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TS에서 신중현까지…외신의 눈으로 본 K팝 명곡들
  • 김영대 음악 평론가 (ls@sisajournal.com)
  • 승인 2023.08.28 13:05
  • 호수 17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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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롤링스톤 ‘한국 대중음악 역사상 가장 위대한 100곡’ 공개
아이돌뿐 아니라 조용필·신중현·이난영 등 원로가수 포함돼 눈길

한국의 대중음악이 K팝이라는 이름으로 세계시장에 알려진 지도 어느덧 25년이 넘었다. 지난 사반세기 동안 K팝은 동아시아권 인기 음악에서 범아시아를 대표하는 음악으로, 나아가 세계 대중음악 시장의 트렌드와 판도를 좌우하는 장르이자 하위문화로 비약적인 성장을 거뒀다. 비록 어마어마한 산업적 성장에 비해 그 속도가 더딘 감은 없지 않지만, 음악이자 문화로서 K팝에 대한 관심 역시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오히려 최근 들어 K팝은 한국 매체보다 외국 매체에서 더 빈번히 소개되거나 분석되고 있고, 그 담론의 수준 역시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높아진 게 사실이다.

2021년 일본에서 발매된 음반 《BTS, THE BEST》의 커버 사진 ⓒ빅히트엔터테인먼트 제공

미국 주류 저널리즘 영역으로 확대된 K팝

주목할 점은 과거에는 K팝이나 한류 전문매체 혹은 블로그를 통해 지엽적으로 논의됐던 K팝이 이제는 뉴욕타임스, 타임, 빌보드, 롤링스톤 등 주류 저널리즘 영역으로 확장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는 최근 5년 사이 팝 음악 산업의 가장 성공적인 밴드로 칭해진 방탄소년단(BTS)의 성공 덕이었다. 서구 음악 산업에서 비롯되지 않은, 전례를 알 수 없는 ‘한국발(發)’ 대중음악 산업의 혁명에 미국과 영국 등의 저널리즘도 큰 충격을 받았고, 늦었지만 매우 발 빠른 행보로 이 새로운 문화에 대한 분석 작업을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얼마 전 공개된 롤링스톤지의 ‘The 100 Greatest Songs in the History of Korean Pop Music(한국 대중음악 역사상 가장 위대한 100곡)’ 리스트는 앞서 언급한 대로 K팝에 대한 미국 주류 저널리즘의 관심을 가장 본격적으로 표출한 기획이라 하겠다. 그런데 롤링스톤이 어떤 매체인가? 비록 오늘날 음악 비평이나 리뷰가 1990년대 이전처럼 대단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진 못한다 할지라도 여전히 많은 이에게 중요도를 인정받고 있는 대표적 음악 매체로 미국 대중음악, 그중에서도 ‘록’ 음악을 대표하는 상징성을 담보한 미디어여서 의미가 더하다.

롤링스톤은 그간 다양한 방식으로 수많은 장르의 음악들을 ‘랭킹’ 방식으로 리스트화해 왔다. 가장 대표적인 리스트로는 ‘500대 명곡’ 혹은 ‘500대 명반’ 시리즈가 있다. 이 리스트들은 단순히 순위를 매긴다는 의미 이상의, 음악 역사를 정리하고 필수적인 앨범과 곡을 가려 뽑는다는 의미를 함께 갖고 있다. 많은 음악 마니아가 롤링스톤이 소개한 리스트를 따로 저장해 놓고 음악 공부의 유용한 교본으로 삼기도 한다. 그런 그들이 이제 K팝의 역사를 정리해 보겠다고 나선 것이다.

물론 명곡선이라는 이 포맷이 그 자체로 대단히 독특한 시도는 아니다. 국내에도 ‘100대 명반’ 시리즈를 비롯해 유사한 기획들은 흔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다만 평론가로서 내 관심은 과연 미국 주류 저널리즘이 바라본 한국 대중음악은 어떤 의미이며, 또 그것이 한국 전문가들과는 다른 어떤 독특한 관점을 담고 있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의외로 리스트의 면면 자체는 그다지 충격적이지 않다. 아니, 오히려 한국인 입장에서는 지극히 평범하다면 평범한 노래들이 익숙하게 펼쳐진다. 그러나 이것이 미국 잡지의 리스트라는 점을 떠올려보면 흥미롭게 느껴진다. 가장 관심을 끄는 10위권 노래들을 살펴보자. 먼저 눈에 띄는 건 5위를 차지한 ‘가왕’ 조용필의 《단발머리》다. 외신 저널리스트들이 그들에게 익숙한 K팝 아이돌의 노래가 아니라 팬으로서 동시대를 보냈을 리 없는 조용필의 노래를 포함시켰다는 것에 일단 신선한 충격을 받는다.

