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트 폭력·이별 살인, 그 속에 어른거리는 남친의 두 얼굴 [정락인의 사건 속으로]
  • 정락인 언론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3.12.10 12:05
  • 호수 17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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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으로 포장한 무서운 집착, 이별 선언 후 스토킹 시작

사람은 누구나 영화 같은 아름다운 사랑을 꿈꾼다. 한 사람을 만나 서로 좋아하면 연인이 된다. 이때부터 연애를 하고 잘하면 결혼까지 할 수 있다. 그렇다고 모든 연인이 사랑의 결실을 맺는 것은 아니다. 이별하는 과정에서 자칫 목숨까지 잃을 수 있다. 최근 잇따르고 있는 ‘이별 살인’이 그것이다. 한때는 너무나 사랑했던 연인과의 이별이 이처럼 비극적인 결말이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서울 송파구 가락동의 한 아파트에 살던 김아무개씨(여·32)는 2015년 6월 지인의 소개로 동갑내기인 한아무개씨를 만나 사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거의 매일 붙어다니다시피 하며 친구들의 부러움을 사기도 했다. 당시 한씨는 김씨에게 지극정성이었고, 여자친구를 위하는 애틋함으로 보였다. 그러나 그런 행동은 점점 집착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어디를 가면 간다고 일일이 알려야 했고, 일거수일투족을 보고하지 않으면 불같이 화를 냈다. 이뿐만이 아니다.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과의 만남을 극도로 싫어하면서 김씨에게 병적으로 집착했다. 두 사람의 다툼도 잦아졌다. 결국 참다못한 김씨는 사귄 지 6개월 만인 2016년 2월, 한씨에게 결별을 선언했다.

2016년 4월, 1년가량 교제하다 헤어진 여자친구를 무참히 살해한 이른바 ‘송파 이별 살인 사건’이 발생했다. 작은 사진은 피해자의 생전 모습 ⓒ뉴시스·유족 제공

송파 사건, 가족 방심한 틈타 전 여친 살해

그러나 한씨는 이별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때부터 협박과 잔혹한 스토킹이 시작됐다. 거의 매일 김씨가 사는 아파트 앞에 나타났고, 맞은편 교회에 올라가 수시로 집 안을 들여다보기도 했다. 시간이 갈수록 협박 수위도 높아졌다. 불법촬영한 영상을 인터넷에 퍼뜨리겠다고도 했다.

김씨는 “(너에 대한) 마음이 와장창 깨졌는데, 깨진 접시를 붙여서 다시 우리가 만나서 결혼해서 잘 살 수 있을 것 같아? 나를 놓아줄 생각이 전혀 없는 거야? 사랑하는 방식이 잘못된 거잖아”라며 이별을 받아들이라고 호소했지만 소용없었다.

혼자 끙끙 앓고 있던 김씨는 부모에게 모든 사실을 털어놓았다. 경찰에 신고할 엄두는 내지 못했다. 그랬다가는 정말 큰일이 일어날 것만 같았다. 부모는 직접 딸과 출퇴근을 함께 하며 한씨가 단념하기만을 바랐다.

얼마 동안 한씨가 집 앞에 나타나지 않자 부모는 방심했다. 같은 해 4월19일, 김씨 아버지는 자전거를 타고 아침 운동을 나갔고, 미용실을 운영하던 어머니도 일찍 집을 나섰다. 김씨는 여느 때처럼 출근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이때 초인종이 울렸다. 현관문을 연 김씨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한씨가 흉기를 든 채 현관 앞에 서있었던 것이다. 한씨가 달려들자 김씨는 ‘악!’ 하는 비명과 함께 그를 피해 맨발로 아파트 야외주차장 쪽으로 달아났다. 하지만 얼마 못 가서 주차장 바닥에 넘어졌고, 한씨는 기다렸다는 듯이 다가가 흉기를 휘둘렀다. 김씨는 목과 심장, 옆구리 등 6곳을 찔렸고,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끝내 사망했다.

