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면받는 KBS 주말드라마…《효심이네 각자도생》은 다를까
  • 정덕현 문화 평론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3.09.24 13:05
  • 호수 17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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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진 가족관 담겠다’는 기획 의도를 번번이 빗나가는 이유

KBS 주말드라마의 위기설은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시청률은 20%대로 추락했고, 반응도 예전 같지 않다. 이른바 ‘콘크리트 시청층’인 중장년층까지 이탈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무엇이 이런 문제를 발생시키고 있는 걸까.

시청률이 드라마의 지표가 되던 시대는 지났지만, 여전히 예외인 드라마가 있다. 바로 KBS 주말드라마다. 유일하게 가족드라마가 남아있는 시간대이고, 이른바 콘크리트 시청층이 존재하는 드라마이기도 하다. 드라마들의 평균 시청률은 이미 10% 내외로 뚝 떨어진 게 현실이지만, KBS 주말드라마는 예외적으로 30~40%대 시청률을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냈고, 최근에는 20%대로 떨어졌지만 이 수치 역시 상대적으로 보면 낮다고만 볼 수는 없다. 그만큼 KBS 주말드라마는 고정 팬층이 드라마를 보는 시간대다. 따라서 시청률 등락은 그 드라마에 대한 시청자들의 반응을 드러내는 지표가 된다.

이 관점에서 보면 지난 10년간 최고 시청률을 냈던 KBS 주말드라마는 2018년 방영돼 49.4%(닐슨코리아)를 기록한 《하나뿐인 내편》이다. 최수종과 유이가 주연을 맡은 이 작품은 ‘현대판 심청’의 서사를 가져왔다는 비판을 받았지만 특유의 효와 혈연을 앞세운 ‘출생의 비밀’ 코드로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 하지만 그 후 KBS 주말드라마의 시청률은 지속적으로 하락했다. 《하나뿐인 내편》 후속작이었던 《세상에서 제일 예쁜 내 딸》의 최고 시청률이 35.9%였고, 그 후속작인 《사랑은 뷰티풀 인생은 원더풀》은 32.3%였다. 물론 2021년 방영된 《신사와 아가씨》가 38.2%를 냈지만 2022년부터는 이제 최고 시청률이 20%대로 가라앉아 《현재는 아름다워》가 29.4%, 《삼남매가 용감하게》가 28%, 《진짜가 나타났다》는 23.9%로 추락했다. KBS 주말드라마의 위기설이 나올 법한 상황이다.

KBS 주말드라마, 《효심이네 각자도생》 포스터 ⓒKBS 제공
KBS 주말드라마, 《효심이네 각자도생》 포스터 ⓒKBS 제공

2018년부터 꾸준히 추락

새로 시작한 《효심이네 각자도생》은 2018년 50%에 육박하는 시청률을 기록하는 데 일조했던 유이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절치부심 KBS 주말드라마의 부활을 꿈꾸고 있지만 아직 알 수 없다. 첫 회 시청률이 16.5%로 《현재는 아름다워》보다 낮게 나와 현재 꾸준히 이탈하고 있는 KBS 주말드라마의 주 시청층의 흐름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시청자들이 주말드라마에서 등을 돌린 가장 큰 원인 중 하나로 연거푸 등장한 ‘출생의 비밀’ 코드가 지목된다. 한때는 쓰기만 하면 시청률 보증수표로 얘기됐던 클리셰였다. 앞서 언급했던 《하나뿐인 내편》에서도 바로 이 출생의 비밀 코드 활용이 시청률 견인의 중요한 역할을 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최근 방영됐던 《삼남매가 용감하게》는 중반 이후를 유전자 검사 이야기로 거의 채워버리다시피 하며 출생의 비밀 코드를 남발해 시청자들의 원성을 샀고, 《진짜가 나타났다》 역시 후반부에 이르러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는 출생의 비밀 코드로 족보가 꼬일 대로 꼬여버리는 상황을 연출함으로써 시청자들로부터 외면을 받았다.

한때는 시청률이 좀 떨어지면 당연하게 꺼내드는 카드처럼 여겨지던 ‘출생의 비밀’은 어째서 식상한 코드가 돼버렸을까. 그건 가족에 대한 우리 사회의 달라진 감수성이 만들어낸 변화가 아닐 수 없다. 갑자기 나타나 “내가 네 엄마다”라고 하면 펑펑 눈물을 쏟던 건, 워낙 이산의 질곡이 많았던 한국 현대사의 비극을 밑그림으로 깔고 있던 정서였다. 이산가족 찾기 행사에서 “맞어! 맞어!” 하며 핏줄을 확인하면서 눈물을 펑펑 쏟던 그 감성이다. 그건 여전히 남아있긴 하지만 과거처럼 절절하진 않다. 그저 핏줄로 연결돼 있다고 가족이라고 받아들이는 것보다는 핏줄이 아니어도 오랜 좋은 관계를 통해 가족으로 받아들이는 새로운 감수성이 생겨났기 때문이다. 핏줄이라도 가족 같지 않은 부모도 적지 않고, 입양이나 재혼가족이라도 혈육 못지않은 이가 많아졌다. 그러니 갑자기 나타나 유전적인 혈연관계를 들먹이는 것으로 가족이라 당연히 눈물바다가 되는 그런 일들은 점점 공감하기 어려워진 것이다. 지니TV에서 방영된 《남남》 같은 드라마는 아예 이러한 ‘출생의 비밀’ 코드를 뒤집어 갑자기 나타난 유전적 아버지를 딸이 “아저씨”라고 부르는 상황을 당연한 것으로 그려내 큰 공감대를 이끌어내기도 했다.

