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당국 ELS 조사에 벌벌 떠는 시중은행들
  • 유길연 시사저널e 기자 (gilyeonyoo@sisajournal-e.com)
  • 승인 2023.12.26 07:35
  • 호수 17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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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완전판매 발견되면 배상 폭탄…CEO 징계 여부에도 촉각

홍콩항셍지수(홍콩H지수) 주가연계증권(ELS)을 판매한 시중은행에 대한 금융 당국의 조사 결과에 관심이 집중된다. 불완전판매로 인정된 사례가 나오면 시중은행의 신뢰성은 큰 타격을 받을 전망이다. 불완전판매에 대한 배상안은 2019년 대규모 원금 손실이 발생한 파생결합증권(DLF) 배상안이 기준이 될 것이란 예상이 나온다. 그해 금융권 전체를 떨게 했던 최고경영자(CEO) 징계 가능성도 제기된다.

금융감독원은 최근 홍콩H지수를 기초자산으로 담은 ELS 판매 과정에 문제가 있는지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판매사인 시중은행을 조사했다. ELS는 기초자산 가격이 만기(통상 3년) 때까지 일정 수준을 유지하면 약속한 수익을 지급하는 파생상품이다. 하지만 미리 정한 수준보다 가격이 내려가면 원금 손실이 발생한다. 예금보다 2~3배 높은 금리를 제공하고 6개월 조기 상환이라는 매력 덕에 재테크 수단으로 오랜 기간 인기를 누렸다.

최근 홍콩H지수가 하락하면서 이를 기초자산으로 하는 ELS도 대규모 손실 우려가 커졌다. 2021년 초 홍콩H지수는 1만원이 넘었지만 현재 5400~6000원 선에 머물고 있다. 이대로라면 2021년 상반기에 가입한 ELS의 경우 3년 만기가 돌아오는 내년 상반기에 원금 손실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12월15일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앞에서 홍콩H지수 연계 ELS 투자 피해자들이 대규모 손실에 대한 대책 마련을 요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12월15일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앞에서 홍콩H지수 연계 ELS 투자 피해자들이 대규모 손실에 대한 대책 마련을 요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고령층에 판매한 ELS 규모만 2조원

조사 결과, 은행이 원금 보장이 가능한 것처럼 설명해 가입을 유도한 불완전판매 사례가 나오면 시중은행의 신뢰성에 큰 상처를 입을 것으로 우려된다.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이 판매한 ELS(ELS의 신탁 형태 ELT, 펀드 형태 ELF) 중 내년 상반기에 만기가 돌아오는 규모는 8조4100억원이다. 이 가운데 국민은행이 판매한 규모는 4조7726억원으로 절반이 넘는다. 신한은행이 1조3766억원으로 두 번째로 많고, 농협은행이 1조4833억원, 하나은행이 7526억원, 우리은행은 249억원 순이다.

특히 이번 ELS는 고령층을 대상으로 판매가 많이 이뤄진 점이 문제다. 오기형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11월말 기준 5대 시중은행이 홍콩H지수 ELS를 70대 이상 연령층에게 판매한 규모는 약 2조원에 달했다. 구체적으로 70대를 대상으론 1조8276억원, 80대는 2084억원, 90대 이상 초고령층에겐 90억8000만원어치가 팔렸다.

은행들은 강화된 금융소비자보호법에 맞춰 ELS를 판매했기에 문제가 없다고 주장한다. 특히 고령 투자자의 경우 지정인 알림 서비스를 통해 가족, 지인 등 고령 투자자가 지정하는 제3자(지정인)에게 상품 가입 내용을 문자메시지로 안내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하지만 금감원은 금융사가 적합하지 않은 소비자에게는 투자 권유 자체를 하지 않아야 한다는 금소법상 ‘적합성의 원칙’에 어긋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이복현 금감원장은 최근 “(은행들은) 자필 자서를 받았다든가, 녹취를 확보했다든가 해서 불완전판매 요소가 없으니 소비자 보호를 했다는 입장인 것 같다”면서도 “금융소비자보호법의 취지와 적합성의 원칙을 생각하면 그렇게 쉽게 말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투자자들은 은행이 원금을 전액 보상하라고 강하게 요구한다. 홍콩H지수 ELS 상품 투자자들로 구성된 ‘홍콩H지수 ELS 피해자 모임’은 12월15일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앞에서 첫 집회를 열었다. 이들은 “시중은행들은 고위험 상품임을 알면서도 손실 가능성을 고객들에게 고의로 설명하지 않는 등 금융소비자보호법을 어기고 부당하게 ELS 상품을 판매했다”면서 “불완전판매로 인한 피해 금액 전액을 보상하라”고 촉구했다.