아파트 현관 입구의 폐쇄회로(CC)TV에는 비명을 지르며 건물을 빠져나가는 김씨와 칼을 들고 뒤를 쫓아 주차장에서 그녀를 찌르는 한씨의 모습이 고스란히 찍혀 있었다. 범행 현장에서는 한씨가 남기고 간 회칼과 로프, 나일론 끈, 염산 등이 발견됐다. 한씨는 김씨 부모가 방심하기를 기다리다가 그 틈을 노려 범행에 나섰던 것으로 드러났다. 결국 김씨는 죽어서야 한씨와 이별할 수 있었다.

이것은 국내에서 발생한 ‘이별 살인’의 대표적 사건이 됐다. 한씨는 법원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지만, 지금까지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고, 피해자나 유족에게 사과 한마디 하지 않았다.

한씨 재판에 참관한 필자에게 김씨 아버지는 “저놈은 내 딸만 죽인 게 아니라 우리 가족 모두를 죽인 것이나 다름없다”며 분노를 쏟아냈다.

2021년 11월, 이별을 통보한 연인을 흉기로 찌르고 아파트 19층에서 밖으로 던진 사건이 발생했다. ⓒ뉴시스

경남 양산 사건, 헤어진 동거녀 가족 몰살

함께 살던 동거녀가 이별을 선언하자 동거녀의 가족을 몰살하고 자살한 사건도 있었다.

경남 양산에 살던 신아무개씨(남·32)는 동거녀인 조아무개씨(32)가 “그만 살자”며 집을 나가자 앙심을 품었다. 2018년 10월27일 신씨는 둔기와 흉기를 포함해 무려 14개 범행도구가 들어있는 가방을 들고 조씨 가족이 사는 부산 사하구의 한 아파트를 찾아갔다. 그는 이곳에서 조씨를 포함한 할머니(84), 아버지(65)와 어머니(57) 등 일가족 4명을 무참히 살해했다. 발견 당시 집 안 곳곳에는 혈흔이 낭자했다. 화장실 욕조에는 조씨 부모와 할머니의 시신이 포개진 채 비닐과 대야로 덮여 있었다. 거실에는 조씨가 피범벅이 된 채 숨져 있었고, 목이 졸린 흔적이 있는 등 일가족 중 가장 참혹했다. 신씨의 증오심이 얼마나 컸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작은방에는 신씨의 시신이 있었는데, 침대에 누운 채 질소가스를 연결한 비닐봉지를 머리에 뒤집어쓰고 있었다. 경찰 수사 결과 신씨는 평소 내성적인 성격으로 친구들과의 교류도 단절된 외톨이였다. 이런 상태에서 조씨와 헤어지면서 세상에서 고립됐고, 조씨에 대한 증오를 더욱 키우면서 끔찍한 범행으로 이어진 것이다.

2021년 11월에는 가상화폐 투자업체를 운영하던 김아무개씨(20대)가 동거녀가 이별을 통보하자 수차례 흉기로 찌른 후 19층 베란다 밖으로 떨어뜨려 살해한 충격적인 사건도 있었다.

지난 7월 충남 아산에서는 여자친구가 이별을 요구했다는 이유로 택시 안에서 흉기로 9차례 찔러 살해하려다 미수에 그친 사건이 있었다.

헤어진 여자친구가 다른 남자와 결혼하자 병적으로 집착하다 살해한 사례도 있다. 범인은 멀쩡하게 다니던 직장까지 그만두고 그때부터 약 3년간 집요하게 추적해 그녀가 사는 곳을 알아냈다. 그때부터 협박과 스토킹이 이어졌고, 임신한 전 여자친구를 살해하면서 끝이 났다.

지금까지 일어난 이별 살인을 보면 몇 가지 공통점이 나타난다. 상대에 대한 강박적인 집착과, 끝없는 의심과 소유욕, 일상생활 통제, 무조건적인 증오, 세상에 대한 피해의식, 살인적인 스토킹 등이다. 앞서 언급한 송파 이별 살인 사건에는 이 모든 것이 종합적으로 들어있다. 이에 대해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세상에 대한 피해의식을 가진 사람이 여성을 사귀게 되면 여성에게 병적으로 집착하게 될 가능성이 굉장이 크다”고 분석했다.

