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국정원장, 대통령과 너무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사람으로 [조경환 쓴소리 곧은소리]
  • 조경환 가천대 경찰·안보학과 초빙교수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3.12.01 16:05
  • 호수 178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허구한날 권력 등에 업은 자리 다툼에 멍들고 허약해진 국가정보기관
원장 바로 세우면 국정원 살려낼 수 있어

전략적 동시성 전쟁의 시대에는 정보 수장의 문제 해결 능력에 따라 승부가 갈린다. 2021년 10월초 미군이 우크라이나 국경 러시아군의 비정상적 움직임을 포착하자 미 중앙정보국(CIA)은 바삐 움직였다. 러시아군의 침공이 개시된 2022년 2월24일의 43일 전인 1월12일, 윌리엄 번스 CIA 국장은 키이우를 방문했다.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에게 “전쟁 임박”을 확신시켰다. 번스 국장은 카불로, 모스크바로, 서안지구로, 리야드로, 베이징으로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곤란해하는 곳은 다 갔다. 올해 7월21일 “미국 국민의 안전과 안보를 우선시하는 명확하고 직설적인 분석을 제시”한 공로를 인정받아 대통령의 국정 전반을 조언하는 캐비닛 멤버로 초청됐다.

10월7일 하마스군은 이스라엘을 기습해 1200명을 학살했다. 정보 실패는 확전을 불렀다. 이스라엘 국내정보기관으로서 팔레스타인 등의 테러·전복에 대처 중인 신베트(Shin Bet)의 로넨 바르 국장은 “충분한 경고를 못 한 책임”을 자인하면서도 “지금은 싸울 때”라며 최전선에 있다. 공격에 가담한 하마스 대원 전원 제거가 유일한 목적인 부서, ‘닐리(NILI)’를 신설했다. 이미 수백 명을 드론으로 폭사시키거나 체포했다. 해외정보기관인 모사드의 다비드 바르니아 국장은 사우디아라비아와의 협력, 주적 이란 및 레바논·시리아 견제, 그리고 카타르와 이집트를 통해 인질 석방을 끌어냈다. 유대 민족의 존경을 받는 이유다.

김규현 전 국정원장이 11월24일 국회에서 열린 제5차 정보위원회 전체회의에 간부들과 함께 자리하고 있다. ⓒ국회사진취재단

국정원 롤모델로 언급되는 CIA와 모사드

우리 국정원으로 눈을 돌리면, 암울하다. 제갈공명이 살아온들 수습해 내겠나 싶다. 예외 없이 또 원장의 무덤이 됐다. 권력은 자리 다툼의 원동력이 되어 내분을 불렀다. 인사 난맥은 보안을 허물었다. 기본을 망각한 언론플레이에 치부가 노출된다. 원장 흔들기는 차기를 탐하는 자들에게는 헛된 꿈을, 직원 및 원장 자질을 가진 실력자들에게는 좌절을 준다. 분열의 씨앗이다. 정무직 간 이격을 권력을 배경에 둔 일부 직원이 어김없이 파고든다. 무너져내린 기강은 대통령과 국가에 부담이다.

김규현 전 국정원장의 재임 1년6개월, 짧지는 않지만 조직은 정체성 검열과 인사에 들떠서 갔다. 개혁은 역대로 그래 왔듯이 쉬운 길을 택했다. 외피 개혁에 치중했다. 거칠었다. 영호남을 갈랐다. 정보기관 인적 구성의 복합성을 간과했다. 횡으로 나눠진 싸움은 서로의 약점을 잘 알기 때문에 더 치명적이다. 좀처럼 끝나지 않을 것이다.

신분 보장과 신진대사를 위해 도입된 계급정년제는 악용된다. 이번에도 경쟁자를 몰아내 자리를 만드는 데 효험을 봤다. 실력과 실적, 상사 평가는 전 정권의 것으로 백안시한다. 차단의 원칙과 인사상 기밀성이 인사 데이터의 축적을 막아온 터다. 보직경로제나 직위분류제는 먼 이야기다. 연줄과 로열티를 앞세우지 않겠나? ‘복도통신’으로 평판을 만들어낸다. 또 들려오는 몇 단계 진급자들은 묵묵히 궂은일을 도맡아온 이들의 의욕을 앗아간다. 구성원들이 불공정하고 불투명하다고 느끼면 그 마음을 얻어내지 못한다.

