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측불허’ 일론 머스크의 기행에는 다 이유가 있었네
  • 채인택 전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3.09.09 10:05
  • 호수 1769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친구들로부터 당한 폭행과 엄한 아버지로 인한 정서적 상처로 불우한 어린 시절 보내

일론 머스크(52)는 ‘우리 시대의 기업인’이라고 불러도 지나치지 않다. 창의와 혁신으로 새로운 사업과 기업을 창업하고 키웠으며, 이를 통해 세상을 대대적으로 바꿨기 때문이다. 머스크가 창업하고 운영하고 있는 기업의 명단은 곧 우리 시대 혁신의 연대기다. 우선 그가 창업해 최고경영자(CEO) 겸 수석엔지니어를 맡고 있는 스페이스X는 민간 우주사업의 신기원을 열고 있다. 러시아의 침공을 받은 우크라이나를 포함한 전 세계 60여 개 나라를 5000개 위성이 제공하는 인터넷 서비스로 연결한 스타링크도 운영한다.

‘지킬 박사와 하이드’ 연상케 해

그가 공동창업해 CEO 겸 제품 창안자를 맡은 테슬라는 세계 최대 전기자동차 업체다. 전기자동차의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최근 화제의 중심에 오른 ‘대화형 인공지능 챗봇’인 챗GPT를 개발한 오픈AI도 그가 창업했다. 뉴로 테크놀로지에도 투자해 2016년 1500개 전극이 달린 아주 가는 실을 뇌에 삽입해 인간 두뇌와 컴퓨터를 연결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뉴랄링크를 공동으로 설립했다. 9월6일 포브스 억만장자 실시간 순위에 따르면 머스크의 재산은 1800억 달러로 세계 2위다.

하지만 머스크는 기존 질서와 규범을 거부하고 관습과 격식을 파괴하는 몽상가라는 평가도 함께 받고 있다. 이 때문에 수많은 물의와 논쟁을 일으키는 장본인이기도 하다. 그런 머스크가 최근 다시금 구설에 오르고 있다. 트위터(현재는 X)의 경쟁사인 페이스북 창업주인 마크 저커버그에게 격투기 대결을 제안한 것도 그렇지만, 3억 명이 이용하는 트위터를 인수한 후 충격적이고 잔인하다고 할 정도로 대대적으로 바꾼 것도 화제를 부른다. 가장 합리적으로 일을 처리해야 할 거대 기업의 경영인인 머스크는 도대체 왜 이런 기묘한 일을 벌이는 것일까.

이를 설명해줄 수 있는 책이 발간을 앞두고 있다. 미국 전기작가 월터 아이작슨이 지난 2년간 그를 따라다니면서 관찰해 쓴 전기인 《일론 머스크》가 그것이다. 9월12일 출간으로 아마존 등에서 사전 주문을 받고 있다. 아이작슨은 《스티브 잡스》를 비롯한 여러 유명 인사의 전기를 썼다.

아이작슨이 책의 일부 내용을 사전 공개하면서 머스크의 완고한 성격과 내면 세계, 그리고 적나라한 사생활이 부각되고 있다. 그가 아마존 사이트 등에 올린 《일론 머스크》 초록을 살펴보면 흥미롭다. 그중 하나가 머스크의 어린 시절 일화다. 남아프리카공화국에 살던 어린 시절에 그는 친구들에게 수시로 폭행을 당했다. 어떤 날은 친구들이 그를 콘크리트 계단에 넘어뜨린 후 얼굴이 퉁퉁 부을 때까지 발로 찼다. 이 일로 일주일 동안 병원에 입원해야 했다.

하지만 이렇게 맞아서 생긴 육체적인 흉터는 당시 무서운 부친 때문에 생긴 정서적인 상처에 비하면 별거 아닐 정도였다. 엔지니어였던 그의 아버지는 거칠고 카리스마 넘치는 몽상가였다. 맞고 들어온 아들을 오히려 야단칠 정도였다. 그런 부친으로부터 받은 심리적 충격은 오랫동안 그를 괴롭혔다. 그는 강인하면서도 쉽게 상처받는 ‘애어른’이 돼갔다. 위기 앞에서는 극단적인 인내심과 관용을 보였다가 기분과 성격이 급작스럽게 변하는 그의 모습은 ‘지킬 박사와 하이드’를 연상케 했다.

아이작슨은 머스크가 어릴 때부터 공부 잘하는 모범생이었지만 극적인 반전을 갈망했으며, 자신의 업무와 관련해 서사시적인 웅장함을 요구했다고 전했다. 머스크가 때로는 냉담하지만 때로는 파멸적이라고 할 만큼 미친 듯한 격렬함과 맹렬함을 보인 이유다.

