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미국, 오늘은 중국…변화무쌍한 인도 외교
  • 모종혁 중국 통신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3.09.02 10:05
  • 호수 1768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모디 총리, ‘앙숙’ 중국과 갑자기 협력 모드로 돌아서…‘남반구 선도’ 위해 철저히 국익 추구

8월22일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최대 도시인 요하네스버그에서 제15차 브릭스(BRICS) 정상회의 첫날 행사로 비즈니스포럼이 열렸다.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가 포럼 기조연설에 나섰다. 모디 총리는 “코로나19 팬데믹은 우리에게 복원력 있고 통합적인 공급망의 중요성을 가르쳐주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신뢰와 투명성이 매우 중요하다”며 “전 세계, 특히 글로벌 사우스의 발전에 기여하기 위해 서로 상대의 장점을 이용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여기서 글로벌 사우스는 남반구에 있는 신흥국과 개발도상국을 통칭한다.

전체적인 문맥을 보자면, 과거 중국에 크게 의존했던 공급망에서 벗어나 남반구의 신흥국과 개도국끼리 협력해 공급망을 다양화하도록 하자는 뜻이 담겨 있다. 이 포럼에는 왕원타오 중국 상무부장이 참석했다. 하지만 모디 총리는 거침이 없었다. “브릭스가 세계경제 성장에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면서 “인도는 빠르게 성장해 5조 달러 규모의 경제를 가진 주요국이 될 것”이라고 자신만만해했다. 이런 모디 총리의 모습에서는 다음 날 열릴 정상회의의 진통이 예견됐다. 왜냐하면 브릭스 회원국의 확대 문제가 논의되기 때문이다.

2016년 10월 브릭스 정상회의에서 대화를 나누는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왼쪽)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
2016년 10월 브릭스 정상회의에서 대화를 나누는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왼쪽)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AP 연합

중국의 브릭스 확대에 견제에서 찬성으로 돌아서

사흘 일정의 올해 브릭스 정상회의는 2019년 이래 4년 만에 대면 형식으로 열렸다. 그에 따라 회의를 주재하는 시릴 라마포사 남아공 대통령을 비롯해 모디 총리,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브라질 대통령이 참석했다. 러시아에서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을 대신해 세르게이 라브로프 외무장관이 참석했다.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우크라이나 어린이들을 납치하고 강제 이주시킨 전쟁범죄 혐의로, 국제형사재판소(ICC)가 체포영장을 발부한 상태이기 때문에 참석하지 않았다.

개최 직전부터 올해 정상회의의 최대 관심사는 새로운 회원국을 얼마나 받아들이냐 하는 문제였다. 지난해 중국이 회원국 확대를 제안하면서 올해 초까지 10여 개국이 가입을 신청했다. 개최 직전에는 그 수가 40여 개국으로 늘어났다. 그러나 기존 회원국 간에 의견이 나뉘었다. 브릭스를 서구의 G7에 대항하는 신흥국과 개도국의 협력체로 확대하길 원하는 중국과 러시아는 적극적이었다. 여기에 남아공도 가세했다. 그에 반해 브라질과 인도는 소극적이었다. 특히 인도 내에서는 회원국 확대가 중국에만 이롭다면서 견제하는 분위기가 강했다.

지난 6월 미국의 외교전문지 ‘더 디플로맷’은 “인도는 중국이 브릭스를 확대해 글로벌 사우스에 더 큰 영향력을 넓히는 수단으로 활용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다고 의심한다”고 보도했다. 인도는 지난해 GDP가 세계 5위였고, 올해 중국을 제치고 인구가 세계 1위로 올라선 남반구 최대 국가다. 따라서 인도는 향후 남반구를 선도하는 역할을 하고자 하는 욕망이 있다. 그런데 중국이 브릭스 회원국 확대를 내세워 자신의 행보를 방해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러한 인도의 입장은 첫날 비즈니스포럼에서의 모디 총리 발언을 통해 명백히 드러났다.

게다가 인도는 중국과 국경 분쟁이라는 구원(舊怨)이 있다. 두 나라는 1962년 악사이친과 아루나찰프라데시를 두고 전쟁을 벌였다. 결과는 중국의 완승이었고 인도는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었다. 2020년 5월에는 라다크의 판공호에서 양국 군인들이 난투극을 벌였다. 6월에는 더 큰 충돌이 일어났다. 라다크의 갈완계곡에서 몽둥이를 휘두르며 싸워 수십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지난해 12월에는 아루나찰프라데시 인근의 타왕에서 다시 난투극을 벌였다. 그러면서 두 나라는 국경에 수만 명의 군인을 집결시켰다가 철수하길 반복하며 계속 대치했다.