국정원의 창과 방패는 20여 년째 녹슬어간다. 정권교체와 함께 부침했다. 국민 기억에서 잊혔다. 내부가 허약하다 보니 안보에서 중심 역할을 못 한다. 초유의 정부 전산망 마비에 북한의 사이버 공격이 의심되어도, 국제박람회기구(BIE) 판세에 처참한 오판이 있어도 국정원은 소환되지 않는다. 정보에 생긴 구멍들은 누적되고 결합해 거대한 안보 위협과 공포로 자리 잡게 된다.

윤석열 대통령이 국정원의 롤모델로 언급하는 CIA와 모사드는 조직·활동과 그 지식이 상상 이상으로 광범하다. 수단은 강력하다. 대테러·사보타주와 대중국·러시아·이란 등 공작·정보활동은 물론, 허위정보, 첨단과학기술, 글로벌 공급망, 기후변화, 교육, 팬데믹 및 사이버·우주·인지·전자전 등 미치지 않은 데가 없다. 수집과 분석에다 암살, 준군사작전, 드론 공격 등 물리적 힘이 있다.

 

‘원장 후보추천위’ 구성 고려해봐야

국정원 직원들은 몸에 밴 애국자다. 윤석열 정부 들어 적잖은 일을 했다.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과 기술 고도화 추적에 피가 마른다. 온갖 방해를 뚫고 간첩을 잡아냈다. 새해 안보수사권 폐지를 앞두고 분루를 삼킨 채 경찰과 공조한다. 경제안보를 강화한다. 방첩과 기술보안, 공무원 신원조사, 마약 등 국제범죄 차단에 성과를 낸다. 사이버안보 거버넌스를 확립해 간다. 제 역할을 하도록 도와야 한다. 국정원 훼손을 멈추어야 한다.

국가정보기관은 작은 정부다. 대통령과 안보실, 부처를 뒷받침한다. 원장을 바로 세우면 국정원을 살려낼 수 있다. 원장이 동원할 예산, 인프라와 인력, 법제는 막대하다. 그렇지만, 국정원도 관료제다. 막스 베버가 말하는 고유의 전통과 카리스마적 리더십 그리고 합법적 지배가 잘 배합되어야 그 권위가 수용된다. 그래서 이젠 원장 발탁 방식을 손볼 때가 됐다. 이번만큼은 대통령이 인사 전권을 거둬들이는 용단을 내려야 한다. 검찰총장 인사와 같이 ‘원장 후보추천위원회’ 가동을 고려해볼 만하다. 대졸사원 채용도 직급별로 몇 단계 심층면접을 하지 않는가? 국정원에 대한 문제의식과 진단, 비전과 플랜을 들어보고 꼼꼼히 심사해야 한다.

그래서 첫째는 상식이 있고 절제된 사람, 도량이 넓으며 직원 개개인을 귀히 여기는 인물이면 좋겠다. 외교·안보와 국가 미래에 대한 신념이 확고하고 과학기술 마인드도 함양한 ‘준비된 사람’, 시야가 크고 시류에 쉽게 흔들리지 않는 단단한 사람이면 더 좋겠다.

둘째는 대통령과 너무 가까워서 독립성을 약화하지 않고, 그렇다고 너무 멀어 정권의 정책 선호와 유리되지도 않을 사람, 정치적 압력과 진영의 간섭에서 자유롭고 드러난 결함이 없는 사람, 그리하여 전략적 안보 사안을 결정할 최선의 보고를 할 사람을 찾아야 한다.

셋째, 근대 전쟁사학자인 클라우제비츠는 경험이 모든 철학적 진실보다 가치가 더 크다고 했다. 조직을 다뤄봤고, 정보기관 생리를 아는 사람, 분별력 있고 학연·지연·혈연과 정파에 불편부당한 사람, 구성원이 기꺼이 따를 이력을 가진 사람, 차장들과 협의하며 그들을 압도할 사람이어야 한다.

넷째, 보안을 생명처럼 중시하되, 국가가 직면한 위협은 국민에게 최대한 개방적으로 설명해줄 사람, 그런 ‘안보의 좌장’이 마땅하다. 정보공동체는 지성을 갖고 있다. 그들이 수긍할 원장이어야 대북 통합억지의 한 축이 잡힌다.

※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조경환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 위원
조경환 가천대 경찰·안보학과 초빙교수

■필자 조경환은?

외교부 샌프란시스코 부총영사와 국가정보원 고위공무원을 지냈다. 행정학박사이다. 정책기획위원회 위원, 세종연구소와 통일연구원의 객원연구위원을 거쳐 강원연구원 초빙연구위원이다.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