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암물질이 복어 독(毒)보다 더 무섭다고?
  •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명예교수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3.12.10 10:05
  • 호수 1782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막연한 공포는 금물…장기간에 걸쳐 지속적·반복적으로 섭취하거나 노출되는 경우에만 문제 

소비자가 발암물질의 공포에 떨고 있다. 심지어 발암물질이 복어 독(테트로도톡신)보다 더 무섭다는 소비자도 있다. 공원이나 산책로의 장식용 조경석에도 발암물질인 석면이 들어있다고 걱정한다. 후쿠시마 오염수(처리수)의 태평양 방류를 반대하는 것도 방사성 핵종의 발암성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최근에는 제로 푸드(설탕이 없다는 식품)에 넣는 아스파탐의 발암성이 도마에 오르기도 했다.

ⓒfreepi
ⓒfreepik

암은 대표적인 ‘만성’ 질환

우리가 암을 무서워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조기진단과 치료 기술의 발달로 완치율이 60%를 넘어섰다고는 하지만 암은 여전히 누구에게나 두려운 질병이다. 건강을 위협하는 악성 종양인 암의 발생 원인을 확실하게 밝혀내지 못하고 있다. 다만 세포의 대사 과정에서 다양한 이유로 발생하는 DNA 손상을 직접적인 원인으로 추정하고 있을 뿐이다.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암연구소(IARC)가 인체 발암성에 대한 과학적 근거를 확인해 ‘1군(Group 1)’으로 분류한 화학물질은 방사성 물질을 포함해도 고작 60여 종뿐이다. 대부분은 벤젠·다이옥신처럼 산업이나 환경오염 현장에서 발견되는 화학물질이다. 인공적으로 합성한 화학물질만 문제가 되는 것도 아니다. 포도당·과당을 발효시키는 효모가 만드는 천연물인 에탄올(술)도 인체 발암물질이다. 바이러스·박테리아·간디스토마·기생충도 인체 발암물질 목록에 들어 있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섭취·흡입하거나 노출되는 환경적 요인도 암을 일으키는 원인이 된다. 담배·숯불·젓갈(중국식)·가공육·미세먼지·햇빛(자외선)·콜타르·배기가스(경유) 등이 그런 예다.

인체 발암물질의 독성도 천차만별이다. 매년 전 세계에서 흡연에 의한 폐암으로 사망하는 사람은 100만 명이 넘고, 재래식 부엌에서 장작불·숯불로 음식을 조리하다가 폐암으로 조기 사망하는 사람도 400만 명이 넘는다. 과음에 의한 간암 사망자도 60만 명이 넘는다. 그런데 햄·소시지 같은 가공육 과다 소비로 목숨을 잃는 사람은 많지 않다.

암은 대표적인 ‘만성’ 질환이다. 암은 즉각적·무차별적으로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장기간에 걸쳐 지속적·반복적으로 섭취하거나 노출되는 경우에만 문제가 된다. 발암성이 누구에게나 똑같이 나타나는 것도 아니다. 우리 세포는 DNA 손상을 방지·보수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능력은 개인의 유전적·면역학적 특성에 따라 크게 다를 수밖에 없다.

그래서 발암성을 과학적으로 확인하는 일은 쉽지 않다. 불가피한 사고에서 확인한 자료나 암 환자를 대상으로 하는 추적조사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더욱이 발암물질에 대한 인체 실험은 윤리적인 이유로 허용하지 않는다. 세포·동물 실험은 예비 자료일 뿐이다. 발암성 판단은 고도의 전문성이 꼭 필요한 일이다. 아무에게나 맡겨서도 안 되고, 아무나 그런 일을 하겠다고 나서서도 안 된다. 발색 샴푸에 들어있는 THB(1, 2, 4-트라이하이드록시벤젠)의 발암성을 소비자단체에 맡겨버린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조처는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공정·형평성을 핑계로 축구 심판을 장삼이사에게 맡겨버린 것과 같은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인체 발암물질이 전혀 없는 세상에서 사는 일은 말처럼 쉽지 않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일 수도 있고, 감당할 수 없는 비용이 발생할 수도 있다. 햇빛의 경우가 그렇다. 자외선의 발암성 때문에 햇빛을 완전히 차단해 버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햇빛이 건강에 꼭 필요한 비타민D를 합성하는 고마운 역할도 한다. 햇볕을 쬐지 못하면 구루병에 시달리게 된다.

