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자’까지 넷플릭스 품에 보냈는데…웨이브-티빙, ‘약한 영웅’ 될까
  • 조유빈 기자 (you@sisajournal.com)
  • 승인 2023.12.06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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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병 MOU 체결로 양사 통합 논의 본격 시작돼
‘독점 공개’ 등 콘텐츠 ‘배급’ 방향 재편 필요성 제기

CJ ENM과 SK스퀘어가 지난 4일 티빙과 웨이브의 합병 양해각서(MOU)를 체결하면서 ‘통합의 본격화’가 시작됐다. 소비자들은 구독료 절약 측면에서 환영 의사를 밝히고 있고, 학계에서도 ‘N번째’ 언급됐던 양사 통합이 실제로 추진되는 부분에 대해 K콘텐츠 제작과 유통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분위기다.

그러나 넷플릭스가 한국 OTT 시장에서 독주를 이어가고 있는 상황에서, ‘콘텐츠’에 대한 접근이 새롭게 이뤄져야만 경쟁이 가능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콘텐츠 경쟁력 없이 양사 합병의 그림만으로는 유의미한 변화를 그려낼 수 없다는 것이다. 특히 투자·제작비를 회수하기 위해 넷플릭스에 작품을 동시 배급하는 현 상황이 이어질 경우, 합병 이후에도 시장 순위는 변동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

웨이브 드라마 《약한 영웅》의 한 장면 ⓒ웨이브 제공
웨이브 드라마 《약한 영웅》의 한 장면 ⓒ웨이브 제공

웨이브가 《약한 영웅》 시즌2를 포기한 배경은

웨이브 입장에서는 티빙과의 합병이 절실했을 것이라는 시각이 나온다. 합병 화두가 처음 떠오른 3년 전부터 사실상의 ‘러브 콜’을 보내온 웨이브는 최근 인기 작품의 시즌2 제작을 포기한 바 있다.

웨이브 오리지널 시리즈 《약한 영웅》은 웨이브의 몇 안되는 ‘효자’로 여겨졌던 작품이다. 겉보기에는 약해 보이는 상위 1%의 모범생이 학교 안팎의 사태에 대항하며 성장하는 학원물로, 공개 직후 높은 화제성을 기록하며 웨이브 유료 가입자 유치에 기여한 작품이다. 웨이브 ‘오리지널 시리즈’의 가능성을 보여준 작품으로 해석되기도 했다.

탄탄한 시나리오와 배우들의 열연을 바탕으로 크게 흥행했던 작품이기에, 시즌2에 대한 기대감도 컸다. 그러나 웨이브는 가장 아끼던 자식을 넷플릭스 품으로 보냈다. 오리지널 콘텐츠 투자 여력이 없다는 점을 감안해, 제작사와의 논의 끝에 작품의 ‘이적’을 결정한 것이다. 시즌1과 시즌2가 다른 플랫폼에서 공개되는 일은 이례적으로, 흥행을 담보하는 ‘시즌제 공개’를 포기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웨이브의 현실이라는 진단이 나오기도 했다.

제작사 쇼트케이크는 “촬영을 앞두고 양사가 처한 상황에서는 후속 시즌을 위한 협업이 어려운 것으로 확인됐다”며 “웨이브와 충분한 사전 논의를 나눈 뒤 넷플릭스와 함께 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힌 바 있다.

업계는 웨이브의 ‘경영난’이 배경이 된 것으로 본다. 웨이브는 지난해 1217억원의 영업 손실을 냈고, 올해 3분기까지 797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지속적으로 오리지널 콘텐츠에 투자를 이어왔지만 유의미한 성과를 거두지 못한 것이다.

