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은 왜 ‘피프티 피프티’를 지지하지 않을까
  • 하재근 국제사이버대 특임교수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3.09.01 15:05
  • 호수 17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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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와 달리 소속사와 가수 모두 계약에 책임져야 한다는 인식 확산
법원의 가처분 기각으로 갑질 주장하던 멤버들 입지 더 약화

걸그룹 피프티 피프티가 최근 소속사 어트랙트를 상대로 낸 전속계약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이 기각됐다. 재판부는 “소속사 어트랙트의 문제로 전속계약 해지 사유가 발생하거나, 그로 인해 전속계약의 토대가 되는 상호 간 신뢰관계가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파탄됐다는 점이 충분히 소명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피프티 피프티 멤버들이 제기한 3대 가처분 신청 사유가 모두 인정되지 않았다고 알려져서 놀랍다. 그동안 멤버들 측은 증거를 법원에 제출한다며 자신감을 보여왔다. 하지만 법원에서 이 증거들이 하나도 인정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룹 피프티 피프티(FIFTY FIFTY)가 4월13일 서울 강남구 일지아트홀에서 기자 간담회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3대 가처분 신청 사유 모두 법원에서 인정 안 돼

3대 사유는 ‘소속사의 수익 항목 누락 등 정산 자료를 성실하게 제공할 의무 위반’ ‘멤버들의 신체 정신적 건강 관리 의무 위반‘ ’지원 능력 부족‘ 등이었다. 이 중에서 지원 능력 부족 부분에 대해선 처음부터 문제 제기가 과도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소속사가 피프티 피프티를 짧은 시간에 글로벌 스타가 되도록 뒷받침했기 때문이다. 멤버들의 트레이닝도 좋은 조건에서 이뤄졌다고 알려졌다. 물론 대형 기획사에 비해 부족한 부분이 있겠지만, 그건 중소 기획사의 근본적 한계다. 오히려 그런 회사와 계약한 건 멤버들 자신이기 때문에 이제 와서 지원 능력 부족을 문제 삼는 건 납득하기 어려웠다.

판단이 어려웠던 건 첫 번째인 정산 부분과 두 번째인 건강 관리 문제였다. 정산 부분에 대해선 신인이 정산 문제를 제기하는 것 자체가 의아하긴 했지만, 멤버들 측에서는 “소속사에 큰 문제가 있다”며 입증을 자신했었다. 소속사가 멤버들에게 수십억원 빚을 씌우는 한편, 정산 자료조차 제대로 제공하지 않았다는 취지의 주장이었다. 회사 운영의 내밀한 사정에 대해 알 수 없기 때문에 이 부분은 재판 결과를 보고 판단할 사안이었다. 그런데 기각이 나왔다. 그렇다면 멤버들 측에서 제출한다던 증거는 무엇이었단 말인가?

재판부는 결정문에서 “제출된 자료만으로는 피프티 피프티의 음반·음원 판매나 연예활동으로 인한 수입이 제작 등에 소요된 비용을 초과해 피프티 피프티가 지급받았어야 할 정산금이 있다고 확인되지 않는다”면서 “일부 수입에 관한 정산 내역이 피프티 피프티에게 제대로 제공되지 않은 것으로 보이긴 하지만 이후 정산서에서 수입 내역 누락을 시정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수입 내역이 제대로 제공되지 않았던 기간과 횟수 등을 고려할 때 이런 사정만으로 신뢰관계를 파탄시킬 정도의 정산 의무 또는 정산자료 제공 의무의 위반이 있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이 결정문을 보면 멤버들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증거가 미약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멤버들 측이 가장 강하게 주장했고 입증에 자신감을 보였던 것이 바로 이 정산 부분이었는데, 그게 인정받지 못하면서 멤버들의 입지가 더 약화됐다. 건강 관리 문제에 대해서도 재판부는 “소속사는 피프티 피프티의 건강 관련 문제가 확인된 경우 병원 진료를 받도록 하고 진단 내용이나 경과를 확인했고 활동 일정을 조율해 진료나 수술 일정을 잡도록 했다”고 판시했다.

