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이성희 농협중앙회장, 선거캠프 공신에게 보은 인사 의혹
  • 송응철 기자 (sec@sisajournal.com)
  • 승인 2023.09.22 07:35
  • 호수 17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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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 도운 경기도 출신 퇴직자들 농협 핵심 요직 대거 진출해 논란
농협중앙회 측 “회장 당선 때마다 이뤄지는 관행적 인사”

이성희 농협중앙회 회장이 편법 선거캠프와 보은성 인사 논란에 휘말렸다. 농협중앙회장 선거 당시 불공정한 형태의 선거캠프를 운영했으며, 당선 이후 선거운동원으로 활동한 ‘공신’들에게 인사상 특혜를 제공했다는 내용이다. 이 과정에서 임기가 남은 계열사 최고경영자(CEO)들의 줄사퇴가 이어지기도 했다. 일련의 과정은 앞서 사회적 이슈로 부상한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과 닮아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서울 중구에 위치한 농협중앙회 사옥 ⓒ시사저널 임준선

비서실 통해 임기 남은 CEO에게 사표 강요

경기도 성남 낙생농협 3선 조합장 출신인 이 회장은 2016년 1월 최원병 전 농협중앙회장의 지지를 받으며 제23대 농협중앙회장 선거에 도전했다. 이 회장은 최 전 회장 재임 시절 농협중앙회장의 오른팔 격인 감사위원장직을 7년여간 수행한 바 있다. 그러나 이 회장은 경쟁자로 나선 김병원 전 농협중앙회장에게 밀려 고배를 마셨다.

이 회장은 4년 후인 2020년 1월 제24대 농협중앙회장 선거에 재출마했다. 당시 이 회장은 서울 분당과 강남에 두 곳의 선거캠프를 설치해 운용했다. 시사저널 취재 결과에 따르면 당시 캠프에서는 60여 명이 선거운동원으로 활동했다. 캠프에서 수립한 선거 공약과 전략을 바탕으로 전국 지역조합 내 투표권을 가진 대의원 292명에게 이 회장에 대한 투표를 권유하는 것이 주된 업무였다.

당시 선거운동원 대부분은 경기도 출신 농협중앙회와 지역조합 퇴직자들로 구성됐다. 캠프의 좌장은 박아무개 전 농협중앙회 부회장이 맡았다. 이 회장은 경기도 성남 낙생농협에서 임원으로 근무하던 1980년대부터 당시 농협경기도지회장(현 농협경기지역본부장)이던 박 전 부회장과 인연을 맺어온 것으로 전해졌다.

문제는 캠프에 현직 농협중앙회와 지역조합 직원 10여 명이 참여했다는 점이다. 농업협동조합법(농협법)은 현직 조합장과 직원들의 선거운동 기획과 실행 참여를 금지하고 있다. 이를 위반할 경우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농협중앙회 관계자는 “이 회장이 당선되기 전 농협중앙회 밖에서 벌어진 일이어서 관련 내용을 파악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2020년 1월31일 치러진 선거에서 정읍농협 조합장이던 유남영 후보와 경합 끝에 농협중앙회장에 당선됐다. 최초의 비(非)영·호남 출신 농협중앙회장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그동안 농협중앙회장직은 영·호남 출신의 전유물이라 해도 무방했다. 영남과 호남 출신이 번갈아 회장직을 맡아왔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이 회장 당선 당시엔 농협 내 요직 대부분이 영·호남 출신의 김병원 전 회장 측근들로 채워져 있었다.

상황은 이 회장 당선 직후 달라졌다. 허식 농협중앙회 부회장(영남)과 박규희 농협중앙회 조합감사위원장(영남), 소성모 농협중앙회 상호금융 대표(호남), 김원석 농업경제지주 농업경제대표(충청), 나병만 농협유통 대표(호남), 이대훈 NH농협은행장(호남), 이상욱 농민신문사 사장(호남), 김위상 농협대학교 총장(영남) 등의 사퇴 행렬이 이어졌다. 당시 이들은 모두 임기를 남겨두고 있었다. 특히 나병만 대표의 경우 2020년 초 농협유통 대표이사에 부임한 지 두 달 남짓밖에 안 된 상황이었다.

농협 고위 인사들의 대규모 사퇴는 이 회장 비서실 주도로 이뤄졌다. 당시 사퇴한 한 인사에 따르면 이 회장의 비서실장이던 조아무개씨의 종용으로 사실상 강제로 사표를 제출했다. 사퇴 압력부터 사표 수리까지 속전속결로 이뤄졌다. 이 때문에 당시 사퇴한 인사들은 이임식조차 갖지 못한 채 서둘러 자리에서 물러나야 했다.

이와 관련해 농협중앙회 관계자는 “그동안 새로운 농협중앙회장이 당선될 때마다 관행적으로 대규모 인사가 단행됐다”며 “2020년 초에는 임기 대부분을 채웠거나 연임한 인물들 위주로 사퇴가 이뤄졌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이어 “당시 사표를 제출한 모든 CEO가 사퇴하지는 않았다”면서 “홍재은 전 농협생명 대표와 최창수 전 농협손해보험 대표도 당시 사의를 밝혔지만 임기가 많이 남아있어 유임이 결정됐다”고 해명했다.