전체적으로 올해 국내 OTT 플랫폼의 콘텐츠 투자는 부진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압도적으로 콘텐츠를 쏟아내고 있는 넷플릭스에 대한 선호 현상은 갈수록 뚜렷해지면서, 시장 1위 자리는 공고한 상황이다. 콘텐츠에도 공격적인 투자를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 만큼, 흥행이 보장된 작품들의 넷플릭스행(行)은 더 가속화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티빙은 국내 케이블 드라마와 예능을 중심 콘텐츠로 삼고 있고, 파라마운트+관 등을 통해 해외 콘텐츠도 제공한다. ⓒ티빙 홈페이지 캡처
티빙이 제공하고 있는 콘텐츠들 ⓒ티빙 홈페이지 캡처

수익성 개선된 티빙에 방점…‘유효한 경쟁’ 하려면?

다행히 티빙의 수익성은 최근 개선되고 있다. 증권가에서도 티빙의 실적 반전에 대해 “장기적으로 미디어 생태계를 새롭게 바꿀 것”이라며 호평했다. CJ ENM의 자회사 스튜디오드래곤은 올해 3분기 OTT 공급과 TV 동시 방영작 판매 등으로 국내·외 판매 매출을 분기 단위 역대 최고치로 올리면서 콘텐츠 경쟁력을 입증했다.

티빙과 웨이브가 MOU를 체결한 배경은 ‘OTT 경쟁력 강화’다. 규모의 경제로 콘텐츠 제작·투자력을 강화해 넷플릭스에 맞서겠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이기훈 하나증권 연구원은 “티빙과 웨이브가 합병하면 구독자가 늘어나고, 콘텐츠 제작 원가가 절감될 것”이라고 짚은 바 있다. 플랫폼의 덩치가 커지면서 투자 비용이 올라가면, 오리지널 콘텐츠 수가 확대될 수 있고, ‘대형 작품’이 만들어질 가능성이 커진다.

오리지널 콘텐츠의 공개 여부와 성적에 따라 분기별 실적이 갈리는 OTT 플랫폼 특성상, 티빙-웨이브 연합군이 콘텐츠 투자와 제작 측면에서 경쟁력을 발휘하지 못할 경우 콘텐츠를 지속적으로 공개하는 넷플릭스 독주 체제가 이어질 공산이 크다는 분석이다.

공정거래위원회의 기업결합심사 등에 대한 부담도 맞손을 잡으려는 티빙과 웨이브의 눈 앞을 가리고 있지만, 양사 통합이 무사히 마무리된다면 통합 플랫폼의 월간 활성 이용자 수(MAU)는 최대 930만 명이 될 전망이다. 중복 사용자를 제외하면 1000만 명이 넘는 넷플릭스의 MAU에 미치지 못하는 수치이지만, 콘텐츠 수급이 제대로 이뤄질 경우 체질적으로 규모의 경제가 작동해야 하는 OTT 시장에서 ‘유효한 경쟁’을 기대해볼 수 있다.

이를 위해 대대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양사의 시너지가 발휘되기 위해서는 콘텐츠 ‘배급’이 재편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대표적이다. 스튜디오드래곤은 티빙에 오리지널 프로그램을 공급하며 매출을 올리고 있지만, 넷플릭스를 통해서도 작품을 공개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K콘텐츠가 토종 OTT와 글로벌 OTT에 동시 배급되는 현상은 ‘투자비 회수’ 때문”이라며 “토종 OTT가 합병된 플랫폼 안에서만 국내 제작·투자 작품을 보게 하려면 출혈을 감수해야 할 것”이라고 짚었다.

tvN 《무인도의 디바》나 JTBC 《힘쎈여자 강남순》, MBC 《오늘도 사랑스럽개》 등 티빙과 웨이브의 무기가 될 수 있는 콘텐츠들도 넷플릭스에 포진돼있는 상황이다. 이렇게 콘텐츠가 다수의 플랫폼에서 공개될 경우 티빙-웨이브 통합 OTT의 경쟁력이 옅어지고 가입자 유치에 작용할 유인도 적어진다는 점에서, 넷플릭스처럼 ‘독점 공개’ 전략을 취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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