사실 이 건강 관리 부분도 미스터리였다. 멤버들 측은 소속사가 멤버들의 건강이 상할 정도로 활동시켰다는 취지로 주장하는데, 그게 사실이라면 중대한 문제다. 이것만으로도 계약 해지 사유가 될 수 있다. 그렇게 중대한 사안인데도 정작 멤버들 측은 이 문제를 그리 힘주어 내세우지 않아 의아했었다. 그렇다 보니 ‘자신감이 없어서 강하게 문제 삼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이 주장이 정말 사실일까?’라는 의구심이 제기됐던 것이다. 결국 이번에 법원은 그 건강 관리 문제에 대해서도 멤버들의 주장을 인정하지 않았다.

보통 소속사와 아이돌의 분쟁에선 여론과 법원 모두 아이돌을 지지하는 것이 관행이었다. 그만큼 기획사의 문제가 컸다. 하지만 이번엔 여론과 법원이 모두 소속사 편이다. 완전히 새로운 양상이다. 이번 사건이 K팝 시장의 질서를 규정하는 또 하나의 변곡점이 될 듯하다. 그동안은 소속사 문제를 감시하고 규제하는 데 집중해 왔지만, 이젠 가수의 잘못된 행동에 대해서도 대비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진은 8월17일 서울 강남구 어트랙트 앞 ⓒ연합뉴스

《그알》 방송 이후 이례적인 공분 사태

물론 아직 논란이 완전히 종결된 건 아니다. 이번 기각 결정 이후에도 멤버들 측은 계속 어트랙트의 회계 문제를 제기하며 분쟁을 이어갈 태세를 보였다. 전홍준 어트랙트 대표를 배임 혐의로 고발하기도 했다. 어트랙트 측은 다시 외주사인 더기버스를 고소했다. 앞으로도 법정 공방이 이어질 것이고 최종 판단은 유보해야 한다.

소송 결과와 별개로 주목할 만한 점도 있다. 이번 논란을 계기로 소속사, 특히 중소 기획사를 보호할 방안의 필요성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신인을 스타로 키워내자마자 계약을 깨고 나가버린다면 산업의 토대가 무너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소속사 횡포로 무너진 아이돌의 인생을 걱정했었는데 이젠 가수의 횡포로 소속사가 망하는 것에 대해서도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이렇게 달라진 상황을 전혀 모르는 듯한 방송이 나와 대형 논란이 터졌다. 바로 《그것이 알고 싶다》 ‘피프피 피프티 편’을 통해서다. 이 프로그램은 신망이 매우 높아, 이들이 피프티 피프티 사태를 다룬다고 하자 기대가 집중됐다. 하지만 방송 후 이례적인 공분 사태가 일고 질타가 쏟아졌다. 결국 방송사 측이 사과하기에 이르렀다.

당시 방송이 피프티 피프티 멤버들을 지나치게 두둔했던 게 문제였다. 두둔을 할 순 있다. 억울한 쪽을 뒷받침해주고 잘못한 쪽을 비판하는 건 시사방송의 미덕이다. 문제는 그렇게 한쪽 편을 들려면 근거가 뒷받침돼야 하는데, 그 부분이 미약했다는 점이다. 소속사가 뭘 잘못했고 멤버들이 왜 억울한지가 명확하게 증명되지 않은 상태에서 그냥 멤버들이 불쌍하다는 식으로 표현된 느낌이었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이미 상황이 변했고 대중은 새로운 문제의식을 갖게 됐는데 《그것이 알고 싶다》는 전통적인 관점, 즉 아이돌 분쟁에서 소속사를 비판하는 관행대로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이번 방송에서 ‘소속사가 30억원 이상의 빚을 멤버들에게 부당하게 지게 했는데 그 돈이 소속사로 들어온 것 같지 않고, 회계 구조에도 문제가 있고, 멤버들 인권 억압이 극심했고, 소속사 대표가 월말평가에도 참여하지 않았다’ 등의 내용이 나왔다. 이 중에서 월말평가 부분은 방송 직후 바로 반론이 나와 ‘이런 정도의 사안조차 확인하지 않고 일방적 주장만을 내보냈단 말인가?’라는 놀라움을 자아냈다. 인권 억압이 극심했다는 부분은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그게 사실이라면 매우 중대한 사안이다. 하지만 방송 후 법원의 가처분 기각 결정이 나왔기 때문에 방송의 진실성이 의심받게 됐다. 회계 부분 역시 법원의 기각 결정으로 프로그램의 입지가 옹색해졌다.

