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루샤’ 없이 ‘1조 클럽’ 어떻게 가능했나…MZ가 바꾼 쇼핑 문법
  • 조유빈 기자 (you@sisajournal.com)
  • 승인 2023.12.04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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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 대신 실적 올린 마뗑킴·시에 등 신진 브랜드…한 달 매출 10억 ‘효자’ 등극
2030 매출 비중 60% 이상…‘전통 명품’ 기존 전략 버린 백화점업계

지난해 9500억원의 매출을 올린 서울 여의도 더현대서울이 올해 '1조 클럽' 반열에 올랐다. 전날 현대백화점은 더현대서울이 2일까지 1조41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연매출 1조원’을 달성하는 데 소요된 기간은 33개월. 국내 백화점 중 최단 기간이다. 이 성적은 일명 ‘3대 명품’으로 불리는 ‘에루샤(에르메스·루이비통·샤넬)’ 매장 없이 달성한 것이라 이례적이라는 평가다.

‘에루샤’ 대신 백화점의 매출을 끌어 올린 것은 영패션 분야의 ‘신진 브랜드’다. MZ세대에게 높은 지지를 받고 있는 마뗑킴, 시에 등 패션 브랜드가 한 달에 5억~10억원의 매출을 내면서 실적을 견인했다. MZ세대의 매출 비중이 60% 이상을 차지하고, 외국인 구매 고객 중 72.8%가 2030세대다.

전날 현대백화점은 더현대서울이 2일까지 1조41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백화점의 매출을 끌어 올린 것은 영패션 분야 ‘신진 브랜드’다. ⓒ연합뉴스
전날 현대백화점은 더현대서울이 2일까지 1조41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백화점의 매출을 끌어 올린 것은 영패션 분야 신진 브랜드다. ⓒ연합뉴스

‘애물단지’ 영패션의 부상…가성비에 트렌드 맞물렸다

미래에셋증권 리서치센터에 따르면, 백화점 영패션의 2023년 상반기 성장률은 13%로, 같은 기간 전체 백화점 의류 성장률(7%)을 크게 상회했다. 그동안 명품 등을 구매하는 ‘큰 손 소비’가 매출의 주축을 이루던 백화점에서, 영패션은 ‘애물단지’처럼 여겨지는 카테고리였다. 가격 경쟁에 용이하고 유행을 반영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영패션 분야는 온라인 쇼핑에서 특히 두각을 나타냈다.

이커머스가 활성화된 2010년대부터 온라인 쇼핑몰과 SNS 마켓으로 이탈하는 MZ세대의 움직임은 활발해졌고, 그로 인해 백화점의 영패션 실적은 쪼그라들었다. 출시된지 20~30년이 지난 기성 영패션 브랜드들의 타깃층도 모호해졌다. 이들에게 매출을 기대하기 어려웠던 백화점들은 명품 판매를 통해 매출 몰이에 나섰다.

변화가 감지된 건 코로나19 이후다. 고물가로 인해 소비가 위축되면서 명품 소비는 주춤해졌고, 주력 소비층으로 올라선 MZ세대는 SNS과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새로운 브랜드에 주목했다. 블로그 마켓에서 시작해 최근 큰 인기를 끌고 있는 브랜드인 ‘마뗑킴’의 티셔츠 금액은 10만원 이하, 코트나 자켓 가격은 20~30만원 대다. 영패션의 ‘가성비 경쟁력’과 소비를 지향하지만 절대적 지출 규모는 줄이는 MZ세대의 ‘소비 트렌드’가 부합하면서 시너지를 냈다는 평가다.

업계는 MZ세대를 오프라인으로 이끌어 내기 위해 기존 문법을 깨고 신진 브랜드를 유치해야 했다. 이를 위해 인스타그램 팔로우 수나 온라인 플랫폼 판매 랭킹을 살피며 브랜드 발굴에 나섰고, DM 등을 통해서도 섭외를 했다는 후문이다.

