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 되찾기 위해 상대성이론도 공부했다”
  • 조철 북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3.09.03 13:05
  • 호수 1768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우리 조상들의 과학 탐사기 《조선이 만난 아인슈타인》

“연단에 경찰이 앉아 연사의 발언에 계속 참견하며 제지하자 관객들의 항의가 속출하고 강연은 중단된다. 이에 굴하지 않고 강연단은 일정을 강행했다. 폭염과 큰비에도 끊임없이 몰려드는 청중을 위해 독창이나 바이올린 독주 등 음악 공연을 엮어 분위기를 돋웠으며, 학생들이 펼치는 새로운 지식에 사람들은 열광했다.”

이 장면이 언제, 어디서 벌어진 일인가 했더니, 100년 전인 1923년 일제강점기 조선 전역에서 열린 ‘상대성이론 강연회’ 광경이란다. 《조선이 만난 아인슈타인》을 통해 이 광경을 전하는 이는 현재 누리호 및 차세대 발사체 엔진 개발에 참여하고 있는 기계공학자 민태기 에스엔에이치 연구소장이다. 민 소장은 조선시대부터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는 과학 지식이 달라지지 않았다고 설명한다. 아인슈타인, 하이젠베르크, 슈뢰딩거가 전 세계 과학계를 뒤흔들던 그때 우리 과학자들 역시 당대와 흐름을 같이했음을 다양한 사료를 통해 정확하게 보여준다.

조선이 만난 아인슈타인│민태기 지음│위즈덤하우스 펴냄│316쪽│1만8500원
조선이 만난 아인슈타인│민태기 지음│위즈덤하우스 펴냄│316쪽│1만8500원

“우리 선조들은 무기력하지 않았다. 과학도 예외는 아니었다. 당시 과학계의 가장 뜨거운 논쟁거리였던 상대성이론을 소개한 선구자가 있었고, 조선 전역을 돌며 순회강연을 했던 젊은이도 있었다. 그들은 무슨 생각으로 상대성이론을 알리는 데 그토록 열정적이었을까? 과학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었기에 다시는 과학에 뒤처지지 않겠다고 다짐한, 현실 극복의 역사가 여기에 있다.”

민 소장은 조선의 과학 공부 또한 끊임없이 이어졌다며, 상대성이론 해설을 7편의 시리즈로 연재하며 이목을 집중시킨 나경석, 독일 과학아카데미에서 아인슈타인을 만난 생생한 현장을 전한 황진남, 2022년 노벨상 주제인 EPR 역설을 소개한 1935년의 과학자들, 국내 최초 이학박사인 천문학자 이원철, 야구 스타이자 물리학박사 최규남, 다윈의 ‘종의 기원’을 뒤집은 우장춘, 남대문시장에서 주운 미국 학술지에 논문을 투고해 자신도 모르는 사이 국제 무대에 선 수학자 이임학, 국내 첫 노벨상 후보인 양자화학자 이태규 등 과학자들뿐 아니라 공식을 필기하던 강의실의 청중까지 다양한 인물들을 소개한다.

“그런데 우리는 왜 이 기록을 제대로 살펴본 적 없었을까. 그 답을 찾다 보면 상처로 얼룩진 근현대사가 드러난다. 일제강점기, 좌우 분열, 남북 분단, 그 안에서 수많은 과학자가 선택을 강요받았으며 이념이 얽히며 한 명 한 명 기억에서 사라졌다.”

민 소장은 일제강점기 조선 사회가 해외 소식을 통해 과학이 세상을 움직이는 영향력을 가졌다는 것을 알았다는 데 주목했다. ‘국력은 과학력’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나올 정도로 나라를 되찾기 위해서는 과학기술을 익혀야 한다는 것을 깨닫고 조선의 지식인이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민 소장은 친일의 역사, 변절의 역사, 사회주의 운동의 역사, 한글 운동, 해방 이후 좌우 대립까지 시대의 아픔과 비극을 과학으로 극복하려 했던 이들의 잊어서는 안 될 이야기를 그려낸다.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