챗GPT 부럽지 않은 인간 컴퓨터의 사학 보물
  • 조창완 북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3.12.10 09:05
  • 호수 17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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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평론가 김종성이 쉽게 풀어낸 단재의 《조선상고사》

한국 역사 드라마에는 정치적 파고에 따라 큰 변화가 있었다. KBS 대하사극을 집중해 보면 1980·90년대는 《대명》 《개국》 《여명의 그날》 《용의 눈물》처럼 왕조의 탄생에 머물렀다. 영웅의 시대라고 할 수 있지만, 이 영웅조차 중국에 대한 사대나 미국이라는 압도적인 힘에 기댄 이승만 정부를 중심으로 그렸다. 하지만 2000년대에 들어서면 《불멸의 이순신》 《대조영》 《천추태후》 《정도전》처럼 인간의 영역으로 들어온다. 왕에게 집중된다 할지라도 인간의 갈등에 관심을 더 보인다.

《조선상고사》|신채호 지음|김종성 옮김|시공사 펴냄|524쪽|2만2000원
《조선상고사》|신채호 지음|김종성 옮김|시공사 펴냄|524쪽|2만2000원

그리고 최근에는 KBS2 《고려거란전쟁》처럼 주체적인 시각에서 정치나 외교 등을 보기 시작하는 의미 있는 드라마가 대중의 시선을 사로잡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지침이 돼줄 수 있는 책은 단재 신채호의 《조선상고사》다. 역사 콘텐츠 전문가인 김종성 작가는 최근 읽기 쉽게 풀어쓴 《조선상고사》를 출간했다. 글과 방송을 통해 역사를 쉽게 풀어낸 그에게도 이 책은 난제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 시작은 단재의 뛰어난 통찰에 대한 공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 1000년간 한국에서 가장 인상적인 역사가는 신채호였다. 지난 1000년간 역사학계가 숨기고 감춘 진실을 그가 소리 높여 외쳤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나라에 역사학이란 장르가 명확히 있는 것은 아니다. 그저 시대를 정리하는 풍토는 계속됐다. 다만 여러 가지 정치적 상황에 따라 역사는 편취되고, 발췌되고, 폄훼됐다. 익히 알려진 것처럼 사대를 바탕으로 쓴 김부식의 《삼국사기》나 조선의 입장에서 고려사를 쓴 것, 일제의 시각에서 조선의 역사를 훼손한 것은 당연하기 때문이다.

단재는 이 시대를 넘어, 조선의 역사가 시작하던 시점까지는 가장 명확하게 관통한 역사의 인공지능(AI)라 할 만큼 초인적인 능력을 보여준다. 단재는 어린 시절 할아버지를 통해 알게 된 구한말 권신 신기선의 서가를 시작으로 수많은 역사 자료를 접했다. 이후 성균관에 들어가서는 조선의 서고를 만났고, 중국으로 망명한 후에는 사고전서뿐만 아니라 베이징대 도서관 등에서 수많은 역사책을 읽고, 데이터베이스화했다.

이후 그는 젊은 시절 ‘황성신문’ 기자 활동을 시작으로 수많은 매체에 역사관을 표출했다. 물론 그가 만들어내는 지식은 단순히 검색엔진이나 챗GPT에서 나온 것처럼 건조한 것이 아니라, 냉철한 눈으로 사가(史家)들의 관점을 파악해 바로잡는 것이었다. 단재의 수많은 저술 가운데 《조선상고사》가 가진 가치는 특별하다. 이 책은 단재가 1928년 5월 대만 기륭항에서 체포된 이후 뤼순감옥에 수감된 상태에서 쓴 글이기 때문이다. 일제의 검열이라는 난제에도 그는 우리 민족이라는 주관적 관점에서 조선의 역사를 되살린다. 물론 이 모든 것은 자신의 주관적인 관점이 아니라 《사기》와 《춘추》 등 공인된 중국 역사서를 모두 관통해 읽어낸다는 점에 그 위대함이 있다. 안타까운 것은 단재가 쏟아낸 기록물을 증명하는 이 시대 학자조차 찾기 힘들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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