뚱뚱해서 병원 찾는 환자 3만 명 시대
  • 노진섭 의학전문기자 (no@sisajournal.com)
  • 승인 2023.10.03 07:35
  • 호수 17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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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나는 모든 질병의 원인 ‘비만’…“범람하는 건강보조식품 광고, 체중 감소 효과 없다”

인터넷 포털사이트에서 ‘체질량지수’를 검색하면 ‘비만도 계산기’가 나온다. 그 계산기에 키·몸무게·나이를 입력하면 자신의 체질량지수(BMI)가 표시된다. BMI는 몸무게(kg)를 키의 제곱(㎡)으로 나눈 값이다. 가령 키 170cm에 체중 87kg인 배아무개씨(44)의 BMI는 약 30kg/㎡으로 2단계 비만(표 참고)에 해당한다. 그는 최근 헬스클럽에서 운동하고 식단을 관리해 몸무게 9kg을 뺐다. 그러나 운동을 게을리하고 야식을 또 먹기 시작하자 몸무게가 다시 불어났다. 건강검진에서 혈압·혈당·콜레스테롤 수치가 높게 나타났고 지방간까지 진단된 후 한 대학병원 비만클리닉에서 진료받기 시작했다. 

이 사례처럼 비만으로 비만클리닉을 찾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통계자료에 따르면 비만으로 병원을 찾는 환자가 2017년 1만4966명에서 2021년 3만170명으로 2배 이상 증가했다. 이들 중 약 5%는 병원에 입원해 치료받았다. 이혜준 중앙대병원 가정의학과 비만클리닉 교수는 “다이어트를 위해 병원에까지 가야 하나 생각할 수 있지만, 비만은 만병의 근원이 되는 대사증후군 질환이다. 여러 치명적인 합병증을 유발할 수 있으므로 병원에서 체계적인 진료를 받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국민건강영양조사에 따르면 2021년 기준 비만율(BMI 25kg/㎡ 이상 인구 비율)은 37.1%(남자 46.3%, 여자 26.9%)다. 국민 10명 중 3명 이상은 비만이며 특히 남자는 절반가량이 비만인 셈이다. 2010년 비만율은 30.9%였다. 대한비만학회 국제학술대회(ICOMES 2023)가 열린 9월7일 김경곤 대한비만학회 부회장(길병원 가정의학과)은 “최근 우리나라의 고도비만 및 소아·청소년 비만 유병률의 빠른 증가 패턴을 볼 때 비만을 대하는 태도를 바꾸지 않으면 아마 10~20년 이내에 미국과 서구 여러 나라의 상황을 곧 따라잡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시사저널 박은숙
ⓒ시사저널 박은숙

사망률 20% 높이고 당뇨병 위험도 13배까지

정부는 2019년 고도비만(35kg/㎡ 이상) 환자가 치료 목적으로 받는 수술에 건강보험을 적용했다. 그만큼 비만은 위험한 질환이다. 수많은 질환의 원인이며 사망률을 20%나 높이는 것이 비만이다. 세계보건기구(WHO)는 1996년 비만을 ‘장기적인 치료가 필요한 질병’ ‘현대 사회가 해결해야 할 주요 질병’이라고 규정했다. 

일반인이 생각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질병은 비만과 관련이 있다. 당뇨병·이상지질혈증·고혈압·지방간·담낭질환·관상동맥질환·뇌졸중·수면무호흡증·통풍·골관절염·월경이상·대장암·유방암 등이다. 비만할수록 이들 질환의 위험이 커진다. 혈압은 최대 4배, 관상동맥질환(협심증·심근경색증)은 최대 2배, 2형 당뇨병은 최대 13배까지 위험도가 증가한다. 

