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산, 돈만으로 해결 안 된다…엉뚱한 정책에 세금 낭비 말아야” 
  • 오종탁 기자 (amos@sisajournal.com)
  • 승인 2023.11.03 15:05
  • 호수 17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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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계·경영계·학계·사회계 인사들, 온누리교회 인구문제 포럼 통해 개혁안 제시
교육 개혁, 세계관 재정립, 문화 바꾸기 등이 선결되는 ‘인구정책 대전환’ 한목소리

“이미 틀린 것으로 판명 났고 상황은 악화일로를 걷는데, 왜 또다시 엉뚱한 일에 세금과 시간을 쏟아붓고 있나.” 

10월28일 서울 서초구의 양재 온누리교회에서는 예배도 종교 행사도 아닌 인구문제 포럼이 열렸다. 저출산·고령화 등 대한민국 인구문제의 심각성을 환기하고 해결 방안을 찾아보자는 취지로 마련된 포럼이다. 국내에서 종교계 주도로 인구문제 포럼이 개최된 것은 처음이다.

이번 포럼은 교인 수가 8만 명에 이르는 온누리교회가 인적·물적 자원을 활용해 인구문제 해결에 발 벗고 나서겠다는 ‘출정식’ 성격의 행사여서 더욱 주목받았다. 이재훈 온누리교회 위임목사를 비롯해 이인용 삼성전자 고문, 이철 하나로의료재단 명예원장(전 연세의료원장), 민준호 IJM 코리아 대표, 하선희 콜슨 펠로우즈 한국지부 대표, 박태성 서울대 통계학과 교수, 신무환 연세대 IT융합공학과 교수, 이정민 한동대 생명과학부 교수 등 각계 인사들이 포럼에 참여해 머리를 맞댔다.

10월28일 서울 서초구의 양재 온누리교회에서 열린 인구문제 포럼에서 이재훈 온누리교회 위임목사가 기조강연을 펼치고 있다. 이번 포럼은 저출산·고령화 등 대한민국 인구문제의 심각성을 환기하고 해결 방안을 찾아보자는 취지로 마련된 포럼이다. 국내에서 종교계 주도로 인구문제 포럼이 열린 것은 처음이다. ⓒ시사저널 오종탁
10월28일 서울 서초구의 양재 온누리교회에서 열린 인구문제 포럼에서 이재훈 온누리교회 위임목사가 기조강연을 펼치고 있다. 이번 포럼은 저출산·고령화 등 대한민국 인구문제의 심각성을 환기하고 해결 방안을 찾아보자는 취지로 마련된 포럼이다. 국내에서 종교계 주도로 인구문제 포럼이 개최된 것은 처음이다. ⓒ시사저널 오종탁

1년여 전부터 교회 내에 미래성장위원회를 조직하는 등 종교계 차원의 인구문제 해결법을 모색해온 이재훈 온누리교회 위임목사는 포럼에 앞서 시사저널과 단독으로 만나 “정부에서 인구문제에 관해 엉뚱한 정책을 펴고 있다. 특히 (제 역할을 못 하는)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가 가장 큰 문제”라면서 “다양한 채널로 현실적인 대안을 제시해도 좀처럼 받아들이지 않고 하던 것만 고집한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지난 3월 개최한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회의를 통해 돌봄과 교육, 양육 비용 지원, 주거 지원, 일·가정 양립, 건강 지원 등 저출산 관련 5개 분야에 17조6000억원을 편성하겠다고 발표했다. 올해 저출산 정책 예산 14조원보다 25% 넘게 증가한 규모다. 이에 대해 이 목사는 포럼 기조강연에서 “저출산은 결코 돈으로 해결되지 않는다”며 “(앞선 세금 지원에 실효성이 없었지만) 혹여 돈을 어떻게 나눠주는지에 따라 출산율이 좌우된다면 그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출산과 육아에 대한 인식 전환은 후순위로 미룬 채 돈을 뿌려서 숫자부터 올리고 보자는 방식은 ‘마약’처럼 위험할 수 있다고 그는 우려했다. 

 

“결혼·출산 꺼리게 만든 교육부터 바꿔야” 

국내 의료계의 소아·신생아 분야 최고 권위자인 이철 하나의료재단 명예원장도 “2006년 이후 인구문제에 세금 280조원을 쓰고도 출산율은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현장을 모르니 비현실적인 대책만 반복적으로 내놓는다”면서 퍼주기식의 저출산 정책을 강하게 성토했다. 이 명예원장은 “저출산 심화로 국가가 소멸하니 마니 하는 상황에서 여전히 이 정도 수준의 대처라니, 컨트롤타워가 존재하지 않는다고밖에 볼 수 없다”며 “여성가족부를 저출산고령사회부로 바꾸는 등 인구 정책 전체를 확실하게 컨트롤하는 정부 부처를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10월28일 서울 서초구 양재 온누리교회에서 열린 인구문제 포럼에서 (왼쪽부터) 이철 하나로의료재단 명예원장(전 연세의료원장), 이인용 삼성전자 고문, 이재훈 온누리교회 위임목사, 하선희 콜슨 펠로우즈 한국지부 대표, 민준호 IJM 코리아 대표 등 각계 전문가들이 인구문제의 해법을 제안하고 있다. ⓒ온누리교회
10월28일 서울 서초구 양재 온누리교회에서 열린 인구문제 포럼에서 (왼쪽부터) 이철 하나로의료재단 명예원장(전 연세의료원장), 이인용 삼성전자 고문, 이재훈 온누리교회 위임목사, 하선희 콜슨 펠로우즈 한국지부 대표, 민준호 IJM 코리아 대표 등 각계 전문가들이 인구문제의 해법을 제안하고 있다. ⓒ온누리교회

