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장동’ 김만배, 언론계-정계-법조계-조폭까지 쥐고 흔들었다
  • 조해수·김현지 기자 (chs900@sisajournal.com)
  • 승인 2023.09.08 10:05
  • 호수 17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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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만배는 언론인·대법관·특검·오토바이맨을 어떻게 끌어들였나
수억~수백억원 막대한 돈 미끼로 동원

또 ‘김만배’다. 이쯤 되면 ‘꼬리’가 아닌 ‘몸통’이다. 이번엔 김씨와 신학림 전 언론노조위원장 사이의 인터뷰가 문제가 됐다. 문제의 인터뷰는 2021년 9월경 녹음됐다가 대선 3일 전인 지난해 3월6일 인터넷 매체 ‘뉴스타파’를 통해 보도됐다. 부산저축은행 사건 당시 대검 중수2과장으로서 주임검사였던 윤석열 대통령이 대장동 대출 브로커 조우형씨에 대한 수사를 무마해 줬다는 의혹이 담겼다.

화천대유자산관리 대주주 김만배씨가 구속기간 만료로 9월7일 경기도 의왕시 서울구치소를 나서고 있다. ⓒ시사저널 박정훈

▒ “대장동 몸통 바꾸려던 희대의 정치 공작 사건”

1년6개월이 지난 9월5일 마침내 대통령실이 직접 나섰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성명을 통해 “대장동 주범(김만배)과 언노련(언론노조연맹) 위원장 출신 언론인(신학림)이 합작한 희대의 대선 공작 사건”이라고 규정했다. 또한 “대장동 사건 몸통을 이재명에서 윤석열로 뒤바꾸려 한 정치 공작적 행태”라면서 “김대업 정치 공작, 기양건설 로비 가짜 폭로 등의 계보를 잇는 2022년 대선의 최대 정치 공작 사건”이라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해 “나중에 아니라고 하면 돼”라고 하는 등 김씨가 수천억원에 이르는 대장동 이익을 위해 ‘대선 공작’을 주도한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김만배씨는 2021년 8월31일 경기경제신문의 <화천대유는 누구 겁니까> 칼럼으로 ‘대장동 게이트’가 터진 후 세상을 여러 번 놀라게 했다. 먼저 화천대유자산관리 대주주인 김씨 등 ‘대장동 일당’은 내부 비밀을 이용해 2014년 8월부터 2015년 3월까지 단 8개월 만에 7886억원의 부당이익을 거둔 혐의를 받고 있다.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지면서 2021년 추석 덕담으로 “화천대유하세요”가 유행했다.

이건 시작에 불과했다. 검찰 수사 과정에서 밝혀진 김씨의 인맥은 놀랍다 못해 비현실적이기까지 했다. 김씨는 언론계-정계-법조계의 유력가는 물론이고 조직폭력배와도 ‘호형호제’하는 사이였다. 이런 인맥을 가능하게 한 것은 ‘돈’이었을까. “428억원 약정” “50억 클럽” “책 세 권 값 1억6500만원” “100억원 언론재단 설립” 등 서민은 꿈도 꾸지 못할 액수가 아무렇지 않게 언급됐다. 그러나 김씨가 드리운 거액의 미끼를 문 정치인, 법조인, 언론인은 조폭과 함께 점차 수면 위로 끌어 올려지고 있다.

 

▒ “주역 글귀를 회사 이름으로”…성대 동양철학과

“화천대유·천화동인 같은 주역 글귀로 회사 이름을 지을 사람은 김씨밖에 없다고 생각해 그를 수소문했다.”

신학림 전 위원장은 김만배씨와 인터뷰를 한 경위를 이와 같이 설명했다. 김씨가 성균관대 동양철학과(84학번) 출신이라는 점을 말한 것이다. 김씨의 화려한 인맥의 한 축은 성대 동문이다. ‘50억 클럽’ 곽상도 전 국민의힘 의원이 대표적이다. ‘정영학 녹취록’에 등장하는 윤갑근 전 대구고검장, ‘대장동 프로젝트파이낸싱 대출’ 의혹의 이순우 전 우리은행장 등도 성대를 나왔다.

