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외교 마찰’ 줄이겠다던 재외동포센터, 정작 동포지원 사업은 ‘0건’
  • 변문우 기자 (bmw@sisajournal.com)
  • 승인 2023.10.27 0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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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터 통해 ‘외교 리스크’ 줄인다더니…정작 재외동포청이 업무 대부분 수행
재외동포 지원 ‘컨트롤타워’라면서 ‘외교적 갈등요소’는 사업 심의도 안 해
김경협 “주먹구구식 운영에 밥그릇 싸움으로 동포사업 오히려 후퇴시켜”

윤석열 정부에서 신설한 재외동포청 산하 법인 ‘재외동포협력센터’가 재외동포 지원 사업을 단 한 건도 수행하지 못한 것으로 확인됐다. 당초 정부는 재중동포 등 외교적으로 민감한 재외동포 지원 사업을 대신 수행하기 위해 센터를 만들었다. 하지만 센터가 수행해야 할 사업까지 동포청이 직접 수행하면서, 센터는 유명무실해졌다. 이런 가운데 동포청은 사업 과정에서 외교 리스크를 떠안고도 지원 사업의 관련 심의는 물론, 외교 마찰 대응 ‘매뉴얼’도 갖추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윤석열 대통령이 6월5일 부영송도타워에서 열린 재외동포청 출범식에서 이기철 초대 재외동포청장에게 현판을 전달하고 있다. ⓒ인천시 제공
윤석열 대통령이 6월5일 부영송도타워에서 열린 재외동포청 출범식에서 이기철 초대 재외동포청장에게 현판을 전달하고 있다. ⓒ인천시 제공

외교 마찰 피하려 ‘센터’ 만들었는데, 사업은 동포청이?

동포청은 영사·출입국·병역·교육·교류 등 재외동포 지원 ‘컨트롤타워’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지난 6월5일 외교부의 외청으로 출범했다. 앞서 동포청 설치는 역대 정부들에서도 약 20년간 추진과 무산을 거듭해왔다. ‘하나의 중국’ 기조로 소수민족 문제에 민감한 중국 등 일부 국가와의 마찰을 고려해, 정부 대신 외교부 산하 공공기관인 ‘재외동포재단’ 체제에서 지원하는 것이 낫다는 판단에서다.

이후 윤석열 정부는 “730만 재외동포의 숙원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며 동포청 설치를 정부 조직 개편 우선순위로 추진했다. 이 과정에서 정부는 앞서 거론된 ‘외교 리스크’를 줄일 수 있다고 자신했다. 그 방책이 바로 동포청 산하에 ‘재외동포협력센터’라는 별도 법인을 신설하는 것이었다. 국회 외교통일위원회도 4월12일 재외동포기본법을 심사하며 ‘외교적 갈등 요소를 방지하기 위해 재외동포 협력센터가 필요하다’고 합의했다.

하지만 센터는 설립 취지와 달리 현재까지 재외동포 지원 사업은 한 건도 수행하지 못한 것으로 확인됐다.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소속 김경협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동포청과 센터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935건(86억9100만원 규모)에 달하는 재외동포 지원 사업은 모두 동포청에서 직접 수행한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센터는 세계한인정치인포럼과 한국어교사 초청연수 등 예산안에 명시된 기타 사업만 수행했을 뿐이다.

특히 중국 소수민족 정책 등으로 외교 리스크가 큰 재중동포 지원 사업도 모두 동포청이 수행했다. 재중동포 권익신장·교류증진·문화예술단체 지원 사업은 15건(▲현지 문화 교류 ▲어린이 우리말 경연대회 ▲한국 역사교육 및 전통 체험 등)에 달했다. 고려인을 대상으로 한 권익신장 지원 사업도 5건(▲역사 포럼 ▲평화여정 창작극 ▲동포 구호 및 생활안정 지원 ▲현지 문화 교류 등)이었다.

정부가 지난 19일 안드레이 보르소비치 쿨릭 주한 러시아대사를 외교부로 초치해 최근 러시아와 북한 간 무기 거래와 군사 협력 문제 논의에 대한 엄중한 입장을 전달했다. 장호진 외교부 1차관은 이날 오후 쿨릭 대사를 종로구 외교부 청사로 불러 러시아가 북한과의 군사협력 움직임을 즉각 중단하고 안보리 결의를 준수할 것을 강력히 촉구했다고 외교부는 전했다. ⓒ연합뉴스
정부가 지난 19일 안드레이 보르소비치 쿨릭 주한 러시아대사를 외교부로 초치해 최근 러시아와 북한 간 무기 거래와 군사 협력 문제 논의에 대한 엄중한 입장을 전달했다. ⓒ연합뉴스

동포청 “외교 마찰 확인 가능한 심의 항목 없어”

이런 상황에서 동포청은 재외동포 지원 컨트롤타워로서 ‘외교적 갈등요소’에 대한 별도의 사업 심사조차 하지 않는 것으로 확인됐다. 동포청의 단체 지원금 교부지침 등 내규에서도 지원제외 사유로 필수 서류 미비 등 지원 단체의 직접적 문제나 사업 목적성만 체크할 뿐, 대상국의 정책 등은 고려 항목에 포함돼지 않았다. 동포청 측도 “지원 사업 심의 시 외교적 마찰을 확인할 수 있는 별도의 ‘명시적’ 심의 항목은 없다”는 입장이다.

특히 외교 문제가 발생했을 시 구체적 대응 매뉴얼도 동포청에 없었다. 단순 재단 지원금 교부 심의위원회만 있을 뿐 사후 대응과 관련한 조항은 전무했다. 동포청 측도 “지금까지 지원 사업으로 중국이나 러시아 등에서 외교적 민원이 들어온 사례는 없었다”며 “관련해 매뉴얼도 구비돼있지 않은 상태”라고 전했다. 외교 마찰이 발생해도 속수무책인 셈이다.

결국 윤 정부가 동포청 설립 당시 공언했던 ‘외교 리스크’ 해소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지적이 잇따른다. 한 사립대 외교학 교수도 “중국은 ‘하나의 중국’을 외치면서 티베트나 소수민족 문제에 대해 압박하는 분위기인데, 이 상황에서 한국이 정부 차원에서 중국 자국민들을 도우면 소수민족 정책과 마찰이 생겨 외교 갈등으로 비화될 가능성이 크다”며 “최근까지도 중국 관계가 좋지 못했는데 불난 집에 기름을 부을 가능성도 있다”고 주장했다.

정치권에서도 지원 사업으로 인해 외교적 항의가 들어오면 어떻게 갈등을 수습하고 책임질 수 있냐는 우려도 제기된다. 김경협 의원은 시사저널에 “재외동포들을 더 효과적으로 지원하라고 동포청을 만들어놨더니 주먹구구식 운영, 밥그릇 싸움으로 동포사업을 더 후퇴시켜놓고 있다”며 “아직 출범한지 반년도 되지 않았는데, 지금부터라도 빨리 운영방식을 고치고 혁신해야 동포청이 동포 위한 기관으로 운영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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