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행기준 7배’…유례 없는 독감 유행에 심상찮은 폐렴까지
  • 이혜영 기자 (zero@sisajournal.com)
  • 승인 2023.12.07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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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흡기 감염병 거센 확산세…의료계 “진료 현장 살얼음판”
정부 ‘지나친 우려’ 선 그었지만 현장선 ‘의료체계 마비’ 경고
소아·청소년을 중심으로 인플루엔자(독감) 유행이 기승을 부리고 있는 10월30일 서울 성북우리아이들병원에서 독감 및 외래진료를 받으려는 어린이와 보호자들이 대기하고 있다. ⓒ 연합뉴스
소아·청소년을 중심으로 인플루엔자(독감) 유행이 기승을 부리고 있는 10월30일 서울 성북우리아이들병원에서 독감 및 외래진료를 받으려는 어린이와 보호자들이 대기하고 있다. ⓒ 연합뉴스

“아이가 밤새 열을 동반한 기침을 해서 아침 9시20분에 병원 예약앱을 켰는데 ‘오전 진료예약 마감’ 공지가 떴어요. 독감인지, 폐렴인지 몰라 X-ray 촬영이 되는 소아과로 가려 했는데, 예약조차 쉽지 않아요. 올 겨울도 전쟁이구나 싶습니다.” (경기도 의왕 거주 40대 시민)

호흡기 감염병 확산 여파에 전국이 시름시름 앓고 있다. 인플루엔자(독감) 환자 수는 반갑지 않은 ‘역대급 기록’을 경신하고 있고, 중국을 강타한 마이코플라스마 폐렴 국내 환자도 증가 추세다. 의료계는 동시다발적인 감염병 유행에 따른 ‘현장 마비와 대란’이 우려된다며 정부의 적극적인 대응책 마련을 주문했다.

 

소아·청소년 환자 폭증…中 휩쓴 폐렴까지 확산

7일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올해 47주차(11월19~25일) 외래환자 1000명당 독감 의심환자 수(의사환자분율)는 45.8명을 기록했다. 보건당국이 2023~2024년 절기 유행 기준으로 삼은 6.5명의 7배에 달하는 수치다. 독감 대유행이 현실화하면서 직전 주(11월12~18일)보다 무려 22% 폭증했다. 작년 같은 기간(13.9명)과도 3배 이상 차이가 난다.

소아·청소년으로 범위를 좁히면 상황은 더 심각하다. 47주차 7~12세 의사환자분율은 100.9명, 13~18세는 104명이다. 각각 유행기준의 15.5배, 16배에 달하는 것으로 사상 유례 없는 수준이다.

전국 병·의원마다 독감 환자와 각종 바이러스성 질환 환자가 북새통을 이루면서 ‘오픈런’(병원 문을 열기 전에 진료를 위해 대기하는 것)은 물론 ‘마감런’도 곳곳에서 목격된다.

최근 5년 간 마이코플라스마 폐렴 입원환자 발생 추이 ⓒ 질병관리청 감염병 표본감시 주간소식지 캡처
최근 5년 간 마이코플라스마 폐렴 입원환자 발생 추이 ⓒ 질병관리청 감염병 표본감시 주간소식지 캡처

여기에 마이코플라스마 감염병 확산세가 가팔라진 점도 우려를 더한다. 질병청이 전국 200병상 이상의 218곳 병원급 의료기관을 대상으로 한 표본감시 결과에 따르면, 세균성 급성호흡기감염증으로 입원한 환자 280명 중 270명(96.4%)이 마이코플라스마 폐렴균에 감염된 것으로 확인됐다. 최근 4주간 입원환자 수는 1.6배 증가했으며, 1~6세(37%), 7~12세(46.7%) 등 소아 연령층 비중이 높다.

마이코플라스마 폐렴 환자가 속출하고 있는 중국은 병실 부족 사태로 어린이 등 환자들이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하는 상황까지 내몰렸다. 수업 중단 학교가 점차 증가하면서 중국 교육부는 코로나19 사태 이후 처음으로 ‘경계령’을 내렸다.

마이코플라스마 폐렴은 기침과 발열, 두통·인후통 등을 동반하며 일반 감기나 독감과 비슷한 증상을 보이는 4급 법정 감염병이다. 예방 백신이 없고 비말 전파나 직접 접촉 등에 의해 감염된다. 통상 4~7년을 주기로 유행이 반복되는데 한국은 2019년 유행 당시 1만3000명 넘는 입원환자가 나왔다.

