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살인에 내몰린 우리 사회, ‘성인권’ 교육 강화가 답이다 [배정원의 핫한 시대]
  • 배정원 세종대 겸임교수 (보건학 박사)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3.09.17 16:05
  • 호수 17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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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과 성평등 지우는 정책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우려 커져
성교육은 타인에 대한 존중 가르치는 것

최근 여성가족부가 2024년도 성(性)인권 관련 교육 및 사업을 폐지하고 관련 예산을 대폭 혹은 전액 삭감하기로 결정했다. 이번에 폐지되거나 예산이 삭감된 사업에는 학교가 요청할 경우 성인권 강사를 파견하는 사업과 가정폭력·성폭력 재발방지 사업 등도 포함되었다.

이 사업들의 폐지 이유에 대해 여가부는 다른 정부기관과 비슷한 사업으로 중복되며, 사업 수요가 줄고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런데 실상은 보건복지부의 성인권 교육은 ‘발달장애를 가진 학생’들 대상이어서 기존 여가부가 시행하던 장애/비장애 학생(발달장애·시각장애·청각장애 등)을 대상으로 한 성인권 교육 사업보다 대상의 폭이 좁다. 또한 2018~19년 1만8000여 명, 2020~22년 1만7000여 명대를 유지하는 등 수요도 줄지 않았고, 사업이 시행된 10여 년 동안 꾸준히 안정화되고 있는 사업이었다. 여가부는 성인권 교육의 축소 및 폐지에 대한 여성계와 시민사회단체, 전문가들의 반발이 잇따르자 학교가 요청하면 파견하는 ‘폭력예방교육 강사 지원 사업’은 유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2024학년도 대학입학 수시모집 원서접수가 시작된 9월11일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조원고등학교에서 남녀 학생들이 선생님과 수시 모집 요강 등을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2024학년도 대학입학 수시모집 원서접수가 시작된 9월11일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조원고등학교에서 남녀 학생들이 선생님과 수시 모집 요강 등을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우리의 성 인식, ‘성행위’ ‘성폭력’에 꽂혀 있어

이런 정부의 기조가 ‘여성과 성평등’을 지우는 정책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우려는 현 정부 출범 초부터 계속 지적돼 왔고, 우려의 목소리는 더 높아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성교육 전문가로서, 성학자로서 필자는 우리나라 성에 대한 인식과 정책이 너무 ‘성행위’와 ‘성폭력’에만 꽂혀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지금 세계(UNESCO)가 지향하는 성교육과 성에 대한 권리는 생물학적 성과 위생·보건의 영역을 넘어선 ‘성건강’(신체적·사회적·심리적·관계적)과 ‘인권’의 영역에서 이야기되고 있다. 우리가 추구하는 성인권이란 이분법적 젠더에 따른 편견·대립·갈등을 해소하는 ‘양성평등’에서 사회를 구성하는 모든 사람, 즉 성적 다수자와 소수자(아동청소년, 노인, 장애인, 동성애 등 성소수자)의 평등과 존중을 포함하는 ‘성평등’ 개념으로 확대되어야 한다.

사람으로서 기본적으로 존중받고 차별받지 않아야 할 보편적인 권리에서 출발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실상은 점점 더 쪼그라들고 있다. 인권 교육은 각 개인의 안녕과 행복이 보장되는 훨씬 폭넓은 존중과 안전이 기반이 되어야 하며, 성인권 교육도 당연히 그래야 한다. 성인권에서의 성은 성별(Sex)·젠더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우리 각 개인 존재(Sexuality, Human being)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성인권 교육은 각 개인이 자신이 성적 주체라는 것을 인지하고, 타인의 성인권도 존중하고 보호할 수 있는 사람으로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내가 소중한 만큼 타인의 권리와 경계 역시 존중하고 소중하게 대할 줄 알아야 한다는 뜻이다. 자신의 몸과 마음을 잘 관리하고, 성행동에 대한 올바른 결정을 할 수 있게 하며, 그만큼 타인에 대한 존중을 가르치는 성교육을 통해 오히려 자기 인생에 유리한 성행동을 결정할 수 있고 낙태 등 안전하지 않은 성행동을 피할 수 있다.