무엇보다도 이해하기 힘든 인터뷰들이 가장 크게 공분을 불러일으켰다. 진실을 아는 당사자나 어느 정도 상황 추정이 가능한 업계 관계자가 아닌 팬, 외신기자 이런 이들의 인터뷰가 등장한 것이다. 사건의 진실과 상관없는 그들의 생각, 일방적인 주장이 전파를 탔다. 가장 황당한 건 외신기자의 말이었다. “CEO는 언제나 자금을 마련해 창립할 수 있는데 멤버들의 미래는 밝지 않다”는 취지로 말했는데, 이게 앞에서 언급한 새로운 문제의식과 완전히 배치되는 내용이었다. 소속사를 절대 강자로 보고 소속사의 피해에 대해선 전혀 고려하지 않는 관점인 것이다. 이번 《그것이 알고 싶다》 방송 중에 사업이 망해 건물청소일을 하고 있는 전직 제작자가 나왔다. 그는 이번 피프티 피프티 사태와 비슷한 일을 겪고 망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소속사 CEO는 절대 망할 일이 없다”는 취지의 황당한 주장을 했는데, 제작진은 이 인터뷰 내용을 그대로 내보냈다.

《그것이 알고 싶다》는 K팝 업계 제작자와 투자자들을 굉장히 음습한 세력인 것처럼 묘사하기도 했다. 도박판에서 검은돈이 오가는 느낌으로 업계가 그려졌고, 멤버들은 그런 어른들의 탐욕에 휘둘리기만 하는 이미지로 나왔다. 이런 묘사와 함께 ‘재능 있는 아티스트가 신뢰할 수 있는 제작자를 선택할 권리’도 존중받아야 한다는 취지의 멘트까지 나왔다. 아이돌이 계약을 깨고 싶으면 깨라고 부추긴 느낌이다.

 

‘중소 기획사 보호’ 필요성 제기

이러니 무조건 소속사를 비난하던 과거의 관행이 그대로 방송에 투영된 것 같다고 한 것이다. 이런 분쟁에선 으레 아이돌에게 동정의 시선이 쏠렸었는데, 딱 그런 감성으로 프로그램이 마무리됐다. 과거 같았으면 이런 방송이 지지를 받았을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은 세상이 달라졌고 대중의 문제의식이 달라졌다.

이제 대중은 소속사와 소속 가수라는 양 계약 주체 중에 어느 한쪽만 두둔하지 않는다. 둘 다 똑같이 계약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소속사에만 의무가 있는 것이 아니라 가수에게도 의무가 있다. 상대의 잘못으로 가수만 인생을 망치는 것이 아니라 소속사 대표나 직원들도 무너질 수 있다. 모두의 인생이 똑같이 소중하다. 그러므로 누가 잘못했는지를 정확히 가려 억울한 사람이 없도록 하는 것이 공정이라고 믿는다. 이번엔 많은 이가, 막대한 돈을 투자해 신인을 글로벌 스타로 키워내자마자 그 가수가 계약을 깨겠다고 나선 걸 불공정하다고 느꼈다.

물론 앞에서 언급했듯이 사건의 진실은 아직 완전히 밝혀지지 않았다. 이러다 혹시 중대한 소속사의 잘못이 드러난다면 여론이 뒤집힐 수도 있다. 그것과 별개로 K팝 업계 차원에서 중소 기획사 보호가 필요하다는 새로운 문제의식이 제기됐다는 것이다. K팝이 세계적 인기를 모으면서 대자본의 관심을 끌게 됐다. 그들이 중소 기획사 아이돌을 흔들기 시작하면 업계 질서가 무너진다. 피프티 피프티 사건은 당연히 진실을 밝혀야 하고 동시에 이 일을 계기로 업계의 질서도 바로잡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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