질병청은 2019년 마이코플라스마 폐렴 유행 당시 동기간 대비 현재 감염자 수가 절반에 불과하다며 ‘관리 가능한 수준’임을 강조하고 있다. 치명률이 낮고 치료법 역시 알려진 ‘흔한 폐렴’이기 때문에 과도한 공포를 가질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10월19일 대구 중구 경북대학교병원 소아청소년과에서 시민들이 진료를 기다리고 있다. ⓒ 연합뉴스
10월19일 대구 중구 경북대학교병원 소아청소년과에서 시민들이 진료를 기다리고 있다. ⓒ 연합뉴스

‘초기 대응’ 질타 쏟은 의료계…당국은 ‘과도한 우려’ 경계

의료계 입장은 다르다. 현 상황이 앞선 유행 때와는 여러 면에서 달라 ‘대란’이 벌어질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현재 유행하는 마이코플라스마 폐렴은 기존 항생제와 해열제가 잘 듣지 않는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여기에 독감 등 다른 호흡기 바이러스가 기승을 부리고 있어 중복 감염 가능성도 커진 상태다.

이렇게 될 경우 중증으로 이어져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게 의료계 판단이다. 실제로 최근 마이코플라스마 폐렴과 코로나19, 아데노바이러스에 중복 감염된 9세 남아가 입원 치료 중 상태가 급격히 악화되면서 끝내 숨지는 안타까운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박영아 이대서울병원 소아청소년과 소아호흡기 전문의 교수는 “최근 입원한 소아들은 마크로라이드 계열 항생제를 투여해도 증상이 호전되지 않는 마이코플라스마 폐렴균 비율이 높다”면서 “과거보다 주의가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특히 소아 중증환자를 치료할 수 있는 종합병원과 의료진이 턱없이 부족한 상황에서는 ‘초기 대응’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대한아동병원협회는 지난 4일 긴급 성명을 내고 정부의 안일한 대응을 질타하며 “소아 감염병은 초기 대응이 부실하면 유행이 한순간에 확산하는 특징이 있다”며 “진료 현장에서는 매일 살얼음판을 걷고 있지만, 질병청은 새로운 병원균이 아니고 치료할 수 있는 수준이라며 개인 방역수준을 높이는 것을 권고하는 데 그치고 있다”고 꼬집었다.

정부가 마이코플라스마 확산세를 가늠하기 위해 활용하는 표본감시 기준으로는 ‘과소 표집’ 가능성이 커 대상을 더 확대, 면밀한 추적과 관리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5살 아들을 키우고 있는 40대 직장인 박현(가명)씨는 “아이가 얕은 기침에서 시작된 감기로 일주일 넘게 일반 감기약을 먹었는데 증상이 점점 심해지더니 고열을 동반한 폐렴 증상을 보였고 마이코플라스마로 확인됐다”며 “집 가까운 곳엔 소아 입원 가능한 병원이 없어 차로 40분 거리 병실을 겨우 구했는데 입원 아이들 상당수가 폐렴”이라고 말했다. 박씨 자녀가 입원한 아동병원도 정부의 표본집계 대상에서는 제외된 곳이다.

의료계는 이처럼 현실과 정부 통계 간 괴리가 커 보다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입원 병실과 치료 가능 인력이 턱없이 부족한 상황에서 초반 ‘골든타임’을 놓칠 경우 최악의 상황을 맞닥뜨릴 것이라는 경고도 내놨다.   

질병청은 마이코플라스마 폐렴 확산 우려가 커지자 지난 6일 부랴부랴 전문가·관계부처 합동 점검 회의를 열고 현황 파악과 대응책 논의에 착수했다. 전문가들은 중증 환자 증가에 대비한 진료지침과 항생제 내성 환자에 쓸 치료제 사용 기준 확대 등을 권고했다.

지영미 질병청장은 “장기간 코로나19 유행을 거치면서 다른 호흡기 감염병에 대한 면역력이 약화돼 있다. 개인위생 수칙 준수 긴장감이 떨어지고, 동절기임을 고려해 철저한 대비가 필요하다”며 “마이코플라스마 폐렴 유행 증가에 대비해 치료제와 병상 부족 상황이 발생하지 않도록 만전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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