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의 단식, ‘국민항쟁’ 아닌 ‘방탄’ 목적이었나 [유창선의 시시비비]
  • 유창선 시사평론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3.09.22 14:05
  • 호수 17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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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식 노림수는 윤석열 정부 입장 변화가 아닌 민주당의 입장 변화였던 셈

이런 정치가 누구의 책임인가를 따지기 이전에 야당 대표가 단식 투쟁을 벌이는 것은 참담한 일이다. 단식은 자신의 몸을 망가뜨리는 자해적이고 극단적인 투쟁 방식이다. 주로 자신의 목소리를 세상에 알리기 어려운 약자가 세상의 이목을 끌기 위해 선택하는 벼랑 끝 투쟁이다. 그러니 지금같이 SNS(사회관계망서비스)가 발달되어 누구의 목소리든 넓게 전파될 수 있는 시대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더구나 이 대표가 이끄는 더불어민주당은 국회에서 절대 다수 의석을 차지하고 있는 힘센 야당이다. 마침 야당이 예산과 법률을 무기로 자신의 위력을 보일 수 있는 정기국회 기간인데, 이 대표가 개회 전날 단식에 돌입한 것은 정치적 미스터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야당 대표의 단식을 향해 가장 많이 던져진 질문은 ‘왜 단식을 하는가’라는 것이었다. 이 대표의 단식을 평가절하하려는 여권 쪽에서만 나오는 얘기는 아니었다. 민주당 내에서도 그런 질문을 던지는 정치인이 적지 않았다. “단식의 명분이 불명확해 단식의 의미를 퇴색시키거나 의미가 부각이 안 된다”(이상민 의원), “지금까지 YS나 DJ 이런 분들은 단식 목적이 간명하고 단순했는데 이번에는 두루뭉술한 게 사실이다”(조응천 의원) 등. 이 대표가 오랜 기간의 단식으로 건강이 우려되는 상황을 맞았기에 일단 당내 결속은 유지되어 왔다. 그러나 체포동의안 표결을 앞두고 민주당은 다시 분열 조짐을 보였다.

ⓒ시사저널 박은숙
단식 19일째인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9월18일 국회에서 119구급차로 병원으로 후송되고 있다. ⓒ시사저널 박은숙

무엇을 위한 단식인지에 대한 공감대 부족

문제는 비명계 의원들도 지적하는 것처럼, 이 대표의 단식이 무엇을 요구하는 것인가에 대한 공감대가 부재한 데서 비롯되었다. 1983년 당시 재야에 있던 YS(김영삼 전 대통령)는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요구하며 23일간 단식을 했다. DJ(김대중 전 대통령)는 야당 대표 시절인 1990년에 지방자치제 전면 실시를 요구하며 13일 동안 단식을 했다.

2003년 한나라당(국민의힘의 전신) 최병렬 대표의 단식은 국회에서 가결된 대통령 측근 비리 의혹 관련 특검법안에 거부권을 행사한 데 대한 항의 표시였다. 2018년 김성태 당시 자유한국당(국민의힘의 전신) 원내대표는 ‘드루킹’ 특검을, 2019년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는 지소미아(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파기 철회 등을 요구하며 단식에 들어갔다. 우리 정치사에서 정치인들이 단식 투쟁에 들어갈 때는 이렇게 구체적인 뭔가의 요구를 내걸곤 했다.

물론 이 대표도 단식에 들어가면서 세 가지 요구 사항을 제시했다. 민생 파괴·민주주의 훼손에 대한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 일본 핵 오염수 방류에 반대 입장 천명 및 국제 해양재판소 제소, 전면적 국정 쇄신 및 개각 단행이 그것이다. 문제는 이들 요구의 내용이 포괄적인 데다 이미 윤석열 정부의 입장이 확고한 것들이라 수용 가능성이 사실상 없었다는 점이다. 정치를 하루 이틀 한 것도 아닌데, 이 대표라고 그것을 몰랐을까. 그런데 요구 사항이 단식 종반부에 이르러 달라지는 모습을 보였다.

민주당은 단식 17일 차인 9월16일 비상 의원총회를 열고 5개 조항의 결의문을 채택했다. 여기에는 ‘내각 총사퇴, 한덕수 국무총리 해임건의안 즉시 제출’이라는 내용이 추가된 것이 눈길을 끈다. 단식을 시작할 때의 요구 사항에 비해 강도가 한 단계 높아진 내용이다. 결국 이 대표의 단식을 거치면서 민주당의 요구와 투쟁 수위가 한 단계 높아졌다는 얘기가 된다. 여기에는 대통령실과 국민의힘이 내내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한 데 대한 반감이 크게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애당초 민주당의 요구가 막연했다는 한계점을 드러냈다.