이재훈 목사와 이철 명예원장은 제대로 된 방향성과 리더십 아래 인구 정책을 전환해야 한다는 대전제에 공감하면서 선제적으로 교육을 손봐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이재훈 목사는 “요즘 대한민국 세태를 보면 과도한 경쟁사회에서 소수만 원하는 전공과 직업을 얻어 보람을 느끼고 그 외의 다수는 자신이 실패자란 인식 속에 살아간다. 당연히 가정과 학교 생활 모두 불행한 기억으로 점철된다”며 “청년들 사이에 ‘굳이 자녀를 낳아 내 전철을 밟게 하고 싶지 않다’거나, 더 나아가 결혼 자체에 반감을 표하는 분위기가 확산된 이유”라고 진단했다. 

이어 이 목사는 “청년세대가 어린아이일 때부터 무한경쟁에 내몰리며 비관적인 세계관을 형성해온 것에 가정의 책임도 있으나, 가정에서보다 훨씬 많은 시간을 보내는 교육 현장이 문제의 근본 원인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부가 교육을 ‘평준화’란 틀 속에 가둬 획일화된 커리큘럼을 강요하니 개별 학교들에서 자율성과 창의성이 싹틀 여지가 사라졌다. 학교는 학생들에게 자기 재능을 발견하고 미래를 설계할 판을 깔아줘야 하는데, 현실은 수십 년째 점수 위주의 학력평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며 “학생들 사이의 경쟁을 부추겨 소수 빼고는 열등하고 불행한 사람이 되도록 방치하면서 이들이 사회로 나가 미래에 대한 희망을 품고 결혼과 출산을 하길 바라는 건 어불성설”이라고 비판했다. 

이 목사는 전국 모든 학교가 저마다 독창적인 커리큘럼을 구축해 특성화 교육을 진행하도록 허용하고, 학생들에게는 학교를 선택할 권리를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경쟁은 학생들이 아닌 학교와 교사들이 할 일”이라면서 “학교 선택권이 생기면 전국의 학교가 치열하게 학생 유치 경쟁에 나서게 되고, 자연스레 학생 개개인의 꿈을 실현하는 교육 시스템이 자리 잡히리라 믿는다”고 말했다. 교육 개혁은 결혼과 출산을 꺼리는 현상을 완화하는 동시에 지방 소멸 문제를 풀어낼 열쇠가 될 수도 있다고 이 목사는 덧붙였다. 

이철 명예원장은 공교육 붕괴를 더욱 조장해온 과잉 사교육 문제를 공교육(학교 교육)과 사교육(학원 교육) 통합으로 돌파하자고 제안했다. 그는 “학교에서 교육 소비자가 원하는 양질의 학원 교육까지 제공하면 어떨까. 학원 강사들 강의가 공교육 현장에 도입되고, 학교 교사들이 학원 강사의 영상 수업에 대한 보충 지도도 하게 하는 것”이라며 “여기서부터 개인별 맞춤교육이 시작되면 학원이 서서히 사라지고, 공교육 정상화와 출산율 제고라는 사회 공통의 목적을 달성하는 시기를 앞당길 수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이 명예원장은 낙태와 피임 등을 중요시하는 성교육 수정과 미숙아를 잘 살려내기 위한 신생아 집중 치료실 확장, 국내 입양 활성화 등을 추가적인 대안으로 제시했다. 

 

미혼자는 ‘주거비’, 기혼자는 ‘돌봄’이 이유 

이날 온누리교회는 지난 7~8월 박태성 서울대 통계학과 교수팀에 의뢰해 10대부터 60세 이상까지의(평균 44.6세) 교인 2300여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인구문제 설문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응답자의 34.1%를 차지한 미혼자들에게 향후 결혼할 의사가 있는지 설문하니 열에 여덟(82.4%)은 ‘있다’고 했다. 20~49세로 범위를 좁혀 외부 설문조사(한국리서치 2023 결혼인식조사)와 비교하면 20대와 30대, 40대 모두에서 온누리교회 미혼자의 결혼 의향률이 30%포인트 이상 앞섰다.

결혼 후 자녀계획에 대한 설문에는 온누리교회 20~49세 미혼자의 50.9%가 ‘2명’이라고, 15.9%는 ‘3명 이상’이라고 응답했다. 평균 1.90명으로, 2021년 12월27일에서 2022년 1월10일까지 CTS기독교TV가 지앤컴리서치에 의뢰해 조사한 개신교 20~49세 미혼자 자녀계획 1.57명보다 많다. 당시 불교는 1.49명, 무교는 1.43명, 가톨릭은 1.38명으로 조사됐다.