최근에는 공공기관에서의 양육자와 교사 등을 대상으로 하는 성교육조차 어려워지고 있으며, 일부 지자체는 ‘공공 도서관에서 성인권·성평등·성교육 관련 도서를 퇴출시키라’는 보수 학부모 단체의 민원 제기로 애를 먹고 있다.

일부 보수단체의 ‘성교육 반대’ 전화 민원 제기 등으로 교육청 등에서 시행하는 강의가 줄줄이 취소되고 있다. 성적 주체성, 성평등, 성행위, 피임 등에 대해 말하는 성교육이 ‘조기성애화’를 부추기고 ‘낙태를 양산한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다. 그러나 성적 주체성 교육, 즉 성적 자기결정권 교육은 자신이 자신의 몸과 마음의 주인임을 알려주고, 원치 않는 성적 제안을 거절할 수 있는 권리와 방법을 알려주는 교육이다.

 

SNS 협박글 게시자 대다수가 10대 청소년

이러한 성적 자기결정권에 대한 교육을 통해 건전하고 올바른 성가치관을 배우고, 자신의 성적 권리를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표현하고 주장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됨으로써 높은 자존감을 갖고 자기를 잘 관리하며 좀 더 행복한 사람으로 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또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고 자신을 존중하라고 요구하는 만큼 상대에 대한 존중과 배려도 함께 배워야 하는 것이다.

최근 우리나라에서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는 무서운 폭력과 살인 사건들은 이제 대상을 가리지 않고 있다. 9월14일로 1주기를 맞은 신당동 스토킹 사건을 위시해 수많은 스토킹 폭행 및 살인 사건, 부산의 돌려차기 남 성폭행 미수 사건, 정유정 사건 등이 충격을 던졌고, 가깝게는 서울의 신림역 흉기난동 사건과 분당의 흉기살인 사건, 신림동 공원에서 출근하는 여성을 대상으로 한 강간 미수 살인 사건, 전주 산책로에서의 성폭행 미수 사건 등 이제 폭행과 살인의 대상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있다.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을 피하고, 손에 뭔가를 쥔 사람이 보이면 먼저 피하라는 ‘각자도생’의 자조적인 말들이 나오고 있다는 것은 사회안전망이 무너졌다는 증거이고, 가해를 저지를 수많은 이가 잠재해 있다는 두려움이 우리 사회의 건전성을 잠식하고 있다는 징후다.

폭력은 폭력을 먹고 자란다.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을 노려 불특정하게 살상한 사건 이후로 흉기난동을 예고하는 글들이 엄청나게 SNS를 통해 올라왔고, 그 게시자 중 많은 이가 10대 청소년이었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우리 아동청소년 교육이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할지 너무나 자명하다.

또 학부모들의 괴롭힘으로 자살을 선택하는 교사들의 문제, 학생들 간에 날로 잔인해지는 폭력 및 갈취 같은 사회의 모든 사건은 결국 ‘인권’에 대해 교육하지 않는 우리 교육의 문제에서 비롯된다. 사람을 존중하지 않고, 생명을 하찮게 여기는 이유는 우리 사회·문화·환경과 교육, 나라의 정책 그 모두에 책임이 있다. 몇십 년 동안 우리들을 황폐화시킨, 사람의 개성과 권리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은 채 획일적이고 무자비한 경쟁만 부추김으로써 사회를 공동체로 보기보다는 경쟁과 이겨야 할 대상으로 보게 하는 폭력적인 문화와 교육정책을 바꿔야 한다.

부디 현 정부는 ‘사람 존중’을 기치로 하는 ‘성평등’ ‘성인권’ 향상을 위한 교육과 사업의 지원을 줄일 것이 아니라, 예산도 더 키우고 사업 내용도 확대하며 더욱 역점을 두고 살펴야 할 것이다.

배정원 세종대 겸임교수 (보건학 박사)
배정원 세종대 겸임교수 (보건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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