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대한체육회, 스포츠윤리센터 징계안 40%도 이행 안 했다
  • 김현지·조해수 기자 (metaxy@sisajournal.com)
  • 승인 2023.12.11 07:35
  • 호수 17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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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계 요구 249건 중 99건만 징계...10명 중 6명 빠져나가
문화체육관광부, 징계 불이행 시 제재 수단도 없어

시사저널의 12월1일자 <[단독]“다이빙 국가대표 지도자, 미성년 선수 성폭행하고 상습적으로 돈 상납받아”> 보도 이후,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대한수영연맹은 성폭행-돈 상납 의혹을 받고 있는 조우영 인천시청 감독에 대해 국가대표팀 지도자 일시 제외를 결정했다. 진상 규명 후 최종 징계를 결정할 방침이다. 스포츠윤리센터, 인천시체육회에서도 본격적인 조사에 착수했다. 성폭행 건은 인천지방검찰청에서 수사에 속도를 내고 있다.

그러나 진상 규명이 이뤄진다고 해도 결국 ‘솜방망이’ 처벌에 그칠 것이라는 주장도 제기된다. 씨줄과 날줄처럼 얽히고설켜 있는 ‘스포츠계 카르텔’이 작동해, 결국 ‘제 식구 감싸기’식 행태가 반복될 것이라는 지적이다. 실제로, 대한체육회와 산하 시·도체육회는 스포츠윤리센터의 징계 요구 10건 중 4건도 이행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시사저널은 뿌리 깊게 자리 잡은 스포츠계 카르텔을 심층 취재했다.

대한체육회 전경(왼쪽)- 스포츠윤리센터 입구(오른쪽) ⓒ시사저널 최준필ⓒ연합뉴스
대한체육회 전경 ⓒ시사저널 최준필
대한체육회 전경(왼쪽)- 스포츠윤리센터 입구(오른쪽) ⓒ시사저널 최준필ⓒ연합뉴스
스포츠윤리센터 입구(오른쪽) ⓒ연합뉴스

‘성폭행-돈 상납’ 의혹 감독, 국가대표팀 제외

A 선수는 2020년 6월○○일 밤 11시를 잊지 못한다. 이날따라 협회장, B 감독, 동료 선수들과의 회식 자리가 길어졌다. 자정을 향해 갈 무렵, A 선수는 B 감독의 팔뚝이 자신의 가슴에 닿아있음을 느꼈다. B 감독이 팔뚝으로 A 선수의 왼쪽 가슴을 누르고 있던 것이다. A 선수는 곧바로 양팔로 자신의 가슴을 감싸고 움츠렸다. 하지만 B 감독은 A 선수가 잠시 팔을 내린 틈을 타 건배를 제의했고, 그사이 A 선수의 가슴을 다시 팔뚝으로 눌러댔다. 이러한 일은 처음이 아니었다. 2019년 9월 우승 회식 자리에서도 B 감독이 A 선수의 왼쪽 가슴을 자신의 팔꿈치로 쓸어 올리거나 눌렀던 것이다. B 감독은 귓속말을 하면서 자신의 입술을 A 선수의 귀에 닿게 했다. B 감독의 성추행이 반복되자, A 선수는 용기를 냈다. 먼저 동료 선수, 트레이너, 코치 등 주변에 피해 사실을 알렸다. 형사 고소도 진행했다. 일부 동료 선수가 수사 단계에서 “성추행 사실을 A 선수에게서 들은 적이 없다”고 진술하며 고비를 맞기도 했다. 하지만 1심 재판부는 결국 강제추행 등 혐의로 기소된 B 감독에게 징역 1년의 유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A 선수가 피해 사실을 수사기관에 알린 이후 해당 팀의 선수, 코치, 트레이너 등은 팀 해체나 자신에게 불이익이 돌아올 수도 있다는 불안감을 느끼는 상황과 지위에 있었다”면서 “이러한 만큼 피해 사실을 들은 적이 없다는 이들의 일부 진술을 그대로 믿을 수 없다”고 판단했다(※편집자 주-2차 피해가 우려되는 부분은 공개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에게 불이익이 돌아올 수도 있다”는 판결문 대목은 스포츠계 카르텔의 본질을 보여준다. 체육시민연대 집행위원장인 홍덕기 경상대 교수는 “수요자인 선수, 공급자인 지도자, 관리자인 체육단체는 복잡한 이해관계로 얽혀 있어 어느 한 문제를 푼다고 해결되는 구조가 아니다”면서 “스포츠 분야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은폐 구조’가 작동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즉, 폐쇄적인 스포츠계에서 “나만 아니면 돼”라는 ‘침묵의 카르텔’이 생겨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체육계 종사자는 “선후배들이 협회 등에서 회장을 선출하고 이들이 임원도 한다”며 “이러한 집단에서 소속 지도자나 선수 등의 비위를 알리기 쉽지 않다. 피해 사실을 알리기 위해서는 스포츠계를 떠나겠다는 각오가 필요하다”고 토로했다.

