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예산안 656조원, 건전재정이라며 복지·SOC는 확 늘려 [김상철의 경제 톺아보기]
  • 김상철 경제 칼럼니스트(전 MBC 논설위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3.09.03 16:05
  • 호수 17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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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지출 증가율, 2005년 이후 최저 수준
기초연구에서 6.2% 삭감한 것은 우려

정부가 2024년도 예산안을 발표했다. 내년도 정부 예산안은 656조9000억원으로 올해보다 2.8%, 약 18조2000억원 증가했다. 총지출 증가율은 2005년 이후 가장 낮은 역대 최저 수준이다. 3% 중반으로 예상되는 올해 물가상승률보다 낮고 내년 경상성장률 전망치인 4.9%에도 미치지 못한다. 정부는 선심성 지출과 낭비를 최대한 줄이고, 성장과 복지에 우선순위를 맞춘 효율적인 예산 편성이라고 설명한다.

줄이기는 사실 많이 줄였다. 필수 지출을 제외한 정부 재량지출 규모 약 120조원 가운데 20%를 삭감했다. 예산을 짤 때는 항상 건전한 재정 유지에 대한 요구와 재정의 역할 확대가 필요하다는 주장 사이에서 고민하게 된다. 긴축에 대해서는 의견이 다를 수 있다. 건전재정을 중시한다면 긴축을 긍정적으로 평가할 것이고, 반대로 경기 대응과 복지 확대를 위한 국가의 적극적 역할을 기대한다면 부정적일 것이다. 긴축예산을 긍정적으로 보는 측은 효율적 예산안이라고 하겠지만, 부정적으로 보는 측에서는 긴축이 경기 회복을 지연시킬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예산은 결국 정치다. 정부가 국민에게 한 약속은 대부분 예산을 통해 실현된다. 그래서 예산에는 정권의 철학이 담긴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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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세 수입은 올해보다 33조원 줄어

예산의 규모부터 보자면, 단순히 지출 증가율만 보고 판단할 문제는 아니다. 예산이 지출이라면 주 수입은 세금징수액이다. 세수를 고려해야 한다. 확대재정이라고 해도 총지출 증가율이 총수입 증가율보다 낮았다면 방만하다고 하기 어렵다.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내년 재정 수입은 올해보다 감소한다. 올해의 625조7000억원보다 13조6000억원 줄어든 612조1000억원으로 추산된다. 재정 수입이 1년 전보다 줄어드는 것은 지난 10년간 없었던 일이다. 특히 국세 수입은 경기 회복 지연과 부동산 경기 침체 등의 영향으로 올해보다 33조1000억원 줄어든 367조4000억원에 그칠 전망이다.

수입 전망이 이 정도라면 지출은 당연히 줄여야 한다. 10년 만의 수입 감소라면 19년 만의 낮은 지출 증가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당연한 일을 하는데 흔히 말하듯이 초긴축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정부가 지출을 줄인다고 하지만 재정 건전성은 나아지지 않고 오히려 나빠진다. 국가채무 증가 폭을 2019년 이후 가장 낮은 62조원 수준으로 낮추겠다고 했지만, 아무튼 채무가 늘어나는 건 그대로다. 국가채무는 1196조2000억원으로 늘어나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은 50.4%에서 51.0%로 높아진다. 통합재정수지 적자 규모는 올해의 13조원보다 늘어나 44조8000억원 수준까지 커질 전망이다. 통합재정수지에서 국민연금, 고용보험 등 사회보장성 기금을 제외한 관리재정수지 적자 규모는 92조원으로 불어난다. 올해 -2.6%까지 낮췄던 GDP 대비 관리재정수지 비율도 내년에 -3.9%까지 치솟을 전망이다. 정부가 법제화를 추진 중인 재정준칙 목표가 관리재정수지 비율을 -3% 이내로 관리한다는 것이다. 내년에는 이 수준을 넘어선다.