아이작슨은 8월31일 미국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기고한 ‘머스크 트위터 인수의 진짜 이야기(The Real Story of Musk’s Twitter Takeover)’란 글에서 머스크의 성격과 의도를 상세하게 밝혔다. 머스크의 트위터 인수와 개조 과정의 전모를 밝히는 과정에서다.

머스크는 올해 4월 트위터의 법적인 회사명과 브랜드 이름을 모두 ‘X’로 개칭했다. 파란색 새가 그려진 유명 로고도 사라졌다. 올해 두 차례에 걸친 변경 끝에 영어 알파벳 ‘X’를 형상화한 새 디자인으로 최종 변경됐다. 검은 바탕에 흰색으로 영어 알파벳 ‘X’를 적고 글자 한 획의 가운데에 다시 검은색 선을 그은 형상이다. 컴퓨터·노트북·모바일에 있던 트위터 앱의 로고도 이용자가 새로 다운받을 필요 없이 모두 자동으로 새 디자인으로 바뀌었다. 이전 디자인이 밝고 활기찬 느낌을 주는 데 반해 새 디자인은 전반적으로 어둡고 무거운 이미지가 강하다.

트위터로서는 2006년 7월 창업 이래 17년 만에 회사 이름과 브랜드 명칭, 그리고 로고가 모두 바뀌었다. 서비스도 대폭 변경됐다. 트위터는 머스크의 손에 들어가자마자 간판과 입은 옷은 물론 몸체와 영혼까지 사라진 듯했다. 이에 대해 비평가들은 머스크가 충동적이고 난폭하며 모욕적인 방식으로 트위터를 파괴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자신의 아들 망친 걸 트위터 탓으로 돌리기도

머스크는 왜 그랬을까? 아아작슨은 머스크에게 트위터는 중독성 강한 학교 운동장이라고 했다. 그에게 학교 운동장은 조롱과 집단 괴롭힘을 포함한 다양한 의미가 있다. 학창 시절 우락부락한 친구들에게 맞고 다녔던 머스크와 달리 트위터는 SNS라는 운동장에서 수많은 추종자를 거느렸다. 머스크에게 이런 트위터를 소유하는 건 학교 운동장의 왕이 된다는 의미였다. 어려서 당한 트라우마가 머스크를 그렇게 만들었다는 암시다.

머스크가 트위터의 인적 구조를 비롯해 회사 전체 분위기를 바꾼 이유를 설명하면서 아이작슨은 “‘깨어나라 마인드 바이러스’가 멈추지 않으면 문명은 다각도로 발전할 수 없다”는 머스크의 발언을 소개했다. 트위터 본사는 화장실에 ‘양성 화장실’이라고 써놓고 매달 ‘정신 건강 휴가’를 줄 정도로 진보적인 분위기의 기업이었다. 회사에 큼지막하게 ‘깨어나라(Wake Up)’라는 구호를 적어뒀다. 머스크는 트위터의 이런 진보적 분위기를 ‘깨어나라 마인드 바이러스’로 부르며 경멸했다. 미친 듯이 일해 기업을 성공시키는 게 일상인 머스크로서는 이런 느슨하고 자유로우며, 인간적인 분위기가 달갑지 않았던 셈이다.

게다가 머스크는 이런 분위기가 미국을 감염시키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기본적으로 반과학적이고, 반업적주의이며, 반인간적인 ‘깨어나라 마인드 바이러스’를 멈추게 해야 한다”고 대놓고 말했다.

아이작슨은 머스크가 자신의 아들로 태어난 재비어(Xavier)가 16세 때 성전환을 결심하게 된 것이 ‘깨어나라 마인드’에 적의를 품게 한 원인의 하나로 보인다고 봤다. 당시 재비어는 숙모(머스크 동생의 부인)에게 ‘나는 트랜스젠더이고 이제부터 내 이름은 제나예요. 아빠에게는 말하지 마세요’라는 문자를 보냈다. 머스크가 이를 알게 됐을 때 제나는 격렬한 마르크스주의자가 됐고, 아버지와의 모든 관계를 단절하고 있었다.

머스크는 지은이에게 “제나는 사회주의자를 넘어 완전한 공산주의자가 돼있었으며, 모든 부자를 악마로 생각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자식과의 이런 불화는 머스크에게 첫 자녀인 네바다의 유산 이래 인생에서 가장 큰 충격과 고통을 안겼다. “여러 차례 보자고 했지만, 제나는 나와 시간을 보내고 싶어하지 않았다.”

머스크는 아이가 이렇게 바뀐 것을 로스앤젤레스에서 다닌 진보적인 학교와 트위터 탓으로 돌렸다. 머스크는 트위터가 우파를 억압하고 반기득권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에게 감염됐다고 여겼다. 머스크의 그늘진 내면을 짐작하게 하는 일화다.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