문체부 “예산 삭감 등 제재 수단 고민 중”

침묵의 카르텔이 작동하고 있지만, 정부는 징계 권한을 스포츠계에 사실상 ‘일임’했다.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독립기구인 스포츠윤리센터는 피해 신고를 받거나 직권으로 사건을 조사한다. 이후 결과에 따라 문체부에 징계를 요청한다. 문체부는 이를 대한체육회에 내려보낸다. 대한체육회는 산하 시·도체육회 등 징계 대상자의 소속팀으로 다시 사건을 넘긴다. 이후 대상자의 소속팀(1차 징계기관)이 징계를 결정한다. 대상자가 이에 불복하면 소속팀의 상급기관인 시·도체육회(2차 징계기관)가 사건을 다시 살펴본다. 1, 2차 징계기관을 둬 합리적인 형식을 갖춘 듯하지만, 징계기관의 ‘인적 구성’상 제 식구 감싸기 결정이 이뤄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실제로, 징계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시사저널 취재 결과, 스포츠윤리센터는 2020년 9월2일부터 2023년 11월30일까지 249건의 징계안을 문체부에 요청했다. 이 가운데 99건(약 39%)만 징계가 결정됐다. 10명 중 6명은 진상 규명이 이뤄졌음에도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은 셈이다. 징계 요청에 대해 답변조차 하지 않은 건수도 120건이나 됐다. 이는 징계를 결정하지 않았거나 징계위원회조차 열지 않았다는 의미다. 심지어, 1년 동안 답변을 하지 않은 경우도 15건에 이르렀다(<표-유형별 신고·상담 접수 현황> <표-유형별 사건 처리 현황> 참조). 

더 큰 문제는 징계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문체부가 이를 제재할 수단조차 없다는 것이다. 문체부 체육인재양성과 관계자는 “자율적 집단에서 ‘인사권’이 있는 자가 징계를 할 수 있는 구조다. 문체부가 직접 징계를 하려면 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현재는 징계 요청에 대한 답변 시한이 없다”면서 “답변 시한을 명문화하거나 징계 요청에 대한 답변이 없는 기관에 대해선 예산 삭감과 같은 제재 수단을 마련하는 방침을 고민 중”이라고 덧붙였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고(故) 최숙현 트라이애슬론(철인3종경기) 선수 사건에 대해서도 제대로 된 징계가 이뤄지지 않았다. 최 선수는 감독과 운동처방사, 선배 선수들의 폭행과 가혹행위에 시달리다 2020년 6월26일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감독과 운동처방사, 선배 선수는 각각 징역 7년-8년-4년의 중형을 선고받았다. 최숙현 선수 사건을 계기로 스포츠계 인권 개선을 위한 이른바 ‘최숙현법’이 제정되기도 했다.

그런데 대한체육회는 이 사건에서마저도 사건을 덮는 데 급급했다. 문체부는 2020년 8월 대한체육회에 당시 김승호 사무총장을 ‘해임’하고, 사건 관계자인 센터장에 대해 ‘중징계’를 내리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대한체육회는 김 사무총장에게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면책’을, 센터장에겐 ‘견책’ 등의 경징계를 내리는 데 그쳤다. 익명을 요구한 스포츠계 관계자는 “핸드볼 국가대표 출신 임오경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최숙현 선수 사건에 대해 오히려 ‘지역 체육계를 걱정’하는 취지로 말한 녹취록이 보도되지 않았나”라면서 “임 의원은 이에 대해 해명했지만, 이는 스포츠계의 뿌리 깊은 병폐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고 비판했다.

시사저널 1781호 《[단독]“다이빙 국가대표 지도자, 미성년 선수 성폭행하고 상습적으로 돈 상납받아”》기사

스포츠윤리센터, 수사권 등 권한 확대돼야

스포츠윤리센터는 최숙현 선수 사건과 2019년 스포츠계 ‘미투(Mee Too·나도 당했다)’ 운동을 계기로 설립된 문체부 산하 독립기구다. 그러나 스포츠윤리센터에는 수사 권한이 없다. 설립 당시 수사권을 부여하기 위해 ‘특별사법경찰제’를 도입할 계획이었으나, 3년이 넘도록 관련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지 못했다. 징계권도 대한체육회가 가지고 있는 상황에서, 스포츠윤리센터는 조사 이상의 활동을 할 수 있는 힘이 전혀 없는 것이다.

스포츠윤리센터와 관련한 여러 규정이 ‘과도하게 제한적’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조우영 감독의 성폭행-돈 상납 의혹과 관련해, 스포츠윤리센터에서는 성폭력 건이 취하된 상태다. 대한체육회 규정상 성폭력 의혹을 신고할 수 있는 시효가 이미 지났기 때문이다. 대한체육회의 스포츠공정위원회 제25조의2(징계시효)를 보면, 성폭력 등의 징계 시효는 사건 발생일부터 5년이다. 이를 넘긴 안건은 심의·의결할 수 없다. 이에 대해 스포츠윤리센터 관계자는 “선수들이 체육계 카르텔 문화 때문에 비위 건을 곧바로 문제 삼지 못하고, 선수 생활을 접을 각오가 서야만 폭로하는 현실과 동떨어진 규정”이라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스포츠윤리센터, 스포츠공정위원회 등의 활성화가 최선이라고 조언했다. “각 체육회 내에 스포츠공정위가 설립된 지 오래됐지만, 실질적으로 작동하기 시작한 것은 불과 1년도 되지 않았다”는 것이 지역수영연맹 관계자의 설명이다. 야구 관계자는 “협회 임원이 중징계를 받는 등 야구협회에선 스포츠윤리센터의 징계 요청이 수용되기도 했다”면서도 “다만 스포츠윤리센터의 징계 요청에 대한 ‘사후 모니터링 강화’ 등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체육시민연대 대표인 허정훈 중앙대학교 스포츠정보테크놀로지연구소장은 “현재의 징계 결정 시스템상 제 식구 감싸기로 이어지거나 보여주기식 징계가 나올 우려가 크다”면서 “스포츠윤리센터의 조사 전문성 보완, 기능 확대 등의 대안이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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