대대적으로 지출을 줄이는데도 재정 건전성이 나아지지 않는 배경에는 경기 부진과 함께 감세가 있다. 아무리 정부 지출을 줄여도 경기가 나빠져 세금이 잘 걷히지 않으면 재정 건전성은 실현하기 어렵다. 물론 감세는 장기적인 경기 부양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단기적으로는 감세로 세수가 줄더라도 경기가 나아진다면 장기적으로는 오히려 세수가 늘어날 수 있다. 그러나 감세 효과는 아직 없는 반면에 감세로 인한 국세 수입 감소는 확실하다. 법인세율을 1%포인트만 낮춰도 연간 3조원의 국세 수입이 줄어든다. 지난 5월 국회예산정책처가 내놓은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국회를 통과한 법안으로 인한 재정 부담 증가 규모는 앞으로 5년간 91조8000억원에 달한다. 감세 정책으로 발생하는 세수 감소는 연평균 16조4000억원이다.

지난 7월 발표된 세제 개편안도 앞으로 5년간 3조원 규모의 추가 감세를 하는 내용이었다. 경기가 대단히 좋아져 세수가 크게 늘지 않는 한, 감세를 추진하면서 동시에 재정 건전성을 확보하는 일이 쉬울 리 없다. 일단 감세를 정책 목표로 정해 놓은 다음이라면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다. 정부는 올해부터 2027년까지 5년 동안 연평균 총지출 증가율을 3.6%로 묶을 계획이다. 만만한 일이 아니다. 이미 정부 예산 가운데 법률에 지급 의무가 명시된 의무지출 비중은 올해 53.5%에 이른다. 고령화와 저출산으로 의무지출은 계속 늘어난다. 정부는 앞으로도 의무지출이 적어도 연평균 5%씩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래도 총지출 증가율을 묶으려면 재량지출 증가율을 2% 이내로 억제해야 한다. 긴축예산은 현 정부 임기 내내 이어져야 한다.

예산 규모 다음으로는 구체적으로 예산을 어디에, 어떻게 쓸지가 또한 중요한 문제다. 특기할 만한 것은 재정 건전성 확보라는 기조 아래서도 복지 예산은 늘린다는 점이다. 전체 예산 증가율 2.8%에 비해 사회·복지 예산은 8.7% 증가한다. 65세 이상 노인이 받는 기초연금 최대 지급액은 1만1000원 늘어나고 최저생활을 보장하는 생계급여 지급액도 21만3000원 인상한다. 가정의 아이 돌봄 부담을 덜기 위해 부모급여 지원금도 인상한다. 근로장학금 대상을 확대하고 대학생 저리 생활비 대출 한도도 높인다. 이런 예산 항목들은 모두 국회 예산안 논의 과정에서 처리를 압박하는 무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내년 4월 총선 의식해 국회에서 늘어날 듯

건전재정을 강조하면서도 사회간접자본(SOC) 예산을 4.6% 늘린 것 역시 마찬가지다. 예비타당성조사에서 탈락한 지방공항 사업 예산이 포함된 것은 정치적 배려라고 볼 수밖에 없다. 복지 예산과 사회간접자본 예산이 늘어난 대신 큰 폭으로 예산이 감소한 부문은 연구개발(R&D) 분야다. 올해 31조1000억원 대비 5조2000억원 줄어든 25조9000억원이 됐다. 감소 폭이 16.6%에 달한다. 구체적인 내용을 보면 기초연구 분야에서 6.2%를 줄였고, 정부 출연연 예산에서 10.8%를 삭감했다. R&D 예산은 지금까지 줄어든 적 없이 평균적으로 해마다 10% 정도 늘어왔다. 성과가 없는 비효율적인 예산이나 나눠먹기식 예산을 줄였다고 하지만 우려되는 부분이다. 보는 시각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굳이 필요한지 의문이 드는 사업은 여전히 많다. 청년이 일하고 싶은 산업단지를 만든다며 산업단지에 복합문화센터 100개를 조성하는 건 잘못된 사업으로 보는 사람이 적지 않다. 수요를 고려하지 않는 예산 투입은 바람직하지 않다. 기본적으로는 정부가 굳이 나서지 않아도 되는 일에 예산을 쓸 이유가 없다.

정부는 9월 1일 국회에 예산안을 제출했다. 정부가 만든 예산안은 국회 심사 과정에서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아무래도 내년 4월 총선을 앞둔 상황에서 재정 건전성에 대한 정치권의 생각은 다를 것이다. 그러나 큰 폭으로 늘어나기는 어려워 보인다. 예산 증액은 기재부의 동의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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