김만배 씨는 대장동 사업을 추진하며 성남시의원과 국회의원 보좌관들을 집중적으로 만났는데, 이때도 성대 동문이 밑거름이 됐다. 대장동 게이트가 터진 후 정계에 몸담고 있는 성대 출신 사이에선 “김씨를 만나 10만원짜리 상품권 한 장이라도 받지 못했다면, 존재감이 전혀 없다는 의미다. 이직을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는 웃지 못할 농담이 퍼지기도 했다.

이한성 천화동인 1호 대표는 ‘쌍방울그룹 대북 송금’ 의혹을 받고 있는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구속 기소)의 보좌관을 지냈는데, 둘 모두 성대 출신이다. 고재환 성남의뜰 대표, 이성문 화천대유 대표 등 대장동 사업의 곳곳에 성대 동문들이 포진해 있다.

김만배의 ‘성대 동문’ 곽상도 전 국민의힘 의원, 윤갑근 전 대구고검장, 이순우 전 우리은행장(왼쪽부터) ⓒ시사저널 박은숙, 최준필·연합뉴스

▒ 기자가 기자에게 뇌물 주는 “김 이지스”

“김만배의 방패가 튼튼해. 별명이 이지스함이야. 김 이지스. 대한민국에 이 큰 사업 하면서 언론에서 한 번 안 두드려맞는 거 봤어? 수사 안 받지, 언론에 안 타지. 비용 좀 늘면 어때. 기자들 분양도 받아주고. 회사에다 줄 필요 없어. 기자한테 주면 돼.”

김만배씨는 정영학 회계사에게 자신의 로비력을 뽐내며 이처럼 말했다. 김씨는 1992년 일간스포츠 편집기자로 시작해 뉴시스를 거쳐 머니투데이에서 부국장까지 지냈다. 김씨는 기자를 잘 아는 만큼 능숙하게 기자를 다뤘다. 기자에게 돈 쓰는 것을 아끼지 않았다. 남욱 변호사는 검찰 조사에서 “김만배가 골프를 칠 때마다 각 기자들에게 100만원씩 줬다”고 진술하기도 했다.

“서초동 만배 형”으로 통한 김씨는 기자가 기자에게 수억원을 건네는 새로운 ‘모델’을 만들어냈다. 남욱 변호사는 검찰 조사에서 “김만배가 2019년 5월 ‘한겨레 기자 집을 사줘야 한다’면서 나와 정영학에게 3억원씩 가지고 오라고 했고 실제로 줬다”고 진술했는데, 이는 허언이 아니었다.

한겨레 편집국 신문총괄 A기자는 2019~20년 아파트 분양대금 명목으로 김만배씨에게 수차례에 걸쳐 9억원을 수표로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A기자는 법조팀장과 사회부장을 지내며 대장동 비리 의혹 보도에 관여할 수 있는 위치였다는 점에서 더 큰 충격을 줬다. 이 밖에 B 전 한국일보 뉴스부문장, C 전 중앙일보 논설위원 등도 김씨와 1억원 상당의 금전거래를 했던 것으로 드러났다(1월13일자 <언론계 강타한 ‘김만배 로비 의혹’> 기사 참조).

김만배씨가 자신이 다니는 언론사 회장에게 거액의 돈을 빌려주는 만화 같은 일도 벌어졌다. 홍성근 머니투데이 회장은 2019년 10월경 소속 기자였던 김씨에게 50억원을 빌렸다가 약 두 달 후 이자 없이 원금만 갚은 혐의를 받고 있다.

골프 때마다 100만원, 집 사주려 9억원, 회장에게 빌려준 50억원 등 김만배씨의 놀라운 씀씀이는 책 세 권을 1억6500만원에 구매하는 데 이르렀다. 김씨는 신학림 전 위원장과의 인터뷰 후 신 전 위원장이 2020년 발간한 《대한민국을 지배하는 혼맥지도(전 3권)》를 1권당 5000만원에 부가가치세까지 얹어 구매했다.