MZ세대의 취향을 반영해 입점시킨 패션 브랜드들은 매출을 이끌며 백화점의 새로운 ‘효자’들이 됐다. 마뗑킴은 지난 7월 더현대서울 매장에서만 월 매출 12억원을 찍었다. 보통 매출 최상위 의류 브랜드의 매출은 2억~3억원 선으로, 마뗑킴의 해당 매출은 백화점 영패션 브랜드 단일 매장에서 올린 역대 최대 매출이다. 더현대서울에 입점한 국내 디자이너 브랜드 시에는 월 매출 7억원, 이미스는 5억원을 기록하는 등 그외 신진 브랜드들도 눈에 띄는 실적을 냈다.

신세계백화점은 센텀시티점에 영패션 전문관 하이퍼그라운드를 만들면서 입점 브랜드 중 절반을 국내 디자이너 브랜드로 꾸렸다. ⓒ신세계백화점 제공
신세계백화점 센텀시티점은 올해 영패션 전문관 ‘하이퍼그라운드’를 선보인 데 이어 ‘뉴컨템포러리 전문관’을 열고 MZ세대 공략에 나섰다. ⓒ신세계백화점 제공

소비 침체 속에서도 두 자릿수 매출 신장률 기록

고금리와 고물가에 따른 소비 침체 속에서도 올해 롯데, 신세계, 현대 등 주요 백화점 3사의 영패션 브랜드 매출은 두 자릿수 신장률을 기록했다, 2019년 –1.3%에서 올해 25.1%까지 매출 신장률이 높아진 현대백화점을 비롯해, 2019년 5% 내외였던 롯데백화점의 영패션 매출 신장률은 올해 10%로 올라섰고 신세계백화점도 –5.9%에서 10.4%로 성장세를 보였다. 특히 신진 브랜드를 강화한 신세계 강남점의 3분기 매출 신장률은 63.2%로 나타나 ‘영패션의 부활’을 입증했다.

‘세대 교체’된 영패션 브랜드들이 모든 백화점에 입점되지 않았다는 사실은 오히려 MZ세대를 모여들게 했다. 웬만한 백화점에 대부분 입점해있는 기성 브랜드들과 달리, 매장이 있는 점포에 젊은 세대들의 발길이 이어지면서 집객력 부문에서도 효과를 본 것이다. 온라인에서 인기를 끌었던 브랜드들이 오프라인에 본격적으로 출점하면서 소비자는 브랜드에 대한 오프라인 경험을 얻고, 브랜드 입장에서는 백화점 매장을 기반으로 외형 확장을 했다는 분석이다.

업계가 새로운 브랜드를 끌어들이는 움직임은 지속될 전망이다. 신세계백화점은 올해 상반기 센텀시티점에 영패션 전문관 하이퍼그라운드를 만들면서 입점 브랜드 중 절반을 국내 디자이너 브랜드로 꾸렸다. 이중 14개가 백화점에서 처음 만나는 브랜드다. 리뉴얼 이후 6개월간 20대(101%)와 30대(87%) 방문객이 크게 증가하는 효과를 봤다. 롯데백화점 잠실월드몰의 마르디 메크르디는 국내 패션 브랜드 매출 1위를 달리고 있다. 매출 절반 이상이 외국인 관광객에서 나올 정도로 글로벌 MZ세대에게도 인기를 얻고 있다.

팝업스토어나 ‘인스타그래머블(인스타그램에 올릴 만한)’ 스팟도 20~30대의 유입과 전반적인 매출 상승세에 도움을 줬다. 신진 브랜드에 대한 소비자 수요를 포착할 수 있는 팝업스토어는 ‘한시적’이고 ‘한정적’이라는 키워드로 MZ세대를 끌어들였다. 1~2주 간 운영하는 동안 10억~20억원에 육박하는 매출을 올린 사례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업계는 영패션 분야가 오랫동안 부진을 이어왔던 만큼, 당분간 성장 여력이 충분할 것으로 보고 있다. 배송이 미래에셋증권 애널리스트는 “빠른 유행 속에서 트렌드를 잘 읽어야 하는 영패션 분야의 특성상, 식상하지 않은 브랜드를 빠른 호흡으로 발굴하고 육성하는 능력에 따라 성과가 차별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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