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이 두렵다” 살벌한 물가에 벌벌 떠는 대한민국
  • 오종탁 기자·이해람 인턴기자 (amos@sisajournal.com)
  • 승인 2023.09.15 12:05
  • 호수 177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민생 현장 둘러보니…장바구니·외식 물가 줄줄이 폭등해 모두가 ‘아우성’
식비 아끼려는 젊은 층, 편의점 도시락 구독 서비스 등 新소비풍속

“추석 성수품 가격을 낮춰 국민이 넉넉한 명절을 보내실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8월말 했던 다짐이 무색하게 전반적인 서민 물가는 제동장치 없는 폭주 기관차처럼 계속 내달리고 있다. 추석 이후인 10월 이후에야 물가가 안정될 것이라고 기획재정부는 전망했다. 하지만 한국은행은 국내는 물론 해외 상황도 심상치 않아 물가 상승세가 장기화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한다. 

식당들, 2배 이상 오른 채솟값에 매출 직격탄 

실제로 추석을 보름여 앞두고 시사저널이 9월10~12일 돌아본 민생 현장은 ‘미친 물가’에 고통받는 서민들의 아우성으로 가득했다. 삼겹살, 생선탕 등을 파는 서울 용산구의 한 식당은 불과 한 달 새 천정부지로 치솟은 채솟값에 전례 없는 위기를 맞았다. 이 식당이 공개한 최근 식재료 원가를 보면 지난 8월초 1만5000원이던 쑥갓 4kg 한 상자가 5만원으로, 깻잎 1kg 한 상자가 1만2000원에서 2만원으로, 근대 한 단이 6000원에서 1만6000원으로, 얼갈이배추 한 단이 4000원에서 1만원으로, 미나리 한 단이 4000원에서 8000원으로, 열무 한 단이 4000원에서 1만원으로 뛰었다. 

주방에서 채소를 다듬던 업주 문아무개씨(여·68)는 “엊그제 청과물 도매시장에 갔다가 쑥갓 가격을 보고 믿기지 않아 ‘저 가격이 맞는 가격이냐’고 몇 번이나 반복해 (도매상인에게) 물었다. 다른 채솟값도 다 심하게 올라 감당이 안 될 정도”라면서 “기존 예산으로 살 수 있는 채소의 양이 터무니없이 줄어드니 수지 타산이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가격을 올리자니 손님이 끊길까 두려워 문씨가 택한 고육책은 채소를 가급적 아껴 사용하는 것이다. 그는 “음식에 채소를 정량보다 덜 넣고, 손님이 쌈채소를 더 달라고 하면 표정 관리가 안 되는 지금의 상황이 속상하고 불안하다”며 “설탕이나 식용유 등 공산품 가격도 계속 오른다는데, 그건 덜 쓸 수도 없고 너무 막막하다”고 토로했다. 

서울 마포구 요리주점 업주 이태윤씨(25)도 “kg당 1만원이던 루콜라 가격이 장마철을 지나며 6만원까지 폭등해 루콜라가 들어가는 메뉴를 만들지 않기도 했다. 자연스레 매출이 뚝 떨어졌다”면서 “(전체 메뉴의) 가격 인상을 수없이 고민하고 있지만, 소비자 반응을 고려할 때 현실적으로 어렵지 않겠나 싶다”고 했다. 

한국은행은 8월28일 보고서를 통해 국내에서 집중호우와 폭염, 태풍 등 기상 여건 악화로 채소·과일 등 농산물 가격이 전월에 비해 빠르게 상승하고 있는 데다 대외적으론 흑해곡물협정 중단, 일부 국가의 식량 수출 제한 등이 겹치면서 식료품 물가 우려가 확대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어 한은은 향후 국내외 식료품 물가 오름세 둔화 속도가 더디게 나타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전망하면서, 중장기적으로는 엘니뇨, 이상기후 등이 국제 식량 가격의 가장 큰 상방 리스크로 잠재해 있다고 평가했다. 식료품을 중심으로 한 서민 물가가 당분간 꺾이지 않으리란 분석이다. 