신학림 전 위원장은 ‘1억이 넘는 책값이 문제가 될 거라 생각하지 않았나’라는 취재진의 질문에 “추호도 그렇게 생각한 적 없다”면서 “‘책값이 무슨 1억5000만원이냐’ 하겠지만 저는 그 돈도 싸다고 생각한다”고 항변했다. 이와 관련해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부끄러운지도 모르고 자기 책 세 권 값으로 1억6000만원을 받았다는 기막힌 주장을 하는 사람이 전국언론노조위원장을 했다는 사실도 오늘날 우리 언론계가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비판했다. ‘뉴스타파’는 9월5일 “취재원과 거액의 금전거래를 한 사실은 저널리즘 윤리상 결코 용납할 수 없는 행위”라면서 “후원회원과 시민들께 깊이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신학림 전 위원장은 친노·친문·친명계의 돈줄이 적힌 이른바 ‘이정근 노트’에도 등장한다. 이정근 전 더불어민주당 사무부총장은 각종 청탁의 대가로 사업가 박우식씨로부터 10억여원의 금품을 받은 혐의로 구속 기소돼, 4월12일 1심에서 징역 4년6개월을 선고받았다.

이정근 전 사무부총장과 박우식씨는 어떻게 만나게 됐을까. 이정근 노트에는 “신학림(김두관의 친구)-박○○(전 민주당 지역위원장), 최○○(전 민주노동당 지역위원장), 이정근을 박우식에게 소개했으나 이정근이 노영민, 문재인, 송영길과 두루 친하다는 것을 이유로 이정근만 상대함”이라는 내용이 나온다. 신 전 위원장은 김두관 민주당 의원과 중·고교 동기다. 이와 관련해 신 전 위원장은 “이정근, 박우식을 전혀 모른다. 이정근의 ‘이’자도 모른다”고 말했다(5월19일자 <[이정근 노트] “노영민 자금책, 홈앤쇼핑·허인회 태양광” 기사 참조).

김만배씨는 신학림 전 위원장에게 100억원대 언론재단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중앙지검 반부패수사3부(부장 강백신)는 대장동 사업 관계자로부터 “김씨가 신 전 위원장에게 언론재단을 만들자고 하면서 100억원을 지원해줄 수 있다고 말하는 걸 직접 들었다. 김씨가 신 전 위원장을 중심으로 언론재단을 만들고 여러 영향력을 미치려 했다”는 진술을 확보했다. 만약 대장동 사업이 성공하고 언론재단이 만들어졌다면 어떻게 됐을까. “김 이지스, 만배 형”은 재단을 통해 “김 항공모함, 김만배 이사장”이란 날개를 달고 언론계를 호령했을까.

9월1일 경기도 고양시 탄현동에서 신학림 전 언론노조위원장이 검찰 수사에 대한 기자회견을 열고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
9월1일 경기도 고양시 탄현동에서 신학림 전 언론노조위원장이 검찰 수사에 대한 기자회견을 열고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 고위 법조인과 ‘호형호제’

“그렇게 형제가 된 거야, 그래서 내가 그 박영수파 다 알지.”

김만배씨는 평소에도 법조 인맥을 자랑했다. 김씨는 사회부 법조팀장을 지내는 등 법조계를 15년간 출입하며 판사·검사를 가리지 않고 인연을 쌓았다. 이를 보여주듯 ‘50억 클럽’을 채우고 있는 인물은 검찰 출신 곽상도 의원, 박영수 전 특별검사, 권순일 전 대법관, 최재경 전 청와대 민정수석(검사장 출신), 김수남 전 검찰총장 등 대부분 법조인이다. 2021년 10월경 검찰에 제출된 정영학 회계사의 메모에는 윤갑근 전 고검장, 신경식·강찬우 전 검사장 이름이 나온다.

서울중앙지검 반부패수사1부(부장 엄희준)는 8월21일 박영수 전 특검을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수재, 청탁금지법 위반 혐의로 구속 기소했다. 박 전 특검은 2014∼15년 우리은행의 사외이사 겸 이사회 의장, 감사위원으로 재직하면서 대장동 개발사업과 관련해 남욱 변호사 등 민간업자들의 컨소시엄 관련 청탁을 들어주는 대가로 200억원 등을 약속받고 8억원을 수수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의 다음 타깃은 권순일 전 대법관으로 예상된다. 권 전 대법관은 2020년 7월 당시 경기지사로 있던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선거법 위반 재판에서 무죄 취지 파기환송 판결을 주도했다. 같은 해 9월 퇴임 이후 화천대유 고문을 맡으면서 월 1500만원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즉, 이 대표의 정치생명을 유지하게 해준 대가로 김씨로부터 고액의 고문료를 받은 게 아니냐는 것이다.