이성희 농협중앙회장의 선거캠프가 꾸려졌던 서울 서초구 코업레지던스 ⓒ시사저널 박정훈

무리한 보은성 인사에 내부 마찰도

반면, 선거 공신 대부분에게는 인사상 혜택이 돌아갔다. 그 결과 이미 퇴직한 이들이 농협중앙회 계열사나 관계사 대표이사 등 임원은 물론 감사실장, 고문, 사외이사 등 요직에 대거 포진하게 됐다. 농협경제지주 산하 남해화학 대표이사에 선임된 하아무개씨가 대표적이다. 농협중앙회 감사위원회 사무처장으로 근무하던 그는 2020년 농협중앙회장 선거 당시 퇴직자 신분이었으며, 비료에 대한 전문성도 전무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캠프에서 이 회장의 운전기사 역할을 맡아 전국 유세활동을 수행한 윤아무개씨는 농협은행 퇴직자임에도 금융과 무관한 농업용 약제 제조 계열사인 농협케미컬 전무이사에 임명됐다. 윤씨는 현재 농협케미컬 대표이사로 승진한 상태다. 농협자산관리 전무로 퇴직한 선거 공신 최아무개씨는 농협저축은행 대표이사에 선임됐고, NH농협은행 강북PB센터장을 지낸 정아무개씨는 농협유통 대표이사에 올랐다.

또 지역조합장 선거에서 낙선한 조아무개씨와 NH농협은행 영동군지부장으로 재직하다 퇴임한 남아무개씨에게는 농협중앙회 산하 인력 파견 계열사 NH파트너스 대표이사와 농협경제지주 산하 농협양곡 감사실장 자리가 각각 주어졌다. 이 밖에도 이 회장 선거캠프에서 활동한 경기도 시군 지부장과 조합장 출신 대부분은 농협 계열사 감사실장이나 사외이사 등에 선임되는 등 인사상 특혜를 보았다.

무리하게 보은성 인사를 단행하는 과정에서 내부 마찰이 일기도 했다. 선거캠프에서 공약 개발 등 중책을 맡은 퇴직자 신아무개씨의 농협중앙회장 비서실장 임명을 노조가 반대하고 나선 사례가 대표적이다. 당시 노조는 신씨가 농협중앙회 재직 시절 내부 비리로 징계를 받은 전력을 문제 삼았다. 이로 인해 이 회장은 신씨의 비서실장 임명을 철회했다. 대신 신씨에게는 농협재단 내 주요 보직이 주어졌다.

2016년과 2020년 선거 당시 주요 선거운동원으로 활동한 농협중앙회 상무 출신 하아무개씨의 조합감사위원장 선임도 노조의 반발로 무산됐다. 조합감사위원장은 농협중앙회장과 감사위원장에 이은 농협중앙회 내 3인자 위치다. 하씨는 조합감사위원장 대신 농협중앙회 관계사인 농민신문사 사장에 임명됐다.

이와 관련해서도 농협중앙회 관계자는 “농협중앙회와 계열사 요직에 선임됐다는 퇴직자들이 2020년 제24대 농협중앙회장 선거 과정에서 이 회장 캠프에 참여했는지 여부는 확인할 수 없다”면서도 “현직에서 퇴직한 후에 임원이나 계열사 대표 등에 선임되는 것이 농협의 조직 문화”라고 설명했다.

ⓒ연합뉴스
이성희 농협중앙회장이 2020년 1월31일 농협중앙회장에 당선된 후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인사권 없음에도 막대한 영향력 행사

눈여겨볼 대목은 농협법상 농협중앙회장에게 인사권이 없다는 점이다. 농협중앙회장은 비상임·명예직으로서 지역조합 및 조합원 권익 증진을 위한 대외활동으로 업무가 국한된다. 이 때문에 농협 내부의 인사 관련 서류에는 농협중앙회장의 결재란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 회장은 그동안 비서실을 통해 농협 전반의 인사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해온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NH농협금융지주는 임원후보추천위원회(임추위)를 통해 계열사 대표이사 등 임원을 선임하며 이 과정에서 농협중앙회 등 외부의 관여가 없다고 강조해 왔다. 그러나 농협 내부에서는 농협금융지주도 예외가 아니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이 회장이 당선 직후인 2020년 3월 자신의 낙생농협 조합장 후임인 정아무개씨를 농협금융지주 임추위 비상임이사로 합류시킨 점을 두고서다.

정씨는 경기도의원 시절이던 2010년대 초반부터 당시 농협중앙회 감사위원장이던 이 회장과 친분을 쌓아온 인물로 전해졌다. 농협 내부에서는 정씨가 농협금융지주 임추위 내에서 이 회장의 ‘메신저’로 활동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정씨의 전임자인 유아무개 정읍농협 조합장도 임추위에 김병원 전 회장의 의중을 전달하는 역할을 수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서는 임기가 남은 CEO들에게 일괄 사표를 받고 자신의 선거를 도운 퇴직자들에게 자리를 제공한 이 회장의 행위가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과 유사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앞서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은 지난 정부에서 임명된 환경부 산하 공공기관 임원 13명에게 사표 제출을 요구하고, 환경부 공무원들에게 후임 임원 내정자를 지원토록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지난해 1월 대법원에서 징역 2년이 확정됐다.

일련의 의혹과 관련해 농협중앙회 관계자는 “농협중앙회장에게 인사권이 없는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농협중앙회장이 농협중앙회 이사회 의장을 겸임하고 있는 만큼 임추위에 인사를 추천하는 식의 인사권 행사는 가능한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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