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범수 ‘사법 리스크’에 카카오 투자 시계도 ‘올스톱’
  • 이석 기자·김용수 시사저널e 기자 (ls@sisajournal.com)
  • 승인 2023.11.07 07:35
  • 호수 17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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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M엔터 인수로 카카오엔터 몸집 불려 IPO 하려다 역풍…‘카카오식’ 문어발 경영 방식이 화 키워

김범수 카카오 창업자가 창사 이래 최대 위기를 맞았다. SM엔터테인먼트 주가조작 의혹으로 카카오그룹 핵심 경영진의 ‘사법 리스크’가 현실화했기 때문이다. 카카오그룹의 투자 담당 임원들이 대거 사건에 연루되면서 카카오엔터테인먼트와 카카오엔터프라이즈 등 일부 계열사의 적자 폭이 확대되고 있다. 기업공개(IPO) 및 투자계획은 사실상 ‘올스톱’ 위기에 처했다. 최악의 경우 핵심 계열사 중 하나인 카카오뱅크의 경영권마저 잃을 수 있는 상황이다.

10월23일 김범수 카카오 창업자가 SM엔터테인먼트 주가조작 사건과 관련해 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 여의도 금감원에 출석하고 있다. ⓒ시사저널 이종현

계열사 IPO 일정 등 차질 불가피

‘비욘드 코리아’란 비전 아래 2025년까지 ‘글로벌 매출 비중 30%’를 달성하겠단 카카오의 목표도 추진 동력을 잃을 가능성이 커졌다. 막대한 자금을 투입해서라도 카카오엔터테인먼트의 몸집을 불려 투자자의 기대에 부응해야 했던 부담이 이번 사법 리스크의 단초가 됐다. 여기에 ‘문어발식 경영’ ‘골목상권 침해’ 등의 지적을 받아온 카카오식 경영 방식이 화를 키웠다. 윤 대통령이 이례적으로 카카오택시를 콕 집어 “약탈적 가격 횡포에 대한 제재가 필요하다”고 지적했을 정도다.

금융감독원 자본시장특별사법경찰(특사경)은 10월26일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로 구속된 배재현 카카오 투자총괄대표와 강호중 카카오 투자전략실장, 이준호 카카오엔터테인먼트 투자전략부문장, 카카오 법인, 카카오엔터테인먼트 법인 등을 검찰에 기소의견으로 송치했다.

특사경 조사에 따르면, 배 대표 등은 지난 2월 SM엔터테인먼트 인수 경쟁에서 하이브의 공개매수를 방해할 목적으로 사모펀드 운용사인 원아시아파트너스와 공모한 혐의를 받고 있다. 총 2400억원을 투입해 고가매수주문, 종가관여주문 등 전형적인 시세조종 수법을 통해 SM엔터테인먼트 주가를 하이브의 공개 매수가격 이상으로 상승·고정시키는 등 시세조종을 했다는 것이다. 이들은 이 과정에서 금융 당국에 주식 대량보유 보고 의무(5% 보고)도 이행하지 않았다.

김범수 카카오 창업자(미래이니셔티브센터장)는 이번 검찰 송치 대상에서 제외됐다. 금감원은 10월23일 김 센터장을 불러 16시간 가까이 강도 높은 조사를 했다. 금감원 조사 당시 김 센터장에 대해 시세조정을 직접 지시했거나, 보고받았는지를 집중 조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비록 김 센터장을 기소 대상에서 제외했지만, 추후 검찰 송치 가능성을 열어둔 상태다.

무엇보다 카카오그룹의 인수합병(M&A) 등 투자를 총괄해온 배 대표가 구속되면서 카카오 계열사의 경영 시계가 멈출 것이란 지적이 적지 않다. 일부 계열사의 경우 실적 악화 및 IPO 일정 지연 우려가 현실화하고 있다. 카카오엔터테인먼트가 대표적이다. 이 회사는 IPO를 준비해 왔지만, 지난해 연결기준 영업손실 138억143만원, 순손실 6297억9456만원을 기록하는 등 부진한 실적을 거둔 탓에 성장성에 ‘빨간불’이 켜졌다. 특히 7년 만에 영업손실을 기록하며 적자 전환했다. 회사는 지난 6~8월 경력 10년 이상 전 직원을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진행했다.

카카오엔터프라이즈의 상황 역시 녹록지 않다. 이 회사는 지난 7~9월 1차 희망퇴직으로 전체 인력의 30%를 줄인 데 이어 지난달 2차 희망퇴직을 추진했다. 카카오스타일도 지난해 518억원의 영업손실을 냈다. 이는 2021년 영업손실 규모(380억원)보다 36%나 많은 수준이다. 계열사의 실적 악화는 카카오가 공언한 ‘비욘드 코리아’ 비전 달성 실패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지난해 4월 카카오는 당시 기준 해외 매출 비중을 10%에서 3년 내 30%로 확대하겠단 계획을 밝힌 바 있다.

카카오 법인이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로 벌금형 이상을 받게 되면 카카오뱅크의 대주주 지위를 잃을 수 있다는 점도 악재다. 현행법상 인터넷은행의 지분 10% 이상을 보유한 산업자본은 최근 5년간 조세범처벌법,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 공정거래법 등 위반으로 벌금형 이상 처벌을 받은 사실이 없어야 하기 때문이다. 현재 카카오는 카카오뱅크의 지분 27.17%를 보유하고 있다. 당장 투자자들이 반응했다. 카카오를 포함해 계열사 주가는 최근 하락을 거듭하고 있다. 특히 카카오 주가는 8개월여 만에 반 토막이 났다. 최근 심리적 지지선인 4만원 선마저 붕괴됐다. 국민연금은 주주권 행사에 나섰다. 국민연금은 11월1일 카카오 및 카카오페이 보유 지분 변경 사항을 공시하면서 주식 투자 목적을 ‘단순 투자’에서 ‘일반 투자’로 변경했다.