부산 사하경찰서는 2018년 10월, 한 아파트에서 일가족 4명과 용의자로 추정되는 남성 등 5명이 숨진 채 발견됐다고 밝혔다. ⓒ뉴시스

‘사적 영역’이어서 수사기관 개입에 한계

데이트 폭력이나 이별 범죄가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고 있지만 ‘사적 영역’이라는 한계가 있다. 수사기관이 예방 차원에서 개입하기 힘든 상황인 것이다. 그나마 2021년 3월 ‘스토킹 처벌법’이 통과되고, 같은 해 10월21일부터 시행되면서 최소한의 억제장치가 생겼지만 이것도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다. 이후에도 이별 살인이 계속되고 있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지난 7월 인천 남동구의 한 아파트에서는 데이트 폭력과 스토킹 처벌법 위반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은 남성이 법원의 접근금지 명령을 무시하고 전 여자친구를 스토킹하다 살해한 사건도 있었다. 피해자는 경찰에 두 차례 스토킹을 신고한 후 스마트워치를 제공받아 사용하다 반납한 지 4일 만에 죽임을 당했다.

지금은 남녀가 이별하려면, 끔찍한 이별 살인 피해자가 되지 않기 위해 치밀하고 계획적인 이별을 선택해야 한다.

 

■이별 살인 피해자가 되지 않는 방법

이별 살인의 피해자가 되지 않으려면 ‘집착’과 ‘사랑’을 구별해야 한다. 비슷한 것 같지만 완전히 다른 개념이다. 집착은 상대방을 사랑의 대상이 아닌 ‘소유의 존재’로 본다.

처음 시작하는 연인들은 남자친구가 출근할 때 직장까지 바래다주고, 퇴근하면 집에까지 태워다주고, 식사 때마다 챙겨주고, 수시로 전화나 문자를 통해 안부를 물으면 애정의 표시라고 생각한다.

집착남들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점점 관계를 통제하기 시작한다. 문자를 보냈는데 바로 읽지 않으면 불안해한다. 전화했을 때 받지 않거나 늦게 받으면 불같이 화를 낸다. 일거수일투족을 보고하듯 알려야 하고, 자기가 아닌 다른 사람을 만나는 것을 극도로 꺼린다. 여기에 의심이 더해져 무슨 말을 해도 믿지 않고 확인시켜 달라고 요구한다. 사실대로 말해도 절대 의심을 거두지 않는다. 이쯤 되면 사사건건 다툼이 시작된다. 집착남은 상대를 복종시키기 위해 폭언이나 폭력을 행사한다. 상대가 거리를 두기 시작하면 불안해하며 “죽어버리겠다” “같이 죽자” 등 극단적인 언행을 일삼는다. 또는 자세를 바꿔 “내가 잘못했다” “다시는 안 그러겠다”며 일단 상황을 넘어가기도 한다. 슬픈 가정사나 과거사를 들먹이며 동정심을 유발하는 것도 집착남들의 특징이다. 집착남들은 또 이별에 대비해 ‘협박용 증거물’을 남기기도 한다. 대표적인 것이 성관계 동영상이니 이런 것에 노출되지 않도록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

만약 지금 교제하고 있는 남자친구가 이런 강박적 집착을 보인다면 아주 위험하다. 아무리 배경이 좋고, 인물이 좋고, 능력이 뛰어나더라도 이런 사람과 결혼하면 의처증과 가정폭력에 시달릴 가능성이 아주 높다. 그렇다고 감정적으로 헤어지는 일은 절대 피해야 한다. 집착남은 상대를 ‘내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별을 쉽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오히려 증오심을 품고 병적인 스토킹이 시작되고 심하면 목숨까지 잃을 수 있다.

이렇게 되지 않으려면 계획적으로 이별해야 한다. 집착남 스스로 떨어져 나가도록 하는 방법이 가장 좋다. 혼자 감당하기 힘들다면 주변에 도움을 요청하거나 관계기관의 상담을 받아 대응하는 것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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