만드는 등 복합적인 문제를 내포했다”면서 “예컨대 나는 오로지 특정 지정기부 사업을 돕기 위해 기부했는데, 내 기부금이 지자체의 고향사랑기금운용심의위원회를 거쳐 전혀 다른 사업으로 흘러갈 수도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강원 양구군청이 야심 차게 추진하던 지정기부 프로젝트들은 동력을 잃고 사실상 개점 휴업 상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양구군청은 국회와 접촉해 법·제도 개선을 시도하는 등 기존 지정기부 시스템 복원에 매진해 왔다. 광주 동구청도 ‘달걀로 바위 치기’일지언정 행안부와 담판을 짓고 지정기부 프로젝트 성공의 불씨를 꺼뜨리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광주 동구청은 내부는 물론 외부적으로도 법률 검토를 한 후 행안부 논리를 반박하는 내용의 공문을 전달할 방침이다. △고향사랑기부제 기부금 접수 시 기부자가 해당 지자체의 주민인지, 기부자의 연간 기부금 총액이 500만원을 초과하는지를 ‘즉시’ 확인하지 못하는 게 위법하지 않고 △기부자가 해당 지자체의 주민이거나 기부자의 연간 기부금 총액이 500만원을 초과하는 경우 기부금을 반환하는 방법이 있다는 내용이 골자인 것으로 전해졌다. 

“절차 벗어나? 해결법 얼마든지 있다” 

권선필 한국지방자치학회 고향사랑기부제특별위원회 위원장(목원대 경찰행정학부 교수)은 “혹여 주소지가 다를 시 고향사랑 기부금에 관한 법률 제14조 제1항에 따라 기부금을 기부자에게 반환하면 되고, 기부금 상한액 500만원을 초과하는 부당이득도 민법 제741조에 따라 기부자에게 반환하면 된다. 해결하려고 노력하면 해결 가능한 문제”라면서 “유사한 제한 조건을 가진 정치후원금은 행안부가 구축한 플랫폼인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정치후원금센터, ‘토스’나 ‘도너스’ 같은 민간 플랫폼, 계좌이체 등 다양한 방식으로 기부자의 편의를 높인다. 만약 고향사랑기부제 기부금에 들이대는 잣대로 정치후원금을 관리하자고 들면, 정치후원금센터에서만 기부금을 접수하고 모든 것을 확인해야 하는 과도한 통제가 불가피해진다”고 꼬집었다.  

행안부의 설명과 달리 민간 플랫폼을 통해서도 기부자의 기부 시점에 주소지와 500만원 초과 여부를 확인하는 게 시스템적으로 가능하다고 전문가들은 전했다. 다만 기부 시점에 이를 확인하는 것은 개인정보 인증 등 절차를 거쳐야 하기에 고향사랑e음과 같이 직관성이 떨어지기 마련이다. 정법모 부경대 국제지역학부 교수는 “500만원 한도가 있는 정치후원금은 넘겨서 내면 기부자에게 귀책이 있다는 걸 분명히 하고 기부 시점에 한도 확인도 하지 않는다”며 “기부금을 받는 지자체가 기부 조건을 일일이 확인해야 한다는 행안부의 논리가 지금처럼 복잡하고 불편한 고향사랑기부제를 탄생시킨 장본인”이라고 말했다. 

일반적으로 지자체들은 지방 정책과 예산을 총괄하는 행안부의 심기를 건드리는 것조차 극도로 부담스러운 게 사실이다. 그럼에도 지자체들이 골리앗에 정면 도전하기를 감행하는 배경엔 열악해져만 가는 자치행정 현실이 있다. 임택 광주 동구청장은 “고향사랑기부제는 인구 감소와 지역 소멸을 우려하는 많은 지자체가 경제를 활성화하고 지역의 새로운 동력을 마련할 수 있다는 점에서 좋은 제도임이 틀림없다”며 “고향사랑e음으로 단일화돼 있는 모금 창구를 민간 플랫폼과 병행할 수 있도록 규제를 푸는 등 행정 편의적인 기부 시스템을 기부자 친화적으로 전환하려는 노력이 수반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자체의 한 고향사랑기부제 담당 공무원은 “스마트하지 못한 고향사랑e음 플랫폼의 독점 체제에서 기부자들뿐 아니라 행정 실무자들도 피해를 겪고 있다. (민간 플랫폼을 활용했다면 하지 않아도 됐을) 등록부터 모금, 홍보, 답례품, 민원전화 응대 등 방만한 업무를 감당하느라 요즘 죽을 맛”이라면서 “고향사랑e음 개발 분담금과 운영비용을 부담하는 지자체들은 어찌 보면 행안부의 고객이라 할 수 있는데, 권한을 행안부가 독차지하는 구조 또한 문제다. 왜 행안부는 고압적으로 지자체를 관리할 생각만 하고, 지자체들이 진짜 필요로 하는 니즈(욕구)는 채워주지 않는 건가”라고 성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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