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마스크걸》이 공개되자마자 글로벌 톱10을 휩쓸고 있는 가운데 고현정의 역대급 변신이 화제가 되고 있다. 《마스크걸》은 외모 콤플렉스를 가진 평범한 직장인 김모미가 밤마다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채 인터넷 방송 BJ로 활동하면서 의도치 않은 사건에 휘말리는 이야기다. 김모미 캐릭터를 나이별로 3명의 배우가 맡았으며, 고현정을 비롯해 신예 이한별, 가수 출신 배우 나나가 열연한다.
고현정은 극 중 죄수번호 1047로 불리는 것에 익숙해진 중년의 김모미 역을 맡았다. 교도소의 왕으로 군림한 안은숙의 눈 밖에 나 힘든 수감생활에도 자신만의 방법을 찾아 평온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지만 어느 날 교도소 밖에서 온 편지 한 통에 결국 탈옥을 결심한다. “하나의 역할을 세 명이 나눠 연기한다는 포인트가 오히려 흥미로웠다”는 고현정은 “30년 넘게 연기를 하면서 봐왔던 모습이나 표정을 쓰지 않는 데 집중했다. 어떻게 하면 고현정이 아니라 모미로 보일 수 있을까 고민을 많이 했다”고 열연 뒤에 숨은 노력을 밝혔다. 이어 “저의 10대, 20대, 30대, 40대를 생각해 보면 많이 달랐던 것 같다. 한 인물의 삶을 세 배우가 나눠서 연기하면 그때그때를 집중해서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알려진 바와 같이 고현정은 《모래시계》 《선덕여왕》 《대물》 《여왕의 교실》 《디어 마이 프렌즈》 등 셀 수 없는 명작으로 가득한 필모그래피를 가진 톱스타다. 그런 그녀가 자신의 비중이 크지 않은 《마스크걸》에 출연하기로 결정한 것은 시청자뿐만 아니라 연출을 맡은 김용훈 감독에게도 놀라움을 안겼다. 김 감독은 “극 중 아스팔트에 얼굴을 대고 있는 장면도 있고, 스턴트 배우가 해야 할 정도의 장면도 있었는데, 과감히 몸을 던지더라”면서 “얼굴을 흙이나 피로 뒤덮는 분장을 한 상태로 식사하는 모습을 보면서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며 만족감을 드러냈다. 3인 1역이라는 파격적인 캐스팅에 대해서도 김 감독은 “많은 분이 우려를 표했지만 고현정, 나나, 이한별 배우가 있어 자신감이 있었다. 작품을 하면서 내린 결정 중 가장 잘한 결정”이라고 밝혔다. 서울 강남의 한 카페에서 고현정을 직접 만나 《마스크걸》의 비하인드 스토리와 근황을 전해 들었다.
《마스크걸》에 대한 반응이 뜨겁다.
“기사로 보는 것 외에는 실감을 잘 못하고 있다. 지인들이 연락을 해오거나 제작발표회 때 언론 반응을 보면 나쁘지 않은 것 같다. 집안에 경사가 난 것처럼 좋다(웃음).”
출연 과정에 대해서도 듣고 싶다.
“소속사를 통해 출연 제안을 받았고, 시나리오를 보자마자 너무 좋았다. 개인적으로 저는 SNS 등 저를 알릴 수 있는 활동을 하지 않고 있다. 그래서 제가 뭘 좋아하는지, 어떤 작품을 하고 있는지조차 얘기할 곳이 없는데, 평소에 하고 싶어 했던 장르물을 만나게 돼서 좋았다.”
분량이 적다. 감독조차 “분량이 적어서 (고현정이) 해줄까”라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분량보다도 무엇을 하느냐가 중요하다. 세 명의 배우와 협업하는 것도 좋았고, 제 나잇대 역할이라 더 좋았다. 그리고 분량이 적어서 오히려 편했다. 그동안 작품을 할 때마다 분량이 많아 부담이 적지 않았다. 여러모로 내게는 새로운 접근이었다.”
연기할 때 주안점을 둔 것은 무엇인가.
“특별한 건 없었다. 다만 제가 그동안 연기할 때 나왔던 표정 등을 어떻게 하면 안 쓸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그 부분을 생각하고 임했는데, 결국 그 어떤 표정도 저인 것 같더라. 개인적으로는 극 중 병원에서 탈출하는 장면에서는 그동안 보지 못했던 모습인 것 같아 만족한다.”
3명의 배우가 한 캐릭터를 연기한다. 부담은 없었나.
“걱정이 되긴 했지만 고민을 하진 않았다. 내가 어떻게 나올 것인가보다는 작품이 어떻게 나올 것인가에 더 신경을 썼다. 작품이 가고자 하는 방향에 내가 잘 서있나, 하는 부분에 대한 걱정이 더 컸다.”
