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전기차 대전(大戰) 동남아시아를 달군다
  • 최준영 법무법인 율촌 전문위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3.12.24 10:05
  • 호수 17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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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산 전기차, 동남아 파상 공세…세계 차 시장 판도 변화 예상

동남아시아를 상징하는 모습은 길을 가득 메운 오토바이 행렬이다. 경제력에 따라 자전거에서 오토바이로, 그리고 자동차로 변화하는 것은 많은 아시아 국가의 일반적인 발전 경로였다. 동남아 주요 도시의 자동차 대부분은 일본제다. 최근 현대자동차가 점유율을 높이고 있지만 태국의 경우 일제차가 시장의 80%를 차지하고 있으며, 인도네시아의 경우 그 비중이 90%에 이르고 있다. 영원할 것 같던 일제차의 동남아 지배가 최근 강력한 도전자를 만나면서 큰 변화를 겪고 있다.

최근 동남아 지역에서 전기차 판매량이 급속히 증가하고 있다. 올 2분기의 경우 전년 동기 대비 894% 증가했다. 지난해까지 전기차 보급이 제대로 되지 않았던 기저효과가 크게 반영된 결과지만, 전체 승용차 신차 판매의 약 6%를 전기차가 차지하면서 전기차 보급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이런 추세는 태국, 베트남,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동남아 지역에서 판매되는 전기차의 78.8%는 태국에서 판매되고 있으며 인도네시아(8%), 베트남(6.8%)이 뒤를 잇고 있다. 2027년까지 동남아 지역의 전기차 시장 규모는 약 26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중국 모빌리티 기업들이 동남아 지역의 전기차와 전기오토바이 시장을 적극적으로 공략하고 있다. ⓒEPA 연합
중국 모빌리티 기업들이 동남아 지역의 전기차와 전기오토바이 시장을 적극적으로 공략하고 있다. ⓒEPA 연합

동남아 지역 내 전기차 판매량 급증

동남아 지역 내 전기차 보급 확대는 베트남 빈패스트(Vinfast)와 중국 BYD 등의 경쟁적인 신차 출시에 따른 전기차 가격 하락이 주된 이유로 꼽힌다. 동남아 지역에서 판매되는 주요 5개 차종의 가격은 지난해에 비해 약 20% 이상 하락한 상태다. BYD를 비롯한 중국 업체들이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수출에 나서면서 동남아 지역 전기차 시장에서 중국제가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해 38%에서 올해 75%로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전기차 보급이 가장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곳은 태국이다. 태국은 일본 자동차 업체들의 동남아 생산거점 역할을 오랫동안 해왔고, 이에 따라 태국은 동남아 최대 자동차 생산국이자 수출국 지위를 유지해 왔다. 올해 태국에서 판매된 신차 가운데 13%가 전기차였는데, 이 중 80%는 중국산이었다. 지난해 10월 출시된 BYD의 SUV 모델인 Atto3가 전체 전기차의 31%를 차지하면서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중국을 제외한 세계 대다수 지역에서 전기차 판매 1위를 달리고 있는 테슬라의 태국 전기차 시장 점유율은 14%에 머무르고 있다.