KBS 주말드라마, 《효심이네 각자도생》 포스터 ⓒKBS 제공
KBS 주말드라마, 《효심이네 각자도생》 포스터 ⓒKBS 제공

이제 ‘출생의 비밀’이 식상한 시청자들

물론 최근 KBS 가족드라마도 시대 변화에 맞춰 달라진 가족관을 담겠다는 의지를 내세우곤 한다. 《삼남매가 용감하게》의 경우 이른바 K장녀, K장남이라 불리는 한국적인 가족관에서 벗어나 이들이 희생하지 않고 자신을 위한 도전을 해나가는 이야기를 그려보겠다고 기획 의도에 적시했다. 실제로 드라마 초반만 해도 장녀라는 이유로, 장남이라는 이유로 희생을 강요받았던 김태주(이하나)와 이상준(임주환)이 당당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그리려는 의지가 느껴졌지만, 중반을 넘어가면서 톱배우 이상준을 둘러싼 출생의 비밀 코드가 등장하더니 계속 유전자 검사로 이야기를 끌고 가는 퇴행 양상을 보였다. 딱히 원인이라고 콕 짚어 말하긴 어렵지만 누가 봐도 낮은 시청률을 어떻게든 높이려는 안간힘처럼 보일 수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은 그 후속작이었던 《진짜가 나타났다》에서도 똑같이 반복됐다. 이 드라마는 미혼모 오연두(백진희)와 비혼남 공태경(안재현)이 가짜 계약 로맨스에서 점점 관계가 깊어져 결혼에 이르게 되고 그래서 실제 가족이 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는데, 그건 다분히 친자냐 아니냐에 따라 진짜냐 아니냐를 구분하던 과거의 개념에서 벗어났다. 혈육은 아니어도 진짜 사랑을 주는 이가 바로 부모가 될 수 있다는 걸 그리겠다는 의도가 분명했다. 하지만 이 드라마 역시 시청률이 20%대 초반에서 더 이상 반등하지 못하는 상황이 되자, 출생의 비밀 코드를 꺼내들었다. 누가 친자냐 아니냐는 이야기로 질질 끌면서 유전자 검사 결과에 목을 매는 뻔하디뻔한 이야기가 전개된 것. 하지만 결과는 이러한 출생의 비밀 코드에도 그다지 시청률이 반등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새로 시작한 《효심이네 각자도생》은 어떨까. 이 드라마 역시 기획 의도는 나쁘지 않다. ‘효심’이라는 주인공의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작품은 효를 내세워 이름도 그렇게 지은 부모 세대의 가족관에 대한 문제의식을 깔아놓고 이제 그런 효도와 가족에 대한 헌신보다 ‘각자도생’하는 가족 구성원들의 행복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꺼내놓으려 하고 있다. 2017년 방영돼 최고 시청률 45.1%를 기록하고 또 좋은 반응도 이끌었던 《황금빛 내 인생》이 건드렸던 새로운 가족관과 유사하다. 《황금빛 내 인생》 역시 가족이 우선이 아니라 내 인생이 더 우선이라는 이야기를 꺼내놓지 않았던가.

하지만 이처럼 좋은 기획 의도가 끝까지 펼쳐지기 위해서는 시청률에 흔들리지 않는 의도대로의 전개가 요구된다. 또한 애초 기획 의도는 잘 챙겨놓고 시대착오적인 클리셰로 돌아가는 상황이 반복되는 가장 큰 문제로, 50부작으로 맞춰놓는 변하지 않는 편성을 지목하지 않을 수 없다. KBS 주말드라마 50부작은 과거 느슨한 전개에도 온 가족이 봤던 시절의 이야기다. 너무 빠른 진행을 할 필요는 없지만, 불필요한 서사를 끼워넣어(출생의 비밀 같은 클리셰들) 질질 끄는 전개는 이제 고정 시청자들도 그리 원하지 않는다. 즉 50부작에 맞춰놓을 게 아니라 작품의 서사가 얼마나 풍부한가를 따져 유연하게 회차를 조정해 가는 게 오히려 나을 수 있다는 것이다. 제아무리 중장년의 고정 시청층이 있고, 그들이 옛 가족에 대한 향수를 드라마를 통해 해소하고 있다고는 해도 어쨌든 드라마는 현재의 산물이다. 따라서 현시대의 감수성과 어떻게든 조응하는 것이야말로 KBS 주말드라마가 이 위기를 벗어나는 유일한 길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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