온누리교회 전체 미혼자에게 결혼 후 육아에서 예상되는 가장 큰 어려움이 무엇인지 묻자 ‘높은 주거비, 안정적이지 못한 직장 등 경제적 여건’(70.5%), ‘아이를 돌봐줄 사람이나 시설 부족’(56.5%), ‘높은 교육비’(47.5%) 순으로 응답률이 높았다. 자녀가 1명 이상인 기혼자들은 실제 육아에서 아이를 돌봐줄 사람과 시설이 부족한 점이 가장 힘들다(61.2%)고 응답했다. 교육비 부담(40.8%)이 그 뒤를 이었고, 경제적 여건에 대한 응답률은 34.3%로 3위에 머물러 미혼자와 차이를 나타냈다. 이는 과도한 경쟁사회에서 스스로 뒤처졌다고 여기는 청년세대가 결혼과 출산을 기피하고 있다는 이재훈 목사의 진단과 맞닿아 있다. 

온누리교회 교인들은 저출산의 주요 원인으로 ‘과도한 육아·교육비’(70.2%), ‘일·가정 양립의 어려움’(63.9%) 등 현실적인 문제를 손꼽으면서도 정신적·정서적 부분 역시 무시하지 못할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봤다. ‘자녀 없는 삶을 즐기려는 가치관 확산’(53.0%), ‘물질 중심주의’(42.7%), ‘지나친 경쟁 체제’(36.9%), ‘결혼하지 않으려는 경향’(36.5%) 등의 응답이 두루 높은 비율로 확인됐다. 이에 교회에서 내놓을 수 있는 저출산 해결책을 놓고도 ‘결혼과 가정에 대한 세계관 교육 내지 캠페인이 필요하다’(67.5%)는 응답률이 제일 높았다. 교회가 어린이집, 유치원 등을 설립해 육아에 직접적인 도움을 주거나(59.1%) 자녀 양육에 대한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44.0%)해야 한다는 게 그다음 해결책으로 거론됐다. 

미국을 기반으로 기독교 세계관 장려 운동을 전개하는 콜슨 펠로우즈의 하선희 한국지부 대표는 “2000여 년 전 초기 기독교 발흥의 역사를 되짚어 보면 현재의 대한민국 못지않은 초저출산 문제를 겪던 로마 제국에서 기독교인들이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신의 명령에 따라 ‘성행위의 주목적은 재생산이며, 자녀를 가지는 것이 결혼의 의무’라는 세계관에 기반해 사회를 지탱하고 긍정적으로 변화시켰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면서 “당시 로마의 주류 사상처럼 고통을 회피하고 행복만 갈구하며 ‘결혼과 출산을 하지 않아도 상관없다’ ‘고통스러울 것 같으면 (이혼·낙태 등으로) 끊어내도 된다’는 잘못된 풍조가 지금 우리나라에 만연해 있다. 결혼·출산의 진정한 의미를 아는 것, 즉 바른 세계관 정립과 확산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온누리교회 “인구문제 대응 지속해 나갈 것” 

포럼에서는 기업의 역할에 대한 제언도 나왔다. 올해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클로디아 골딘 미국 하버드대 경제학과 교수는 10월9일(현지시간) 학교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 참석해 한국의 저출생 수치를 정확히 언급하며 기성세대 및 남성 교육의 중요성과 더불어 기업문화의 변화를 해법으로 제시했다. 이인용 삼성전자 고문은 온누리교회 포럼에서 골딘 교수의 발언을 소개하면서 “나도 기업에 몸담고 있지만, 기업인들의 생각이 달라져야 한다. 아이 낳는 걸 주저하게 만드는 문화와 인식을 (기업 내에서) 바꾸지 않는 한 저출산 문제의 해결책을 찾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정부와 기업, 교회 등과 협력해 빈곤한 사람들을 폭력으로부터 보호하는 비정부기구(NGO) IJM 코리아의 민준호 대표는 “사실 한국의 출산휴가, 육아휴직 등 출산·육아에 관한 노동 정책은 ‘월드 클래스’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잘 갖춰져 있다. 문제는 있는 제도도 눈치가 보여 쓰지 못한다는 것”이라며 역시 경영계 분위기를 실질적으로 바꿔가야 한다고 말했다. 

온누리교회는 인구문제 포럼 개최를 계기로 대학생 대상 저출산 위기 극복 아이디어 공모전도 실시했다. 응모한 65개 팀 중 8개 팀이 본선에 진출했고, 포럼 현장에서 본선 진출 팀 프레젠테이션과 우수작 투표·시상이 이어졌다. 이재훈 목사는 “앞으로 미래성장위원회 운영, 포럼과 공모전 개최, 다른 교회나 학계, 경영계, 정치권 등 외부와의 협력을 바탕으로 인구문제 극복 방안을 계속 도출해 내부적으로 실천하고 정부에도 적극적으로 제안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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