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트넘의 대반전 우승 확률 1.5%→50%, 그 중심에 ‘캡틴 손흥민’
  • 서호정 축구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3.11.04 14:05
  • 호수 17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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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인 떠났지만 손흥민 중심의 공격 전술 ‘신의 한 수’…변방 감독의 ‘아시아인 주장 선임’ 도박도 주효

손흥민은 의심의 여지 없이 월드클래스 반열에 올랐지만, 사실 우승 트로피와는 인연이 먼 선수다. 그가 거친 독일의 함부르크와 레버쿠젠, 잉글랜드의 토트넘 모두 과거 우승 경력이 있었지만 현재는 정상에 도전하기에 뭔가 전력이 아쉬운 팀으로 분류된다. 2010년부터 시작한 손흥민의 13년 프로 경력 동안 소속팀에서 든 트로피가 하나도 없는 것은 화려한 개인 기록과는 대비되는 아쉬움이다.

2021년 여름 토트넘과 4년 재계약을 한 것을 두고 악수(惡手)라는 평이 많았던 것도 그런 배경 탓이다. 그 시점에 손흥민은 두 자릿수 득점과 25개 이상의 공격포인트를 책임지는 특급 공격수였고, 그를 원한 팀도 많았다. 자신이 좀 더 협상을 끌었다면 우승에 더 근접한 팀으로 갈 수 있었지만, 손흥민은 “토트넘은 내게 가족 같은 존재”라는 소감과 함께 최전성기의 장기 계약을 팀 잔류로 택했다.

토트넘은 각종 대회를 합쳐도 2008년 리그컵이 마지막으로 들어올린 트로피다. 1부 리그 우승은 1961년을 끝으로 없어 그 시절을 목격한 팬은 노년이 됐다. 지난 시즌에도 토트넘은 리그 8위에 그쳤다. 설상가상으로 2023~24 시즌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토트넘의 전력은 더 약화됐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주포’ 해리 케인이 독일의 바이에른 뮌헨으로 떠난 게 가장 컸다.

감독 선임에도 의문부호가 붙었다. 스코틀랜드에서 셀틱을 이끌었던 호주 국적의 엔지 포스테코글루 감독이 지휘봉을 잡았다. 하지만 셀틱은 스코틀랜드에서야 압도적인 1강이지만, 유럽 전체 경쟁력에서는 한참 떨어지기 때문에 프리미어리그라는 큰 무대에서 지도력을 발휘하긴 어려울 것이라는 평가가 많았다. 조세 무리뉴, 안토니오 콘테 등 전임 감독들의 네임 밸류에도 한참 미치지 못했다.

토트넘 홋스퍼의 손흥민이 10월 23일 풀럼 FC와의 경기에서 골을 넣은 후 관중들의 환호에 답하고 있다. ⓒEPA 연합

EPL 10R까지 8승2무, 맨시티·아스널 제치고 리그 단독 선두

이렇듯 변방에서 온 감독은 과감한 팀 재편에 나섰다. 케인 의존증에서 탈출해야 하는 모멘텀을 이용해 대대적인 변화를 준 것이다. 포스테코글루 감독은 기존 선수들을 정리하고, 에너지 넘치고 공격적인 전술로 주도적인 경기 운영을 위한 선수 구성에 나섰다. 젊고 활력 넘치는 20대 중반의 잠재력 높은 선수들을 이번 여름에 대거 영입한 것이다. 공격형 미드필더 제임스 매디슨을 필두로 브레넌 존슨, 페드로 포로, 미키 판더펜 등 껍질만 깨면 정상급으로 치고 나올 선수들이었다.

우승을 노리는 팀이 영입해야 하는 수준급 선수 이적료가 1000억원을 넘는 최근 이적시장의 인플레 현상을 감안하면 토트넘은 준척급 영입에 집중했다. 10명의 선수를 영입하며 3200억원가량을 썼다. 단순 지출금액만 보면 첼시·맨체스터시티(맨시티)에 이은 프리미어리그 전체 3위다. 대신 케인 등을 보내며 발생한 이적료 수입이 1800억원에 달해 실제 쓴 비용은 7위였다. 토트넘의 최대 라이벌인 아스널은 선수 3명 영입에 3000억원 넘게 썼다.

중요한 것은 그 잠재력 높은 선수들에게 자신감과 영감을 줄 존재였다. 포스테코글루 감독이 아무리 좋은 전술을 준비해도 그것을 그라운드에서 표현하는 것은 선수였고, 그 선수들의 리더가 중요했다. 그 역할을 책임진 이가 손흥민이었다. 포스테코글루 감독은 요리스·케인 등 리더 그룹에 있던 선수들이 팀을 떠나거나 주축에서 제외되자 새로운 주장으로 손흥민을 택했다. 유럽에서 명문으로 인정받는 클럽이 아시아인 주장을 선임한 최초 사례였기에 모두가 놀랐다. 변방에서 온 감독이기에 가능했던, 고정관념을 깬 파격이었다.