실제로 대사 질환을 동시에 앓는 비만 환자가 많다. 특히 고도비만인 경우는 이상지질혈증이나 지방간이 생기고 40~50%는 당뇨병 환자다. 이상지질혈증은 나쁜 콜레스테롤(LDL)이 늘어나고 좋은 콜레스테롤(HDL)은 줄어드는 증상이다. 체질량지수가 1kg/㎡ 증가할 때마다 당뇨병 위험은 20%씩 높아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심지어 암 발생 위험까지 높아진다는 보고도 있다. 이혜준 교수는 “25년간 추적 연구한 결과, 비만한 남성 암 사망자가 약 14%이며, 여성 암 사망자는 약 20%였다. 국민건강보험공단 자료를 바탕으로 한 연구에 따르면 대장암·간암·담도암·전립선암·신장암·갑상선유두암·소세포폐암·비호치킨림프종·흑색종의 발생 위험이 BMI가 높을수록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비만 수술 장면 ⓒ중앙대병원
비만 수술 장면 ⓒ중앙대병원

고도비만은 수술이 유일한 치료법

이처럼 각종 질환까지 겹치면 한 개인의 의지만으로는 비만을 해결하기가 쉽지 않다. 전문의의 도움을 받을 필요가 있다. 의사는 환자의 식습관, 생활습관, 비만 정도, 동반 질환 등을 파악한 후 식이요법·약물치료·수술치료 등 치료법을 찾는다. 요즘에는 비만 약이 다양하게 나와 선택의 폭이 넓어졌다.  

그러나 비만 약을 먹은 지 3개월쯤부터 효과가 사라지는 사람도 있다. 이런 사람은 살을 뺀다는 건강보조식품의 유혹에 빠지기 쉽다. 그 종류도 새싹 보리부터 시서스까지 다양하다. 그러나 의학적인 효과가 입증된 것은 없고, 일부는 간독성 같은 부작용이 보고된 바 있다. 심경원 이대서울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새싹 보리와 시서스에 대한 임상시험을 해보니 체중 감소 효과가 없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동물에게는 효과가 있었을지 몰라도 변수가 워낙 많은 사람에게는 효과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설명했다. 

여러 치료법으로 체중 감량에 실패한 사람은 수술적 치료를 고려해야 한다. BMI가 35kg/㎡ 이상인 사람(고도비만) 또는 30kg/㎡ 이상(3단계 비만)이면서 고혈압·당뇨병 등 동반 질환을 지닌 사람이 대상이다. 이런 사람에게 비만 수술은 유일한 치료법이다. 비만 수술은 조절형 위밴드삽입술과 위소매절제술 등이 있다. 10년 전에는 조절형 위밴드삽입술이 많았으나 최근에는 위소매절제술이 증가하는 추세다. 조절형 위밴드삽입술은 실리콘으로 된 밴드로 위 상부를 묶어 음식 섭취를 제한하는 방식이다. 위소매절제술은 위를 세로로 길게 제거해 위를 3분의 1로 축소하는 방식이다. 비만 수술로 체중 감량뿐만 아니라 당뇨병 같은 동반 질환을 개선하는 효과도 볼 수 있다. 

그렇지만 고도비만 환자 중 수술받는 환자는 극히 적다. 김종원 중앙대병원 외과 비만대사수술클리닉 교수는 “식이요법·운동·약물치료 등으로 체중 감량이 어려운 경우 수술적 치료를 시행해야 한다. 특히 고도비만은 다양한 합병증으로 사망할 위험이 높고, 치료가 필요한 질환이라는 인식이 필요하다. 고도비만 환자는 식이요법과 약물치료에 조금이라도 반응하는 비율이 3% 미만에 불과하다. 따라서 수술적 치료가 가장 확실하고 유일한 치료법이다. 연구에 의하면 고도비만 환자가 수술받으면 사망률이 40% 하락한다. 특히 당뇨병에 의한 사망률은 92%, 심혈관 질환 사망률은 59%, 암 사망률은 60%가 고도비만 수술로 낮아진다”고 말했다.

