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인 학살에 대한 마음의 빚’과 국제 여론 사이에서 고민하는 독일
  • 클레어함 유럽 통신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3.11.09 18:15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독일 정부,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이후 친팔레스타인 집회 금지 초강수
“테러 나쁘지만, 집회 금지는 또 다른 대립 부추겨”

지금 독일 사회는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의 여파가 확연한 모양새다. 10월7일 팔레스타인의 이슬람 급진주의 무장조직 하마스의 기습공격으로 시작된 전쟁 직후 반이슬람 및 반유대 폭력 사건이 증가하고 있다. 특히 반유대 사건을 전담하는 RIAS센터의 집계에 의하면 10월7~15일 사이에 이 전쟁과의 관계가 확인된 반유대 사건은 작년에 비해 240% 증가한 202건이다. 학교들도 수차례 폭탄테러 위협을 받고 있고, 시나고그(유대교 회당) 앞에는 경찰차가 상시 대기하며 긴장된 분위기다. 이런 현상은 무력분쟁이 있었던 2014년, 2021년에도 발생한 바 있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관계에 대한 독일 정부의 입장은 명확하다. 독일의 과거사는 현재의 독일 사회를 지배한다. 과거 나치정권 아래에서 600만 명의 유대인을 희생시켰던 흑역사를 가진 독일은 지금도 이스라엘에 마음의 빚을 안고 있다. 따라서 이스라엘의 안보와 존립은 독일에 특별한 책임인 것이다. 1964년 독일의 이스라엘에 대한 무기 제공 뉴스가 전 세계 언론의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이듬해 이스라엘의 첫 총리 벤구리온이 독일 총리 콘라트 아데나워와 역사적 화해를 하며 1965년 국교를 수립했다. 물론 당시에는 여론이 나빠 독일 대사의 도착 때 많은 항의 시위가 벌어지기도 했지만 이후 양국 관계는 국빈 방문 및 공동 기념행사 등을 통해 천천히 친밀해져 갔다.  

10월22일 독일 베를린에서 유대인들이 "테러와 반유대주의에 반대한다"고 외치며 집회에 참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10월22일 독일 베를린에서 유대인들이 "테러와 반유대주의에 반대한다"고 외치며 집회에 참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무조건 친이스라엘’ 외교정책에 반발도

무엇보다도 양국 외교의 변곡점은 단연코 앙겔라 메르켈 전 총리다. 그는 외국 정부 수반으로는 처음으로 이스라엘 국회에서 획기적인 연설을 하게 된다. 2008년 메르켈 전 총리는 독일의 홀로코스트 역사를 재차 언급하며 “독일의 역대 모든 연방정부와 총리는 이스라엘 안보에 대한 독일의 특별한 역사적 책임에 헌신했다. 독일의 이러한 역사적 책임은 독일의 존립 근거의 일부다. 이스라엘의 안보는 결코 타협할 수 없다”고 못 박았다. 이스라엘의 안보와 존립을 독일의 존재 이유로까지 격상시킨 외교원칙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현 숄츠 총리도 전쟁 발발 이후 이런 외교원칙을 수차례 천명한 바 있다. 

하지만 독일 내 다수의 외교 전문가는 이런 외교원칙이 ‘이해관계’를 도덕적 가치나 국제법 준수보다 더 우선시한다는 지적을 하고 있다. 이스라엘의 역사학자 모셰 치메르만도 “이스라엘의 대팔레스타인 정책에 대한 독일 정부의 비판 강도가 너무 약한 것에 대해 이스라엘 좌파들은 불만”이라며 “점령자와 피점령자 관계에서 발생하는 인권에 관해서는 명확한 입장을 보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난 4월 독일 내무부는 1972년 뮌헨올림픽 당시 팔레스타인 테러단체에 의해 학살된 11명의 이스라엘 대표선수 납치살해 사건에 대해 재조사를 하겠다고 발표했다. 유족과의 보상금 합의는 50주기였던 작년에야 마무리되었다. 