 

허용 기준은 안전 기준이 아니다

대표적인 발암물질인 에탄올(술)도 골칫거리다. 지나친 음주가 건강과 생활을 망친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그런데도 인류 역사에서 금주령은 대부분 실패했다. 엄격한 금주령을 실천하고 있는 이슬람 교인들이 거의 유일한 성공 사례인 셈이다. 지방이 포함된 살코기나 생선을 굽거나 훈제할 때 만들어지는 벤조피렌의 경우는 더욱 난처하다. 벤조피렌의 발암성을 걱정한다면 모든 숯불구이집은 다 문을 닫아야 하고, 라면 수프와 우동 국물에 필수 성분인 훈제 가다랑어포(가쓰오부시)도 포기해야만 한다.

길이 없는 것은 아니다. 중세의 명의 파라켈수스가 남긴 ‘용량이 독을 만든다(The dose makes the poison)’는 독성학의 교훈이 그 열쇠다. ‘약(藥)’과 ‘독(毒)’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아무리 몸에 좋은 것이라도 지나치게 많이 쓰면 독이 되고, 아무리 치명적인 독이라도 적당하게 적은 양을 쓰면 약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실제로 우리가 사용하는 의약품은 예외 없이 치명적인 독극물이다. 

의사의 처방과 약사의 조제가 반드시 필요한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심지어 누구나 편의점에서 구매할 수 있는 일반의약품인 아스피린도 지나치게 많이 복용하면 치명적인 피해가 발생한다. 유해 물질의 사회적 관리에 가장 일반적인 수단이 바로 일일섭취허용기준(ADI)과 같은 ‘허용 기준’이다. 최근에 2A군으로 지정된 아스파탐은 식약처가 체중 1kg당 40mg을 ADI로 권고한다. 미국의 경우에는 우리보다 더 많은 50mg을 권고한다. 

소비자에게 허용 기준은 단순히 정부가 권고하는 참고 자료다. 그러나 제조·유통 기업은 사정이 다르다. 허용 기준은 신경을 쓸 수밖에 없는 현실적 규제다. 허용 기준을 넘어서는 제품을 생산·유통하는 것은 불법이다. 사법적으로 처벌받을 수도 있는 범죄행위다. 허용 기준을 지키기 위한 기술적·경제적 투자를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유해 물질의 허용 기준을 우리의 건강을 보장해 주는 ‘안전 기준’으로 착각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와 미국에서 정해 놓은 아스파탐의 허용 기준이 서로 다른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아스파탐의 인체 유해성은 우리나라와 미국에서 다르게 나타날 합리적인 이유가 없다. 아스파탐의 과다 섭취 때문에 발생하는 사회적 비용에 대한 인식이 다를 뿐이다.

허용 기준은 고속도로의 ‘제한속도’와 같은 것이다. 허용 기준보다 많이 섭취해도 아무 문제가 없을 수도 있고, 허용 기준보다 적은 양을 먹었는데도 심각한 부작용이 발생할 수도 있다는 뜻에서 그렇다. 다만 허용 기준을 지킨 제조사에는 소비자의 피해에 대한 사법적 책임을 묻지 않는다. 

실제로 허용 기준은 안전성과 함께 사회적 경제성도 고려해 결정한다. 허용 기준을 너무 높게 설정하면 사회적으로 보건·의료 비용이 늘어난다. 반대로 허용 기준을 너무 낮게 정하면 생산·유통이나 환경 관리에 필요한 사회적 비용을 감당하기 어렵게 된다.

발암물질을 굳이 가까이할 이유는 없다. 그렇다고 발암물질을 복어 독보다 더 무서워할 이유도 없다. IARC의 발암물질 분류는 발암성을 연구하는 전문가와 노출을 줄이는 제도적 장치를 만드는 정부를 위한 것이다. 일반 소비자가 신경 쓸 필요는 없다.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