이처럼 사망 위험을 낮추기 위해 수술까지 하면서 비만을 치료한다. 그렇지만 비만은 예방할 수 있는 질병이다. 그 원인을 제대로 인식하는 것이 예방의 첫걸음이다. 대한비만학회에 따르면 비만의 직접적인 원인은 크게 식습관과 생활습관이다. 식습관 중에서도 짧은 식사 시간, 고열량 식품 섭취, 당분 섭취 등이 비만과 관련이 있다. 음식을 천천히 먹으면 포만감을 느껴 식욕이 떨어지므로 음식을 많이 먹지 못한다. 그러나 음식을 빨리 먹으면 포만감을 느끼기 전에 과식할 가능성이 크다. 인스턴트식품과 패스트푸드는 고열량·고지방인 경우가 많다. 이런 음식과 함께 음료수를 마시는데 대부분 당분 함유량이 많다. 당분을 과하게 섭취하면 에너지로 쓰고 남는 것이 지방 형태로 저장된다. 

생활습관 중에서는 좌식·수면장애가 비만을 부른다. 일반적으로 의자에 앉아 일하는 시간이 많고 건물에서 이동할 때도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므로 신체활동량은 매우 적다. 집에서도 앉아서 TV를 시청하거나 스마트폰을 이용하는 시간이 길다. 하루 2시간 이상 TV를 보면 비만 위험도는 23%, 당뇨병 위험도는 14% 상승하는 것으로 보고됐다. 또 6시간 미만의 수면은 식욕을 조절하는 호르몬의 불균형을 불러 에너지 섭취량이 늘어난다. 

 

“다이어트 정체기, 운동하면 빨리 벗어나”

여러 연구를 종합하면 5~10%의 체중 감량만으로도 비만 관련 질환의 위험을 크게 낮출 수 있다. 건강을 위해서든 미용상 이유든 체중 조절을 시작하면 체중은 대체로 계단 모양으로 줄어든다. ‘체중 감량기-정체기’를 반복하는 것인데, 정체기에 요요현상이 일어난다. 

심경원 교수는 “다이어트 초반 3개월에 빠질 수 있는 체중은 거의 다 빠진다. 그 후 3~6개월간의 정체기가 온다. 음식을 먹어도, 먹지 않아도 살이 잘 빠지지 않는다. 그러면 다이어트를 포기하거나 아예 굶는 부류로 나뉜다. 모두 요요현상으로 이어지므로 좋지 않은 행위다. 정체기는 그동안 뺀 체중을 지키는 기간으로 삼아야 한다. 그동안 줄인 식사량을 그대로 유지하면 된다. 이때 운동을 병행하면 정체기를 빨리 벗어나 또 감량기로 접어들 수 있다”고 강조했다. 
 

■청소년 비만율 17년간 2배 상승

우리 아이들의 비만율이 17년 동안 2배가량 상승했다. 경희대의료원 연구팀이 중·고생 111만 명의 건강 상태 자료를 분석한 결과, 2021년 청소년의 비만율은 23.4%로 2005~07년(13.1%)의 거의 2배로 높아졌다. 그 이유로는 앉아있는 시간이 길고 야식을 즐기는 식습관 때문으로 추정된다. 광주대 간호학과 연구에 따르면 공부할 때를 제외하고도 앉아있거나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시간이 길었다. 비만한 청소년의 하루 좌식 시간은 주중 3.7시간, 주말 5.8시간이었다. 스마트폰 사용 시간은 주중 5시간, 주말 7시간이었다. 

이는 미국소아과학회가 권장하는 좌식 미디어 사용 시간 2시간 이내를 훨씬 초과하는 수치다. 또 청소년 10명 중 6명은 매주 한 번 이상 야식을 먹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텍사스대학 건강과학센터 맥거번 의대 생화학·분자생물학과 김은주 연구팀이 2021년 충남에 있는 고등학교 재학생 60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야식 실태조사 결과다. 국내 청소년의 기호도가 높은 야식 메뉴는 빙과류·치킨·라면·피자 등 탄수화물·지방이 많은 음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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