2019년 MG Motor가 MG ZS라는 모델로 처음 태국에 진출했고, 2021년 장성자동차가 출시한 오라 굿 캣(Ora Good Cat) 모델이 인기를 끌면서 중국 전기차 업체들은 태국에 본격적으로 진출하기 시작했다. 중국의 대표적인 전기차 업체인 BYD는 지난해부터 태국 시장에서 판매를 개시했는데, BYD의 경우 단순 수출에 머무르지 않고 태국 동부 지역에 약 5억 달러를 투자해 전기차 공장을 건설하면서 태국을 수출거점으로 활용하기 위한 노력을 본격화하고 있다. BYD의 공장은 2024년부터 연간 15만 대 규모로 생산을 시작할 예정인데 이곳에서 생산된 차량은 태국 이외에 동남아는 물론 유럽으로 수출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BYD의 태국 공장 건립 이후 전기차 스타트업인 호존(Hozon), 광저우자동차그룹(GAC) 등도 태국에 연간 10만 대 규모의 전기차 생산라인을 구축하고 있다. 중국 전기차 업체들의 태국 진출이 본격화함에 따라 중국 이차전지 업체들도 태국 진출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태국에 대한 중국 전기차의 본격적인 진출은 태국 정부의 전기차 보급 정책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위한 방안이다. 태국 정부는 2030년까지 전기차가 자국에서 생산되는 전체 자동차의 30%를 차지하는 것을 목표로 다양한 지원 정책을 전개하고 있다. 전기차 구매를 촉진하기 위해 올해부터 2025년까지 약 1조5000억원의 예산을 편성해 대당 평균 약 260만원씩 구매보조금을 지급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일반 자동차에 부과되는 8%의 소비세를 전기차에 대해서는 2%로 인하하고, 도로세도 일반 자동차에 비해 80% 감면해 주는 등 세제 혜택도 부여하고 있다. 태국 정부는 2024년부터는 구매보조금 대상이 되기 위해선 태국에 생산기지를 건설하도록 규정함으로써 중국 업체들의 투자를 이끌어내고 있다. 태국 정부는 1800억원 이상의 투자를 시행할 경우 최대 8년까지 법인세를 면제해줄 뿐만 아니라 해당 토지를 영구히 보유할 수 있도록 해주는 등 파격적인 지원책을 제시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BYD 등 중국 전기차 업체가 태국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동남아 최대 인구 보유국인 인도네시아 역시 전기차 보급 및 생산 확대를 본격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세계 1위를 차지하고 있는 자국의 니켈 매장량을 기반으로 경쟁력 있는 이차전지 및 전기차 생산거점으로 자리 잡겠다는 의도다. 인도네시아는 2035년까지 연간 전기차 생산량 100만 대를 목표로 제시하고 있으며, 전기차 보급 확대를 위해 부가세를 일반 자동차 11%보다 대폭 인하된 1%를 적용하도록 하고 있다. 베트남에서도 전기차 보급은 올해부터 2032년까지 연평균 25%씩 증가해, 2022년 8400대였던 전기차 보급은 2032년엔 6만5000대 규모로 증가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차 산업 주도하던 일본, 중국에 대응 못 해

보통 중국 전기차 업체들은 경쟁 차종에 비해 압도적인 가격 우위로 시장점유율을 확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동남아 지역에서 중국 전기차는 명품 대접을 받으면서 중국 본토에 비해 더 높은 가격으로 판매되고 있다. ZBT의 Neta V 차종은 중국에서는 약 1345만원에 판매되는데, 태국에서는 약 2824만원에 판매되는 것이 대표적이다. 중국제가 저렴하다는 인식이 최소한 전기차 시장에서는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 업체들은 전기차 외에도 동남아 지역의 최대 이동수단인 전기오토바이 시장도 적극적으로 공략하고 있다. 과거 중국은 저렴한 가격을 무기로 동남아 수출을 대폭 확대하기도 했지만 일제 오토바이의 고품질에 익숙한 소비자들의 눈높이를 충족시키지 못해 지속적인 시장 확보에 실패한 바 있는데, 이제는 전기오토바이로 전환해 시장 공략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중국 업체들의 이러한 점유율 확대에 대해 이 지역 자동차 산업을 주도하던 일본 업체들은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못하고 있다. 토요타를 비롯한 업체들의 경쟁력을 갖춘 전기차 모델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태국 픽업 시장의 50%를 차지하고 있는 이스즈(ISUZU)가 2025년이 돼서야 전기 픽업트럭 모델을 출시할 예정이며, 토요타의 경우 2027년 이후에야 전기 승용차 모델을 출시한다는 계획이다. 중국산 전기차가 동남아 지역을 거점으로 본격적인 수출에 나서면서 세계 자동차 시장은 큰 변화를 맞이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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