구성림 공정위 지식산업감시과장이 9월22일 카카오엔터테인먼트 불공정 행위에 대한 시정명령과 함께 과징금 5억4000만원을 부과한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민연금도 카카오 주주권 행사 나서

지난 수년간 카카오엔터테인먼트의 IPO를 준비하던 카카오 입장에선 막대한 자금을 태워서라도 SM엔터테인먼트를 인수할 수밖에 없었던 절박한 상황이 사건에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카카오가 사우디국부펀드와 싱가포르투자청 등 외부 기관으로부터 투자를 받아 사업을 추진해온 점을 고려하면, 투자자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SM엔터테인먼트를 인수해 카카오엔터테인먼트의 몸집을 불리려고 했다는 것이다.

실제 SM엔터테인먼트 인수로 카카오의 뮤직 매출은 전 분기 대비 107%, 전년 동기 대비 130% 증가했고, 카카오엔터테인먼트는 글로벌 음반, 음원의 제작 및 유통 등 음악 사업 기회를 모색할 수 있게 됐다. 위정현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는 “카카오엔터테인먼트는 멜론을 보유해 음원을 유통할 수는 있지만, 음원을 생산할 공장이 없어 SM엔터테인먼트란 공장이 필요했던 것”이라며 “특히 상장을 앞두고 있었기 때문에 SM엔터테인먼트를 확보하면 더 강력해질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을 것이다. 즉 기업 가치를 높이려는 시도였다”고 말했다.

카카오 식의 ‘무리한 사업 확장’이 화를 키웠다는 분석도 나온다. 그간 카카오는 문어발 경영으로 비판을 받아왔다. 지난해 4월 김성수 카카오 이사회 의장(현 카카오엔터테인먼트 대표)이 계열사 30~40곳을 줄이겠다고 했지만, 올 상반기 기준 카카오 계열사 수는 약속 당시(138개)보다 되레 8개 늘어났다. 또 당시 전방위적 사업 확장 과정에서 ‘골목상권 침해’ 지적을 받자 김 전 의장이 “골목상권 이슈와 우리가 설정한 핵심 사업에 집중하고자 사업 철수의 기준 가이드라인을 갖고 있다”며 골목상권 침해 사업 철수를 시사했지만, 지금까지 철수한 사업은 카카오모빌리티의 꽃·간식·샐러드 배달 중계 서비스와 포유키즈 장난감 도매업 등 단 2개에 불과해 비난을 키웠다.

윤석열 대통령이 11월1일 서울 마포구에서 열린 타운홀 미팅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이날 윤 대통령은 카카오 택시의 요금 수수료에 대해 ‘약탈적 가격 횡포’라고 강하게 비난했다. ⓒ연합뉴스

윤 대통령 “약탈적 가격 횡포 손봐야”

카카오택시의 경우 윤석열 대통령으로부터 ‘약탈적 가격 횡포’라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윤 대통령이 11월1일 서울 마포구에서 열린 민생 타운홀 미팅에서 “카카오의 택시에 대한 횡포는 매우 부도덕하다”며 “부도덕한 행태에 대해선 정부가 반드시 제재 등 조치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통령이 특정 기업을 노골적으로 지목해 지적한 것은 이례적이다. 그래서일까. 카카오택시를 운영하는 카카오모빌리티는 이날 보도자료를 배포하고 카카오택시 수수료 전면 수정 계획을 발표했다.

카카오모빌리티는 현재 IPO를 위해 매출을 부풀린 ‘분식회계’ 혐의로 금감원의 감리도 받고 있다. 카카오모빌리티의 자회사 케이엠솔루션이 가맹회원사로부터 20% 가맹금을 받고, 카카오모빌리티가 업무 제휴 계약을 맺은 가맹회원사에 광고·마케팅 참여 등을 이유로 대가를 지급한 것을 하나의 계약으로 봐야 하는데 이를 각각의 회계에 반영해 매출로 잡았다는 게 금감원의 논리다.

이에 대해 회사 측은 “무리한 해석”이라고 해명했다. 회사 관계자는 “국내 대형 회계법인 여러 곳으로부터 매년 투명한 회계감사를 받아왔고, 지정 감사인을 포함한 모든 감사인으로부터 재무제표에 대해 적정 의견을 받았다”며 “IPO를 위한 매출 부풀리기라는 의혹은 ‘무리한 해석’이다”고 반박했다. 카카오 측은 현재 신사업이나 대규모 투자를 진행할 경우 사회적 영향에 대한 외부의 평가를 받는 방안 등을 논의 중이다. 다만 감시기구의 실효성 판단은 인적 구성에 따라 갈릴 것으로 예상된다.

창업자인 김범수 센터장의 행보도 주목된다.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지 2년여 만에 카카오 조직의 지휘봉을 다시 잡았기 때문이다. 10월30일에는 주요 공동체 CEO들과 경영 회의를 진행하기도 했다. 이 자리에서 그는 현 상황을 ‘최고 비상경영 단계’로 선포했다. 각 공동체 내부에 새로운 기구를 신설해 준법경영 실태를 점검하는 등의 쇄신책도 발표했다. 김 센터장은 “나부터 부족했던 부분을 반성하고 더 강화된 내외부의 준법경영 및 통제 시스템을 마련하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김 센터장이 자신을 옭아매고 있는 사법 리스크를 해소하고 카카오 공동체의 쇄신을 끌어내 경영을 정상화시킬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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