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나가던 K배터리 美 노조 리스크에 ‘휘청’
  • 정용석 시사저널e. 기자 (yong@sisajournal-e.com)
  • 승인 2023.09.16 12:05
  • 호수 17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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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미자동차노조 “배터리 공장도 임금 올려라”
韓 배터리 업체들, 수익성에 악영향 미칠까 ‘전전긍긍’

전미자동차노조(UAW)와 제너럴모터스(GM)·포드·스텔란티스 등 ‘빅3’ 완성차 기업 간에 임금 문제를 둘러싼 힘겨루기가 이어지며 미국에 진출한 국내 배터리 기업에도 불똥이 튀게 됐다. 바이든 정부가 전기차 전환을 가속화하자 UAW가 전기차 심장을 생산하는 배터리 업계에도 일자리 감소 문제에 대한 대책을 요구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자동차 산업에 대한 UAW의 요구 강도는 날이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GM과 포드, 스텔란티스 등 3개사 노조원을 대표해 4년마다 노사협상을 하는 UAW는 최근 대폭적인 임금 인상안을 내세우며 파업 카드까지 꺼내 들었다. 임금을 즉시 20% 인상하고 4차례에 걸쳐 5%씩 추가 인상하라는 게 노조 측 요구사항이다.

최근 UAW의 움직임이 거세진 배경으로는 자동차 산업이 내연기관차에서 전기차로 대전환이 이뤄지면서 필요 노동력이 급격히 감소할 수 있다는 불안감을 꼽을 수 있다. 부품과 생산 과정이 내연기관차보다 30% 이상 줄어드는 전기차 생산공정은 노동력도 그만큼 적게 필요하다. 업계는 100% 전기차 시대로 접어들면 기존 내연기관차에 비해 필요 인력이 30% 수준으로 줄어들 것으로 관측한다.

1월5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개막하는 최대 가전·IT 박람회 ‘CES 2023’ SK그룹관 관계자가 사전 방문한 외국인 관람객들에게 탄소 감축 기술이 적용된 미래 교통 솔루션들에 대해 설명을 하고 있다. ⓒ뉴시스

전기차 대전환이 불러온 노조 리스크

UAW는 세 확장을 위해 완성차와 배터리 회사 간 합작회사를 ‘타깃’으로 삼고 이들 공장의 근로자들을 노조원으로 끌어들이는 데 주력하고 있다. 현재 미국 내 전기차 배터리 공장은 노조의 파업 대상에 포함되지 않지만, 향후 세 확장을 통해 UAW가 합작회사 노조의 대표 교섭권을 확보하면 얘기가 달라진다.

배터리 공장을 향한 UAW의 세 확장은 이미 시작됐다. 한미 합작공장에서 대표 교섭권을 따낸 데 이어 임금 인상 요구안을 관철하는 데까지 이르렀다. GM과 LG에너지솔루션 합작회사인 얼티엄셀즈가 대표적이다. 최근 얼티엄셀즈는 오하이오 배터리 공장 직원의 시급을 약 16.5달러(2만2000원)에서 25% 오른 약 20.5달러(2만7000원)까지 높이는 인상안을 제시했고, 노조 측도 찬성했다.

이번 합의는 국내 배터리 업계가 가동·건설 중인 배터리 공장 전반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업계는 예상한다. UAW는 배터리 업계 임금을 완성차 업계 수준까지 끌어올리겠다는 복안이다. 앞서 숀 페인 UAW 위원장은 배터리 공장 노동자의 임금 인상이 최우선 순위라면서 얼티엄셀즈의 공장이 지급하는 임금 수준이 내연기관차 공장보다 낮다고 지적한 바 있다. 연내 가동을 앞둔 얼티엄셀즈의 테네시 2공장을 비롯해 SK온, 삼성SDI가 건설 중인 배터리 공장도 노조의 임금 인상 압박에서 자유롭지 않을 전망이다. 얼티엄셀즈 노동자들이 UAW에 가입한 데 이어 SK온과 삼성SDI 등의 공장에서도 UAW 가입이 이어질 수 있어서다.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혜택을 받기 위해 북미 사업을 확대해온 국내 배터리 업체들이 이젠 노조라는 복병까지 만나게 된 것이다.

ⓒ연합뉴스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이 2022년 7월19일 서울 강서구 마곡동 LG사이언스파크 내 ‘지속가능 갤러리’에서 신학철 LG화학 부회장으로부터 차세대 전기차 배터리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인건비 추가 부담만 매년 수천억원대 전망

업계는 이들 공장에 대한 노조의 임금 인상 요구가 이어지면 국내 배터리 3사의 수익성이 악화할 수도 있다고 우려한다. UAW가 국내 배터리 기업이 받는 보조금을 빌미로 강도 높은 임금 인상 요구를 이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한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배터리 업체가 해외 공장 건설 시 가장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항목이 인건비다”면서 “미국의 경우 IRA 보조금 지급 이점이 있어 높은 인건비를 상당 부분 상쇄하는 효과가 있었지만, 앞으로는 불투명하다”고 전했다. 앞서 임금 협상을 마친 얼티엄셀즈 1공장(연산 35GWh)의 경우 직원이 약 1400명으로 알려졌는데, 임금 인상에 따라 100억원 이상의 비용이 추가로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다. 대규모 증설을 하고 있는 배터리 3사의 투자 규모를 고려하면 인건비 부담은 매년 수천억원이 추가로 늘게 된다.

노조의 입김이 거세지면서 미국에 배터리 공장을 둔 국내 기업은 수율 문제 해결 등 생산 안정화에도 큰 부담을 느낄 전망이다. 배터리 업계는 빠른 수율 안정화가 수익성에 미치는 영향이 큰 산업이다. 또 다른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신규 공장을 가동하면 최대한 빠르게 수율을 개선해야 하는 게 배터리 업계의 공통 과제다”면서 “향후 임금 상승을 이유로 노사 대립이 발생한다면 전기차 생산 시점에 맞춰 생산 안정화를 이루려는 계획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고 우려를 표시했다. 그나마 국내 배터리 3사가 미국 완성차 업체와 합작회사 형태로 미국에 다수 진출한 점은 안전망으로 작용할 여지가 있다. 합작공장의 실적이 곧 지분의 50%를 갖고 있는 완성차 업체의 실적으로 연결돼 일정 부분 수익성을 지켜줄 것이란 분석이다.

배터리 3사와 함께 우리 정부의 외교 능력도 시험대에 올랐다. 다만 미국 대선을 앞두고 노조원 40만 명을 앞세운 UAW의 정치적 영향력을 넘어설 협상 카드를 마련하기는 힘들다는 분석이 나온다. 기업과 노조의 협상 과정에서 관련 협회가 할 수 있는 역할이 마땅치 않기도 하다. 한국배터리산업협회 관계자는 “협회 차원에서 도움을 줄 부분은 없다”고 말했다. 김필수 대림대 미래자동차학부 교수는 “노조가 임금 인상 압박을 하고 미국 정부가 뒤에서 동조하는 악순환을 맞닥뜨린 상황”이라며 “고민거리는 많고 해결 과제 역시 적지 않은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추가 인센티브 제도 마련은 또 다른 수익성 확보 방안이 될 수 있다. 박철완 서정대 교수는 “IRA의 첨단제조생산세액공제(AMPC) 외 배터리 산업의 한미 산업협력을 고도화하기 위한 또 다른 형태의 인센티브에 대해 미국과 협의할 때가 됐다”면서 “아직 미국 쪽에서 추가 인센티브에 대한 검토를 한 바는 없는 것으로 안다. 정부의 다각적인 지원이 이뤄져야 할 때”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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