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의료 강화” 하자는 의협, 집행부 70% 이상이 수도권 의사들
  • 공성윤 기자 (niceball@sisajournal.com)
  • 승인 2023.11.06 11:05
  • 호수 17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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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협 상임이사 46명 근무처 전수조사해 보니…서울 의사만 과반, 필수의료진은 3명이 전부
“돈 많은 수도권 개원의 대변” 비판에 “지방에서 회의하러 매번 올라오기 힘든 실정” 해명

‘지역·필수의료 살리기에 도움이 안 된다’며 의과대학 정원 확대를 반대하는 대한의사협회(의협)가 정작 집행부의 70% 이상을 수도권의 필수의료 외 의사로 채운 것으로 확인됐다. 의사 증원이 ‘쏠림 현상’으로 귀결될 것이라고 우려하면서 당장 내부의 ‘쏠림 인사’는 해소하지 못한 셈이다. “지역·필수의료 실상을 깊이 우려한다”는 의협의 입장을 무색하게 하는 대목이다.

의협 내 집행부로 통하는 상임이사회는 11월1일 기준 이필수 회장을 비롯해 부회장 11명, 이사 34명 등 총 46명으로 구성돼 있다. 이 중 의료면허를 가진 의료인은 40명이다. 나머지 6명은 변호사, 회계사, 인문대 교수 등 의료면허를 갖고 있지 않은 외부 인사다. 이들에 대한 임명권은 회장이 갖고 있다.

서울 용산구 이촌로46길 37에 위치한 대한의사협회 현판 ⓒ시사저널 최준필
서울 용산구 이촌로46길 37에 위치한 대한의사협회 현판 ⓒ시사저널 최준필

이사 40명 중 수도권 30명…강원·충청 ‘0’

시사저널이 상임이사회 전원의 근무처와 직군을 전수조사한 결과, 의료인 40명 중 서울 내 의원급 이상 의료기관(의원·병원·종합병원·요양병원)에서 일했거나 근무 중인 사람은 과반인 21명(52.5%)으로 집계됐다. 인천과 경기 등 수도권으로 넓혀보면 30명(75.0%)이다. 상임이사회가 의협의 주요 사업을 의결하려면 재적 이사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 이사 과반수의 찬성이 필요하다. 수도권 의료인과 회장이 임명한 외부 인사들이 합의하면 전국 의사에게 영향을 미치는 의협의 전략 안건을 무리 없이 통과시킬 수 있는 셈이다. 그 밖에 경남, 경북, 광주, 대구, 대전, 부산, 전남, 전북 등 지방에서 활동하는 의료인은 10명으로 나타났다. 강원과 충남, 충북, 제주, 세종 등은 한 명도 없었다.

또 전체 의료인 상임이사 중 공무원 신분인 의대 교수와 전공의, 공중보건의 등을 제외하면 26명이다. 즉 이들은 민간 의료기관에 몸담아 근무지에 제한이 없는 의사들이다. 이 중에서도 서울 근무자가 11명으로 가장 많았고 경기 지역이 7명으로 뒤를 이었다. 직역별로 살펴보면 차이는 더 크다. 필수의료로 분류되는 응급의학과, 산부인과, 소아과 등에 종사하는 상임이사는 전공의와 공중보건의를 빼면 3명에 불과했다.

상임이사회가 나아갈 방향을 조언하는 자문위원도 수도권 위주로 구성됐다. 회장이 위촉한 28명의 자문위원 중 의대 교수를 포함한 의료인은 서울 근무자 10명, 경기·인천 근무자 8명, 광주·충남·충북 등 지방 근무자 4명이었다. 역시 수도권 인력이 과반이다. 나머지 자문위원 6명은 의료면허를 갖고 있지만 의료기관에 근무하지 않는 사람 또는 비(非)의사로 구성돼 있었다.

상임이사회는 의협 운영의 키를 쥔 합의기구다. 의협 정관 등에 따르면 상임이사회는 전체 이사회와 정기총회에 올릴 안건을 심의하는 첫 번째 관문이다. 전체 이사회는 지역별·직급별(개원의, 전공의, 공중보건의 등)로 할당 인원이 있지만 상임이사회에 대해서는 해당 기준이 없다. 대신 정관은 총무, 기획, 학술, 재무, 법제 등 상임이사의 업무 종류에 대해서만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의대 정원을 둘러싼 현안의 기저에 지역·필수의료의 중요성이 놓여 있는 만큼 상임이사회의 편중성은 의협의 정당성을 해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의협은 지역·필수의료 개선이란 명분을 내세워 의대 정원 확대에 반대하고 있다. “의사가 늘어나면 지역·필수의료에 도움이 안 되고 성형외과, 피부과 의사만 증가할 것”이란 이유에서다.

의협 스스로도 “이사회 제재 방법 없다” 자평

일단 10월26일 열린 정부-의협 간 의료현안협의체에서 양측은 지역·필수의료 공백의 신속한 해소가 중요하다는 데 공감대를 이뤘다. 의협은 이날 발표한 입장문을 통해 “붕괴해 가는 지역·필수의료의 실상을 현장 종사자이자 전문가로서 가장 먼저 감지하고 깊이 우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의대 정원에 대한 정부의 수요조사 계획을 두고 “정원 확대를 마냥 바라는 결과가 도출된다면 객관성은 상실될 것”이라며 부정적으로 반응했다.

