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약’ 떼고 ‘우주’ 선택한 보령의 승부수 통할까 [권상집의 논전(論戰)]
  • 권상집 한성대 사회과학부 교수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3.09.19 10:05
  • 호수 17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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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의 신호탄 쏘아올린 30대 경영인과 40대 CEO…안정적인 제약업 대신 우주산업 통해 체질 개선 노려

보령은 올해 창립 60주년을 맞는 국내 제약 업계의 전통적 강자다. 1957년 종로5가에 김승호 창업주가 설립한 보령약국이 보령제약의 모태다. 약국에서 시작한 사업이기에 제약이란 이름은 영원히 함께해야 할 필수 키워드였다. 그랬던 보령이 2022년 4월, 보령제약에서 보령으로 이름을 바꿨다. 보령제약에서 제약을 뗀 보령의 변화와 가능성을 읽을 필요가 있다.

보령은 지난해 4월, 새로운 도전이 시작된다는 게시문을 홈페이지에 공개하며 재도약 원년인 2022년 3월25일, 주주총회를 통해 회사명을 보령으로 최종 변경했다는 점을 공지했다. 1963년 의약품 제조업 진출, 2011년 3월 국내 최초 ARB 계열 고혈압 신약 카나브 발매 등 제약 사업의 장기적 토대를 갖췄다는 내용보다 먼저 제시됐다. 홈페이지 게시문에서 읽어야 할 키워드는 두 가지다. 첫째, 국내 제약 산업을 선도하는 기업을 넘어 더 큰 가치를 추구하겠다는 것. 이와 함께 보령은 새로운 CI를 선보였다. 둘째, 우주 시대를 맞아 새로운 기회를 찾기 위해 ‘Care in Space Challenge’를 개최한다는 것. 1957년 약을 구해 주겠다는 보령의 의지는 2022년 인류 건강으로 확대됐다.

보령은 2022년 12월6일(현지시간) 미국 LA에서 우주 업계 관계자와 투자자, 참가팀 등 200여 명이 모인 가운데 제1회 CIS Challenge의 마지막 일정인 데모 데이 행사를 개최했다. ⓒ
보령은 2022년 12월6일(현지시간) 미국 LA에서 우주 업계 관계자와 투자자, 참가팀 등 200여 명이 모인 가운데 제1회 CIS Challenge의 마지막 일정인 데모 데이 행사를 개최했다. ⓒ보령 제공

‘휴먼인스페이스’에 담긴 보령의 노림수

보령제약을 모르는 이는 있어도 겔포스엠, 용각산을 모르는 이는 없다. 그 옛날, ‘용각산은 소리가 나지 않습니다’라는 유명한 광고 문구는 40대 이상의 기성세대에게는 너무나 익숙하다. 해당 문구는 보령제약의 창업자 김승호 회장이 직접 지은 것으로 유명하다. 이처럼 60년 가까이 이어지던 보령그룹의 제약 정체성은 김승호 명예회장의 손자인 김정균 보령홀딩스 대표가 본격적인 3세 경영을 알리면서 그 변화가 감지됐다.

시작은 2021년 8월에 있었던 보령의 CEO 인사였다. 보령은 2021년 8월30일, 45세의 장두현 경영총괄 부사장을 새로운 대표이사로 선임했다. 장두현 사장은 보수적인 조직 풍토와 달리 사업 성과 창출에 승부사적 면모를 지닌 능동적 성향의 인물이다. 제약 업계의 대표이사 연령이 다른 업계에 비해 매우 높다는 점에서 업계는 이를 파격으로 받아들였다. 국내 제약 업계에서 40대 CEO는 변화를 상징하기에 충분했다. 미국 미시간대를 졸업하고 CJ에서 사업전략을 그려온 장두현 사장의 부임 이후 변화의 속도와 성장 의지는 한층 더 빨라졌다. 보령의 전략을 총괄하는 김성진 최고전략책임자(CSO)는 34세의 나이에 2021년 상무로 영입된 후 1년 만에 전무로 승진했다. 뒤이어, 올해 1990년생 전략운영그룹장이 등장하며 세대교체가 가속화됐다.