‘50억 클럽’ 박영수 전 특별검사 (위 사진)와 권순일 전 대법관
‘50억 클럽’ 박영수 전 특별검사 (왼쪽 사진)와 권순일 전 대법관 ⓒ시사저널 최준필·박은숙

▒ 오토바이맨과 20년 인연…조폭과의 ‘의리’

“어느 정도 위치에 올라가면 우리(조폭)가 주는 돈을 스스럼없이 받아 챙긴다. 노골적으로 돈을 요구하기도 한다. 그러나 김만배는 달랐다. 돈 한 푼 받는 걸 본 적이 없다. 돈을 쥐여줘도 던져버릴 사람이다.”

대장동 사업과 얽히고설켜 있는 수원 지역 조폭 두목은 기자에게 김만배씨를 이렇게 묘사했다. 심지어 “김만배가 나쁜 사람이 아닌데”라며 김씨를 변호하기까지 했다.

김만배씨는 조폭 세계와도 접점을 갖고 있다. ‘오토바이맨’으로 알려진 최우향씨가 대표적이다. 최씨는 이재명 대표와 관련된 대북송금·변호사비 대납 의혹을 받고 있는 쌍방울그룹의 부회장을 지냈다. 그는 김성태 전 쌍방울 회장과 함께 호남 지역 조폭 출신이다.

최우향 씨는 2021년 10월14일 김씨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됐을 때 오토바이 헬멧을 쓰고 구치소까지 나와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그는 취재진에게 “만배 형님하고는 20년 가까이 됐다”며 친분을 자랑하기까지 했다. 이후 최씨는 다리에 깁스를 하고 휠체어를 탄 상태에서도 김씨의 재판을 꼬박꼬박 방청했다. 최씨는 조폭 출신임에도 한국 유림의 총본산인 성균관의 최연소 부관장을 지냈는데, 성균관대 동양철학과를 나온 김씨의 영향력이 결정적으로 작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김만배씨도 최우향씨에게 각별한 신뢰를 보였다. 김씨는 2020년 최씨에게 20억원을 빌려줬고, 최씨가 대표로 있는 ‘에이펙스인더스트리’라는 회사에 30억원을 투자했다. 심지어 ‘금고’를 최씨에게 맡기기도 했다. 최씨는 김씨의 아내 등과 함께 2021년 11월∼2022년 12월까지 대장동 사업 관련 범죄수익 약 360억원을 소액 수표로 쪼개 차명으로 계약한 오피스텔에 보관하거나 제3자의 계좌에 송금하는 방법으로 은닉했다가 구속 기소됐다.

 

▒ 김만배의 출소와 ‘허위 인터뷰’ 부인

김만배씨는 구속기한이 만료됨에 따라 9월7일 구치소에서 출소했다. 김씨는 신학림 전 위원장과의 인터뷰 내용과 관련해 “당시 (윤 대통령이) 그런 영향력 있는 위치에 있지 않았다고 생각한다”고 해명했다. 신 전 위원장과의 인터뷰와 책 세 권 값 1억6000만원 지급에 대해 “사적인 대화를 신 선배가 녹음하는지 몰랐다”며 “(책은) 그분의 평생 업적으로 예술적 작품으로 치면 그 정도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 산 것”이라고 주장했다.

서울중앙지검은 9월7일 ‘대선개입 여론조작 사건 특별수사팀’을 구성했다. 반부패수사3부의 강백신 부장검사가 팀장을 맡고, 반부패3부 소속 검사들을 중심으로 선거와 명예훼손 사건에 전문성을 갖춘 공공수사부, 형사1부 소속 검사 등 10여명이 투입됐다. 특별수사팀은 김만배씨와 신학림 전 위원장 간의 인터뷰 경위, 대가성뿐만 아니라 ‘배후 세력’이 존재했는지 등도 규명하겠다는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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