가수 조용필이 2018년 4월11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 블루스퀘어에서 열린 데뷔 50주년 기자간담회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조용필의 수많은 히트곡 중 왜 《단발머리》가 5위일까

가왕의 수많은 명곡 가운데 하필 《단발머리》를 선택했다는 것에 대해서도 호기심이 생긴다. 선정의 변을 찬찬히 읽어본다. ‘트로트의 5음계로부터 탈피한 한국 대중음악의 혁명’이라는 표현이 눈에 띈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서구적인 록과 한국적인 사운드를 적절히 안배해 커리어의 동력으로 삼았던 조용필의 음악에 대한 설명으로는 다소 부족한 느낌도 있다. 더 궁금한 것은 많은 히트곡 중 왜 하필 《단발머리》이냐다. 《단발머리》가 시대를 한참 앞서간 곡임은 분명하지만 세련미나 음악성이 기준이라면 더 실험적인 명곡들이 있을 것이고, 대중성이 기준이라면 더 중요한 곡들도 널려 있다. 어쨌든 그 주체가 외신이라는 점에서 신선하다면 신선한 선택이다.

4위, 3위, 2위는 한국 대중음악, 그중에서도 K팝 아이돌 음악의 역사에서 각기 다른 중요한 위상을 가진 아티스트들이 차지하고 있다. 4위는 K팝 사상 가장 성공적인 그룹인 방탄소년단의 《봄날》, 3위는 21세기 가장 성공적인 여성 가수 중 한 명인 아이유의 《좋은날》, 2위는 최초의 K팝 아이돌 그룹으로 불리는 H.O.T.의 《캔디》다. 크게 반박하기는 어려운 무난한 선택으로 보이지만 순위와 그에 담긴 함의에 대해서는 부가적인 설명을 요구하고픈 기분이 든다.

특히 10위권 바깥의 곡들과 비교해 보면 그 의문은 더더욱 증폭된다. 아이유의 《좋은날》이나 HOT의 《캔디》가 센세이션을 일으킨 역사적 명곡이었다는 점에서는 큰 의문이 없지만 9위를 차지한 서태지와 아이들의 《난 알아요》는 K팝 산업의 탄생이라는 점과 문화적 센세이션 크기에서 5위권에 언급된 그 어느 곡 이상으로 위대한 곡이지 않을까? 만약 이 리스트가 말하고자 하는 게 ‘글로벌한 K팝 아이돌 산업의 탄생’의 의미라고 한다면, 5위의 《단발머리》나 11위를 차지한 이정현의 《와》, 14위를 차지한 뜻밖의 선택인 신중현의 《미인》은 그 곡들의 개별적인 중요도를 떠나 일관성이 부족한 구색 맞추기용 선곡이 아닌가.

하나 더. 만약 K팝의 국제적 지명도가 그렇게 중요한 기준이라면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왜 23위에 랭크된 것일까. 의문은 계속된다. 원더걸스, 빅뱅, 투애니원, 블랙핑크 등 글로벌 K팝의 상징들이 모조리 포진된 10위권에 싸이가 없다는 것은 도대체 어떤 변명이 가능할까. 한국 전문가들이 몇 년 전 내놓은 K팝 명곡선에서 무려 1위에 오른 보아의 《no.1》은 18위에 랭크돼 있다. 과연 이것은 국내와 해외의 시각 차이에 불과한 것일까.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일까. 조금 더 명쾌하고 일관된 설명이 필요해 보인다.