지방 국립대병원은 의대 정원 확대를 찬성하는 입장이다. 경북대병원 양동헌 원장은 10월17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지역·필수의료를 위해 많은 인력이 필요하다는 데 공감한다”고 말했다. 강원대병원, 전남대병원, 충북대병원, 충남대병원 등도 정원 확대를 지지한다는 뜻을 밝혔다. 광역자치단체 중 유일하게 의대가 없는 전남의 의대 유치를 주장해온 박기영 순천대 생물학과 교수는 “절박한 지방의 의료 현실을 고려하면 유럽처럼 지역별 개원의 총량제를 도입해서라도 의사 수를 늘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 교수는 “지역·필수의료가 붕괴된 상황에서 의협이 공익단체로 거듭나려면 집행부의 직역과 지역 안배를 중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의협이 대표성을 갖지 못하니 소외된 여러 의사가 단체를 만들어 목소리를 내고 있는 현실”이라고 덧붙였다. 대표적인 사례가 병원 소속으로 월급을 받아 일명 ‘페이닥터’로 불리는 봉직의와의 갈등이다. 일부 봉직의는 의협 회비 납부를 거부하는 방식으로 불만을 표출하고 있다. 봉직의 단체인 대한병원의사협의회의 2021년 설문조사에 따르면 봉직의 응답자의 65%가 회비를 자발적으로 내지 않고 있다고 답했다.

의협도 집행부의 대표성에 대한 비판을 인지하고 있다. 의협 산하 싱크탱크인 의료정책연구원(구 의료정책연구소)은 2021년 펴낸 보고서를 통해 “상임이사회의 결정이 의사단체 전체 혹은 대의원회, 시도 지부의 의견과 차이가 있을 때 이를 바로잡거나 제재할 방법은 현실적으로 없다”고 지적했다. 또 “실질적으로 시도 의사회의 의견이 상임이사회에 얼마나 반영되는지는 미지수”라고 덧붙였다. 이 같은 문제는 표면적 갈등으로 드러나기도 했다. 의료계 일각에서 이필수 회장을 포함해 최근 9년 동안 6건의 회장 탄핵안을 발의한 것이다. 2014년에는 노환규 회장이 실제 탄핵된 적도 있다. 젊은 의사의 지지를 업고 당선된 노 회장이 기득권을 쥔 대의원회 개혁에 나선 게 주된 이유였다.

김윤 서울대 의대 교수는 “의협은 전통적으로 전국의 14만 전체 의사를 대표하기보다 수도권의 돈 많은 개원의를 대변해 왔다”고 비판했다. 김 교수는 “현실적으로 봐도 경제적·시간적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 단체 활동을 하기에 유리하다”며 “먼 곳에서 일하거나 필수의료에 종사하는 의료인은 배제돼 왔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서울에서만 일해온 사람이 ‘시골 의사가 부족하다’며 자기가 겪어보지도 않은 일을 마치 사실인 양 호도하며 이를 밥그릇 지키기 논리로 쓴다는 것은 문제”라고 했다.

10월26일 오후 서울 중구 정동 달개비에서 ‘의대 정원 확대’ 방안을 논의하기 위한 제15차 의료현안협의체 회의가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의협 “지역 안건 투명하게 논의하고 있다”

한편 의협 상임이사회에서는 이번 의대 정원 확대안을 놓고 또 한 번 내홍의 조짐이 일었다. “의대 정원 1000명을 늘리자”는 주장을 펼친 윤인모 기획이사가 10월26일 의원면직(본인 의사에 의한 사직)된 것이다. 서울 유니메디성형외과 원장인 윤 이사는 저서 《의대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 등을 통해 의사 증원을 위한 사관학교형 의대 설치를 주장해 왔다. 최근인 10월23일에도 국회 청원을 통해 이 같은 주장을 펼쳤다. 윤 이사는 시사저널과의 통화에서 “나는 헌법 가치와 글로벌 시각에 맞춘 의료복지 제고 방안을 제안했을 뿐”이라며 의협과의 갈등으로 비치는 것에 대해 거부감을 밝혔다. 그는 “의협이 보수적 성향을 띠고 있긴 하지만 다양한 의견은 얼마든지 내놓을 수 있다”며 “상임이사회가 지역·필수의료를 도외시한다는 것도 사실과 다르다”고 말했다.

의협도 집행부의 편중성을 부인했다. 이사회 일원인 김이연 홍보이사 겸 대변인은 “상임이사회는 소수 의견을 반영하기 위해 다양한 직역으로 구성했고 지역의사회에서 취합된 안건도 적극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상임이사회가 매주 회의를 갖는데 지방에서 매번 올라오기 힘든 실정이라 지역 근무 의사들을 초빙해도 반려하는 경우가 대다수”라며 현실적 어려움을 밝히기도 했다.

김 이사는 “상임이사회가 권력을 독차지하고 특정 이익을 대변해 왔다면 이 구조가 오랫동안 유지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집행부와 의료계의 잦은 갈등에 대해서는 “오히려 의사결정 과정이 투명하기 때문에 그런 것”이라며 “밀실 합의나 이면합의가 있었다면 불만을 가질 근거조차 없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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