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계종 실세’ 자승 스님 의문에 싸인 죽음의 원인
  • 정락인 언론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3.12.01 11:05
  • 호수 17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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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서나 CCTV 통해 극단적 정황 공개
경찰·국정원, 타살 가능성 배제 안 해

경기도 안성시 죽산면 칠장리에 있는 칠장사는 7세기 중엽 신라 선덕여왕 때 자장율사가 창건한 고찰이다. 대한불교조계종 제2교구 본사인 용주사의 말사다. 11월29일 오후 6시50분쯤, 칠장사 요사채(스님들이 기거하는 곳)에서 불길이 치솟았다. 화염은 사찰 건물을 뒤덮었고, 연기가 건물 사이로 빠져나오기 시작했다. 얼마 후 신고를 받고 현장에 도착한 소방 당국은 소방 인원 60여 명, 펌프차 등 장비 18대를 동원해 약 한 시간 만에 불길을 잡았다. 화재 현장을 살펴보던 소방관들은 요사채 내부에서 불에 탄 시신 1구를 발견한다. 시신은 육안으로는 신원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훼손이 심한 상태였다. 경찰은 칠장사 관계자들을 통해 시신의 신원 확인에 나섰고, 칠장사 측은 화재 당시 요사채에는 스님 한 분이 계셨다고 알려줬다. 그런데 그가 다름 아닌 조계종 총무원장을 지낸 자승 스님(69)으로 확인되면서 종단은 충격에 휩싸였다.

자승 스님은 2009년 55세에 역대 최고 지지율로 조계종 33대 총무원장을 지낸 후 2013년 연임에 성공했다. 4년 임기 두 번을 모두 채운 총무원장은 그가 유일하다. 지금은 종단에서 법적인 지위는 없지만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며 최고 실권자로 불려왔다. 조계종은 사건이 알려진 후 칠장사에 관계자들을 급파해 자승 스님의 입적을 공식 확인했다.

하지만 조계종 종단 내에서는 자승 스님의 갑작스러운 입적에 대해 갖가지 소문이 돌고 있다. 최초 사건이 알려진 후에는 ‘타살’ 가능성이 점쳐졌지만, 자승 스님의 승용차 안에서 유서가 발견되면서 더욱 의아해하는 분위기다.

ⓒ연합뉴스
11월29일 오후 6시 50분쯤 경기도 안성시 죽산면 칠장리 소재 사찰인 칠장사 내 요사채(승려들이 거처하는 장소)에서 불이 나 대한불교조계종 전 총무원장 자승 스님(작은 사진)이 입적했다. ⓒ연합뉴스

승용차에 남겨진 2장의 유서

경찰 등에 따르면 자승 스님은 사건 당일인 11월29일 예정돼 있던 선약을 취소하고 혼자 승용차를 운전해 오후 3시쯤 칠장사 경내로 들어왔다. 칠장사 인근에는 지난 5월 개원한 아미타불교요양병원이 있었는데, 자승 스님은 이곳의 명예이사장으로 활동했다. 그는 이 요양병원을 방문할 때마다 가끔 칠장사 요사채에 머물렀다.

칠장사 주지 자강 스님과 대화를 나눈 후 요사채에 들어갔으며, 약 1시간 후에 다시 밖으로 나온다. 이어 인화물질이 들어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하얀색 플라스틱통 2개를 들고 요사채로 다시 들어갔다. 이후 한 번 더 요사채를 나왔다가 들어간 후 불길이 치솟았다.

자승 스님의 승용차에서는 두 장의 유서가 발견됐다. 칠장사 주지 스님에게는 “이곳에서 세연을 끝내게 되어 민폐가 많았소. 이 건물은 상좌들이 복원할 것이고, 미안하고 고맙소. 부처님법 전합시다”라며 미안함을 전했다.

또 한 장은 경찰에 남겼는데, 여기에는 “검시할 필요가 없습니다. 제가 스스로 인연을 달리할 뿐인데, CCTV에 다 녹화되어 있으니 번거롭게 하지 마시길 바랍니다”라고 당부했다. 쉽게 말해 내 죽음은 스스로 선택한 것이며, 그 증거가 CCTV에 다 찍혀 있다는 것을 알리는 내용이다.