2009년 2월13일 MTV 클래스업(Class Up) 녹화현장에서 그룹 소녀시대가 오프닝 무대를 펼치고 있다. ⓒ연합뉴스

소녀시대의 《Gee》가 1위…선곡의 일관성은 부족해 보여

이 차트의 가장 높은 곳은 소녀시대의 《Gee》가 차지하고 있다. 이 노래가 대중음악 역사상 가장 위대한 곡이라고? 아마 반발하는 사람도 많겠지만 K팝을 글로벌 시대의 가요라 말한다면 지금의 K팝 세대들에게 한국 대중음악을 대표하는 가장 상징적인 곡 중 하나로 《Gee》가 언급된다는 건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일지 모르겠다. 소녀시대는 K팝 전성기의 단초가 된 2세대 아이돌을 대표하는 그룹이며, 미국의 저명한 주류 미디어 뉴요커가 2012년 ‘Factory Girls’라는 이름으로 K팝에 대한 본격적인 분석 기사를 처음으로 실었을 때 그 주요 분석 대상도 바로 소녀시대였다. 한국 대중음악 역사상 가장 위대한 곡이라는 의미라면 동의하기 어렵겠지만, K팝 마니아라는 뜻을 가진 ‘케이파피(kpoppie)’들의 탄생과 글로벌한 K팝의 인기에 가장 지대한 공헌을 한 순간으로 소녀시대의 《Gee》를 꼽는다면 그 나름대로 수긍할 수 있는 평가라 할 만하다.

물론 순위만으로 이 리스트의 가치를 애써 폄하하고픈 마음은 전혀 없다. 아쉬움이 남지만 그래도 이 리스트는 그간 외신들의 한국 대중음악 담론에서 사실상 배제되다시피한 1990년대 이전 시절의 ‘가요’들에 대해서도 나름의 관심과 존중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기특한 시도다. 조용필, 신중현, 이난영(《목포의 눈물》, 20위) , 패티김(《이별》, 28위), 김추자(《거짓말이야》, 37위)와 같은 가요계 원로들의 이름이 언급되는가 하면 산울림(《아니 벌써》, 42위), 이문세(《사랑이 지나가면》, 32위), 델리스파이스(《차우차우》, 22위), 들국화(《그것만이 내세상》, 47위), 장필순(《나의 외로움이 너를 부를때》, 50위) 등의 음악들이 비로소 적절한 평가를 통해 해외 독자들에게 소개될 기회를 얻은 것은 나름의 기분 좋은 성과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비록 그 순위나 선곡, 혹은 평가에서 일관성이 떨어지는 부분은 여전히 뼈아프지만 한국계 필진이 다수 작업에 참여하면서 실제로 한국 대중음악 역사에서 중요했던 곡들을 가능한 한 많이 언급하려고 한 점은 높이 사 마땅하다.

결국 이 차트가 갖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점들, 특히 순위에서 단적으로 보이는 일관성 부재나 맥락의 부족함은 현재 국내외적으로 한국 대중음악, 특히 K팝이라 불리는 범주의 모호함에 대해 아직 그 누구도 명확한 해답을 찾지 못했다는 것의 방증일지 모른다. 한국 대중음악은 단일한 기준으로 이야기될 수 있는가. K팝은 무엇이며, 이것은 가요와는 어떻게 다른가. 한국 대중음악을 논할 때 로컬적 의미와 글로벌적 의미를 어떻게 공존 혹은 분리시킬 것인가. K팝은 아이돌 음악인가. 아직 이 문제에 대해 누구도 명쾌한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이 같은 혼란스러움은 한국 대중음악을 ‘K팝’이라는 이름으로 좀 더 단순하게 바라봐온 외신 언론인들에게는 더 치명적인 것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조금 더 겸손하고 솔직해질 필요가 있다. 우리 대중음악을 가까운 거리에서 공부하고 평가해온 우리 저널리즘과 평단은 이 같은 결과에 대해 얼마나 떳떳할 수 있는가. 우리는 우리 음악에 대해 얼마나 치열하고 부지런히 정리하고 호명하고 있는가. 한국 대중음악 평단의 현재 위상과 그들의 역량은 어느 정도인가. 롤링스톤의 참신하면서 충격적이고 동시에 불만족스러운 이 기획은 그런 면에서 분명 새로운 자극이 된다. 불만족스러울 수는 있다. 정당하게 반박하는 것도 자유다. 하지만 대중이 아니라 음악을 업으로 삼은 평단이라면 분명 그에 상응하는, 아니 응당 그 이상의 결과물을 내놓고 K팝 담론의 주권을 당당히 주장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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