9월13일 서울 용산구의 LS용산타워 내 구내식당이 손님들로 가득 차있다. ⓒ시사저널 최준필
9월13일 서울 용산구의 LS용산타워 내 구내식당이 손님들로 가득 차있다. ⓒ시사저널 최준필

서민들, 식비 줄이려 구내식당·간편식 이용 

기획재정부는 우려 심리를 누그러뜨리려는 듯 “전반적인 물가 둔화 흐름이 유지되고 있으며 10월 이후에는 일시적 요인들이 완화하며 물가가 안정될 것으로 예상한다”는 메시지를 시장에 전달했다. 동시에 20대 추석 성수품 가격이 지난해보다 5% 이상 낮은 수준으로 유지되도록 매일 점검하겠다고 밝혔다. 윤석열 대통령이 경제부처들에 “추석을 앞두고 물가 안정 기조를 확실히 다지라”고 주문한 데 따른 조치다. 

그러나 물가에 관한 서민들의 우려와 고통은 쉽사리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오히려 더 커질 조짐이다. 9월4일 발표된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의 ‘2023년 2분기 외식산업 인사이트 리포트’에 따르면 국내 외식업체 중 13.9%가 향후 메뉴 가격 인상 계획이 있다고 답했다. 여기서 76.5%는 6개월 이내에 가격표를 바꾸겠다고 예고했다. 올해가 가기 전에 외식 가격 추가 인상 움직임이 나타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이미 올 1~6월 새 가격을 올린 업체는 전체의 38%에 달했고, 이유를 묻자 거의 모두(90.38%)가 ‘식재료 원가 상승 때문’이라고 응답했다. 서울 마포구에서 중국음식점을 운영하는 김아무개씨(50대)는 “얼마 전 채소와 밀가루, 식용유 가격 상승을 못 이겨 짜장면값을 6000원에서 7000원으로 올렸다”면서 “원가 부담이 워낙 커진 탓에 영업이익은 그대로다. 가격을 또 올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고 말했다. 

장바구니 물가와 외식 물가 상승이라는 이중고(二重苦)를 떠안은 소비자들은 허리띠를 바짝 졸라매고 있다. 서울 은평구에 거주하는 40대 주부 서아무개씨는 “마트에서 고기, 우유, 달걀, 두부 등 일단 꼭 필요한 식품만 카트에 담았는데도 10만원이 넘어가더라. 특히 복숭아 한 개, 바나나 한 송이가 각각 5000원씩이나 하는 걸 보고 손이 떨렸다”며 “그렇다고 더욱 비싼 돈 들여 외식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 울며 겨자 먹기로 장을 봤다”고 했다. 서울 서대문구의 조성재씨(50대)도 “가족끼리 외식만 했다 하면 10만원은 기본으로 나온다”면서 “식료품이며 공산품이며 기름값이며 공공요금이며 안 뛴 게 없다. 아이들 용돈까지 (물가 상승에 따라) 올려줘야 할 판”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시사저널 오종탁
9월12일 오후 서울 용산구의 한 식당 주방에서 업주가 채소를 손질하고 있다. ⓒ시사저널 오종탁
ⓒ시사저널 오종탁
업주가 최근 가격이 급등한 쪽파와 미나리 등 채소를 만지는 모습 ⓒ시사저널 오종탁

며칠 동안 만나본 서울 시내 직장가 인근의 식당 업주들은 고가(高價) 메뉴 주문량이 곤두박질쳤다고 입을 모았다. 한 식당 업주는 국내 최대 온라인 자영업자 커뮤니티인 ‘아프니까 사장이다’에 글을 올려 이런 고민을 나누며 “사실 외식하러 나오는 직장인 자체가 잘 보이지 않는다. 경기 침체와 물가 상승으로 직장인들 지갑이 꽉 닫힌 것 같다”고 진단했다. 외부 음식점보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에 균형 잡힌 식단을 제공하는 대기업 구내식당은 사원들로 연일 문전성시를 이룬다. 서울 용산구 LS용산타워 구내식당에서 식사하고 나온 직장인 정아무개씨(34)는 “이 회사(LS) 직원이 아니지만, 외부인도 이용할 수 있는 구내식당이라 종종 혼자 와서 점심을 먹고 간다”면서 “올해 들어 6000원에서 7000원으로 가격이 올랐어도 외식 메뉴가 보통 1만원 정도 하고 동료들과 커피까지 마시면 추가로 돈이 드는 점을 감안하면 이 구내식당만 한 곳이 없다”고 말했다. 

