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천재 바둑소녀 “더 강해지고 싶어 한국행 택했다”
  • 유경춘 바둑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3.11.04 13:05
  • 호수 17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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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바둑소녀’로 일본의 기대 한 몸에 받는 스미레, 한국 이적 확정 
“세계 최고 수준인 한국 리그에서 뛰고파”…뒤바뀐 한일 바둑의 국제 위상 실감

한국에서 뛰기를 희망한 일본의 ‘천재 바둑소녀’ 나카무라 스미레 3단(14)이 내년 3월부터 한국에서 공식 활동을 시작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지난 7월 일본기원에서 한국기원으로 이적 신청서를 제출한 스미레는 10월30일 도쿄 지요다구에 있는 일본기원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한국행을 결정한 배경을 밝혔다. 그는 “(최고 수준의 선수들이 출전하는) 한국 바둑리그에서 뛸 수 있는 기사가 되고 싶다. 지금은 아직 실력이 미치지 못하지만, 강해져서 이야마 유타 선생님 등 일본의 강한 기사들과도 싸워보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일본의 바둑 신동 나카무라 스미레(14)가 10월30일 도쿄에서 한국행을 알리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Kyodo 연합

프로기사 아버지의 적극 권유로 8세 때 한국 유학

한국기원은 앞서 10월26일 열린 이사회에서 스미레가 제출한 객원기사 신청안을 통과시켰다. 이에 따라 스미레는 내년 2월 일본 여류기성 타이틀 방어전을 치른 후 3월부터 한국에서 공식 활동을 시작할 계획이다.

일본의 바둑 신동 스미레는 3세 때 처음 바둑돌을 잡았다. 아버지는 프로기사 나카무라 신야 9단이고, 어머니는 일본기원 바둑강사 나카무라 미유키다. 처음엔 어머니에게 바둑을 배웠지만 기재를 알아본 아버지가 한국 유학을 전격 결정했다. 2017년 한국으로 건너와 한종진 9단이 운영하는 바둑도장에서 2019년까지 본격적인 수업에 들어갔다. 적수를 찾기 힘든 일본보다는 비슷한 실력을 가진 또래 친구가 많은 한국이 유리할 것이라는 게 부모의 판단이었다.

프로 입문은 만 10세 되던 해에 일본기원의 영재특별전형을 통해서였다. 조치훈 9단의 11세8개월 일본기원 최연소 입단 기록을 뛰어넘는 대단한 성취였다. 일각에선 ‘그래도 10세에 프로는 너무 이른 게 아닌가’라는 걱정도 나왔지만, 올해 2월 열린 일본 여류기성전에서 우승하면서 주위의 우려를 완전히 불식시켰다.

10월30일 오후 1시부터 도쿄 일본기원에서 진행된 기자회견에서 스미레는 “새로운 환경에서 더 강한 프로기사가 되고 싶다”고 한국행을 결정한 배경을 밝혔다. 많은 취재 인파가 몰린 가운데 20분가량 진행된 인터뷰에서 스미레는 “한국행은 지난 6월경부터 본격적으로 생각했다”고 운을 뗐다. 한국행을 결심하게 된 이유로는 “부모님과 의논하기는 했지만 한국으로의 이적은 나 스스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덧붙여 가장 큰 이유는 “강한 기사들이 한국에 많고 대국 수도 많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일본을 떠나는 소감도 잊지 않았다. “입단 이후 신세를 진 프로기사 선배분들에게 마음 깊이 감사하고 있다. 지난 4년 반은 저의 인생에서 소중한 시간이었고, 성장할 수 있었던 감사한 시간이었다. 또 동년배 기사들과 보낸 시간도 매우 소중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일본으로 컴백하는 시기를 특정하진 않았다. “타이틀은 아직 생각하지 않고 있지만 언젠가는 일본으로 다시 돌아와서 일본 바둑계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소감을 밝혔다.

그는 한국 생활에 대한 기대감도 표시했다. 한국에서 2년간 유학하며 어느 정도 한국 생활에도 익숙한 스미레는 “너무 좋아하는 김치찌개를 매일 먹을 수 있는 한국 생활도 기대된다. 닭갈비와 불고기도 무척 좋아한다. 어릴 적 공부할 때 사귄 친구들과 바둑도 두고, 맛있는 음식도 함께 먹고 싶다”고 기대감을 나타냈다.

 

NHK “일본 바둑의 국제 경쟁력이 약화된 결과”

스미레 3단의 한국기원 공식 이적일은 2024년 3월2일이다. 현재 보유하고 있는 여류기성 방어전 등 일본에서의 일정은 내년 2월말까지 마치고 3월부터 한국 기전에 참가하게 된다. 이적 후에는 일본 내 공식 기전엔 출전할 수 없고, 여류기성전 타이틀을 방어할 경우에는 반납해야 한다.

한편 고바야시 사토루 일본기원 이사장은 “스미레 3단이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성장해 주었다. 그동안의 노력과 실적을 높이 평가한다. 그래서 흔쾌히 내보내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차세대 스타의 한국 이적을 아쉬워하는 목소리도 있지만, 세계화가 진행 중인 바둑계에 새로운 역사를 쓰는 사건이기도 하다. 일본과 한국의 많은 팬에게 호의적으로 받아들여질 것으로 생각한다”고 소감을 밝혔다.

고바야시 이사장의 말대로 스미레의 한국 이적을 두고 일본의 반응은 엇갈린다. 다른 스포츠처럼 선진국 진출로 도약을 꾀하는 게 옳다는 견해도 있지만, 마이니치신문은 “스미레 3단의 이적은 일본 바둑계에 큰 손실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또 NHK는 주요 뉴스를 통해 “일본 바둑계의 국제 경쟁력이 약화된 결과”라고 꼬집었다.

우리나라에선 스미레의 한국행을 반기는 분위기다. 상품성을 갖추고 있는 일본의 스타가 자진해서 온다고 하니 마다할 이유가 없다. 과거 한국 바둑계에는 일본 유학을 다녀오지 못하면 행세할 수 없었던 시절도 있었으니 격세지감인 셈이다.

이현욱 9단은 “스미레 3단이 객원기사 신분으로 참가한 올해 여자바둑리그에서 7승 2패를 거뒀다. 이로 미뤄볼 때 내년부터 국내에서 뛴다면 10위권 내 실력은 되지 않을까 한다”면서 “한국에는 김은지 7단 등 스미레의 적수가 될 만한 기사가 많다. 다른 여자 기사들에게도 좋은 자극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스미레 3단의 스승 한종진 9단은 “국내로 들어온다면 여자랭킹 10위권쯤에서 출발할 것으로 본다. 대략 3년쯤이면 국내 타이틀 획득도 가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중국의 철녀(鐵女) 루이나이웨이 9단은 1999년부터 2011년까지 한국에서 객원기사로 활동하면서 조훈현 9단에게 국수 타이틀을 빼앗는 등 센세이션을 일으킨 바 있다. 과연 내년 3월 한국으로 건너오는 14세 나카무라 스미레는 국내 무대에서 어떤 바람을 불러일으킬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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