독일 정부는 동시에 수십 년간 평화적 방식을 통한 ‘두 국가 해법’을 견지해 왔고,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와도 우호적인 관계를 이어왔다. OECD의 2015년 자료에 의하면, 독일의 대팔레스타인 지원액은 1억800만 달러로 유럽연합과 유엔을 제외한 단일 국가로는 미국(2억5600만 달러) 다음으로 많다. 2021년과 2022년에는 개발과 인도주의 지원 명목으로 3억4000만 유로가 배정되었다. 하지만 이번 하마스 테러 이후 팔레스타인에 대한 개발금 지원 내역을 다시 고려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베를린은 유럽 내 최대 팔레스타인 커뮤니티 중 하나로 30만 명의 후손이 살고 있다. 이 외에도 팔레스타인 이슈에 관여하는 단체들이 독일에 약 200개 존재한다. 당연히 이들과 연대하는 독일 시민들은 이런 독일 정부의 외교원칙에 대해 불만을 표출해 왔다. 독일 정부는 하마스의 공격 이후 한동안 친팔레스타인 집회를 금지하는 초강수를 두기도 했다. 베를린에서 팔레스타인 NGO가 하마스의 잔인한 민간인 테러 사건을 축하하며 다과를 나누는 모습이 온라인에 올라오자 이 단체의 활동을 금지시켰다. 

당국은 보안에 대한 우려, 폭력을 선동하는 발언들의 선례를 집회 금지의 근거로 들었다. 아울러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에서 상을 받을 예정이었던 팔레스타인계 소설가 아다이나 쉬블리의 시상식이 주최 측의 일방적 통보로 연기되고, 독일연방 정치교육부가 주최하는 ‘우리는 여전히 대화가 필요하다: 관계적 추모 문화를 향하여’라는 심포지엄도 취소되어 참가 예정자들의 반발을 샀다. 

10월 28일 토요일 오후 팔레스타인 인권단체가 독일의 남부 도시 뮌헨에서 주최한 집회에 수천명이 참가해 즉각적인 정전협정을 요구했다. ⓒ클레어함
10월 28일 토요일 오후 팔레스타인 인권단체가 독일의 남부 도시 뮌헨에서 주최한 집회에 수천명이 참가해 즉각적인 정전협정을 요구했다. ⓒ클레어함

“중동 폭력 반대하는 유대인 목소리도 소거”    

이런 상황에 대해 팔레스타인 권익단체 ‘팔레스타인은 말한다’의 한 활동가는 필자와의 인터뷰에서 “독일 사회가 우리 목소리에 너무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주요 정치인들도 커리어 자살 행보이기 때문에 우리 집회에는 오지 않는다”고 전했다. 또한 “우리 젊은 팔레스타인 세대는 민간인에게 폭력을 가한 하마스의 방식에 절대 공감하지 않으며, 부패하고 억압적인 팔레스타인 정파들이 지배하는 팔레스타인의 현 정치적 상황도 절망스럽기는 마찬가지”라고 한탄했다. 

심지어 유대인 단체들도 독일 정부의 조치를 비난하고 나섰다. 약 100명의 유대계 학자·언론인·문화예술인은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을 위한 자유’라는 제목의 공개서한을 발표하며 “독일 정부가 팔레스타인에 우호적인 단체뿐만 아니라 중동 지역 폭력에 반대하는 유대인 베를리너 등 심지어 이스라엘인과 유대인들의 목소리도 소거시켰다”고 반발했다.  

‘안네 프랑크 교육센터’의 메론 멘델 대표도 비슷한 목소리를 냈다. 그는 시사저널과의 서면 인터뷰에서 “테러를 사소화하는 것에 선을 긋는 것은 필요한 일이지만, (집회의) 전면적인 금지 조치는 궁극적으로 문제를 피하는 것이 된다. 시위나 문화행사를 취소하는 것은 갈등을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고 장기적으로 더 많은 분노와 좌절, 대립을 부추길 뿐이다”며 “민주주의 관점에서 집회의 자유는 매우 소중한 자산이기 때문에 금지하기보다는 폭력을 미화하거나 비인간적인 발언을 하는 개별 행동에 대해 책임을 묻는 것이 더 낫다”고 주장했다. 또한 “우리는 더 많은 대화가 필요하다. 나는 교육과 대화의 잠재력을 굳게 믿는다”고 말했다. 

기후 운동단체인 ‘미래를 위한 금요일(FFF)’ 독일지부의 대표 활동가 루이자 노이바우어는 친팔레스타인 입장을 표명해 논란을 빚었던 FFF 인터내셔널팀과는 다소 거리를 두었다. 그는 양쪽을 모두 포용하는 입장문을 전했다. 그는 유대인과의 무제한 연대, 반무슬림 인종주의 등에 우려를 표하고, 가자지구 시민들의 고통을 직시하는 것에 대해 “이 모든 것은 모순이 아니다. 우리의 가슴은 동시에 이 모든 것을 다 보듬을 수 있을 만큼 크다”고 표현했다.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