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로에서] 극성 사회, 그 비극의 그늘
  • 김재태 편집위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3.09.04 08:05
  • 호수 17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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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은 자식들이 다니던 학교와는 끝내 담을 쌓으셨다.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12년 동안 부모님이 학교에 찾아온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심지어 선생님이 매를 잘못 때려 콤파스 나사에 살점이 떨어져 나간 때에도 부모님은 꿈적하지 않으셨다. 부모님이 그토록 학교를 멀리한 내막은 아직까지도 자세히 알지 못한다. 묻지도 않았고, 설명해주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다만 교사였던 아버지가 선택한 의도적 무관심이 그 배경에 있지 않을까 어렴풋이 짐작만 할 수 있을 뿐이다. 교사의 고충은 같은 교사가 더 잘 알고 있었을 테니까.

아버지 때로부터 한두 세대쯤의 시간이 지난 2023년 여름, 그 아버지와 같은 직업을 가진 한 초등학교 교사가 꽃다운 나이에 숨지는 일이 발생했다. 고인은 자신이 일하던 학교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 죽음의 원인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정확하게 밝혀진 것이 없지만, 학부모의 극성스러운 민원에 시달리다 극단적 선택을 하기에 이르렀으리라는 관측이 대체적이다. 언론에 공개된 고인의 일기에는 ‘출근 후 업무 폭탄+(학생 이름) 난리가 겹치면서 그냥 모든 게 다 버거워지고 놓고 싶다는 생각이 마구 들었다. 숨이 막혔다’라는 글귀가 적혀 있었다고 전해진다. 이 비극적 사건이 일어난 후 해당 교사가 근무했던 학교 앞에는 추모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고, 근조화환과 포스트잇 메시지, 헌화가 몰려들었다. 전국의 교사들이 수만 명씩 모여 추모 집회를 이어간 데 이어, 급기야 고인의 49재를 맞는 9월4일을 ‘공교육 멈춤의 날’로 정해 학교 재량휴업과 단체 연가를 신청하겠다고 밝혔다. 교육부가 이를 불법행위로 간주해 대처하겠다고 한 만큼 교사들과 정부의 충돌은 또 한 번 불가피해질 전망이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 2030청년위원회 소속 청년 교사들이 27일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서울 서초구 교사 사망 사건과 관련해 실질적인 교권 회복 대책 마련과 교권 보호 입법을 촉구하고 있다. ⓒ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제공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 2030청년위원회 소속 청년 교사들이 27일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서울 서초구 교사 사망 사건과 관련해 실질적인 교권 회복 대책 마련과 교권 보호 입법을 촉구하고 있다. ⓒ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제공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이 안타깝게 숨지는 비극은 사실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한 국회의원실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2018년부터 올해 6월말까지 스스로 극단적 선택을 한 공립 초·중·고교 교원은 100명에 이른다. 학급별로는 초등학교 교사가 57명으로 가장 많았다. 교육계에서는 교사들이 그 같은 선택을 하게 된 사유가 악성 민원 등 교육활동 침해나 무고성 형사고발 등과 무관하지 않을 것으로 추정한다. 언론에 밝혀진 학부모들의 교권침해 관련 민원 사례를 보면, 학부모가 교사에게 칼 사진을 찍어 보내면서 자신이 칼을 들고 다니니 조심하라는 내용의 문자메시지를 보내는 등 ‘선을 넘는’ 위협 행위들이 적잖이 드러난다.

이번 사건이 일어난 후 정부가 늦게나마 교권 강화를 위해 팔을 걷고 나선 것은 바람직해 보인다. 모쪼록 탁상 행정이나 단기 처방에 그치지 말고 교사들이 처한 상황을 좀 더 면밀히 파악해 똑같은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는 방향으로 제도 개혁이 이뤄지기를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국의 교실이 놓여있는 현실을 제대로 살펴보는 일이 우선이다. 그런 다음에 극성스러움의 힘으로 누군가가 우위에 서는 일을 불가능하게 하는 시스템을 갖춰 나가야 한다. 다만 그 과정에서 선량한 학생과 학부모들까지 잠재적인 위해자로 인식되는 분위기가 만들어지지 않도록 주의할 필요는 있다. 그것이 모두가 이기고 모두가 웃는 교실을 만드는 지름길이다. 마지막으로 숨진 교사를 추모하기 위해 설치된 서울시교육청 앞 현수막에 동료 교사가 쓴 글 하나를 소개한다. “교육 공동체성을 살리고, 학교를 학교답게…교사·학생이 교육을 할 수 있는 곳을 만들어 주세요.” 결국 현시점에서 가장 절실한 것은 ‘함께 사는’ 교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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