이런 긴장으로 인해 지난 4월에는 양국이 상대국 기자들의 비자를 정지시켜 추방하는 신경전도 벌였다. 특히 모디 총리와 소속당인 인도인민당은 지난 수년 동안 선거에서 국경 분쟁 문제를 줄곧 이용하며 승리했다. 그러나 8월23일 브릭스 정상회의에서는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첫 발언자로 나선 모디 총리가 기존 모든 회원국의 동의를 전제하면서도 “브릭스의 회원국 확대를 전적으로 지지한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인도의 입장 변화가 확실해지자 화상으로 참여한 푸틴 대통령을 비롯해 라마포사 대통령, 룰라 대통령도 지원사격에 나섰다.

이에 힘을 받은 시진핑 주석은 “브릭스 확장을 가속해 더 많은 국가를 브릭스 가족으로 끌어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결국 각국 정상들은 전체회의 이후 예정됐던 공동 기자회견을 취소했다. 그리고 비공개로 장시간 토론에 들어갔다. 그 결과는 다음 날 나왔다. 기자회견에서 정상회의 의장국인 남아공 라마포사 대통령은 “브릭스가 사우디아라비아·이란·아랍에미리트(UAE)·아르헨티나·이집트·에티오피아의 회원국 가입을 승인했다”고 밝혔다. 발표 직후 함께 참석한 모든 브릭스 정상은 서로의 손을 맞잡으면서 축하했다.

이 장면에서 특히 시진핑의 모습이 주목받았다. 시종일관 활짝 웃는 얼굴로 기쁨을 감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최근 좀처럼 보기 힘든 낯빛이었다. 그럴 만도 했다. 일부 외신이 “시 주석의 외교적 승리”라고 표현할 정도로, 기존 회원국에 더해 중량감이 큰 6개 국가가 새 회원국으로 가입한 것이다. 특히 중동을 대표하며 친미 노선을 걸어왔던 사우디아라비아와 UAE의 브릭스 가입은 중국의 노력이 크게 작용한 결과였다. 지난해 12월 시 주석은 위드코로나로 정책을 전환한 후 첫 해외 방문지로 사우디아라비아를 찾아 중국·아랍 국가 정상회의를 개최하는 등 공을 들여왔다.

이날 중국은 또 다른 외교적 성과를 거두었다. 시 주석과 모디 총리가 즉석 대화를 나눠 국경 문제 해결을 위한 노력을 강화하기로 합의한 것이다. 이를 위해 양국 정상은 라다크에서 대치 중인 병력을 조기 철수하기로 했다. 사실 두 정상은 지난해 11월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에서 회담을 열어 국경 문제를 협의했다. 하지만 대치 중인 병력 철수에는 합의하지 못했다. 그런데 이번 브릭스 정상회의에서 양국의 관계 개선에 전환점이 되는 상황이 계속 전개된 것이다. 그렇다면 인도는 왜 갑자기 중국에 협조적으로 바뀌었을까?

 

미국 주도 쿼드 참여하면서도 러시아와 무역 교류

인도는 미국이 중국을 고립시키기 위해 추진한 인도·태평양전략의 핵심 국가로, 쿼드(QUAD)에 참여했다. 이에 따라 2020년 이래 미국·일본·호주와 수시로 합동군사훈련을 벌여왔다. 2021년에는 ‘I2U2’도 가입했다. I2U2 가입국은 미국·인도·이스라엘·UAE다. 여기까지 본다면, 인도가 미국과 협력을 공고히 해 중국을 압박하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인도가 미국에 마냥 협조적이지는 않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서구의 경제 제재로 수출길이 막힌 러시아의 에너지·식량·비료 등을 가장 많이 사주는 나라가 인도다.

지난해 인도의 대러시아 수입은 전년 대비 4.4배나 증가했다. 게다가 인도는 최근 수년 동안 세계 여러 나라와 3개국 협의체를 창설했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오직 자국의 이익과 경제 발전을 위해서다. 따라서 브릭스 정상회의에서 중국과 협력하고 국경 분쟁 해결에 나선 것은 오직 국익을 위한 선택이라 할 수 있다. 인도의 바람처럼 향후 남반구를 선도하려면 더 큰 영향력을 갖춰야 하기 때문이다. 이를 보여주듯, 8월27일 B20 서밋에서 모디 총리는 중국을 견제하며 “민주적인 가치를 갖고 상호 신뢰를 받는 인도에 투자해 달라”고 말했다.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