다행히 손흥민은 준비된 리더였다. 이미 대한민국 국가대표팀에서 5년째 주장을 맡고 있는 손흥민은 희생과 헌신을 모토로 삼고, 특유의 긍정적인 에너지와 솔선수범으로 젊은 동료들을 이끌었다. 부주장인 매디슨을 비롯해 판더펜, 존슨, 포로 등은 그런 손흥민에게 빠르게 감화되며 언론 인터뷰에서 그의 리더십을 연일 칭송했다. 앨런 시어러, 티에리 앙리 등 프리미어리그를 수놓은 레전드들도 손흥민의 영향력을 극찬했다.

경기력 면에서도 완전하게 부활했다. 올 시즌 왼쪽 측면이 아닌 중앙으로 이동해 스트라이커 역할을 소화하는 손흥민은 문전 찬스에 집중하고 있다. 포스테코글루 감독의 전술적 뒷받침이 있지만, 손흥민의 결정력이 살아나며 토트넘은 케인의 공백을 극복했다. 9월에 해트트릭을 포함해 4경기에서 6골을 터트리며 개인 통산 네 번째 ‘이달의 선수’에 뽑혔다. 10월까지 8골을 기록한 손흥민은 맨시티의 엘링 홀란(11골)에 이어 득점 2위를 기록 중이다.

토트넘 홋스퍼의 제임스 매디슨이 골을 넣은 후 손흥민(오른쪽)과 함께 환호하고 있다. ⓒAP 연합

손흥민의 1월 아시안컵 차출이 최대 변수

토트넘은 한국 시간으로 10월28일 새벽 열린 크리스털 팰리스와의 프리미어리그 10라운드에서 2대1로 승리했다. 8승 2무 무패(26점)로 아스널·맨시티를 승점 2점 차로 따돌리고 단독 선두를 달리는 중이다. 시즌 개막 전만 해도 토트넘은 우승 확률 1.5%의 리그 7위로 예상됐다. 지난 시즌 성적과 케인 이탈을 감안한 전망이었다. 개막 후 3개월여가 지난 현재 상황은 확 달라졌다. 10라운드를 마친 시점에 토트넘의 우승 확률은 50%로 상승했다.

BBC에 따르면 10라운드를 마친 상황에서 승점 26점 이상을 딴 역대 10번의 사례 중 5번이 우승에 도달했다. 2위 내에 들지 못한 사례는 1994~95 시즌의 뉴캐슬(6위), 2007~08 시즌의 아스널(3위) 둘뿐인데 뉴캐슬은 현재의 38경기가 아닌 42경기 체제 때라 예외로 봐야 한다. 그렇다면 2위 내에 들 확률도 무려 92%가 넘는다. 하지만 슈퍼컴퓨터는 여전히 맨시티의 우승 가능성을 52.8%로 봤고, 아스널은 22.7%로 예측했다. 토트넘은 1.9%로 최종 5위로 시즌을 마무리할 것이라는 게 슈퍼컴퓨터의 예상이다.

변수는 챔피언스리그를 비롯한 클럽대항전이다. 토트넘은 지난 시즌 부진으로 인해 올 시즌 유럽클럽대항전에 참가하지 못했다. 반면 1위 경쟁자인 맨시티·아스널은 챔피언스리그, 리버풀은 유로파리그 일정을 주중에 소화하고 있다. 역설적으로 이것이 경쟁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는 힘이 됐다. 프리미어리그의 또 다른 레전드인 게리 네빌은 “만일 클럽대항전에 참가 중인 팀이 하나둘 떨어져 리그에 전념하면 토트넘을 견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내년 1월 열리는 아시안컵도 또 다른 변수다. 손흥민이 최대 4주간 팀을 떠나야 할 수도 있다. 팀 득점의 3분의 1 이상을 책임지는 주장의 공백은 대체가 어렵다. 토트넘도 이 부분을 걱정하며 오는 겨울 이적시장에서 걸출한 공격수 영입을 최우선 목표로 삼고 있다.

토트넘의 깜짝 우승을 위한 롤모델은 2015~16 시즌의 레스터시티다. 전 시즌 14위였던 레스터시티는 프리미어리그에만 오롯이 집중하며 놀라운 동화를 썼다. 모두가 결국엔 내려올 것으로 예상했지만 페이스를 유지하며 선두를 지켜낼 수 있었던 것은 부상자를 최소화한 것, 그리고 주득점원 제이미 바디가 24골로 득점 2위에 오르며 꾸준히 골을 터트렸기에 가능했다. 대반전에 성공한 토트넘이 63년 만의 우승에 성공하며 전화위복의 시즌을 만들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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