이 모든 변화는 김정균 보령홀딩스 대표로부터 출발한다. 1985년생인 그는 제약 업계의 보수적 문화와 느린 속도를 거부한다. 리스크가 있더라도 제약이라는 전통의 이름을 벗어던지고 우주라는 새로운 영역에 대한 개척 의지를 드러낸 이유다. 주주 입장에선 보령으로의 탈바꿈이 매우 낯설고 어색하지만 김정균 대표는 변화가 생존이라고 주장한다.

40대 CEO 및 30대 임원에서 읽을 수 있는 보령의 변화 방향은 두 가지다. 첫째, 휴먼인스페이스(이른바 우주 사업) 사업으로의 전환이다. 둘째,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젊은 조직으로의 전환이다. 우려를 불식하려는 듯, 김정균 대표는 “휴먼인스페이스 사업에 의문을 갖는 것은 이런 젊은 인재들과 함께하는 것에 대한 의문이다”면서 자신감을 내비쳤다.

보령의 우주 사업은 무엇을 의미할까. 이를 알기 위해 보령과 손잡은 미국 우주정거장 개발 기업인 액시엄스페이스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액시엄스페이스는 우주에서 인류가 살 수 있도록 기초 인프라를 구축하는 기업이다. 우주는 중력이 없기에 균질한 약물을 더 쉽게 개발할 수 있다. 허황과 가능성이 교차하지만 김정균 대표는 가능성을 선택했다.

보령이 우주로 나가기 위한 노력은 국내 제약 업계의 현실과도 맞닿아 있다. 국내 제약 및 바이오 기업 매출액 상위 1~4위는 이미 전통의 제약사가 아닌 삼성바이오로직스, 에스디바이오센서, 셀트리온, 셀트리온헬스케어 등이 차지하고 있다. 전통의 강자인 유한양행과 GC녹십자, 종근당, 한미약품은 이미 새로운 강자에게 시장을 내준 상황이다. 신약 개발에서도 국내 제약사는 글로벌 제약사의 브랜드 및 R&D 역량을 넘어서지 못한다. 보령의 주력 제품인 고혈압 신약인 카나브 제품군은 여전히 선전하고 있지만 해당 특허는 올해 2월 만료됐다. 장기적인 성장을 담보할 수 없다는 의미다. 보령이 제약바이오에서 글로벌헬스케어산업 전반으로 확장하는 건 생존을 위한 필연이다.

ⓒ시사저널 최준필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보령 사옥 ⓒ시사저널 최준필

올 상반기 제약 업계 최고 성장률 올려

국내 제약사의 성장세가 정체를 보이고 있고 신약 개발 역량이 부족한 상황에서 보령은 김정균 대표를 중심으로 우주라는 전혀 다른 영역을 선택했다. 백신과 신약은 국내 제약사에는 성장의 기회라기보다 한계일 수밖에 없다. 이를 위해 보령은 적극적으로 우주 사업에 관심을 보인 기업과 파트너를 맺었고 우주 사업 스타트업에 투자를 지속하고 있다.

그렇다면 보령의 변화는 성공했을까. 참고로, 보령은 올 상반기 16%라는 제약 업계 최고 성장률을 기록했다. 상반기 매출 4201억원, 영업이익 350억원은 보령의 역사상 반기 최대 실적이다. 중견기업인 대다수 국내 제약사가 연 매출 1조원을 목표로 삼고 있는 가운데 매출 1조원에 가장 빨리 도달할 기업으로 제약 업계는 보령을 점치고 있다.

다만, 보령의 매출액과 영업이익은 여전히 고혈압 약인 카나브 제품군, 항암제, 항생제, 호흡기 치료제에서 나온다. 보령의 핵심역량을 지금도 시장은 제약으로 읽고 있다. 보령이 직접 우주에 나가지 못하는 상황에서 우주 사업을 벌이는 것도 리스크가 높은 요인이다. 우주에서 보령이 과연 무엇을 할지도 명확하지 않은 상황이다. 독자적으로 역량을 키울 수 없는 조건에서 우주로 나간다면 우주에 중점을 둔 기업에 휘둘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우주로 가는 길은 참으로 멀다. 보령은 손쉬운 제약을 내려놓고 어렵지만 그 먼 길을 선택했다. 그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 해답은 이제 보령이 제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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