불완전판매 사례가 확인되면 금융감독원은 배상안을 마련할 것으로 전망된다. 앞서 금융권은 2019년 발생한 DLF 사태 당시 처음으로 배상기준안 방식을 채택한 바 있다. 금감원은 해당 사태에서 배상기준안에 따라 금융사가 손해액의 40~80%를 배상하도록 했다. 이를 기준으로 ELS 배상안도 마련될 것이란 예상이 나온다.

은행 입장에선 억울한 측면이 있더라도 당국의 배상안을 모두 받아들일 것으로 전망된다. 최근 금융 당국이 과도한 이자 장사에 몰두한다는 이유로 은행권에 대해 날 선 비판을 가했기 때문이다. 이에 시중은행은 2조원 규모의 상생금융 지원책을 검토 중이다. 배상안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금융 당국의 눈 밖에 나는 것을 넘어 사회적으로 지탄받게 된다.

다만 ELS 투자의 특성을 고려해 새로운 배상안이 나올 수 있다는 전망도 제기된다. DLF 배상안은 55%를 기본 배상비율로 하고, 투자 경험이 많은 투자자들의 경우 투자자 자기 책임 사유에 따라 배상비율에서 5~10%포인트를 차감했다. 이 기준으로 하면 상당수 ELS 투자자는 낮은 배상비율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ELS 투자자 대다수는 6개월 조기 상환을 통해 재투자를 했기에 투자 경험이 많은 경우로 분류될 수 있다. 하지만 ELS가 수익이 나는 기간 동안엔 투자자들이 손실에 대한 인식 없이 재가입한 경우가 많기에 다른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손해액의 40~80% 배상 가능성

더불어 불완전판매 사례가 나오면 금융 당국은 CEO에게 징계를 내릴 가능성도 있다. 과거 DLF, 라임자산운용 펀드 등 대규모 원금 손실이 발생한 사모펀드 사태 당시에 문제가 된 상품을 판매한 기간에 임기를 보낸 CEO 중 다수는 당국으로부터 중징계를 받았다. CEO는 중징계가 확정되면 연임은 물론 다른 금융회사 취업도 제한된다. 이 여파로 우리금융지주는 그룹 수장이 교체됐다. 하나금융지주는 지금까지도 당국과 징계의 적합 여부를 두고 소송을 벌이고 있다.

금융 당국은 CEO에게 금융상품 불완전판매 책임을 강하게 물으려 한다. 내부통제 체계를 제대로 운영하지 못한 책임을 묻겠다는 것이다. 최근 국회를 통과한 ‘금융회사 지배구조법’도 금융사고에 대한 CEO의 책임 소지를 명확하게 하기 위해 마련됐다.

하지만 CEO에게 징계를 내리면 다시 은행과 당국 간 소송전을 배제할 수 없다. 이번에 통과한 ‘금융회사 지배구조법’ 개정안은 ELS 판매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소비자들이 2021년에 가입한 상품에 대해 올해 개정된 법률을 소급 적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개정 이전의 지배구조법은 금융회사가 내부통제 관련 기준을 마련하도록 명시하고 있지만 이 기준이 잘 준수되는지 관리·감독해야 할 의무에 대해선 정하지 않았다. 이에 개정안에는 ‘임원 및 CEO 등의 내부통제 관리의무 부여’ 조항을 넣었다.

ELS 징계를 기존 지배구조법을 근거로 내릴 경우 내부통제 기준 ‘준수’ 의무 조항이 없는 점 때문에 법률 다툼이 치열하게 벌어질 수 있다. 앞서 DLF 불완전판매로 중징계를 받은 손태승 전 우리금융그룹 회장이 당국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최종 승소할 수 있었던 이유도 기존 법률에 준수 의무 조항이 없기 때문이다.

물론 금융 당국은 지배구조법 말고 관련된 다른 법률을 들어 징계를 내릴 수도 있다. 앞서 금융 당국이 라임자산운용 펀드 불완전판매에 대한 책임으로 손 전 회장에게 중징계를 내릴 때는 ‘자본시장법’을 근거로 삼았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ELS는 일부 투자자만 가입이 가능했던 사모펀드와 달리 ‘국민 재테크’ 상품이기 때문에 시중은행들이 긴장을 많이 하는 분위기”라며 “다만 CEO 제재는 아직 불완전판매 사례도 나오지 않았기에 예상하기엔 이른 감이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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