더 나아가 점심비 ‘제로(0)’화에 나서는 직장인들도 있다. 교사 정덕경씨(33)는 “점심에 한 끼 7000원짜리 학교 급식을 신청해 먹다가 취소했다. 지금은 간단히 빵을 먹거나 굶는다”며 “저녁에 배달음식을 시켜 먹는 빈도도 대폭 낮췄다. 물가가 너무 올라 돈을 아껴야겠다는 생각이 저절로 든다”고 말했다. 직장인 고아무개씨(여·28)는 “식비를 최소화하고 다이어트도 할 겸 집에서 샐러드와 달걀, 닭가슴살 등을 도시락통에 담아 와 점심시간에 먹는다”고 했다. 

서울의 한 GS25 편의점에 구독 서비스로 할인 구매 가능한 간편식이 진열돼 있다. 휴대전화 화면에 나타난 것은 할인받은 내역이다. ⓒ연합뉴스
서울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동자촌) 주민이 편리하게 생필품 지원을 받을 수 있는 동행스토어 ‘온기창고’가 8월 1일 문을 열었다. ⓒ연합뉴스

저소득층, 물가 부담에 생계 불안 가중 

젊은 층이 싸고 간단한 식사를 선호하는 경향은 간편식 업계에 호재가 아닐 수 없다. 편의점의 구독 서비스는 그야말로 대박 행진 중이다. 구독 서비스는 일정액의 월 이용료를 내면 특정 상품을 정해진 횟수만큼 20∼30% 할인된 가격에 구매할 수 있는 서비스다. 20∼30대 젊은 층이 도시락과 같은 간편식을 구독 서비스로 저렴하게 이용하는 신(新)소비풍속은 갈수록 더 확산하고 있다. 편의점 구독 서비스를 애용하는 이아무개씨(27)는 “매달 3990원을 지불해 구독 쿠폰을 받는 게 일상이 됐다”며 “구독 쿠폰을 제시해 도시락이나 샌드위치, 샐러드를 20% 할인받으면 각각 800~1000원정도씩 아낄 수 있다. 점심값을 4000원대 이하로 막을 유일한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대학생 남상백씨(25)는 “학생식당 가격마저 6000~7000원대로 비싸져 언젠가부터 집에서 간편식 주먹밥이나 컵밥을 주식(晝食)으로 먹다시피 하는 또래가 많아졌다”면서 “온라인으로 대량 주문하면 주먹밥은 하나에 1000~1500원, 컵밥은 하나에 2000원 수준”이라고 했다. 

한편 식료품비가 가계의 총 지출액에서 차지하는 비율(엥겔지수)이 높은 저소득층에겐 끝 모를 물가 상승세가 생계 불안을 끊임없이 가중시키는 재앙과도 같다. 9월12일 오후 서울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의 좁은 골목길에 주민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었다. 기온이 30도를 넘나드는 더위 속에 그늘막 아래나 쿨링포그(주변 온도를 낮추기 위해 안개 형태로 물을 분사하는 장치) 앞에서 무료함을 달랬다. 동자동 쪽방촌 주민들에게서 추석 연휴를 앞둔 설렘은 찾아볼 수 없었다. 쭈그려 앉아있던 주민 천아무개씨(47)는 햇살이 들자 얼굴을 찌푸리며 “물가가 올라 생필품을 일일이 구매하기 부담스워졌다”고 힘없이 말했다. 

이 지역에 8월1일 개소한 ‘온기창고’는 쪽방촌 주민들을 한숨 돌릴 수 있게 했다. 온기창고는 서울시와 서울역쪽방상담소가 동자동 쪽방촌 주민들에게 무료로 식료품과 생필품을 지원하고자 마련한 시설이다. 운영시간은 매주 월, 수, 금 오전 10시부터 오후 7시까지다. 쪽방상담소 회원으로 등록한 쪽방촌 주민에게 월 10만 포인트가 충전되는 적립금 카드를 발행해 주는데, 주민들은 배정받은 적립금 한도 내에서 자율적으로 물품을 선택해 받아 갈 수 있다. 현재 주마다 600~700명 이상이 이곳을 찾는다. 서울시와 쪽방상담소 측은 종로구 돈의동 쪽방촌에도 두 번째 온기창고를 마련할 계획이다. 

한은은 식료품 물가 상승세 장기화를 우려하며 “저소득층을 중심으로 가계 부담이 증대하고 실질 구매력이 축소될 수 있는 만큼 식료품 물가의 흐름과 영향을 면밀히 점검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