무엇을 요구하는 단식인지에 대한 공감대가 부족한 태생적 한계는 이 대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방탄 단식’이라는 시선을 낳게 되었다. 이 대표가 단식에 들어간 시점은 검찰의 소환조사 한복판이었다. 이 대표는 단식을 하는 도중에 검찰에 출두해 조사를 받는 모습을 여러 차례 보였다. 자신의 의도가 무엇이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박해받는 야당 대표’임을 부각시킬 수 있었던 장면들이었다. 이 대표의 단식은 그렇게 긴박한 일정 가운데서 진행되었다.

그런 비상한 단식이었는데도, 단식 이전과 이후가 무엇이 달라졌는가를 살펴보면 막상 요구 사항 가운데 수용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이는 의외의 결과가 아니라 정치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애당초 예상했던 결과다. 달라진 것은 오직 체포동의안 표결에 대한 이 대표 자신과 민주당의 입장이다. 이 대표 스스로가 불체포특권 포기를 선언했기에 가결 이외의 다른 선택지가 없었던 것이 단식 이전까지 민주당의 입장이었다.

그런데 단식을 거치면서 부결시켜야 한다는 입장이 당의 주류를 차지하는 쪽으로 기류가 바뀌었다. 비명계 의원들은 불체포특권 포기 약속을 지켜야 한다며 가결 주장을 했지만, 이 대표의 단식은 친명계가 당당하게 부결의 목소리를 높이는 데 더없는 명분이 되었다. 9월21일 표결 결과 정족수보다 단 한 명이 많아 가까스로 가결되었지만, 그래도 역시 민주당 의원 상당수가 부(否)에 표를 던진 건 분명하다.

 

여당의 속 좁은 정치도 한심…승자는 없어

이 대표는 자신에 대한 체포동의안 표결이 하루 앞으로 다가오자 9월20일, 세 달 전에 했던 불체포특권 포기 선언을 번복한다. “명백히 불법부당한 이번 체포동의안의 가결은 정치검찰의 공작수사에 날개를 달아줄 것”이라며 민주당 의원들에게 사실상 부결을 요청하고 나선 것이다. 이에 따라 민주당은 “최고위원회는 당론으로 정하지 않되 체포동의안을 부결시키는 게 적절하다고 보고, 이를 고려해 결정해 달라고 요청했다”는 입장을 내놓게 된다. 부결 당론은 아니고 자율투표라는 설명이었지만, 사실상 부결 방침이 민주당의 입장으로 바뀐 것이다.

불체포특권을 포기하겠다고 했던 민주당에서 부결론이 당의 대세를 차지하게 된 것은 역시 이 대표의 단식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 대표의 단식이 낳은 것은 윤석열 정부의 입장 변화가 아니라 민주당의 입장 변화가 된 것이다. 그러니 이 대표의 단식은 윤석열 정부를 향한 투쟁이 아니라 내부를 향한 투쟁이 된 셈이다. 이 대표의 갑작스러운 단식이 태생적 한계를 벗어날 수 없었던 이유가 그것이다. ‘국민 항쟁’을 내걸고 시작된 단식은 ‘방탄 목적’으로 끝나고 말았다. 결과적으로 방탄에는 실패했지만, 사람들의 의심이 현실이 돼버린 것이다.

야당 대표가 건강을 해쳐가면서 오랜 단식을 하는데도 단식장 한 번 찾아가지 않은 여당의 속 좁은 정치도 실망스럽다. 국민의힘과 대통령실은 이 대표의 단식을 아예 인정하지 않고 무시하는 태도를 끝까지 고수했다. 나중에 가서야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가 말로만 단식 중단을 요청했을 뿐, 찾아가는 모습은 끝내 보이지 않았다. 야당 대표의 단식 명분이 취약하더라도 어떻게든 정국을 풀어가려는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여당의 책임인데, 지금의 집권 세력에게는 그런 정치적 품을 찾아보기 어렵다.

이재명 대표의 단식은 앞으로 나아가기는 고사하고 과거로 회귀해 버린 우리 정치의 현실을 민낯으로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결국 자기 자신을 지키기 위해 극한적인 방식에 매달린 야당의 정치, 그런 상대를 인정조차 하지 않으려는 여당의 정치. 이런 정치에 승자가 과연 어디 있겠는가.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유창선 시사평론가
유창선 시사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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