유서는 필적 감정을 통해 진위를 확인해야겠지만, 정황상으로는 스스로 입적한 것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조계종도 자승 스님이 소신공양(燒身供養·자기 몸을 불태워 부처님에게 바침)했다는 공식 판단을 내놓았다. 지금까지 드러난 것으로도 타살을 의심할 만한 정황은 나오지 않고 있다.

그러나 자승 스님의 죽음은 여전히 미스터리다. 최대 의문은 ‘죽음의 원인’이다. 왕성하게 활동하던 자승 스님이 갑자기 왜 극단적인 선택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알려진 것이 없다. 유서에도 이와 관련해 한마디의 언급도 하지 않았다. 조계종 측도 필자에게 “우리는 이와 관련해 아는 것이 없다”고 전했다.

현장에서 발견된 자승 스님의 첫 번째 유서 추정 문서. 경찰에 보내는 메시지가 쓰여 있다. ⓒ조선일보 제공

조계종 공식 판단은 “소신공양”

보통 사람이 스스로 생을 마감한다고 결심하면 ‘사전 징후’가 나타난다. 그동안의 삶을 정리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자승 스님의 경우 지금까지 파악된 바로는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 특별한 사전 징후는 없었다.

그는 총무원장에서 퇴임한 후 서울 강남구 봉은사 회주를 지냈다. 2019년에는 (사)상월결사를 만든 후 부처의 말씀을 널리 퍼뜨리는 전법 활동에 매진해 왔다. 최근에 있은 교계 기자간담회에서는 “대학생 전법에 10년간 모든 열정을 쏟아부을 생각”이라는 미래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이런 점에서 그의 죽음은 말 그대로 ‘갑작스럽게 벌어진 일’이다.

세상에 원인이 없는 결과는 없지만 자승 스님 죽음과 관련해서는 CCTV나 유서 등을 통한 결과만 있을 뿐이다. 이에 대해 불교계의 한 관계자는 “사실 민감한 내용이 하나 있다”며 “지난여름 자승 스님이 동국대 일산병원에 잠시 입원했던 것으로 아는데, 이와 관련돼 있을 수도 있다”고 조심스럽게 전했다.

유서에 유독 자살임을 강조한 대목도 오히려 의문을 키우고 있다. 경찰은 사건이 발생하면 매뉴얼에 따라 수사를 진행한다. CCTV 확인은 기본이다. 자살인지 타살인지는 수사 결과에 따라 최종 판단한다. 그런데도 자승 스님은 마치 수사의 가이드라인을 주는 것처럼 별도로 경찰에 유서를 남겼다.

현재로서는 자승 스님의 타살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최초 화재가 일어날 당시 사찰에는 자승 스님 외에 4명이 있었다고 알려졌다. 일부 언론에서도 자승 스님은 혼자 요사채에 있었고, 나머지 사람들은 인근에 있었는데 화재가 발생한 후 이들이 모두 대피하면서 추가 인명 피해는 없었다고 보도했다.

이에 대해 조계종 측은 “기존 일부 보도 내용 중 (화재 현장에) 4명이 함께 있었다는 내용은 확인 결과 사실과 다르다”며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정확한 사실은 경찰 수사를 통해 밝혀야 할 내용이다. 실제 사찰에 몇 명이 있었고, 이들이 이번 사건과 관련은 없는지를 규명해야 한다.

현재 경찰은 타살 등 다양한 가능성을 놓고 수사에 착수했다. 이번 수사에는 국가정보원까지 나서서 사망 원인과 과정을 밝히는 데 집중하고 있다. 여기에는 자승 스님이 남긴 유서의 진위 여부와 제3자의 강요나 위력에 의해 작성됐을 가능성도 포함된다. 이 사건은 향후 경찰 등의 수사 향방에 따라 엄청난 후폭풍이 일어날 수도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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