다른 2명의 모미는 어땠나.
“훌륭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첫 촬영을 할 때 그동안 후배들이 촬영해둔 것들을 볼 걸 그랬다. 사실 일부러 보지 않았다. 쓸데없는 자극이 들어오는 것 같아서 개인적으로는 제가 촬영한 것도 모니터를 안 하는 편이다. 시나리오를 읽고 제게 주어진 것만 잘 해내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이번에는 봤어야 했나 싶다. 그만큼 두 배우가 잘해 줬다. 특히나 이한별씨는 데뷔작이라고 들었는데, 오버하지 않고 어쩜 그리도 연기를 잘하는지 놀랐다. 나나씨는 이미 모미로 예열돼 있는 상태였고, 집중도가 높았다. 대단한 배우들이다.”
후회되는 건 없나.
“제가 부족한 것도 있었지만 다른 배우들과 붙여놓고 보니 다들 월등히 잘해서 특훈을 받고 더 과격하게 했어야 했나 싶기도 했다(웃음). 그럼에도 너무 좋다.”
이 작품엔 주연배우뿐만 아니라 염혜란, 안재홍 등 연기 잘하는 배우가 대거 출연한다.
“다들 대단했다. 오죽했으면 제가 염혜란씨에게 “자기가 ‘마스크걸’ 아니야?” 했을 정도로 훌륭했다. 안재홍씨 역시 마찬가지였다. 목숨 걸고 연기하더라.”
배우로서 새로운 모습에 대한 갈망이 큰 것 같다.
“이번 역할을 위해서 머리를 짧게 잘랐고, 분장도 과하다 싶을 만큼 푸석하게 했다. 마지막 장면의 경우에는 심플하게 하려고 노력했다. 극 중에서 저는 한 아 아이의 엄마로 나온다. 그동안 모성을 다룬 작품이 얼마나 많았나. 모성에 대한 이 작품만의 표현법이 있었다. 진하다고 생각하면 다시 덜어내는 작업을 계속했다. 조금의 여지도 없이, 절대 부드러움 없이 말이다. 그 부분에 집중했다.”
이 작품은 외모 콤플렉스에 대해 다룬다. 결국 주인공은 성형으로 해결한다.
“평상시에 뉴스나 여타 매체를 보면 이 사회가 외모지상주의가 아예 없다고는 말씀 못 드리겠다. 저 역시도 그 부분에서 자유로운 직업군이 아니다. 어찌 보면 늘 외모 평가를 받고 있어서 그 중심에 서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의 저는 이걸 스트레스로 받아들이기보다는 인정하는 편이다. 칭찬해 주시면 기분이 좋고, ‘주름이 있네’ 하시면 이걸 또 보셨구나 싶다. 이겨내려고 하지 않고 인정하려 한다. 개인적으로는 어떻게 하면 더 많이 웃으며 살 수 있을까를 생각하며 지내고 있다. 제가 몸이 아팠을 때 우연히 유튜브로 웃긴 콘텐츠를 봤는데 그 순간은 아프지 않더라. 결국 심리적인 게 크다. 뭐든 마찬가지인 것 같다.”
평생 연기자라는 한 길을 걷고 있다. 고현정에게 연기란 무엇인가.
“한때는 연기를 (내 인생에서) 떼려고도 해봤다. 하지만 이것 역시 결국 받아들이게 되더라. 이 작품이 내게는 특별하다. 배우 고현정의 가능성을 열어둔 작품이기 때문이다. 분량은 적었지만 그 일원으로 함께 호흡할 수 있어 좋았다. 사실 그동안은 연기보다 개인사가 회자되는 경우가 많았다. 작품을 하면 개인사가 더 만들어지는 느낌이었다. 개인사가 내 연기를 덮는 느낌 말이다. 한데 이제는 조금 자유로워지고 싶다. 몇 년 동안 몸이 안 좋았는데, 생각해 보면 내가 너무 나를 돌보지 않았던 것 같다. 지루한 표현이지만, 내가 나를 사랑하기로 했다. 연기에 대한 고마움을 모르진 않았지만 결국 저는 연기와 떼려야 뗄 수 없다는 것도 알게 됐다. 거듭 말하지만 (배우로서) 많이 쓰이고 싶다.”
오랜만에 컴백했는데, 대중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없나.
“《마스크걸》이라는 작품은 외모 콤플렉스를 다룬다. 콤플렉스는 누구나 다 가지고 있다. 그것을 스스로는 어떻게 해결하고 있는지에 대해 한번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특별히 저는 마지막 장면이 마음이 든다. 모성애를 구구절절 표현하지 않고 시처럼 잔잔하게 끝낸 지점이 아름다웠다. 그 부분을 시청자들과 함께 나누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